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도령과 낭자 2
계축년 11월에 신라 왕실은 백정대왕의 장녀인 덕만(德曼)의 일로 크게 술렁거렸다.
왕녀 덕만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사리에 밝고 민첩하니
대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으나 이때에 이르러 별안간 불법에 심취하여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고자 하므로 왕이 크게 노하여 덕만을 궁에 가두고 바깥출입을 금지시켰다.
영특한 덕만이 별궁의 노태후를 찾아가서 묻기를,
“사람들이 모두 법흥대왕 할아버지 적에 순교한 박염도(이차돈)의 이야기를 칭송하여
말하는데 그 내용이 하도 신비로워 다 믿기 어려우니
할머니께서 바른대로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과연 박염도가 순교하는 것을 보셨는지요?”
하자 팔순이 넘어 맑은 정신이 없던 노태후가 돌연 파안대소하며,
“아무렴, 보았지! 보았고말고!”
하고서 젊어 자신이 본 이야기를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법흥대왕 때의 사람 박염도는 죽백(竹柏)과 같은 자질에 수경(水鏡)과 같은 뜻을 지녔던
약관의 청년이었는데, 당시 궁내에서 조아(爪牙:신하)의 물망에 올라 있었다.
마음으로 불법을 신봉하던 법흥대왕이 본래 자극전(紫極殿)에서 등극하였을 때
동쪽의 천경림을 굽어살피며 말하기를,
“옛날 한(漢)나라의 명제(明帝)가 꿈에 감응하여 불법이 동쪽으로 오게 되었거니와,
이제 과인이 등극하매 백성들을 위하여 복을 빌고 죄를 없애는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하며 폐허가 되다시피 한 흥륜사 터에 절을 짓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불교를 모르던 백관들이 왕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직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大義)만을 주장하고 사찰 세우는 것을 따르지 아니하므로
왕이 매양 허공을 바라보며,
“아, 부덕한 과인이 대업을 이어받아 위로는 음양의 조화를 잃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즐거움이 없도다.
정사를 보는 여가에 늘 불교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나 누가 있어 이 뜻을 함께할 것인가!”
하고 탄식하는 일이 잦았다.
염도가 대사 벼슬에 올라 조정에 충원되어 비로소 대왕의 그 고독한 마음을 통연히 알아차리고,
“신이 듣건대 옛날 사람은 제아무리 미천한 자에게도 계책을 물을 때가 있었다고 하니
죄를 무릅쓰고 한말씀 아뢰겠나이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신하의 대절(大節)이요,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의리라 하였습니다.
신이 지금 밖으로 나가 왕명을 빙자하여 절을 창건하라고 말하면 중신들이 달려와
이를 대왕께 고변할 것인즉,
이때 전하께서 말을 잘못 전한 죄로 신을 벌하여 나라 사람들이 모두 보는 데서 목을 베십시오.
그러면 만조 백관과 뭇백성이 감히 대왕의 하교를 어기지 못할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며 자신을 참수하여 그 감응을 보고 절을 지으라 하였다.
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과인의 뜻이 불사를 짓는 데도 있으나 궁극으로는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너를 죽이겠느냐?
너는 비록 공덕을 지으려고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염도가 다시 정색을 하며,
“버리기 어려운 것이 몸과 목숨이긴 하오나 소신이 저녁에 죽으면 불교가 뒷날 아침부터
행해지고 불일(佛日)이 다시 중천에 뜨며 대왕께서 오래도록 깊이 편안할 것입니다.
부디 대사를 위하여 소신의 청을 가납하소서.”
간곡히 진언하며 뜻을 굽히지 아니하자 드디어 왕이 크게 감복하여,
“난봉(鸞鳳)의 새끼는 어려도 하늘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홍곡(鴻鵠)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파도를 탈 형세를 취한다 하였거늘 네가 꼭 그렇구나. 과연 큰선비로다.”
하며 염도의 청을 수락하였다.
허락을 얻은 염도가 왕명을 위조하여 절을 창건하라는 뜻을 밖으로 전하니
과연 여러 신하들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이를 간하였다.
왕이 짐짓 노여움을 품은 척하며 염도를 불러 왕명을 거짓으로 전한 일을 꾸짖고,
“내 오래전부터 정사(精舍)를 짓고 불법을 봉행하려 했지만 백관들이 고의로 머뭇거리고
과인의 뜻을 헤아리지 아니하여 서운한 마음이 컸다.
이런 중에 대사 염도가 있어 과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거짓으로 왕명을 빙자하여
절을 짓도록 하였으니 일변 그 뜻이 가상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나라의 근본을 어지럽히고 국법을 문란하게 한 것으로,
만일 염도의 허전관령한 바를 본받는 자가 있다면 백성들이 모조리 도탄에 빠질 것인즉,
내 눈물을 머금고 염도의 목을 잘라 국법의 지엄함을 튼튼히하리라.”
하고서 좌우에 명하여 염도의 목을 베도록 하였다.
형관이 염도를 묶어 관아 아래로 데려오니 염도가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었다.
“우리 대성법왕께서 불교를 크게 일으키고자 하시므로 신이 신명을 바쳐 이를 좇으니
하늘이시여, 부디 상서(祥瑞)를 내려 사람들에게 두루 보이소서!”
염도가 말을 마치자 망나니가 장도를 휘둘러 목을 벴다.
그런데 붉은 피가 나와야 할 사람의 목에서 흰 젖이 1장(丈) 높이로 치솟고,
홀연 해가 빛을 감추어 사방이 어두워지며, 땅이 무섭게 진동하고 꽃비가 펄펄 떨어져 내렸다.
이를 본 대왕은 일변 놀라고 일변 슬퍼하여 눈물이 용포를 적셨고, 백관들은 앞을 다투어
땅에 엎드리는데 모두들 땀이 조관에 흠뻑 배었다.
이날 밤에는 왕성 인근 감천(甘泉)의 물이 갑자기 말라 물고기가 사방에서 튀어오르고,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졌으며,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시끄럽게 울어댔다.
또한 염도를 장사지낼 때는 춘궁(春宮)에서 함께 벼슬하던 동료들이 서로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잡고 놀던 동무들은 관을 향하여 곡을 하였는데
그 소리가 마치 부모의 상을 당한 것과 같았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염도를 가리켜서,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의 살을 벤 것도 염도의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고,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것 역시 어찌 그의 장렬함에 비할 수 있겠는가?
염도는 단지(법흥왕을 일컬음)의 신력(信力)을 돕고 아도(阿道)의 본심을 이룬 계림의 성자다.”
하며 칭송하였다.
그리고는 북산의 서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는데,
내인이 슬퍼하여 좋은 땅을 가려 절을 짓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 하였다.
자추사가 그 후로 영험하여 집집마다 이 절에서 예를 올리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누리고
사람마다 도를 행하면 법리를 깨닫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때부터 신라에서 불교가 크게 성행하여 산마다 절이 들어서고 절마다 승니가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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