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장 쫓기는 사람 1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8. 23:10

제2장 쫓기는 사람 1

 

 

 
상대등 노리부가 하룻밤 사이에 별안간 큰 병을 얻어 입궁조차 못한다는

소문이 돈 것은 골평이 알천 문보의 집을 다녀온 사흘 뒤였다.
 
의원이 노리부의 집으로 달려가 병태를 보고 맥을 짚어보았으나

무슨 병인지를 알지 못하여 약도 쓸 수 없었고,

그러구러 병이 더욱 깊어져서 운신은 커녕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니

문병 갔던 사람들의 말로는 살아 있는 송장이나 다를 바가 없노라 하였다.

노리부가 병중에 있을 때 억울하게 옥에 갇혔던 한돈이 무사히 풀려나왔는데,

이는 노리부가 없으므로 역부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거론하는 이가 드물고,

도리어 그 틈을 타서 세간에 떠돌던 역부의 악행이 왕의 귀에까지 전해진 탓도 있었지만,

아찬 설문보의 입을 빌려 한돈의 무고함이 극력 주장된 덕이 무엇보다 컸다.

아울러 그가 10여 년째 소오 벼슬에 다닌 점과 선대의 공덕이 함께 거론되니

왕이 특별히 전지를 내려 한돈을 대오도 아닌 길사에 임명하므로 대오 벼슬을

바라던 한돈이 이런 옥고라면 골백번도 더 치르겠다며 흰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한돈과는 달리 용춘이나 대세의 일은 쉽게 무마가 아니 되었는데,

특히 전왕의 외동인 용춘에게만은 기어코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금왕의 아우인 진정왕 백반이었다.

백반이 그 형을 왕으로 옹립할 적에 이미 공이 컸고,

상대등 노리부와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일 뿐더러 죽은 역부와도

서로 우애하며 지내는 것이 마치 한배에서 난 동기간과 같았다.

역부가 생전에 무리를 이끌고 산천을 떠돌다가 배가 고프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곡식을 갈취하고 인물 고운 여자만 보면 처녀와 부인을 가리지 아니하고 희롱하였는데,

그러다가 탈이 나면 당장 뛰어가는 곳이 노리부보다도 백반의 처소였다.

백반이 본래 성격이 괄괄하고 괴팍스러운 데가 있는 데다,

글보다는 무예를 좋아하고, 상도(常道)보다는 파격을 즐기며,

한번 열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못하여 그 형인 백정조차도 왕위 계승을 한 직후에,

“내 아우 백반은 변종이오. 우리 3형제 가운데 나도 국반도 그렇지 아니한데

오직 둘째인 백반만 그 성정이 불과 같으니 이는 아마도 법흥대왕의 거친 성품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그리 된 듯하오.”

하고서,

“그런 연유로 법흥대왕의 따님이신 별궁의 노태후께서 누구보다 아끼는 자손이 백반이요,

만일에 백반이 나보다 먼저 났더라면 법흥대왕의 호시절 같은 것이 다시 왔을 거라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소이다.”


하고 신하들과 한담을 나눈 일까지 있었다.

별궁의 노태후라면 백정왕의 증조모이자

일변 외조모인 입종비 김씨를 칭하는 말이었다.

진흥왕이 붕어한 직후 나라의 중신들이 후사를 논할 때 각간 무력과 거칠부가

진지왕을 옹립한다는 말을 듣자 백반이 칼을 뽑아 들고 워낙이 성하게 설치는 통에

왕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고, 숙부인 진지왕이 즉위한 뒤에는 태자로 죽은

자신의 아버지 동륜을 왕으로 추증하지 않는다고 중신들을 선동하다가 왕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은 일도 있었다.

또한 진지왕이 사량부의 부녀인 도화녀를 궁으로 불러들이자 매수한 내관에게서

그 소식을 처음 접하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왕을 탄핵하여 결국에는 폐위까지 이르게 한 것도

시초는 백반이었으니,

 백반과 용춘의 사이가 비록 종형제간이라고는 하나 개와 원숭이 사이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백반은 용춘의 됨됨이가 우둔하고 강직하므로 언젠가는

나라와 왕실의 큰 화근이 될 거라 주장하였고,

용춘은 백반을 사악하고 교활한 위인에다 자신의 아버지인

사륜 진지왕을 시해한 원수라고 여겨 언제고 기회만 닿으면 죽이려는 마음까지 품고 있었다.

용춘이 포장화심(包藏禍心)을 독하게 키워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 진지왕이 폐위되어 궁성 밖의 사저로 쫓겨났을 때

하루는 백반이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찾아온 일이 있었다.

본래 심성이 착하고 정이 많았던 폐왕은 일부러 찾아온 조카를 환대하여

안으로 불러들이고 가져온 술과 안주를 내어 늦게까지 우어하였는데,

백반이 돌아가고 난 바로 그날 밤부터 심한 복통을 앓아

그 괴로운 옥성이 용춘이 거처하던 작은채에까지 우레처럼 들렸다.

아침에 시녀가 장안의 의원을 청하러 가서 그 의원과 허겁지겁 달려오는 길에

집 앞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백반을 만났다.

백반이 시녀에게서 폐왕이 복통 일으켰다는 얘기를 전해 듣자,

“아무리 폐위가 되셨다고는 하나 옥체를 아무한테나 함부로 맡길 수가 없다.

내 이름난 명의를 청하여 갈 터인즉 너는 가서 그렇게 고하라.”

하고는 데려오던 의원을 문 앞에서 돌려보내고 자신이 따로 의원을 데려와 병을 보게 하였다.

간자(簡仔)라는 그 의원이 폐왕을 진맥한 뒤에,

“음식 탓이 아니라 몸에 열이 차서 생긴 병이므로 꾸준히 첩약을 장복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서 약을 지어 바쳤다.

그 약을 몇 첩 아니 먹어 과연 폐왕의 복통이 눈에 띄게 가라앉고 혈색도 차츰 전과 같이 돌아오니 식솔들이 모두 백반이 데려온 의원이 명의요,

백반의 폐왕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고 입을 모았다.

회도하여 병석에서 일어난 폐왕이 조석으로 약 먹는 일을 번거로워하여 약사발을 받아들고는

종내 용안을 찡그리다가,

“이젠 병이 다 나았으니 약 끓이는 일을 그만두라.”

하고 명하므로 복용을 중지하게 되었는데,

약첩을 입에서 떼자 당장 그날로 몸에 신열이 오를 뿐 아니라

이번에는 전에 없던 병까지 도져 수족을 부들부들 떨고 처소에 드는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괴이한 병태가 불과 이삼 일 사이에 사람을 거진 폐인으로 만들더니

급기야는 폐왕으로 하여금 개 짖는 소리까지 내게 하였다.

약을 지은 간자가 다시 와서 폐왕을 살피고,

“그러기에 약을 꾸준히 장복하라 하지 않았습니까요.

이젠 소인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긴급 처방이나 반드시 장담하지는 장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고는 자신없는 얼굴로 약을 지었는데,

그렇게 지은 약을 채 마저 먹지 아니하고 돌아가시니

이때 승하하신 폐왕의 몰골이 살갗은 흙빛이요,

양눈은 구덩이처럼 움푹 꺼져 그 끝이 보이지 않았으며,

피골은 상접하여 앙상한 형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마치 타다가 만 나뭇조각과 같았다.

진지왕 사륜의 종말이 이처럼 비참하였다.

이때 15세의 용춘이 부왕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 죽마고우인 대세를 만나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내 아버지 사륜대왕께서는 그저 붕어하신 것이 아니라 시해되셨네.

저 간악한 백반이 애초에 가져온 술과 고기에서 간자라는 돌팔이의 독초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시초부터 치밀히 공모된 것이요,

여기에 얼마나 많은 무리가 연루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알량한 백반 따위가

혼자서 저지른 일이 아님은 명백하네.

나는 장차 이것을 샅샅이 적간하여 언제고 원통하게 돌아가신 부왕의 원수를

기필코 갚을 것이니 자네는 두고 보게나.”

하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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