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5장 인연(因緣) 6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22

제5장 인연(因緣) 6

그로부터 며칠 후에 용춘 일행이 드디어 금성에 왔다.
 
용춘으로서는 귀양을 떠난 지 만 일곱 해 만에 밟아보는 금성 땅인데

전에 없던 남산성이 서고 명활성이며 서형산성이 번듯하게 개축된 것을 보니

과연 왕업이 일신한 듯하여 감회가 새로웠고, 한돈은 아직도 뒤가 구려서인지

범골 복장에 신분을 감추고도 시종 땅만 보고 걸었으며, 성보는 난생 처음 서울 구경을 하느라

눈이 바빴다.

이때 몽암 식구들 가운데에서 금성으로 오지 않은 이는 오로지 지혜뿐이었다.

지혜는 금성으로 같이 가자는 용춘의 간곡한 권유를 기어코 뿌리치며,

“저는 저의 오라버니 구칠이 서역으로 가자 하는 것도 오직 불법을 받들어 비구니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따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용춘 오라버니가 저를 동복 누이처럼 여겨 그렇게 말씀하시는 뜻은 고맙기 한량없으나

제가 바라는 것은 불자의 도리를 좇아 인성을 맑게 닦고 선행을 행하여 내세를 도모하는 일

하나뿐이올시다.”

하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럴 때 마침 낭지와 친한, 재 너머 안흥사(安興寺)의 늙은 여승이

낭지의 움막에 놀러왔다가 지혜의 말을 듣고는,

“우리 절에 와서 도반들과 같이 경을 읽으면 서로 경쟁하는 마음이 일어 좋을 텐데.”

하고 안흥사에 올 것을 권하니

지혜가 낭지의 허락을 얻어 용춘 일행보다 먼저 몽암을 떠났다.

용춘이 지혜를 보내면서 언제고 하산할 마음이 생기면

금성으로 자신을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하니 지혜가,

“말씀만으로도 이미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고서,

“성불하면 꼭 오라버니를 제일 먼저 찾아가서 뵙지요.”

하며 웃었다.

금성에 온 용춘이 한돈과 성보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그 어머니 지도왕비와 해후하였다.

폐왕비가 한동안 말문을 닫고 눈시울을 적시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아들의 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며,

“이토록 늠름한 기상을 보니 그간의 만시름이 모두 달아나는구나.
장하다.

나는 언제고 네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이 어미 앞에 나타날 줄을 알았느니라.”

하고서 문득 표정을 근엄히하여,

“너의 할머니 사도 태후와 숙흘종 어른께서 수시로 안부를 묻고 살림을 돌보아주셔서

나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았다.

또한 금상 전하도 정월과 8월이면 친히 사신(私臣)으로 하여금

베필과 곡식을 보내주시므로 대궐에서 지낼 때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너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입궐하여 할머니 사도 태후를 뵙고 금상께도 문후를 여쭙도록 하여라.”

하고 일렀다.

용춘이 뒷날 혼자 입궁하여 할머니 사도 태후와 백모인 만호 태후를 차례로 알현하니,

“어이쿠, 이게 누구냐? 내 새끼 용춘이 아니더냐?

그래 그동안에 얼마나 고생이 심하였느냐?

밥은 굶지 않았고 한뎃잠은 안 잤더냐?

어이쿠, 불쌍한 내 새끼 그동안 어디서 어찌하고 살았더냐?

이리 오라, 할미가 얼굴이나 한번 만져보자꾸나!”

사도 태후의 반응은 이러하고,

“너는 어디서 지내다가 이제야 나타났느냐? 전하는 뵙고 왔느냐?”

백모 만호 태후는 이렇게 단 두 마디만을 물었을 뿐이었다.

태후궁을 나온 뒤에 용춘은 곧바로 편전으로 가서 백정대왕을 알현하였다.

“소신 용춘 전하께 문후 여쭈옵니다.”

용춘이 읍하여 고하니 대왕이 크게 기뻐하며,

“오호, 용춘이 왔느냐?”

하고 장대한 체구를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이 성큼성큼 용춘에게 걸어오니 편전의 마루가 심하게 흔들렸다.

용춘에게 가까이 다가온 왕이 덥석 용춘의 손을 잡았다.

“잘 왔다. 그러지 않아도 내 항상 너의 일로 걱정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거늘

이토록 늠름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쁜 마음 한량없구나.”

“신이 원체 부덕하고 불민하여 전하께 오래도록 심려를 끼쳤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오히려 과인이 부덕하여 선왕 폐하의 하나밖에 없는 적자이자

나의 유일한 종제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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