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인연(因緣) 2
만명과 용춘이 오촌간으로 당고모와 종질의 사이였다.
그러나 고모인 만명이 나이가 어린 데다 서로 못 보고 지낸 지가 하도 오래여서
이름만 알 뿐이지 상면을 하고서는 누군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나마 만명은 용춘을 어렴풋이 알아보았으나 용춘은 장성한 만명을 통 알 길이 없었다.
만명이 나이 많은 용춘을 향하여,
“내 어찌 자네가 모르는 사람이야?”
대뜸 반말을 하니 용춘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허, 보아하니 난전에서 막자란 처자는 아닌 듯한데 생면부지의 사람한테 말투가 장히 상스럽소?
내가 누군 줄 알고 말을 함부로 하오?”
하고 불쾌한 낯빛을 해보였다.
만명이 웃으며,
“자네가 누군지를 아니까 말이 함부로 나가지.
생면부지도 아니지만 고모가 조카한테 무슨 말인들 함부로 못할까.”
하니 용춘이 만명과 서현을 번갈아 살피며 짐짓 자신없는 말투로,
“고모라니…… 대체 뉘시오?”
하고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이때까지 잠자코 웃고만 앉았던 서현이 비로소 입을 열고 낭자의 이름이 만명임을 밝히자
용춘이 크게 놀라고 당황하여,
“그게 정말이오? 아니 만명 고모가 벌써 이렇게 자랐소?
내가 고모를 오줌싸개 적에 보았는데 어느새 이처럼 과년한 처자가 되었소?”
거푸 묻고는 손가락을 꼽아본 뒤에,
“햐, 과연 그렇겠소. 고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기해년에 아바마마 붕어하셨을 때인데
그때 고모가 예닐곱 살 코흘리개였으니 과년한 처자가 되고도 남았겠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명이 얼굴을 붉혔다가 용춘을 곱잖은 시선으로 흘기며,
“누가 고모를 보고 오줌싸개니 코흘리개니 하는가? 자네가 되우 버릇이 없네.”
하자 용춘이 껄껄 웃고,
“오줌 싸는 것을 보았으니 오줌싸개라 하고 코 흘리는 것을 보았으니
코흘리개라 할밖에. 고모는 그때 나이가 어려서 기억에 없는 모양이지만
나는 오줌 싸고 코 흘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요.”
하였다.
만명이 다른 사람도 아닌 서현 앞에서 무안을 당하고 약이 올라 어쩔 줄을 몰라하니
서현이 그런 만명을 향하여,
“어려서 오줌 안 싸고 코 안 흘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용춘이 부러 고모를 놀리느라 하는 수작입니다.
과히 마음쓰지 마시오.”
하고 달랬다.
용춘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짓고 서현과 만명의 하는 양을 유심히 살피고서,
“자네가 금성에 간 후로 어째서 그토록 기별이 없나 했더니
내 일은 뒷전이고 자네 앞길을 닦느라 그랬구먼.”
하자 서현이 냉큼 그 말을 맞받아,
“오늘도 오지 못할 것을 간신히 왔네.
어디 짬이 나야 말이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간 자네의 일 따위는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그래도 자네 고모가 조카의 일이라고 굳이 가야 한다기에 나는 싫은 것을 억지로 왔다네.”
하며 웃었다.
세 사람이 한동안 설왕설래하며 농지거리를 주고받는 동안에 성보와 지혜가
저녁상을 차려 들고 들어왔다.
만명과 지혜가 한상에서 먹고 나머지 장정들이 다른 상에서 먹는데,
용춘은 밥상에 꿩고기가 올라오지 않은 것을 탓하면서도 남 먼저 밥그릇을 비우고,
“만명 고모 많이 자시오.”
하고 권하였다.
성보는 지체 높은 상전들과 한상에서 밥 먹는 것이 불편하여 슬그머니
그릇을 바닥에 내리고 돌아앉으려다가 서현의 꾸지람을 듣고야 다시 밥그릇을 올렸다.
상을 물릴 즈음에 낭지가 올라왔다.
서현이 낭지를 보고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하니 낭지가,
“도련님께서 그야말로 좋은 날을 받아 오셨소.”
전날 예사로 하던 말투를 고치어 깍듯이 공대하고서,
“어서 저곳으로 가 양 내외께서 나란히 앉으시오. 소승이 두 분께 큰절 한번 올리리다.”
하여 서현과 만명은 고사하고 용춘조차도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서현이 엉겁결에 만명 옆에 가서 앉으니
낭지가 두 남녀를 향하여 넙죽 큰절을 올리는지라
서현이 황망히 맞절로 뵙고서,
“대사께서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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