소설방/삼한지

제5장 인연(因緣) 8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24

제5장 인연(因緣) 8

이튿날 용춘이 지도부인과 함께 궁에 들어가니

금왕 내외가 두 태후를 모시고 용좌에 높이 앉았다.
 
그러다가 곧 폐왕비 지도부인을 만호 태후의 옆자리로 청하여 앉게 하고,

상대등 수을부 이하 각부의 수장들과 대아찬 이상의 진골 관리들을 거느린 채

성대한 연회를 베푸는데, 왕이 만조의 백관들 앞에서 문득 옥음을 높여 이르기를,

“수해 동안 생사를 알지 못하여 궁금해하던 용춘이 마침내 돌아왔으니

과인이 즉위한 뒤로 오늘과 같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 언제 또 있었으랴.

이는 짐의 기쁨일 뿐 아니라 전왕(前王) 폐하를 위시한 왕실 열성조의 음덕이요,

또한 이 나라 전체의 홍복이다.

기유년 물난리 이후에 나라의 살림이 어려워 주연과 연회를 왕명으로 금하였거니와,

이처럼 좋은 날을 얻고서야 어찌 먹고 마시는 것을 삼가겠는가.

경들은 주저하지 말고 마음껏 들라.

그리고 과인의 아우 용춘의 무사귀환을 짐과 더불어 경축하라.”

하니 백관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히 앞에 나서서 용춘이 왕명을 어기고

지답현을 도망간 전날의 죄를 거론하는 이가 없었다.

이때 계고(階古)라는 이는 가야금을 켜고, 법지(法知)는 노래를 불렀으며,

만덕(萬德)은 춤을 추었는데, 이들 세 사람은 모두 가야국의 악성(樂聖)이자

법흥대왕 때 신라로 가야금을 가져와 퍼뜨린 우륵(于勒)의 제자들이었다.

연회가 있은 뒷날에 왕이 용춘을 불러 본래 말한 아찬 벼슬에서 두 등급이나 높여

파진찬에 예부령(禮部令)으로 봉하니 예부는 곧 나라의 의례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이 일을 두고 아무도 반대하여 말하는 이가 없었으나 다만 각간 임종과 이찬 남승이

백반을 찾아가서 왕의 처사가 과한 것을 말하매 백반이 임종의 양자 길달로 하여금

이 사실을 고하도록 하였다.

전에 비형이 음부에서 데려온 집사 길달이 이때 왕의 지극한 총애를 받는 몸으로

당초 용춘의 일을 간할 적에 아찬 벼슬이 부족하다고 조언하였는데,

집에 와서 양부인 임종의 뜻을 알고 나자 그만 태도가 바뀌어 뒷날 왕에게 간하기를,

“용춘의 일을 곰곰 생각하여보니 아찬이 적당합니다.

과한 것은 본래 모자라는 것보다 못한 법이온데 전날에 왕명을 어기기까지 했던

용춘에게 하루아침에 파진찬을 제수하고 게다가 예부령에까지 봉한 것은

자칫 다른 중신들에게 시기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까 두렵나이다. 통촉합시오.”

하였다.

왕이 길달의 말하는 것을 듣고,

“시기하는 자가 누구더냐?”

하고 물으니 길달이 무춤거리며 섰다가,

“이는 본래 신과 같은 음부의 귀신이 헤아리기 힘든 이승 사람의 마음인 듯합니다.”

하였다.

왕이 한참 갈등하다가,

“이미 한번 뱉은 말이다. 어찌 되돌린단 말이냐?”

하고서,

“왕명에 불만하고 시기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이 곧 불충이다.

너는 이 일을 두 번 다시 거론하지 말라.”

하고 대답을 분질러서 길달이 그만 허무하게 물러났다.

본래 길달이 임종의 집에서도 잠을 잤지만 대개는 흥륜사 남쪽의 누문(樓門) 위에 가서

자는 때가 많았다.

흥륜사 남쪽 누문은 각간 임종이 길달을 사자로 삼은 뒤에 그 신통한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네가 음부의 사람이라 하니 귀신 떼를 부려 내가 놀랄 만한 일을 한 가지 보이겠느냐?”

하자 불과 하룻밤 사이에 지은 것으로, 이것을 지은 후에 길달이 자주 그 위에 가서 잤기 때문에

길달문(吉達門)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날도 길달이 퇴궐 후 누문에 기어올라 귀신 떼를 불러 놀고 있으려니

갑자기 비형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타나서,

“이놈, 길달아! 너는 어찌하여 나의 형인 용춘의 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느냐?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하고 꾸짖었다.

길달이 깜짝 놀라 황급히 변명하기를,

“용춘 도령이 파진찬에 예부령이 된 것은 모두 나의 공이오.

이는 내가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이루어진 일인데 어찌 돕지 않았다 하오?”

하자 비형이 더욱 노기 띤 어조로,

“그것은 지난 일이요, 나는 오늘의 일을 말하고 있음이다.

너는 이제 나까지 속이고 능멸하려느냐?”

하고는 쏜살같이 내달아 누문 위로 기어올랐다.

길달이 크게 당황하여 돌연 여우로 변해 도망치니

비형이 눈에 불을 켜고 뒤쫓아서 남산 어귀에 이르러 마침내 그 꼬리를 붙잡았다.

“사람이건 귀신이건 천하에 몹쓸 것이 배은망덕한 것이다!”

비형이 크게 소리치고 여우로 변한 길달의 꼬리를 어깨 너머로 휘둘러 패대기를 치니

길달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음부의 사람 길달은 비록 재주가 신통하고 그 행동에 악의가 없었으나

끝내 헤아리지 못한 것은 이승 사람들의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었다.

훗날 향속에 사람들이 사악한 귀신 떼를 쫓을 때면 매양 비형의 이름을 적어 붙이고,

성스러운 임금의 넋이 아들을 낳으니 비형랑의 집일세


날뛰는 귀신들아 이곳에 머물지 말라


聖帝魂生子 鼻荊郞室亭
飛馳諸鬼衆 此處莫留停

하는 가사를 지어 부르곤 하였는데,

비형의 부적으로 귀신 떼를 쫓는 민간 의식이 바로 이때에 생겨났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장 인연(因緣) 10 회  (0) 2014.07.19
제5장 인연(因緣) 9 회  (0) 2014.07.19
제5장 인연(因緣) 7 회  (0) 2014.07.19
제5장 인연(因緣) 6 회  (0) 2014.07.19
제5장 인연(因緣) 5 회  (0) 201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