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도령과 낭자 1
숙흘종(肅訖宗)은 별궁 노태후의 아들이자 진흥대왕의 아우로 백정왕에게는
종조부가 되는 사람이다.
애당초 법흥대왕과 보도 태후 박씨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고, 법흥의 아우인
갈문왕 입종이 형의 딸인 별궁의 노태후를 아내로 맞아들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으니
장자가 진흥대왕인 삼맥종(三麥宗)이요, 차자가 숙흘종이었다.
숙흘종이 본래 타고난 인품이 고매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여 매양 궁성 밖의 사저에 머물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왕궁 출입을 금하고
살았다.
진흥왕 삼맥종이 붕어한 후에 화백에서 한때 숙흘종으로 보위를 잇게 하자는 주장이 나오니
별궁의 노태후가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어 여러 번 청하였으나 그때마다 사저에 질러놓은
대문 빗장이 열리지 않아서 다녀온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람은 보지 못하고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글소리만 듣고 왔노라 하였다.
그 뒤로도 노태후가 아들이 보고 싶어 궁으로 부르면 응하는 법이 드물고,
오직 정월 하룻날과 8월 보름에만 식솔들과 입궁하여 문후를 여쭐 뿐이었으며,
더러 사저로 사람들이 찾아가면 하인으로 하여금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여 관직에 있는 사람은
결코 만나지 아니하였다.
숙흘종의 철저하고 빈틈없는 처신이 대개 이와 같았다.
그러나 숙흘종이 본래 사람을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따금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늙어 퇴임한 관리들이나 억울하게 물러난 이가 있으면
인편에 위로를 마다하지 아니하였고, 드물기는 하지만 스스로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밤새 술벗을 자청하기도 했다.
하여 때로 부당한 처벌을 당하고 비분강개하거나 조정과 왕실에 앙심과 화심(禍心)을
품은 사람도 숙흘종을 만나고 나면 그 마음의 독기가 봄날 눈 녹듯이 풀어지니
이찬 동대와 같은 이는,
“신라왕이 백만 군대로도 하지 못하는 일을 오직 숙흘종이 있어 홀로 하는구나.”
하고 찬탄하였다.
숙흘종이 기해년에 자신의 조카인 사륜왕을 폐위시켜 궁성 밖 사저에 부처(付處)한
일을 늘 마땅찮아하며,
“한번 정한 왕을 신하들이 작당하여 갈아치우는 것은 비유컨대 달이 해를 범하는 것과 같이
상규를 벗어난 일이다.
어찌하여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손가?
자고로 하늘과 사람이 다 함께 경계해야 할 일이 바로 우리 조정에서 일어났구나!”
하고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사저로 물러난 조카 사륜을 찾아가 여전히 왕으로 예우하여 말하기를,
“부디 낙담하지 마시고 옥체를 돌보사이다.
지금의 이 일은 바른 도리가 아니거니와,
본디 사악한 것이 바른 것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올시다.
해를 범한 달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나이까?
신이 평소에는 왕실과 조정의 일에 법도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여
국사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았는데 이번 이 일만은 그 부당함을 만천하에 알리겠으니
전하께옵서는 마음을 대범하게 잡숫고 조금만 기다려주사이다.”
하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륜왕이 돌연 죽으니
숙흘종이 폐왕의 영전에서 통곡하며 이르기를,
“후대의 일이 걱정이로다!
드디어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선례가 되었으니 장차 국사를 어찌할꼬!”
하고는 그 후로 일년에 두 차례 별궁 노태후에게 문후를 여쭙던 것마저도 행하지 아니하였다.
백정이 즉위한 후에도 숙흘종을 여러 번 궁으로 청하려 하였으나
그때마다 칭병하고 왕이 보낸 사람조차 만나주지 않으니
하루는 백반이 참다못해 직접 숙흘종을 방문하였다.
백반이 사저에 들어서서 숙흘종을 찾으니 하인이,
“어른께서는 병 중에 계신지라 아무도 집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소.”
하고 별로 공손한 기색도 없이 문전박대를 하였다.
격분한 백반이 문득 언성을 높여 꾸짖기를,
“네 이놈!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감히 문 앞을 함부로 막아서느냐?
나는 금왕 전하의 아우인 진정왕 백반이다! 냉큼 안에다 연통하지 못할까?”
하며 눈알을 굴렸다.
그럼에도 하인이 별로 놀라지 아니하고,
“어르신이 누군지는 알 이유도 없소.
소인은 단지 우리 댁 주인 나리의 명을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태연히 대답하므로 성미 급한 백반이 더 참지 못하고,
“내 당장 너의 목을 베어 버릇을 가르치리라!”
하며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이때 안채의 문이 열리고 아프다던 숙흘종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웬놈의 소란이냐?”
숙흘종이 인상을 찌푸리고 보니
백반이 칼을 뽑아 들고 제 집의 하인을 개처럼 나무라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숙흘종을 본 백반이 하인에게 뽑아 들었던 칼을 황급히 도로 칼집에 꽂아넣고
종조부를 향해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백반이올습니다.”
“네가 내 집에는 어인 일이냐?”
“조부님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전하께서
특별히 저로 하여금 문안을 다녀오라 하셨습니다.”
“환자의 집에 병문안을 온 자가 어찌하여 칼은 뽑아 들고 소란을 피우는고?”
숙흘종이 별로 크지 않은 소리로 물었다.
“송구합니다. 하오나 저 하인이 사정은 묻지도 아니하고 무턱대고 사람을
집에 들이지 아니하니 제가 그만 화가 치밀어 그랬습니다.”
백반이 무료한 낯으로 변명하는 것을 들은 숙흘종이 다시 자그마한 소리로 물었다.
“아무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한 것은 나다.
내 집의 하인이 내 말을 듣지 누구의 말을 듣겠는가?
그러하고, 너는 내 말을 전한 내 집의 하인에게 칼까지 뽑아 들고 행패를 부리니
이는 곧 나를 향하여 칼날을 겨눈 것과 무엇이 다른가?”
비록 말투는 조용하고 부드러웠으나 하도 엄청난 소리였으므 로 듣고 있던 백반으로서는
오금이 다 저렸다.
황망히 땅에 엎드리며 고하기를,
“당치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버릇이 없다 하기로 어찌 감히 조부님께 칼을 겨누오리까.
하인이 저를 누군지 물어보지 아니한 채 자꾸만 돌아가라 하니
그만 욱기로 칼을 뽑아 나무란 것이지 실제로 해칠 마음은 없었나이다. 통촉합시오.”
진땀을 흘리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사죄하였다.
숙흘종이 냉담한 얼굴로,
“나는 손자가 할애비의 면전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는 이야기를 고금에 아직 듣지 못하였다.
항차 여기는 시정잡배들이 우글거리는 저잣거리도 아니요,
하물며 너는 왕실의 핏줄이자 금왕의 아우가 아닌가?
그러잖아도 근자 몇 해 동안 왕실과 관련한 온갖 추문이 꼬리를 물어
왕가의 체통과 위엄이 땅에 떨어졌거늘
차제에 이같은 패륜까지 밖으로 알려지면 무슨 수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으랴?”
하고 준절히 꾸짖은 다음에,
“너는 오늘 내 집에 오지 않은 것이다.
그런 줄 알고 돌아가라.
만가지 추문이 횡행하고 있는 이때 왕실의 종친으로 오직 근신하고 조심하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임을 명심하라.
내가 스스로 출입을 삼가고 칭병하여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도 모두 그런 연유에서다.”
말을 마치자 인사도 받지 아니하고 휭하니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무리 안하무인으로 설쳐대던 백반일지언정
결국 속수무책으로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백반은 고사하고 왕실 최고 어른인 노태후조차도 처신이 올곧은 아들 숙흘종을
어려워하는 탓에 그의 말 한 마디엔 언제나 천근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숙흘종이 사륜왕 붕어한 뒤로 늘 용춘과 용춘의 어머니인 폐왕비 지도부인을
불쌍하다 말하고 수시로 집에 청하여 안부를 묻곤 했는데,
용춘이 역부를 죽이고 귀양살이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듣자
한동안 낙담하여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 용춘의 됨됨이를 높이 평가하여,
“지금 왕실에서 금왕을 도와 왕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자는 오직 용춘이 있을 뿐이다.”
하는 소리를 자주 했고, 반면 상대등 노리부와 이찬 남승에 대해서 는 누가 이들의 이름자만
입에 올려도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막상 무신년에 노리부가 죽으니 예를 갖추어 문상을 다녀와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 진의를 궁금해하며,
“어른께서는 늘 노리부 때문에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고 하시면서
이름조차 듣기를 싫어하시더니 어찌하여 직접 문상까지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까닭을 물으니,
“내가 노리부를 싫어한 것은 산 사람의 일이요,
이제 노리부가 죽었으니 그와 나는 다른 세상의 사람일세.”
하고서,
“어쨌거나 노리부가 살았을 적에 조정의 제일 높은 상재(上宰)였고 나는 그가 받들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아니했던 이 나라 왕실의 사람인데, 이제 생사마저 갈리는 판국에
어찌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여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깊은 도량과 빈틈없는 처신에 또 한번 혀를 내둘렀다.
숙흘종의 그릇이 대강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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