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4장 도령과 낭자 3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10

제4장 도령과 낭자 3

노태후가 자신의 아버지인 법흥대왕과 박염도의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으니

덕만이 재미나게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혹시 염도가 사악한 주술로써 왕실과 백성을 현혹시킨 것은 아닌지요?”

하며 맹랑한 소리로 물었다.

노태후가 크게 고개를 저으며,

“누가 감히 그 따위 당찮은 소리를 하던고?

이 할미가 똑똑히 보았거늘 그것은 사악한 주술이 아니라 염도가 유언한 하늘의 상서요,

부처의 감응이었느니라.”

하니 덕만이 다시금,

“하면 왕실의 사람으로 불법을 믿고 봉행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하고 되물었다.

노태후가 이번에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불법을 믿고 봉행하는 일에 어찌 왕실과 여염이 따로 있으며 제왕과 신하의 구분이 있겠느냐.”

하고서,

“나의 아버지 법흥대왕께서도 나라 각지에 사찰을 세우고 축건 태자의 교화한 바를 받들어

사셨으며 너의 증조부인 진흥대왕 역시도 그 가르침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말년에는 스스로

법운(法雲)이라 칭하고 삭발까지 하였느니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덕만이 미연히 웃음을 지으며,

“소녀가 이제 할머니를 만나뵙고 선대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에 괴롭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하고는 비로소 자신이 박염도를 장사지낸 바로 그 자추사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겠다는

소망을 말하고 아울러 백정왕이 이를 허락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금족령을 내린 사실까지

고스란히 일러바쳤다.

연로한 탓에 사리분별이 전과 같지 않던 노태후가 돌연 크게 노하여,

“고약하구나! 감히 불법을 배척하다니, 이는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너는 당장 자추사로 가서 네 뜻한 바대로 행하라. 금왕에게는 내가 말하리라!”

하고 그 길로 일어나서 편전으로 향하였는데, 편전에 도착하여 왕을 보자

문득 자신이 무슨 까닭으로 거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아니하였다.

“할마마마께서 어인 일이신지요?”

왕이 묻자 노태후가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아니오. 내 무슨 용무가 있어 온 것은 같은데 근자에 부쩍 잊어버리기를 잘하니

나중에 생각이 나거든 다시 오리다.”

하고서 별궁으로 건너오니 덕만이 그때까지 가지 아니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허락을 얻어내셨는지요?”

하고 물었다.

노태후가 돌연 어안이 벙벙하여,

“허락은 무슨 허락?”

하고 되물으니

덕만이 좀 전의 일을 말하므로 비로소 잊었던 것을 떠올렸다.

다시 안색이 시뻘개서 편전으로 휭하니 왕을 찾아가 노기 띤 음성으로 말하기를,

“상은 어찌하여 왕실에서 불법을 믿고 따르는 것을 나쁘다 하시오?”

밑도 끝도 없이 나무라니 왕이 그 진적한 뜻을 알지 못하여,

“좀 소상히 밝혀 말씀하시면 소손이 심력을 다하여 받들겠나이다.”

하였다.

이때 노태후가 덕만의 일은 다시금 까맣게 잊었으나

왕이 불법을 신봉치 않는다는 믿음만은 투철하여,

“법흥대왕께서 불법을 받아들인 이래로 나라와 왕실의 번성함이 나날이 대성하여

드디어 오늘과 같은 태평세에 이르렀거니와, 이제 와서 상이 별안간 불교를 배척하는 것은

그 연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소.

상이 불법을 배척하고 불자들을 탄압한다는 소문이 궐내에 이미 자자한데

어찌 나를 기만하려 하시오?

내가 별궁에 있다고 귀까지 막고 사는 줄 아오?”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는데 그 안색이 예사롭지 아니하였다.

왕이 황망한 중에도 한사코 그런 일이 없다고 고하자 노태후가 끝까지

자신을 속인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친히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내 아들 진흥의 뒤를 따르리라!”

하고는 발소리도 요란하게 별궁으로 갔는데,

별궁에 당도하여서는 다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피곤하다며 일찍 자리에 누웠다.

노태후의 80수 행적이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이튿날 별궁의 노태후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궐내에 알려지고 나라의 이름난 의원들이

줄줄이 다녀갔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천수를 마치니,

 

백정대왕 즉위 15년(593년) 계축 11월 중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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