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도령과 낭자 8
하필이면 이 무렵에 숙흘종이 서현에게 용춘의 일로 잠시 다녀갈 것을 청하여
서현이 낮에 숙흘종의 집을 찾아갔다.
숙흘종이 금왕을 만나 용춘의 일을 의논하였다며,
“지답의 일은 죄를 묻지 않기로 하고 아찬 벼슬을 제수하기로 하였으나
상께서 이번에 용춘이 돌아오거든 어떻게든 백반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특별히 당부하셨다네. 내가 보기에 이는 용춘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노릇이겠지만
또한 장부라면 무릇 훗날을 위해 참을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수고스럽겠지만 자네가 취산의 용춘에게 가서 상의 뜻과 내 뜻을 두루 전하여주었으면 하네.”
하고 말하였다.
서현이 숙흘종의 집을 물러나와 그날 밤에 다시금 비밀히 만명을 만났는데,
문득 취산에 만명을 데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서현이 용춘의 일을 먼저 말하고,
“낭자와 같이 취산에를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하자 만명이 잠깐 생각하다가,
“용춘으로 말하면 저에게는 조카요, 제가 용춘의 당고모이니 남이라고 할 수 없지요.”
하고서,
“쉽지는 않겠지만 저 역시 도련님과 취산에를 작반하여 가고픈 마음 한량없으니
제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근 열흘이 지나도록 만명한테서 아무 기별이 없었다.
서현이 견디다 못해 밤에 숙흘종 집 하인을 고양이 소리로 꾀어내고,
“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 낭자께서 병이라도 얻으셨나 근자에 이르러 통 뵐 수가 없네.”
하고 물으니 하인이 약간 어이없다는 얼굴로,
“도련님께서 모르고 계셨소?”
하고는,
“낭자께서는 벌써 오래전에 흥륜사 북편의 외갓댁에를 다니러 가셨소.
오신다는 날짜가 아직 사나흘 남았으니 네댓새 후에나 만나실 수 있으리다.”
돌연한 소리를 하였다.
서현이 만명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어,
“외갓댁에는 무슨 급한 볼일이 있어 가셨는가?”
하고 되묻자 하인이 고개를 저으며,
“한 열흘 전쯤 무단히 외가 식구들이 보고 싶다고 졸라서 어렵사리 주인 나리의 허락을
얻어내셨소.
하긴 낭자 말씀도 틀린 말은 아니지요.
출가를 하고 나면 언제 외가를 가겠소.
이번에는 몸종도 안 데리고 혼자 가셨소.”
하는 말을 듣고야 내심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서현이 짐작하기를 취산의 용춘 일이 급하기는 하지만 기왕 시일이 늦었으니
만명이 외가에서 돌아오거든 만나보고 가자고 이삼 일을 더 보내었는데,
과연 하루는 만명이 나타나서,
“오래 기다리셨지요? 어서 취산에를 가십시다. 시간이 아깝습니다.”
하고 달뜬 표정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서현은 꿈인지 생신지 믿기가 어려웠다.
“가면서 말할 터이니 어서 가기부터 합시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금성에를 돌아와야 합니다.”
“내가 필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요?”
“이르다뿐입니까. 이것은 꿈이 아닌 생시의 일입니다.”
서현이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며 급히 취산에 갈 채비를 하여
말 두 필을 준비하고 나오니 만명이,
“말은 무엇하러 두 필씩이나 가져갑니까? 한 필이면 족합니다.”
하고서,
“날이 아직은 추우니 서로 바람막이나 하여 갑시다.”
묘한 웃음을 흘렸다.
서현이 그제야 만명의 말하는 뜻을 훤히 알아차리고,
“과연 낭자의 생각이 여러 모로 나를 앞지르는 데가 있소.”
하고 한 필 말에 둘이 올라타서 자신은 뒤에서 만명을 양팔로 껴안은 채
취산을 향하여 말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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