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도령과 낭자 5
국상이 끝난 후인 이듬해 갑인(594년) 정월의 일이다.
하루는 숙흘종의 집으로 한 젊은이가 찾아와 뵙기를 간청하므로 숙흘종이 하인에게,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니 하인이,
“사찬 벼슬에 다니는 김서현이라고 합디다.”
하고 답하였다.
숙흘종이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는 보나마나 불미한 청탁이 있어 온 자이다. 하등 만날 까닭이 없다.”
하였는데 하인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좀 전의 그 도령이 용춘 도령의 일로 왔다고 합니다.”
하였다.
숙흘종이 용춘의 이름을 듣자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용춘의 일로 왔다고?”
하고는 즉시 그 젊은이를 안으로 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만난 젊은이가 풍채가 듬직하고 인물이 훤칠하며
그 눈빛과 태도에서 의연한 기개가 느껴지자 숙흘종이 좀 전과는 달리,
“자네가 누구라 했지?”
새삼 관심을 가지고 되물었다.
서현이 절하며 답하기를,
“저는 사찬 벼슬에 다니는 김서현이라 하고 저의 조부는 금관국의 말왕인 김구해이며
저의 아비는 진흥대왕을 도와 관산성을 공취한 대도독 각간 김무력이올시다.”
하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숙흘종의 입이 벙긋 벌어지며,
“호, 그대가 무력 장군의 자제인가?
자네가 나를 기억하겠는가?
내가 자네 선친 살아 계셨을 적에 자네의 사는 집을 서너 번이나 찾아갔었다네!”
하며 뛸 듯이 반가워하였다.
서현이 웃으며,
“소인이야 어르신을 모를 턱이 있겠습니까.
다만 나리를 자주 뵈올 적에는 제가 스무 살도 채 안 된 어린애였으니
어른께서 저를 알아보시기가 힘드실 겝니다.”
하자 숙흘종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옳네. 자네의 기상이 이토록 늠름하게 변했을 줄 내 미처 짐작하지 못했으이.
그러고 보니 영락없이 무력 장군의 현신을 뵙는 듯하구먼!”
하고 신통해하였다.
서현이 비록 용춘의 일로 왔으나 한동안 용춘의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양자가
옛날 이야기며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는데 그 다정한 모습이 마치
오랜만에 상봉한 인척간과 같았다.
숙흘종이 주로 무력 장군의 생전 공에 대하여 찬탄에 찬탄을 거듭하고서,
“취산에다 만년 유택을 지었다지?
내가 워낙 게으른 사람이라 늘 마음은 있으면서도 아직 장군의 유택을 찾아가지 못하였다네.”
하며 사죄하듯 말하니 서현이 비로소 취산에 있는 용춘의 일을 입에 담았다.
지답현에서 왕명을 어기고 도망갔던 용춘이 취산에 은둔하고 있는 것과,
이제쯤 다시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도 후환이 두려워 걱정하고 있다는
서현의 얘기를 듣고 나자 숙흘종이 한참 만에 입을 열고 이르기를,
“용춘이 지답에서 도망간 일은 잘한 일이요,
여지껏 은둔하여 세상에 나서지 아니한 것도 굳이 따지자면 잘한 일일세.
그러나 용춘이 만일에 세상에 다시 나오려고 한다면 먼저 분명하게 뜻을 세우라고 전하게나.
용춘은 본래 야심도 만만찮은 아이지만 저의 아버지인 폐왕의 일로 종형제들에게
깊은 원한과 적개심을 품고 있다네.
이를테면 나라에 불충한 마음인 게지.
이것이 있는 한은 용춘의 일은 장담하기 어렵네.
하니 먼저 그 마음속에 든 불충한 마음을 없애고 금왕에 대한 견마지로를
스스로 맹세한 다음에라야 일신의 출세는 물론이고 훗날의 일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야.”
하였다.
서현이 이미 용춘에게 그와 같은 말로 충고한 점을 밝히고,
“용춘이 이미 마음을 돌린 줄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왕명을 어긴 데 대한 일부 중신들의 견제와 탄핵이올시다.”
하자 숙흘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용춘의 뜻만 확고하다면 내가 적당한 기회를 보아 지답의 일이 무사타첩될 수 있도록
상께 간하여 봄세.”
하고는,
“어쨌거나 자네들 두 사람이 서로 벗이 되어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이 실로 보기 좋으이.
이는 우리 신라의 홍복일세. 허허, 홍복이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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