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취산(鷲山)의 맹세 7
그로부터 한 해 뒤인 계축년(593년) 시월 중순에 고우도도가 헌걸스레 생긴
한 젊은이를 앞세우고 몽암을 찾아왔다.
고우도도야 해마다 시월 그 무렵만 되면 전날 자신이 모셨던 무력 장군의 기일을 당해
취산 서편에서 묘제를 지내고 곧장 몽암으로 와서 달포 가량을 묵어가던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난데없이 젊은이와 작반하여 오니 그것이 전날과는 다른 일이었다.
고우도도가 용춘 나이 또래의 그 젊은이를 한두 걸음 뒤에서 상전 모시듯
수행하여 와서는 마침 양곡을 팔아 몽암에 올라와 있던 낭지에게 인사를 시키자
낭지가 고우도도의 말을 미처 다 아니 듣고도,
“오호, 그대가 바로 서현랑인가?”
하며 이름까지 알고 물었다.
청년이 노법사를 향하여 깍듯이 예를 표하고,
“진작에 스님의 고고한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불연이 깊지 못하여 늦게 뵙습니다.”
하니 낭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늦었네. 아암, 늦고말고.”
하고서,
“어서 들게나.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네가 오면 묵을 방까지 지어놓고 기다렸네.
이 방이 바로 자네 방일세.”
비로소 절 짓고 한 번도 열지 않은 방의 빗장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고우도도조차도,
“그럼 이 방이 서현 도련님의 방이었단 말씀이오?”
하고 어리둥절해하였다.
낭지가 서현을 방에 청하여 무릎을 맞댄 뒤에 암자의 식구들을 죄 불러모아 서로 보게 하니
한돈은 허리를 굽혀 인사만 하고, 성보는 무력 장군의 아들임을 알고는,
“하면 전날 금관국의 왕손이 아니십니까요?
소인도 가야국의 후손이올습니다.
소인이 있던 곳은 함안의 아시량국이니 금관국과는 형제의 나라요,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소인의 집에서도 수로대왕의 영정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크게 감격해할 뿐 아니라 연하여 왕자를 대하는 예로 공손히 읍을 하였다.
이에 서현이 잠시 안색을 붉혔다가,
“왕손이라니, 당치 않네. 지금은 그저 신라의 일개 사찬일 뿐 이지.”
하고 무료하여 입맛을 쩍쩍 다셨다.
지혜 역시 거타주에 있던 가야국의 왕녀인지라 면식이 없이도
서현을 대하는 마음이 남달랐으나 초면인 남녀 사이가 데면데면하여
선 채로 다소곳이 예만 표하였다.
암자 식구들 가운데 유독 용춘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낭지가 성보에게 용춘을 찾아보라 하여 성보가 밖으로 나갔는데,
잠시 뒤에 용춘이 헐레벌떡 달려들며,
“누가 왔다고? 서현이 왔다고?”
하고 모처럼 밝은 얼굴로 반색을 하였다.
그때까지 두 사람이 이미 알던 사이임을 모르고 있던 고우도도가,
“두 분께서 어찌 아시는지요?”
하고 의아해하니,
“천하의 무력 장군 자제를 내가 모른대서야 말이나 되오.”
용춘의 답은 앞뒤가 절벽이라 고우도도가 들어도 알 것이 없고,
“전왕 폐하께서 붕어하셨을 적에 금성의 사저에서 처음 뵙고,
이듬해 저희 선친 작고하셨을 적에 왕자께서 친히 문상을 오셔 뵈었으니 오늘이 세 번쨉니다.”
하는 서현의 대답에 이르러서야 양인의 구연이 깊은 줄을 알았다.
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왕자에 대한 깍듯한 예로 용춘에게 상석을 권하자
용춘이 황망히 손을 내저으며 서현이 연장인 것과 방의 주인임을 들어 사양했다.
양 도령이 한동안 설왕설래하다가 상하 구분 없이 맞절로 인사를 나누었다.
서현은 전왕이 붕어한 후로 용춘의 고생한 것을 말하고 용춘은
서현이 화랑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것을 찬하며 임자년 봄에 벼슬길에 나간 것을 축하하였다.
암자의 식솔들이 서현의 방에 모여 서현이 가져온 술과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노는데
음식이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아니하자,
“취산에 든 이래로 오늘같이 포식하기는 처음입니다. 묘제 지낸 음식이 많기도 합니다요.”
먹성 좋은 한돈이 싱글벙글하며 말하였다.
서현이 보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음식들을 죄 풀어헤친 뒤에,
“금년에는 선친의 기일에 맞춰 전하께서 친히 술과 음식을 내려주셨습니다.
음식이 넉넉하니 많이들 드십시오.”
하여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왕의 자상한 처사를 칭찬하였는데
유독 용춘만은 아무 말이 없었고 그 소리를 들은 뒤로는 음식도 더 들지 아니하였다.
서현이 본래는 선걸음에 몽암 구경이나 하고 그날로 귀경할 작정이었으나
자신의 방까지 마련하고 기다렸다는 낭지 법사의 신통한 소리에다 뜻밖에도
용춘까지 만나게 되니 계획을 통히 고치어 유숙할 결심을 하였다.
그날 밤을 암자에서 묵으며 몽암에서 새로 사귄 식구들과 주거니받거니 한담을 나누는데,
개인사도 이야기를 하지마는 그즈음 신라 조정의 일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다. 한돈이 자신이 저지른 추화군의 뒷일을 묻자 서현이,
“자네가 백명을 죽인 현령 한돈인가?”
하고 반문한 뒤에 자세히는 모르나 백명이 죽은 후 군민들의 원성이 자자하여
새로 군주에 임명된 자가 부임 직후 금성으로 장계를 올렸을 거라 말하고,
“사정이야 어찌 됐건 나라의 관리를 죽였으니 아주 무사타첩이야 되겠나.
다만 노리부가 죽고 나서 나라 안에 썩은 관리를 모다 추려내고 그놈들 때문에 생긴 일들은
낱낱이 규찰하여 억울한 바가 없이 하라는 왕명이 있었네.
아마 자네의 일도 참작의 여지는 있을 걸세.
내 아는 형관이 있으니 금성에 가거든 자세히 알아보고 답을 줌세.”
하니 한돈이 꼭 그리 해달라며 거듭 부탁을 하고 나서는 벽에 기댄 채로 이내 코를 골았다.
용춘이 한돈의 초저녁잠 많은 것을 흉보며,
“나는 당최 자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다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네.
어서 자네 방으로 건너가게나!”
몇 번이나 한돈을 깨워 말하였는데, 한돈이 그때마다 눈을 번쩍 뜨고는,
“자기는 누가 잤다고 그러십니까? 안 잡니다요.”
얼굴이 시뻘개서 고집을 피우고는 이내 다시 코를 고므로 나중에는 자는 한돈의 귀에 대고,
“봉화가 올랐다!”
하고 고함을 버럭 질렀다.
한돈이 봉화 바람에 크게 봉변을 당한 사람이라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봉화! 봉화!”
하고는 그 길로 부리나케 문을 열고 달려나갔는데,
바깥에 나가서야 용춘이 놀린 줄을 알고 겸연쩍게 웃으며,
“아무래도 소인은 이만 자야겠습니다. 새날에 또 뵙겠습니다요.”
하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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