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쫓기는 사람 4
용춘이 문보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나서 한동안 깊은 상념에 잠겼다가,
“꾸지람은 당치 아니하고 그간 서모와 서제를 거두어주신 은혜가 실로 태산과 같습니다.”
하며 웃는 낯으로 문보를 일으킨 뒤에 그 손을 잡고 문득 정색하여 말하기를,
“그러나 지금 세상이 하도 수상하고 어지러우니
당분간 이 사실을 비밀로 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여 문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춘이 문보의 사람됨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날 자신이 적화현 현령으로 있던 간자를 참수하여
부왕의 능에 바친 것과 간자의 자백을 통해 진정왕 백반이
연루된 일 따위를 숨김없이 털어놓으니
문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양자가 주안상을 마주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밤이 꽤 깊어서 용춘이 문득 한숨을 지으며
신라에 배울 만한 스승이 없음을 크게 개탄하니
문보가 눈을 감은 채 매시근히 앉았다가,
“신의 집에 가끔 황룡사의 법사 원광이 와서 하는 말이
취산에 낭지라는 이름의 이승 한 분이 사는데
그 사람의 인품과 학식이 하도 출중하여 우리 계림에서는 제일이라 합디다.
원광 스님도 낭지를 스승으로 예우하고 때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가서
묻고 배우기를 마치 어린아이가 부형을 대하듯 하니
왕자께서도 그 이승을 찾아가 보시지요?”
하고 권하였다. 용춘이 원광 법사의 말이라는 데 귀가 솔깃했으나,
“나는 학식이나 인품도 좋지만 무예를 더 배우고 싶소.”
하니 문보가 웃으며,
“낭지 법사의 법력이 하룻밤에 만리를 넘나들 만치 신통한 구석이 있다고 합디다.”
하였다.
용춘이 술시가 지나 문보의 집을 나설 적에 비형을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언젠가 좋은 세상을 만나면 서로 원 없이 호형호제할 때가 있을 것이나
아직은 그 시기가 아니다.
네가 과연 돌아가신 부왕의 성총으로 태어난 나의 동생이라면
앞으로 더욱 자중하고 자숙하여 사람들의 입에 너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니라.
오로지 문보 아저씨의 말씀 받들기를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 받들 듯이 하라.”
하니 비형이 여전히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서서,
“내 일은 내가 다 알아 할 터이니 염려하지 마시오만
형님은 오늘 밤에 금성을 떠나야 화를 면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내일 일이 시끄럽소.
어디 한적한 곳으로 가서 족히 한두 해는 숨어 지내야 할 거요.”
말을 마치자 인사도 아니하고 훌쩍 담을 넘어 사라졌다.
이튿날 비형의 예견대로 과연 금성이 시끄러웠다.
적화현 현령이 목이 잘려 죽었는데
그 잘린 목이 영경사 북봉의 진지대왕 능에서 발견됐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진정왕 백반은 크게 당황하였다.
당장 왕실로 그 형인 백정 임금을 찾아가 아뢰기를,
“이는 알아볼 것도 없는 용춘의 소행입니다.
용춘이 적화현 현령 간자를 죽인 것은 진지왕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인즉,
앞으로는 그 화가 저는 물론 전하께까지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입니다.
당장에 용춘을 잡아들이고 살인죄로 다스려야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간자와 백반의 소행을 알 길 없는 왕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죽은 간자는 누구이며 용춘이 전왕의 원수를 갚겠다 함은 무슨 뜻인가?”
하고 되물었다.
이에 백반이 진지왕 배앓이할 적에 간자를 데려가서 약을 지어올린 일이 있다고 말하며,
“저로서도 당최 그 소상한 연유를 알 바 없으나 아마도 짐작컨대
그때의 일로 하여 용춘이 해괴한 오해를 한 듯합니다.
용춘이 저와 전하께 앙심을 품고 기필코 죽은 숙부의 원수를 갚겠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으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물어보지 않았더니
오늘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비로소 짐작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
하고서,
“옛말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것은 바로 용춘의 소행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제 약을 지어 바친 간자를 죽였으니
그 다음은 간자를 데려갔던 제가 용춘의 손에 죽는 일만 남았습니다.
어서 용춘을 잡아들여 벌로 다스리고 아울러 전하의 옥체와 왕실의 기강을 튼튼히 보전하소서.”
하였다. 왕이 몇 가지 의심나는 바가 없지 아니하나
그 아우의 주장이 워낙 강하고 거셌기로 용춘을 잡아들이라고 병부에 명하였다.
그러나 왕명을 받은 형관들이 용춘의 집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용춘은 금성에 있지 아니하였고, 사방으로 용춘의 행방을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잡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다시 몇 해가 흐른 후에 용춘이 예전보다 더욱 늠름해진 모습으로 금성에 나타났는데,
이때는 간자의 일 따위는 이미 까맣게 잊혀진 뒤라 왕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고,
백정도 자신의 죄가 있으니 예전처럼 강하게 용춘의 엄벌을 주장하지 않았다.
게다가 왕실의 최고 어른인 입종비 김씨가 노환으로 자주 아파서
자연히 진흥왕비 사도부인의 세력이 커졌다.
사도부인 박씨는 둘째 아들 사륜이 폐위되었다가 돌연 병사한 것을 불쌍히 여겨
사륜의 독생자인 용춘을 끔찍이 애호하였는데,
용춘이 수년 만에 금성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기뻐하며 왕실로 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죽은 아들을 본 듯이 그 몸과 얼굴을 어루만졌다.
사도부인 박씨에게는 왕도 용춘도 모두 다 같은 손자였다.
그러나 노리부의 아들 역부의 죽음으로 용춘과 백반의 사이는 다시금 크게 벌어졌다.
백반은 전날 간자의 일을 새롭게 거론하며 걸핏하면 사람을 죽이는 용춘을
극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노리부의 사위인 이찬 남승과 그를 추종하던 몇몇 대신들이 동조하니
왕이 드디어 이를 가납하여 이르기를,
“용춘이 비록 사람을 죽였으나 전왕의 독생자요,
왕실의 핏줄이며, 내게로는 종제다.
극형은 당치 아니하고 다만 왕도에서 가까운 지답현(只畓縣:영일)에 보내어
당분간 뉘우치고 근신하며 살게 하고 별도의 왕명이 있을 때까지
현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라.
아울러 동대의 아들 대세는 그 집에서 근신토록 하라.”
하고 조치하였다.
물론 노리부가 병중에만 있지 아니했어도 왕으로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
왕위에 오르며부터 노리부의 막강한 권세에 줄곧 부담을 느껴온 신라왕 백정은
용춘의 일이 진흥대왕 이후 사그라들기 시작한 왕권을 돈독히하는 데
다시없는 기회라고 여겼다.
왕은 차제에 약화된 왕실의 권위를 어떻게든 바로 세우고 싶었고,
그리하여 나중에는 일부 신하들의 거듭된 극형 주장을 노기 띤 목소리로 묵살하기에 이르렀다.
“한번 뱉은 말이다! 누가 감히 용춘의 일을 다시 거론하려는가?”
당연히 백반이나 남승은 왕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읍하고 물러난 뒤에 백반이 남승을 보고 지답현에 아는 관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답현의 태수 육담(育澹)이란 자가 저의 휘하에 있으니
당장 사람을 보내 조치토록 하겠습니다.”
“사방 10리 밖으로는 나다니지 못하도록 해야 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용춘이 놈이 살아 있는 한은 내가 베개를 높이 벨 수가 없소.”
“제 말이 그 말이올습니다.”
“당장은 어렵지만 훗날 적당한 때가 오면 지답현에서 죽어 나와도 좋지.”
백반이 은근한 목소리로 남승에게 말하니
남승이 백반의 말하는 뜻을 금방 알아듣고,
“명년쯤에 죽어서 나와도 무방하지요.”
하고 맞장구를 치므로 백반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어쩌면 그것이 우리 형님의 진정한 뜻일지도 모르오.”
하였다.
이튿날 용춘이 왕명에 따라 기약 없는 유배길을 떠나는데,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는 낭도의 행렬이 명활성 밖 사오 리까지 빽빽히 늘어섰다.
지답현은 왕도 금성에서 동북방 백리허인 갯가 마을인데,
현의 태수로 있던 중내마(重奈麻) 육담이란 자는 눈치가 빠르고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일찍이 그의 아비는 장군 주령의 심복으로 진흥왕 시대에 공이 컸는데
특히 선부(船府)의 일에 해박하여 배를 만들어 띄우면 여간한 풍랑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백정이 즉위한 후 선부서(船府署)를 설치할 때 육담의 아비로 하여금 제감으로 삼아
배를 만들게 하였으나 이듬해 노환을 얻어 죽자 상대등 노리부와 이찬 남승이 육담의 재주가
그 아비에 못지 않다고 극력 주청하여 왕이 마침내 육담에게 내마 벼슬을 내리고
왜국과 가까운 지답현의 태수로 봉하였다.
육담이 본래 따로 처자가 있었으나 남승의 맏형인 아찬 곡부(穀夫)의 딸이
추물 중에서도 상추물이라 나이 서른이 넘도록 혼인하지 못한 것을 알고
즉시 본처를 내어치고 곡부의 딸로 아내를 삼으니 곡부의 맏사위요
남승에게는 조카사위가 되는 셈이었다.
용춘이 아직 지답현에 이르기 전에 남승이 인편으로 보낸 전갈이 먼저 와서
육담이 그 처숙의 뜻을 통연히 알아차리고,
“10리는 고사하고 갯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할 터이니
금성에 가거든 걱정하지 마시라 전하라.”
하고 인편을 되돌려보낸 후에 곧바로 용춘이 당도하였다.
이때부터 육담이 부하들에게 명하여 용춘을 갯가의 움막에 거처하게 하고,
사졸들을 시켜 호시탐탐 감시할 뿐 아니라,
입고 먹는 것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는 왕명까지 무시한 채
의복과 식음을 제대로 돌보지 아니하니
나중에는 용춘이 직접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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