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인연(因緣) 1
금성을 출발한 서현과 만명이 취산 몽암에 이른 것은 각 산의 중들이 일제히
저녁밥을 지어 먹을 무렵이었다.
내처 한달음에 왔으면야 중식 때가 조금 지나면 너끈히 당도하였을 길이지만
상사에 흠뻑 젖은 남녀가 근 보름 만에 만나 그것도 한 필 말에 타고 몸을 맞댄 채로
쉬엄쉬엄 유관삼아 왔으니 시간이 지체된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목이 번다한 민가를 지날 적에는 서현이 말에서 내려 종노릇을 하였고,
산천경개 좋은 곳을 만나서는 앉아 놀기까지 하며 왔다.
두 사람이 취산에 들어 일곱 갈래의 미로를 따라 몽암 경내에 들어서니
지혜가 제일 먼저 이들을 발견하고,
“스님 말씀이 영락없네!”
하며 반색을 하였다.
서현이 지혜에게 안부를 묻고,
“무엇이 영락없다는 거요?”
하며 공대로 물으니,
“아까 낮에 스님이 다녀가시면서 서현 도련님이 오실 터이니
저녁쌀을 낫게 안치고 성보더러 도련님 방에 군불도 지펴놓으라 합디다.”
하고서 말없이 선 만명을 힐끔 훔쳐본 뒤에,
“더구나 도련님이 혼자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귀하신 상전 한 분을 뫼시고 올 거라 하셨는데 이제 보니
그 말씀도 딱 들어맞지 않았소?”
하고 웃었다.
서현이 낭지의 움막에 들렀다가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이제라도 가서 문안을 여쭙고 와야겠소.”
하니 지혜가 그럴 것이 없다 하고,
“이따 밤에 이리로 건너오시겠다 하더이다.”
하였다.
그사이 고우도도는 금성으로 떠난 지 스무 날 가량 되었다 하고,
한돈은 골평이 다녀갈 적에 범골 신분으로 위장하여 식구들을 만나러 가서
몽암에는 용춘과 성보, 지혜밖에 없었다.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던 성보가 서현의 목소리를 듣자
낯에 검댕을 묻힌 채로 달려나오며,
“도련님 오셨습니까요!”
하고 넙죽 땅에 엎드려 절을 하니 서현이 황망히 성보를 일으켜 세우고,
“천하의 명일관이 아궁이에 코를 박고 군불이나 지펴 어찌하나?
내일은 나를 따라서 금성의 내 집으로 가세.
내가 아무려면 자네 입 하나 건사를 못하겠는가.”
하며 성보의 얼굴에 묻은 숯검댕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용춘 도령은 어디 갔나? 용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구먼.”
서현이 두리번거리며 용춘을 찾으니 지혜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 간 데가 마굿간이요 소 간 데가 외양간이지요.”
하고 용춘이 너럭바위에 가서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말한 뒤,
“먼저 안으로 드십시오. 이제 저녁 먹을 때가 되었으니 곧 오실 거예요.”
하여 서현이 만명을 데리고 옛날 자신이 묵어갔던 바로 그 방에 들었다.
조금 있으려니 밖에서 누가 투덜거리며 하는 말이,
“오뉴월에 겻불도 쬐다 나면 서운하다더니 한돈이 어째 이리 더디게 오나.
종 없으니 종 부릴 일만 일어나고 말 없으면 말 탈 일만 생긴다고,
한돈이 없으니 자꾸 아쉬운 일만 벌어지네그랴.”
“또 범을 잡으러 갔습디까?”
“다 잡아놓은 노루를 놓쳤어.
대신에 꿩만 몇 마리 잡아왔으니 이것 볶아서 저녁상에 올려라.”
“스님 아시면 또 야단이 날 텐데.”
“모르게 살짝 먹어 치우면 되지.
사람이 어디 푸성귀만 먹고 기운을 쓰느냐.
나는 당최 소증이 나서 못 살겠다. 어서 받아라.”
“에그, 나는 이런 것 손에 대기 싫소.”
“성보 어디 갔어? 성보더러 하라면 되지.”
“죄없는 목숨 살생할 궁릴랑 그만하고 어서 저기 서현 도련님 방에나 가보시오.”
“거긴 왜?”
“서현 도련님이 와 계십니다.”
“뭐라구? 서현이 왔어?”
그리고는 이내 방문이 부서질 듯이 왈칵 열리는데 밖에 용춘이 서 있었다.
서현이 용춘을 향해 빙긋 웃으며,
“오랜만일세.”
하고 인사를 건네니 용춘이 방에 앉은 낯선 낭자를 보고,
“자네는 보니 반갑네만 내 모르는 손이 계시네?”
하며 눈을 끔벅거렸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장 인연(因緣) 3 회 (0) | 2014.07.19 |
---|---|
제5장 인연(因緣) 2 회 (0) | 2014.07.19 |
제4장 도령과 낭자 8 회 (0) | 2014.07.19 |
제4장 도령과 낭자 7 회 (0) | 2014.07.19 |
제4장 도령과 낭자 6 회 (0) | 201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