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인연(因緣) 9
한편 취산에서 서현과 하룻밤을 보낸 숙흘종의 딸 만명이 그로부터 두 달 스무 날쯤 뒤인
신축(辛丑)일 밤에 잠을 잤다.
그때 문득 하늘에서 한 늠름하게 생긴 동자가 금빛 갑옷을 입고 내려와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만명의 품속에 답삭 안기므로 깜짝 놀라 일어나니 꿈이었다.
만명이 기이한 중에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하자니 꿈에 본 동자의 얼굴이
낯설지 아니하고 어딘지 모르게 서현을 닮은 듯도 하여,
“내가 서현 도령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그런 꿈을 꾼 게지.”
하였는데,
그 꿈을 꾸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곧 몸에 이상이 생겼다.
하기야 달마다 있던 것이 빠질 때부터 혹시 수태를 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더니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져 만찬이 소용없고 밥 짓는 냄새에도 헛구역질이 났다.
이에 몸종 살피를 앞세우고 은밀히 장안의 용한 의원에게 가서 물으니
의원이 맥을 짚어본 후에 수태한 것이 틀림없다 하므로 살피가 백지장 같은 얼굴로,
“이 노릇을 어찌합니까?
만일에 주인 나리께서 이 일을 아시면 아씨는 산목숨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모를 수도 없게 됐으니 실로 낭패올시다.
대체 아씨를 이렇게 만든 남자가 누구이옵니까?”
하고 난리를 쳤다.
그러나 정작 만명은 별로 당황하거나 놀라지 아니하고,
“이제 사모하는 사람과 하루라도 빨리 합거하게 됐구나.”
하며 도리어 기뻐하는 기색마저 없지 아니하였다.
살피가 눈치로 아이의 아버지를 알아차리고,
“서현 도령이지요?”
하고 물으니 만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너한테 더 숨겨서 무엇하겠니.”
하고 비로소 외가에 갔다오는 길에 하루를 덜어 취산에서 서현과 잠통한 일을 털어놓았다.
살피가 상전의 말을 듣고 크게 걱정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하필이면 서현 도령입니까?
주인 나리께서는 마야 왕비의 동생인 등품 도령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던데
서현 도령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엊그제 마님께서 입궁하여 만호 태후를 뵈었을 때 태후께서 진안왕이 혼기 넘긴 것을 말하며
나리의 의사를 알아봐달라고 간청하였다 합니다.
이런 판국에 서현 도령이라니,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소.”
하며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였다.
백정대왕의 모후인 동륜비 만호 태후라면 숙흘종의 동복 누이이면서
동시에 질부이기도 하므로 만명에게는 고모도 되고 사촌 올케도 되는 사람이었다.
하나 살피의 태산 같은 걱정과는 달리 만명은 태평하게 집으로 돌아와 그 부모에게
서현과 사귀어 수태까지 한 사실을 당당히 밝히니
고요하던 집안이 별안간 쑤셔놓은 벌집처럼 발칵 뒤집힌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만명이 왕실의 처자로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진골인 서현과 잠통한 일은
당시 신라의 법도에 비추어 엄청난 파행이요,
상류 사회를 발칵 뒤집을 만한 대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신라 사회의 골품 제도는 관직에서뿐 아니라
사회 생활 전반을 광범위하게 규제하는 엄격한 질서였다.
타고 다니는 수레의 재료며 장식, 사는 집과 방의 크기,
하다못해 자질구레한 생활 용기에 이르기까지도 골품에 따라
그 적용되는 법칙이 다르고 사용하는 물건이 따로 있었다.
복장의 색깔도 진골은 자색, 6두품은 비색, 5두품은 청색, 4두품은 황색을 입게 하였고
이를 어기면 국법으로 다스렸다.
결혼 역시 같은 신분의 골품끼리만 허용되었다.
만일 같은 신분에서 배우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아예 혼인을 포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훗날 왕실 내에서 성골 남자를 구하지 못하여 혼인하지 않았던
선덕여왕(善德女王)과 진덕여왕(眞德女王)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예다.
이런 형편에 만명이 서현을 배우자로 지목하고 항차 혼인하지 않은 처자의 몸으로
아이까지 뱄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힌 것이야 당연한 노릇이었다.
물론 이 점을 미리 간파하고 서현을 남편으로 삼기 위해 극한의 방법을 택한 만명으로서는
사전에 충분히 예견하고 각오했던 일이기도 하였다.
만명의 어머니인 선모(善貌) 부인은 당장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눕고,
오빠들은 왕실과 집안을 망신시켰다며 족보에서 이름을 지워 친족 관계를 끊을 것을 주장하였다.
올케들은 올케들대로 막내 시누이의 흉을 보느라 여념이 없고 하인들 역시 볕바른 양지에
둘러앉아 쑥덕거리느라 온종일 입이 바빴다.
하지만 이같은 와중에서도 오직 숙흘종만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숙흘종 역시 얘기를 전해들은 첫날은 상심이 컸던 탓인지 하루종일 식음을 폐하였으나
이튿날 세 아들 가운데 위로 두 아들이 와서 다투어 할보(割譜)할 것을 거론하니,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이 능사더냐?”
조용한 소리로 나무랐을 뿐 그 이상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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