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인연(因緣) 4
용춘의 얘기가 끝나자 성보가 한돈의 일을 물었다.
서현이 금성에 가서 한돈의 일을 알아본즉 백명을 죽인 일은 망자에 대한
추화군의 원성이 자자하므로 크게 문제시 될 것이 없으나 왕명을 받은 관리로
사후에 일을 수습하지 아니하고 야반도주한 죄가 그냥 넘어가지는 아니할 것 같다 하고,
“자발로 나타나서 죄를 빌면 곤장 턱이나 맞고 풀려나도록 힘을 써놓았으니
과히 염려할 것은 없네.”
하였다.
이에 용춘이,
“내가 금성에 가면 금왕 전하를 배알할 것인즉 그때 한돈의 선처를 부탁하여봄세.”
하고 거들어 서현이,
“그럼 태형도 면할 수가 있겠네.
나는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은 모르고 이방부 형관장을 매수하여 실곤장을 치도록
손을 써놓고 왔다네.”
하고 웃었다.
서현이 용춘에게 언제쯤 금성에 갈 거냐고 물으니
용춘이 몽암의 다른 식구들과 상의하여 결정을 하겠노라 대답하고
,
“네댓새 후면 한돈이 압량군에서 돌아올 터이니 다 같이 의논하여 날을 잡겠네.”
하였다.
서현이 성보를 보고,
“자네는 내일 나하고 같이 가세나.”
하자 성보가 웃으며,
“저도 용춘 도련님 갈 적에 같이 갈랍니다.
소인이 감히 어디를 눈치 없이 따라붙겠습니까요.”
하였고 이에 용춘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네도 급살이 두려운 게야. 그렇지?”
하여 다시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네 사람이 서현의 방에서 소살하며 노는데 용춘이 두 사람 정분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서현이 숙흘종의 집을 처음 갔던 얘기부터 시작하여 진안왕 국반과 왕비의 아우 등품이
매작을 들인 것하며 하인에게 서찰 심부름을 시키고 알천 밤나무 숲에서 만난 이야기
따위를 대충 늘어놓았다.
그리고 말미에 가서,
“오늘 취산에 오게 된 사연은 나도 아는 바가 없네.”
하고 만명을 쳐다보니
만명이 서현의 말을 받아 외갓집에 다니러 가서 열흘 넘어 묵은 일을 말하고,
“오늘 내일 사이에 양가에서 누가 다녀가지만 않으면 들킬 염려가 없지만
만일에 발각이 나더라도 아버지가 서현 도령을 나만큼 좋아하니 큰 낭패는 없을 거야.”
하였다.
용춘이 혀를 내두르며 서현의 재주가 보통이 아니라고 탄복하고서,
“그럼 어찌 되는 게야? 내가 자네를 자네라고 부르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인가?
내일부터 자네가 빈틈없는 나의 당고모부가 되는 겔세?”
볼멘소리로 물으니,
“이르다뿐이야. 내 귀에는 지금도 자네 소리가 거슬려.”
서현의 곁에 앉은 만명의 대답은 이러하고,
“아무려면 어떤가. 동무 사이에 고모부 소리가 쉽지도 않을 게고……
편할 대로 부르게 마는 나는 자네 소리로도 족해……”
정작 당자인 서현은 조금 미안한 듯이 말끝을 흐렸다.
이날 밤이 꽤 이슥할 무렵에 용춘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시늉으로,
“어, 술시가 다 안 되었나?”
하며 성보를 돌아보니 성보가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곧추세우며,
“어서 나갑시다요. 술시가 넘어선 지 하마 오랩니다!”
하고는 제 먼저 부리나케 문을 열고 나가므로 용춘도 황망히 성보의 뒤를 따랐는데,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에 서현과 만명을 두루 돌아보며,
“어찌 됐든 명실공히 백년가약의 첫밤이니 두 분이서 좋은 꿈 많이 꾸시고 만년해로하시구랴.”
덕담으로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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