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5장 인연(因緣) 3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19

제5장 인연(因緣) 3

낭지가 자세한 말은 아니한 채,

“소승이 암자를 짓고 이곳에 방을 들인 까닭이 바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행히 소승과 취산의 연이 두루 깊은 까닭에 방 들인 곳에서 바라던 경사를 치르게 되었으니

그 아니 기쁘고 즐겁겠소?

부디 두 분 내외께서 금일 성스러운 경진(庚辰)날 밤을 잘 보내시고 내일 하산할 적에는

천하를 슬하에 품어가소서.”

시종 알아듣기 힘든 소리만 늘어놓고는 말을 마치자

일어나서 손수 지고 온 금침을 안으로 들인 뒤에 합장하였다.

그리고 용춘과 성보를 돌아보며 문득 목소리를 근엄히하여 이르기를,

“자네들 둘은 술시에 접어들 때까지만 이 방에 유하고 각자의 방으로 건너가게.”

하니 성보는 즉시 알았다고 답하였지만 용춘은 사뭇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스승님의 오늘 말씀은 당최 수상한 데가 많소.”

하고서,

“서현과 만명 고모가 내외지간도 아닐 뿐더러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한방에서 동침을 한단 말씀이오?

그러하고 내가 지금까지 취산에 살면서 스승님이 남한테

공대하여 말하는 바를 들은 일이 없거니와,

어찌하여 유독 저 두 사람한테만 차별하고 손수 금침까지 지고 오셨는지,

나는 도무지 그 도리를 모르겠소.”

따지듯이 물었다. 낭지가 미연히 웃으며 답하기를,

“이 방의 주인은 처음 암자를 지을 때부터 오로지 저기 계신 두 내외였거니와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서야 인연이 닿아 방의 주인 두 사람이 모두 왔으니

이 방에서는 어차피 만물이 객일 뿐이다.

그러니 주인들이 와서 방을 쓸 적에 유별을 하든 동침을 하든

그거야 너와 내가 알 바 아니요,

또 공대를 한 것도 마땅히 할 만해서 하는 것이니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하고서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언젠가 너에게도 내가 공대할 일이 있을 것이니라.”

하였다.

낭지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용춘이 은근히 장난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서현과 만명 고모가 금일로 동침을 하게 되면 서현이 내게로는 고모부가 되는 셈인데,

벗이 하루아침에 고모부가 되는 것이 저는 재미난 일일지 몰라도 나는 당최 재미가 없소.

내 밤새 여기서 놀고 그런 상서롭지 못한 일을 미연에 막아볼까 합니다.”

부러 낭지의 말과 어긋나는 소리를 하자 낭지가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밖으로 나가 신을 신으며,

“오늘은 수백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천지조화가 무쌍한 밤이거니와 지기(地氣)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몸으로 공연히 천중의 급살을 맞을까 두렵구나.

그래도 좋겠거든 너의 마음대로 하려무나.”

말을 마치자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휭하니 가버렸다.

급살 소리를 들은 용춘이,

“스승님!”

하고 급히 뒤따라 나갔다가 잠시 뒤에 혼자 들어와서,

“성보 자네는 천문의 조화에 달통하니

방금 저 소리를 어렵잖게 짐작할 걸세.

대사의 말이 대관절 무슨 소리인가?”

방에 앉은 성보에게 물었다.

성보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소인인들 천지 조화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스님의 말씀을 알 도리가 있습니까.

다만 소인이 아는 것이라고는 며칠 전부터 우리 신라땅에 성스러운 비기가

감돈다는 것과 특히 야밤의 정기가 바로 이 취산을 뒤덮고 있다는 사실이온데,

더러 그것이 천지에 충만하면 유성이나 벼락이 되어 떨어지는 수가 있으니

스님께서 아마 그런 일을 말씀하셨는가 봅니다.”

하고서,

“천지의 조화야 세세하게 몰라도 애틋한 청춘 남녀가 먼길을 달려오셨으니

따로 자리를 보아 일찌감치 쉬도록 해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닙니까요.”

하였다.

용춘이 성보의 말에 어깨를 잔뜩 옹송그리며,

“대사의 말이 어긋난 예가 전고에 없었지.

어따, 듣고 나니 겁나네그랴. 아직 술시가 멀었지?”

하고 너스레를 떨어 방안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파안대소하였다.

서현이 금성에서 숙흘종을 만나 들은 얘기를 용춘에게 전하자

용춘이 아찬 벼슬이라는 말에는 흡족해하다가도 백반과 잘 지내라는

소리에는 얼굴을 붉히며,

“지금 마음 같아서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과연 그놈의 상판을 면대하면

어떤 마음이 생길는지 나도 내 속을 알 수가 없네.”

하고 한참을 마뜩찮은 듯이 입맛을 다시다가,

“하는 수 없지. 어차피 금성에 가면 보아야 할 얼굴인데.

내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해보는 수밖에.”

드디어 체념한 듯이 고개를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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