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장 쫓기는 사람 15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8. 23:29

제2장 쫓기는 사람 15

대세와 구칠이 바다로 달아난 것이 건복 4년 정미(587년) 7월의 일이었다.
 
이듬해인 무신 섣달에 오랜 병석에 있던 상대등 노리부가 마침내 죽으니

왕은 이찬 수을부에게 상대등을 제수하였다.

수을부가 노리부와 달리 사람이 정하고 사려가 깊어서 왕과 신하들의 신망이 두루 두터웠으나

진정왕 백반과 이찬 남승을 중심으로 한 일부 세력들과 마찰이 심하여 나랏일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항차 기유년 7월에는 나라의 서쪽에 큰 홍수가 져서 민가 3만여 호가 물에 떠내려가고

물경 2백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으므로 민심이 더욱 흉했다.

그러나 크게 보자면 죽은 노리부의 잔당은 저무는 해요 산 수을부의 세력은 떠오르는 해라,

시일이 흐르면서 왕도가 바로 서고 신라 조정이 본모습을 갖춰가는 것은 어쩌지

못할 자연의 섭리와도 같았다.

노리부의 죽음은 신라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재위 10여 년 동안 신라왕 백정은 정사는 거의 돌보지 아니하고 날마다

광부엽사(狂夫獵士)들과 더불어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사냥을 즐겼다.

이에 지증대왕의 증손이자 병부령인 김후직과 같은 충신들은 매양 나랏일을 걱정하며,

“옛날 임금들은 하루에도 만 가지 정사를 돌보고 살피되 반드시 깊이 사려하고

멀리 염려하여 좌우에 바른 선비를 두고 그들의 직간하는 바를 받아들였으며,

부지런히 힘쓰고 꾸준히 노력하여 어떤 경우에도 감히 안일함과 편안함을 구하지 않았나이다.

이러한 뒤에야 덕정이 순미하여 국가를 능히 보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전하께서는 매일 광부엽사들과 어울려 매와 사냥개를 놓아

돼지와 꿩과 토끼를 잡으러 산과 들을 분주히 다니시며 이를 그만두려 하지 않으시거니와,

노자(老子)는 말하기를 산을 달려 사냥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고 하였사옵고,

서전(書傳)에는 안으로 여색에 빠지거나 밖으로 사냥을 일삼는 것 중에 한 가지만

저질러도 망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하였나이다.

이를 보면 사냥은 안으로 마음을 방탕하게 하고 밖으로는 나라를 망치는 것인즉,

어찌 이를 반성하지 않으리이까. 전하께서는 부디 유념하소서.”

몇 번이나 충간에 충간을 거듭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왕의 진적한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기실 왕으로서는 숙부의 폐위와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 파생한 갖가지

무성했던 추문과, 그바람에 아우 백반이나 노리부 무리한테 느껴오던

무거운 부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조정 대신들 중에도 누가 충신이며

누가 역신인지를 알지 못하니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도 없었다.

게다가 별궁의 노태후가 진정왕백반을 애호한다는 소문이 돌고부터

왕위조차도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만일 그런 판국에 왕이 조정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사를 제대로 돌보려고 했다면

숙부인 전왕의 꼴을 면치 못할 거라고 왕은 판단했다.

하지만 조정의 거목 노리부가 죽자 사정은 달라졌다.

물론 오랜 세월 누적된 일이 일조 일석에 급변할 리야 없어도

우선은 노리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재위 10여 년 만에 명실공히

자신의 뜻한 바대로 정사를 펴나갈 때를 얻은 셈이요,

아우 백반의 수족이 잘렸으니 그를 견제할 자신도 생겼다.

기유년과 경술년을 거치며 백정왕은 드디어 과감히 왕권을 강화하고,

지방 관아에 신료를 파견하여 백성들의 소리를 직접 들었을 뿐 아니라,

상대등 수을부와 협의하여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을 대폭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신해년 2월에는 외교의 업무를 주관하는 영객부(領客府)를 신설하여

영(令) 2인을 책임자로 두었고, 같은 해 7월에는 나라 안팎에 신라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3천 보에 달하는 남산성(南山城)을 축조하였다.

이태 뒤인 건복 10년 계축(593년)에는 왕도 금성의 명활성과 서형산성(西兄山城)을 개축하니,

명활성은 주위가 3천 보요, 서형산성은 주위가 2천 보에 달하였다.

백정왕의 이러한 의지가 중국 대륙 수(隋)나라까지 전해져서

성을 개축한 이듬해 갑인년에 수의 문제(文帝)가 사신으로 하여금

왕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으로 삼는다는 조서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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