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86)
무송(武松) 11회
“언제 부전옥이 됐소?”
“작년 봄이던가··· 아마 그럴 거예요”
“서문경이가 어떻게 제형소의 부전옥이 됐지요?
몇해 전까지 술이나 마시고 오입질이나 일삼던 사람인데··· 부호이기는 하지만···”
“글쎄요. 나 같은 할망구가 어떻게 된 내막인지 아나요.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나라에서 하는 일을 함부로 지껄였다가는 결코 신상에 좋은 일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터이라 왕파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한다.
실은 찻집을 경영하는 터이라 손님들의 입을 통해서 서문경이
난데없이 부전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된 내막을 왕파도 잘 알고 있었다.
무송은 굳이 왕파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다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하고 빈정거리는 투로 말한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또 불쑥 묻는다.
“반금련이는 그대로 아직도 서문경이의 첩 노릇을 하고 있나요?”
“예, 그런데 스님이 어떻게 반금련이를···”
왕파는 이상하다는 그런 표정을 짓는다.
어디 먼 타지방에서 온 것 같은데,
반금련이까지 알다니 말이다.
내왕이가 입에 든 음식을 불룩불룩 씹으면서 힐끗 무송을 바라본다.
성문을 통과할 때는 반금련이가 자기 여동생이라고 내뱉더니,
이번에는 어떤 대답을 하려는지···
약간 긴장이 되면서 재미있다 싶은 것이다.
무송은 왕파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반금련이의 남편이 무대였잖소.
바로 저 옆집에 살았었고”
그 말에 왕파의 안색이 슬그머니 달라진다.
“할멈도 잘 알텐데··· 이웃에 같이 살았으니까”
“···”
“아오, 모르오?”
“알아요”
들릴 듯 말 듯 대답한다.
“그리고 그 무대는 반금련이한테 독살을 당했고···
어때 맞소, 틀리오?”
그만 왕파는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누 눈이 휘둥그레진다.
“대답을 해보오”
“···”
“왕파! 대답을 해보라니까”
마침내 무송이의 입에서 할멈의 이름까지 튀어나온다.
무송(武松) 12회
왕파는 그만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떤다.
비로소 그 거구의 승려가 누구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왜 떨지? 대답은 안하고···”
무송은 여전히 조금도 흥분을 하지 않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내가 듣기에는 반금련이가 무대를 독살할 때 혼자서 한 게 아니라,
세 사람이 공모를 해서 했다던데, 그게 사실이오?”
“···”
“주모자는 서문경이고··· 어떻소?
내말이 맞소, 틀리오?
대답을 해보오. 왕파는 잘 알고 있을테니까”
“아이고-”
별안간 어쩔 줄을 모르겠는 듯 왕파는
그만 정신없이 방에서 뒤쳐나가려 한다.
후다닥 내왕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냅다 왕파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맘대로 어딜 갈려는 거야!”
그러자 무송은,
“헛헛허···”
웃는다.
그리고 다시 심문을 하듯 묻는다.
“도망치려는 걸 보니 무슨 잘못을 저지른 모양이지.
그렇지? 어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말해 보라구”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나리.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 못난 할망구는 그저 서문경이가 시켜서 했을 뿐입니다.
안하면 서문경이한테 맞아죽거든요.
정말입니다요, 나리”
왕파는 그만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비면서 빈다.
“나는 나리가 아니야. 스님이라구. 보면 몰라”
“아이고 스님, 부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목숨만 살려 주시면 그 은혜를 백골난망 하겠습니다요.
예? 스님”
“허허허··· 스님이라니까 내가 정말 스님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봐, 왕파! 나를 똑똑히 보라구.
나는 죽은 무대의 동생 무송이라구. 알겠어?”
“예, 압니다. 알고말고요. 무송 어른,
이 늙은 것을 불쌍히 여겨 한번만 살려 주십쇼. 한 번만···”
“왕파, 잘 들어. 맹주 땅에 귀양을 갔던 내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온 것은
오직 우리 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구.
맹주가 어떤 곳인지 알아?
살아서 빠져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한 지옥 같은 곳이지.
그런 곳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온갖 고생을 다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원수를 눈앞에 두고 용서해 주다니 말이 되겠어?
억울하게 죽은 불쌍한 우리 형님의 원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는
세 연놈을 깨끗이 처치하는 길밖에 없다구.
그러니까 안됐지만 왕파도 죽어줘야겠어”
무송(武松) 13회
왕파는 이번에는 비벼대던 두 손을 덥석 방바닥에 짚고 대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을 해댄다.
“아이고 무송 어른, 난 그저 독살 당한 무대씨의 시체를 염했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요.
서문경이가 비상을 갖고 와 반금련이에게 주면서 죽이라고 시켰다구요.
그래서 그년이 혼자서 독살을 했지 뭡니까.
난 죽인 뒤에 시체를 수습한 죄밖에 없다구요.
그러니까 서문경이와 반금련이는 죽어 마땅하지만, 난 억울합니다요.
정말입니다. 무송어른”
그러나 그만 무송은 벌컥 언성을 높인다.
“닥쳐! 이 늙은 너구리 같은 할망구야!
세 연놈이 공모를 해서 죽여 놓고서 자기 혼자만 살려고··· 뭣이 어쩌고 어째?”
“···”
“늙은 목숨이 그렇게도 아깝나?
남은 죽어도 좋고, 자기는 죽으면 억울하다 그거냐?
이 못돼먹은 할망구 같으니···”
무송은 그저 벌떡 일어나 한 주먹에 할망구를 박살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꾹 물러 참으며 계속 내뱉는다.
“사람을 죽였으면 응당 자기도 죽어야지.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스스로 목숨을 끓으라구.
그렇지 않고 기어이 억울하다면 도리가 없지.
죽여주는 수밖에··· 왕파!
어느 쪽을 택하겠어?
기왕에 죽을 바에는 남의 손에 죽는 거보다 자살을 하는 게 훨씬 속죄가 되지 않겠어?
안 그래”
왕파는 이제 사색(死色)이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와들와들 떨기만 한다.
무송은 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켠다.
말을 하느라 그는 아직 식사를 절반도 채 못했으나,
내왕이는 시장했던 터이라 이미 거의 다 먹어치웠다.
무송은 서둘러 남은 식사를 한다.
내왕이는 왕파에게 마실 물을 가져오라고 시키려다가 그만둔다.
방에서 내보내면 도망쳐 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물대신 술로 입가심을 한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무송은 병에 남은 술을 잔에 마저 따른다.
그리고 그것을 두어 모금 마시고는 내왕이에게 이른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보지”
“예, 그러죠”
주기가 제법 있는 내왕이는 성큼 자리에서 일어선다.
벗어놓은 바랑을 가서 집어 들고 그 아가리를 벌려 그 속에서 밧줄을 꺼낸다.
수건 같은 길쭉한 베도 꺼낸다.
작전 계획대로 미리 다 준비해 온 물건이다.
무송(武松) 14회
“아이고- 살려줘요. 살려 줘요. 예? 예?”
그 밧줄과 베를 보자
왕파는 냅다 정신없이 다시 두 손을 비비며 내왕이를 향해 애원을 해댄다.
“자, 이제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 밧줄로 스스로 목을 매라구”
내왕이는 왕파에게 밧줄을 내민다.
“아이고 아이고- 한번만 살려줘요. 한번만 한번만···”
“어서 받아!”
그만 왕파는 비벼대던 두 손을 방바닥에 짚으며
그 자리에 풀썩 무너지듯 엎어진다.
그리고 와들와들 어깨를 떨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일어섯!”
내왕이가 쿡 발로 한번 찬다.
왕파의 울음소리는 더 높아진다.
“안 일어설 거야?”
내왕이는 그만 왕파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불끈 일으켜 세운다.
“아이고- 나 죽네- 사람 살려-”
왕파는 냅다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자 무송이 앉았던 의자를 얼른 뒤로 물리고 일어서며,
“안되겠어. 그 베쪼가리 이리 줘”
하고 내왕이한테서 베를 건네받는다.
자칫하면 왕파의 비명소리가 바깥까지 들려 들통이 날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이다.
그 길쭉한 베를 가지고 무송은 왕파의 입을 틀어막듯이 불끈 동여 뒤통수에서 질끈 묶는다.
그리고 할망구의 두 팔을 뒤로 돌려서 꼼짝을 못하도록 그 손목을 발끈 모아 쥔다.
이제 왕파는 아가리가 틀어 막혀서 아무소리도 내뱉질 못한다.
“이 할망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턱이 만무하니,
어서 서둘자구. 자, 밧줄을 걸어”
“예”
내왕이는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가져다가 방 가운데에 놓고,
그 위에 올라선다.
높다란 천장에 굴은 연목(椽木)이 가로질러 있다.
방에 들어올 때 벌써 그것을 보고서 저기에 할망구를 매달면 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 연목에 밧줄 한쪽 가닥을 훌떡 던져서 건다.
그리고 의자에서 내려와 그쪽 가닥을 잡고 주르르 당긴다.
밧줄의 다른 쪽 끝에는 사전 준비로 이미 올가미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 올가미가 알맞게 왕파의 머리 높이만큼 오도록 한다.
왕파의 두 손목을 뒤에서 꼼짝 못하도록 한손으로 틀어쥐고 서있던 무송이
다른 손으로 그 올가미를 할망구의 목에 건다.
그러자 왕파는 입이 틀어 막혀 소리를 못 지르면서도 마지막 발악을 하듯
냅다 고개를 내흔들며 발버둥을 친다.
무송(武松) 15회
“자, 잡아댕겨”
무송이 내뱉자 내왕이는,
“에잇!”
하고 기합을 넣으며 냅다 밧줄을 잡아당긴다.
대번에 왕파의 몸뚱이가 밧줄에 매달려 붕 떠오르며 찍- 하고 올가미가 죄어진다.
왕파는 입이 틀어 막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두 손을 올가미로 가져간다.
그러나 그것도 반사작용일 뿐 손에 아무 힘이 없어 곧 풀썩 밑으로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몸뚱이가 한바탕 버둥거린다.
그리고 축 늘어지고 만다.
너무 간단하다.
늙은이라 그런지 숨 끊어지는 것도 잠깐이다.
왕파의 몽뚱어리가 밑으로 처지지 않도록 내왕이는 밧줄을 바짝 잡아당긴 채
그것을 윗부분에서 감기위해 축 늘어진 몸뚱이 둘레를 돈다.
몇 바퀴 도니 밧줄 윗부분이 몇 번 잘 감겼다.
내왕이는 이번에는 의자 위에 다시 올라서서
그 밧줄 가닥을 연목에다가 훌떡 던져 걸어서
불끈 잡아당겨 죄어 매 버린다.
그리고 의자에서 내려온 내왕이는 발로 툭 차서 의자를 넘어뜨려 놓는다.
“이러면 흡사 자살을 한 것 같죠?”
“저 베쪼가리도 풀어 버려야지. 자살하는 사람이 자기 입을 자기가 틀어막나”
“아차, 그렇군요”
내왕이는 발돋움을 하고 팔을 뻗어 올려서 왕파의 입을 틀어막느라
질끈 동여맨 베를 풀어 버린다.
일은 끝났다.
왕파는 마치 자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은 모습으로 방 한가운데에 축 늘어져 있다.
“할멈, 미안하게 됐구나. 자 우리는 가요”
바랑과 삿갓을 집어 들며 내왕이가 시체를 보고 장난삼아 뇌까린다.
그러자 무송은,
“미안하기는··· 살인자즉살(殺人者卽殺)인데···
사람을 죽였으면 자기도 목숨을 내놓아야지”
하고 무게가 든 그런 목소리로 말한다.
가게로 나오자
무송은 탁자를 붙여서 침상처럼 만든다.
내왕이가 묻는다.
“뭐 하실려고요?”
“한숨 자야지”
“아니, 자다뇨? 곧 서문경네 집으로 안 가는 거예요?”
“밤이 깊은 다음에 가야 된다구.
모두 잠든 다음에 쳐들어가야 일이 수월하지,
지금 가면 아직 모두 안 잘게 아니냔 말이야. 안 그래?”
“그렇군요. 그럼 대륜 스님만 한숨 주무세요.
나까지 잤다가 내일 아침에 깨면 큰 낭패잖아요”
“그래그래, 소륜 미안하다구”
무송은 탁자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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