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3장 취산(鷲山)의 맹세 3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8. 23:33

제3장 취산(鷲山)의 맹세 3

 

구칠의 누이 지혜는 몽암의 안살림을 돌보면서

조석으로 경을 읽고 낭지에게 부지런히 불법을 배웠다. 
 
성보는 암자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밤에는

늘 너른 바위에 나가 천문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성보가 비가 온다면 반드시 비가 왔고 풍향과 한서(寒暑)를 예견하매

한 치도 틀림이 없으니 몽암의 식구들이 매양 그 신통한 바를 일컬어,

“성보가 하늘의 조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성보의 말한 바를 듣고 그대로 좇는 것이다.”

하는 우스갯소리를 내곤 하였다.

성보가 주로 하루나 이틀 뒤의 일기도 말하지만 오뉴월에 폭서 닥치거나 큰물 질 것과

엄동에 오래 가물 것 따위를 초봄에 벌써 알아맞히고는 미리부터 방비를 튼튼히 할 뿐만 아니라

가끔은 나라의 중대사도 재미 삼아 입에 담고는 하였다.

성보가 무신년 여름에 천문을 보고 말하기를,

“병석의 노리부가 아마도 금년을 넘기기 힘들겠습니다.”

하니 이때만 해도 성보를 믿지 않던 한돈이,

“천문을 보고 어찌 그런 것까지 안다는 말인가?”

하며 내심 비웃었는데,

과연 그해 섣달에 노리부가 죽으니

다른 사람들은 성보가 신통하다고 입을 모았으나 한돈만은,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더러 쥐를 잡기도 하는 모양이대?

그러하고, 해 지면 밤 오고 노인 병들면 죽는 게지 다른 방도가 또 있나.”

하고 어긋난 소리를 하였다.

한돈이 성보를 시험할 요량으로,

“하면 노리부 다음으로 상대등은 누가 되겠나?”

물으니 성보가 웃으며,

“이찬 수을부가 될 것입니다.”

하므로 한돈은 별생각도 없는 자가,

“자네 말이 틀렸네. 임종이 아니면 남승이 될 테니 우리 내기하세.”

하여 증인으로 지혜를 중간에 세웠다.

지혜가 두 사람을 보고,

“만일 지는 사람은 달포간 쓸 땔감을 혼자서 마련하도록 합시다.”

하고 제안하니 한돈이 그거야 본래 성보의 일이라며 저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다 하므로,

“그럼 관두세요. 이길 자신이 없으니 그러는 게지.”

하는 지혜의 비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좋습니다요, 아무렇게나 합시다.”

하고 응하였다.

보름 뒤에 한돈의 숙부 골평이 몽암에 다니러 왔는데 한돈이 채 인사도 아니하고,

“새 상대등이 임종입니까, 남승입니까?”

하고 물으니 골평이 어이없다는 듯이,

“죄 짓고 산에 숨어 지내는 놈이 상대등이 누구면 알아 뭣하려고 묻노?

임종이나 남승이 상대등이 되면 너를 무사방면해주기로 약조라도 하였느냐?”

하고는 수을부의 이름을 말하므로 한돈이 공연히 성보가 할 땔감

네댓 짐을 구슬땀 흘리며 해온 일이 있었다.

그 후로도 기유년 7월에 나라에 수재 입을 것과 중국의 진나라가 수나라에 망할 것을 말하고,

이듬해인 경술 봄에 혜성이 나타날 것과 10월에 북의 고구려왕 양성(陽成:고구려 25대 평원왕)이 죽을 것 따위를 모두 천문을 보고 헤아려 미구에는 그 헤아린 바와 같이 되니

마침내는 한돈이 성보의 재주에 탄복하고 성보가 너른 바위에 나가 하늘을 관찰하노라면,

“그런 일들이 모다 하늘의 어디에 있는지 내게도 좀 일러주게나.”

“나는 언제쯤 죄가 풀려 다시 처자를 만나고 아지와 더불어 운우의 정을 나누겠는가?”

하는 소리들을 곧잘 물었다.

임자년 초봄에 낭지가 왕이 보낸 사람을 피해 몽암으로 나앉았다가 달포간을 그대로 머물렀다.

왕의 심부름꾼이 좀체 돌아가지 아니하고 낭지의 움막에서 유숙한 탓이거니와 이때 왕명을 받고

온 자가 이름이 월종(月宗)으로, 그는 각간 임종의 아우였다.

월종이 낭지의 움막에서 담수와 더불어 지내며 오직 낭지가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그러구러 달포나 시일이 흐르니 산중 생활이 여간 답답하고 지루하지 아니하였다.

“대체 스님께서는 어디를 가서 이리도 오래 소식이 없나?”

“어디를 가셨는지 소승이야 모르지요.

한번 출타를 하시면 당일로 오는 날도 없지는 않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반 달도 걸리고,

반년도 걸리고, 지난번에 한번은 이태 만에도 오셨으니 그 조화를 저로선 알 길이 없습니다.

모다 스님의 마음입지요.”

“스님이 아주 나를 죽이는구만.”

월종이 팔자에도 없는 산중 생활에 신물이 나서 갈수록 주리가 틀렸다.

낮에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낮잠을 자고 밤에는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하여

담수와 말벗이라도 하려고 드니 담수야 산중 생활이 몸에 밴 터라,

“소인은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펴고 누우므로 하는 수 없이 혼자 밤을 지새우곤 하였는데,

하루는 마침 달이 휘황하여 움막 바깥으로 달구경을 나왔다가

저만치 물이 고인 웅덩이 근처에서 한 소년이 혼자 멱을 감고 노는 것을 보았다.

월종이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다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다가갔더니

귀신인 듯도 하고 도깨비인 듯도 한 소년이 물에서 훌쩍 뛰어 바위에 올랐다가,

바위에서 나무를 타고 사방을 옮겨다닌 후에 다시금 풍덩 물로 뛰어들며 깔깔거리고 웃어대는데, 그 움직임이 어찌나 잽싼지 다람쥐와 같았다.

한데 자세히 보니 소년이 물로 뛰어들 적에 여러 곳에서 풍덩 소리가 동시에 들리고

수포와 물무늬가 어지럽게 이는 것이 흡사 수십 명이 함께 물에 뛰어든 것 같았다.

소년이 아무도 없는 사방에 대고,

“자, 이제 황천까지 누가 먼저 갔다올 터인가?”

하고는 그대로 자맥질을 하여 사라졌다가 밥 한 솥 지을 만치 시간이 흐르자

물고기를 입에 물고 솟아올랐는데,

여기저기에서 수십 마리의 물고기떼가 동시에 솟아올라 허공에 저절로 떠 있었다.

“너희가 잡은 황천의 물고기는 모두 몽암의 우리 형님께 갖다 주련다. 어서 나를 따르라.”

말을 마치자 소년이 다시 자맥질을 하니 허공에 절로 떠 있던 수십 마리 물고기가

덩달아 물 속으로 사라져서는 그 뒤로 아무리 기다려도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월종이 귀신에 홀린 듯한 눈으로 이 기이한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