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3장 취산(鷲山)의 맹세 9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8. 23:46

제3장 취산(鷲山)의 맹세 9

이날 삼자가 서로 이마를 맞대고 늦도록 조곤조곤 한담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밤이 깊자 이야기는 자연히 신라 조정의 일로 옮아갔다.

용춘과 허교하기로 약조하고도 선뜻 자네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아 애를 먹던 서현도

어느덧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이 취하자,

“자네는 금왕 전하를 어떻게 보시는가?”

명실공히 벗을 대하듯이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볼 것이나 있나. 백정은 결코 왕의 재목이 아님세.”

용춘이 간단히 답변하고 이어 사뭇 흥분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왕위에 오른 뒤로 허구헌날 사냥질이나 일삼는 왕이

무슨 놈의 왕이야?

지금이 어디 그런 호시절인가?

나는 사냥질 다녔다는 성군의 얘기를 전고에 들은 바가 없으이.”

용춘이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문득 크게 한숨을 토했다.

“기왕지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나는 백정왕이 즉위함으로써

우리 신라의 운명도 끝장이 났다고 보네.

법흥대왕과 진흥대왕 양대 60여 년을 거치면서 수많은 충신들이 허다한 전쟁터를 떠돌며

피땀을 흘려 이루어놓은 것들이 백정왕 10여 년에 모조리 스러져 물거품이 되고 말았네.

지금 우리와 지경을 접하고 있는 백제와 고구려가 국내의 사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치지 않는 것은 실로 천행이요 만행일세.

법흥 진흥 양대를 거치며 가야국을 아우르고 영토를 넓혔다고는 하지만 냉정히 말해

국력으로 보나 영토의 넓이로 보나 우리 신라는 백제의 여러 담로국과 고구려의 광대함에

비하면 그야말로 어른 앞에 선 아이요,

태산 앞의 한줌 모래가 아닌가. 왕과 백성들이 한덩어리로 똘똘 뭉쳐 필사의 각오로

싸우고 지켜도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운 판국에 왕은 눈만 뜨면 사냥질이요, 충신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며, 썩은 탐관오리와 어지러운 난신적자(亂臣賊子)가 경향에서

메뚜기 떼처럼 기승을 부리고 백성들은 셋만 모이면 나라와 왕실을 욕하느라 여념이 없으이.

만일 이러한 때에 백제나 고구려에서 밀정을 보내어 신라의 속사정을 알게 된다면

6백 년 나라가 망하는 것은 비조즉석(非朝則夕)의 일일세.

우리는 시기를 놓치고 때를 잃었네.

나라의 국운이 성하고 쇠하는 것도 다 때란 것이 있게 마련이거늘,

진흥대왕 이후로는 나라가 시들고 쇠하는 것이 자고 나면 눈에 보이고 살에 와닿을 정도라네.

이는 결코 내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닐세.”

용춘이 말하는 것을 들은 서현이 다시 물었다.

“하면 자네의 생각으로는 작금의 이 난국을 어찌 풀어갔으면 좋겠나?”

“성군이 나타나야지. 새로운 성군이 나타나 조정에서 물러난 뜻 있는 신하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제도와 문물을 정비해 나라의 면모를 일신해야 하네.

진흥대왕의 5신(五臣)과 같은 충신들이 어찌하여 반드시 그 시대에만 국한하여 있겠는가.

해가 밝으면 만물이 저절로 해를 향해 모여드는 것이 천지간의 조화요 만법의 이치가 아니던가.”

“새로운 성군이라면 바로 자네를 일컬음인가?”

서현이 거두절미하고 묻자 용춘이 별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 왕실에 법흥 진흥 양대를 걸쳐 성취한 왕업을 제대로 계승할 사람이 나말고 또 누가 있던가? 금왕은 그 우유부단한 성품이 이미 왕의 재목이 아니요,

백반이 있다 한들 그는 옳고 그름의 분별조차 없는 미치광이일 뿐일세.

국반 역시 책이나 읽는 선비라 제왕의 덕목은 갖추지 못하였으니

결국은 나밖에 더 있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문무의 중요함을 깨달아 성현의 가르침을 힘써 배우고,

노(魯) 나라 사구(司寇:공자)와 주(周) 나라 주사(柱史:노자)의 뜻을 좇으며,

비록 축건 태자(竺乾太子:석가)의 교화한 바를 받들되 천성이 무예를 좋아하여

손에서 하루도 칼과 활을 놓아본 일이 없다네.

기회가 오면 어찌 성군의 도리를 따르지 않을 것인가?”

서현이 용춘의 말을 들으며 생각하니 과연 짐작대로 용춘의 야심이 만만치 아니하였다.

그러나 서현의 뜻은 용춘과는 사뭇 달랐다.

“자네의 말이 크게 그른 것은 없네.”

서현은 먼저 용춘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나 역시 자네를 성군의 자질로 여긴 지 오래요,

진정왕 백반과 진안왕 국반에 대한 관점도 자네와 크게 다르지 않으이.

항차 우리 신라의 국운이 지난 10여 년간 쇠잔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만일 이러한 때에 백제와 고구려가 침공하여 들어오면 이기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네.

어찌 자네와 나뿐이리요.

지금 이 나라에 사는 모든 뜻 있는 자들이 밤에 깊은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 아니겠나.”

그리고 서현은 사뭇 목소리를 낮추어 끊어진 말허리를 이었다.

“하나 다만 한 가지, 금왕에 대한 자네의 편견만은 재고할 필요가 있네.

물론 나 역시 지난 10여 년에 걸친 금왕의 처사에는 불만이 많은 사람이네.

하지만 노리부가 죽은 지난 무신년과 기유년을 기화로 나라의 사정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도

사실일세. 날만 새면 포수들을 이끌고 사냥이나 일삼던 왕이 돌연 바깥 나들이를 중지하고

편전에서 늦도록 정사를 돌보기 시작한 것도 그러하고, 기유년 여름에 큰물이 졌을 때는

국고를 열고 사자를 파견해 이재민을 구호한 일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먹는 것을 감하여 백관들의 본이 되었으니 전날의 왕이 아닐세.

수을부로 상대등을 삼을 때만 해도 그렇지. 본래 조정에서는 각간 임종이나 이찬 남승으로

죽은 노리부의 뒤를 잇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네.

백반이 주동한 왕실에서도 별궁의 노태후가 몇 번이나 왕을 불러 각간 임종을

강력히 천거한 줄로 아네.

그러나 왕께서는 이를 단호히 물리치고 이찬 수을부로 상대등을 삼지 않았는가?

왕은 전날에 사냥질이나 다니던 왕이 필경 아님세.

아직 성군이라고까지야 말할 것이 없지만 능히 성군의 자질을 갖춘 분이라고 나는 믿으이.”

서현의 말에 용춘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