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4장 도령과 낭자 4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12

제4장 도령과 낭자 4

입종비 김씨의 죽음은 노리부의 뒤를 이어 신라 조정에 또다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신라 왕실에는 세 사람의 태후가 있었는데, 별궁 노태후가 죽음으로써 남은 태후는

진흥왕의 왕후인 사도 태후와 금왕의 모후인 만호 태후였다.

죽은 노태후의 딸이자 손부인 동륜비 만호 태후는 진흥왕비 사도 태후에게는 며느리이면서

아울러 시누이였으나 왕실의 법도가 지아비를 따라가므로 마땅히 사도 태후를 시모로 공경하고

예우해야 함에도 별궁의 세도를 믿고 함부로 굴 때가 많았다.

노태후가 죽음으로써 곤경에 빠지기로는 금왕의 아우 백반과 이찬 남승을 위시한 노리부의

잔당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태산처럼 믿어온 든든한 후원자가 급서하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특히 노태후가 누구보다 귀애했던 백반은 국상이 끝날 동안 내내 허공을 바라보며

침통해하는 것이 흡사 넋이 빠진 사람과 같았다.

이에 반해 금왕 백정은 비로소 한 시대가 끝난 듯한 후련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이제는 일일이 별궁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았고, 뜻대로 사람을 쓰거나 버려도

참섭할 사람이 없었다.

비록 할머니 사도 태후와 어머니 만호 태후가 있다고는 하지만 본래 이들 두 사람은

정사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금왕 백정에게는 즉위 이후 가장 부담스러웠던 존재가 마침내 사라진 것이었다.

국상 기간 동안에 숙흘종이 비로소 궁에 들어와 왕과 상봉하였다.

이때 신라왕 백정이 제왕의 위엄을 버리고 사사로이 종조부를 대하는 예로 숙흘종을

장시간 우어하였는데, 왕이 먼저 마음속의 얘기를 거짓없이 털어놓으며 도움을 청하니

숙흘종이 임금의 말하는 것을 잠자코 다 듣고 나서,

“왕실의 권위가 지금과 같아서는 아니 되오.

전왕을 폐위에 이르게 한 것이 상의 책임은 아니나 지금에 와서 보면 왕실 전체의 허물이요,

당연히 상께도 큰 누가 아니오?

나는 이런 처사가 왕실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라 여겨 평소에 유감이 있었소이다.”

그간 미편했던 심기를 드러낸 뒤에 문득 부드러운 낯빛을 해보이며,

“그러나 지나간 일을 이제 와 새삼 거론하여 무엇하리요.

더군다나 오늘 상을 봉견하매 이처럼 허심탄회하게 흉금을 터놓고 말씀을 하시니

내게도 한 생각이 없을 수가 없소이다.

자고로 매사에는 근본이 바로 서야 하거니와 나라의 근본은 왕실이오.

먼저 왕실의 위엄을 갖추고 나서야 나라의 번성함을 말할 수 있을 거외다.

왕실의 위엄은 충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효나 형제간의 우애는 그 다음이지요.

더러 효와 우애가 충과 맞설 때에는 상께서는 나라의 근본이므로

마땅히 선후와 경중을 가려 먼저 충의 도리를 좇을 일이지요.”

그간 대왕의 우유부단함을 은근한 말로 꼬집었다.

대왕이 숙흘종의 말을 귀담아듣고 나서 거듭 도움을 청하자

숙흘종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국상 마지막 날, 대왕이 다시금 숙흘종과 우어하여 장차의 일을 물으매

숙흘종이 답하기를,

“국상이 난 것을 계기로 왕실의 면모를 일신하는 것이 시급하오.

우선은 믿을 만한 사람을 가려 상의 가까이에 두는 일이 먼저요,

그런 후에 조정의 뜻을 모아 진나라를 멸한 수나라와 교통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줄 압니다.”

하고서,

“신은 본래 누가 청하거나 시킨다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상께서는 그리 아시고

신의 존재를 열외로 두십시오.

그렇다고 신이 마땅히 도울 일이 있는데 돕지 아니한 적도 없고,

나서지 않아야 할 자리에 나선 일도 없습니다.

신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로지 왕실의 종친이므로 스스로 판단하여 도울 일이 있으면

힘써 마소의 도리를 다하리이다.”

하였다.

숙흘종이 왕궁을 나올 적에 대왕이 궁성 밖까지 따라 나와서,

“작은할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실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하고 허리를 굽혀 절하며 고마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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