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88) 무송(武松) <21~25회>

오늘의 쉼터 2014. 7. 5. 00:30

금병매 (188)

 

 

무송(武松) 21회 

 

 

 

 내왕이는 반금련이가 지독한 음녀(淫女)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마치 한밤중에 그녀에게 수작을 걸려는 사내처럼 목소리에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기며

 

불렀던 것이다.

 

깊은 잠이 들지 않았던 반금련은 쉬 잠이 깨었고,

 

또 남자의 목소리가 어쩐지 예사롭지가 않아서 혹시 이 밤중에 어떤 사내가

 

다른 생각을 먹고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서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 잠옷 바람으로 거실로 나가 우선 불을 켰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가서,

“누구야? 바깥에···”

 




하고 묻는다.

“저예요, 저”

“저라니?”

“제 목소리 모르시겠어요?”

“글세, 누굴까···”

“문을 열어 보시라구요. 그러면 아실 거 아니예요”

“그런데 이 밤중에 무슨 일이지?”

“마님이 보고 싶어서요. 헤헤헤···”

“어머,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구? 도대체 누구지?”

딸그락 안에서 문고리 벗겨지는 소리가 나자,

내왕이는 왈칵 방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성큼 방안으로 들어선다.

무송도 뒤따라 점잖게 들어간다.

“아니, 누구야? 스님들이네”

반금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님, 그동안 안녕하셨소?”

내왕이는 어조를 쏴 바꾸어 퉁명스럽게 묻는다.

“아니, 누군지요? 어디서 온 스님인가요?”

“맹주 땅에서 온 스님이오”

“뭐 맹주 땅에서?”

반금련은 약간 안색이 바뀌며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소. 맹주 땅에 있는 맹주사(孟州寺)에서 왔소이다. 허허허···”

“맹주사···? 이 밤중에 무슨 일로요?”

“마님이 보고 싶어서 왔다니까요”

“난 맹주사에 아는 스님이 없는데···”

“허허허··· 자 어떤 스님인지 보라구요”

그러면서 내왕이는 삿갓을 벗어 보인다.

아량이 앞에서 벗었던 삿갓을 그녀를 묶어놓고 나오면서 다시 눌러썼던 것이다.

“나 누군지 모르겠소?”

“글쎄요···”

“내왕 스님이오”

“내왕 스님···?”

그래도 못알아차리자,

“내왕이 스님이라고 해야 알겠소?”

하고 내뱉으며 빙그레 웃는다.

“어머나”

반금련은 놀라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다.

 

 

무송(武松) 22회 

 

 

 

 “인제 알아본 모양이지. 이분은 누군지 알겠어?”

내왕이는 서슴없이 반말로 바뀐다.

 




지난날 하인이었던 내왕이의 거침없는 반말에 반금련은

당황하면서도 못마땅한 듯 쏘아본다.

그리고 눈길을 무송에게로 돌린다.

무송은 말없이 삿갓 밑으로 반금련을 노려보고만 있다.

“무송 스님이라구”

내왕이가 알려준다.

“무송···?”

그만 반금련은 자기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지며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만다.

그제야 무송은 천천히 삿갓을 벗는다.

“어머나-”

반금련은 어쩔 줄을 모른다.

“너 이년! 아직 살아 있었구나”

무송은 대뜸 호통을 치듯 내뱉는다.

핏기가 싹 가셔 사색이 되었던 반금련의 얼굴이 이번에는 발갛게 상기된다.

그러나 입은 얼어붙은 듯 아무소리도 못한다.

“네년을 죽여 형님의 원수를 갚으려고 내가 이렇게 찾아왔다.”

“···”

“너는 내가 맹주 땅으로 귀양을 갔으니

죽은 목숨으로 알고 안심을 했겠지만,

천만에··· 하늘이 무심치 않다구.

딴놈하고 붙어서 남편을 독살한 천하에 고약한 년을

하늘이 그대로 언제까지나 가만히 줄 줄 알았느냐?”

무송의 그 말에 여우같은 반금련은 재빨리 표정을 바꾸어

생글 웃음까지 떠올리며 나불나불 지껄인다.

“독살을 하다니, 누가 누구를 독살했다는 거예요?

잘못 알아도 이만저만 잘못 안게 아니라구요.

그이는 아파서 별안간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그날 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요?”

“뭐라구? 이년이 이제 보니까 아주 보통 뻔뻔스러운 년이 아니군.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고.

 어디서 그따위 새빨간 거짓말을 나불거리는 거야?

그날 밤 일을 직접 본 사람이 있다구.

누군지 알아?

영아라구.

내가 영아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구.

그리고 조금 전에 왕파도 실토를 했단 말이야.

알겠어?

서문경이가 비상을 가져다가 네년한테 주었고,

네년은 그것을 가지고 혼자서 형님을 독살했어.

형님이 죽자,

그 시체는 왕파가 염을 했다더군.

이래도 거짓말을 할거야?”

“아이고, 그게 아니라구요. 도련님, 내 얘기를 들어봐요”

“닥쳐! 도련님이 뭐야?

남편을 독살해 놓고서 도련님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저··· 왕파 그 할망구가 나를 모함하려···”

“뭣이 어째?”

냅다 무송은 그만 주먹으로 반금련의 한쪽 볼때기를 후려갈겨 버린다.

 

 

무송(武松) 23회 

 

 

 

 “으악”

비명을 지르며 반금련은 저만큼 나가떨어진다.

 

무송의 큼직한 돌덩이 같은 주먹을 얻어맞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년, 그래도 곧 거짓말을 할거야?”

“···”

“왕파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빌더라구.

그러나 용서할 수는 없지.

용서하다니,

사람을 죽였는데 용서할 수가 있어?

그것도 무슨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일부러 모의해서 죽였는데 말이야.

살인자즉살(殺人者卽殺)이라구.

형님이 얼마나 착하고 또 불쌍한 사람인지는 네년이 잘 알잖아.

그런 사람을 죽이다니,

너희 세 연놈은 사람의 형용을 한 마귀라구.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구”

반금련은 쓰러진 채 꼼짝을 하지 않는다.

“너희 세 연놈을 죽여서 형님의 원한을 풀어드릴려고 내가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알아?

맹주땅에서 용케 내왕이를 만난 것도 다 하늘이 원수를 갚으라고 보살펴 준 거라구.

내왕이와 둘이서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도망쳐 나와 근 일년이 거려서 이렇게 돌아왔다구”

무송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큰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계속 내뱉는다.

“먼저 찻집에 들러 왕파부터 해치우고, 이리 온거라구.

그런데 서문경이 그놈은 하필 오늘밤에 계집질을 하러 나가고 없지 뭐야.

그놈을 못 죽여서 원통하고 분하다구.

자, 반금련, 일어나 앉아. 이번에는 네년 차례라구”

반금련은 온몸을 부르르 떨뿐 일어나질 않는다.

무송은 다가가 툭 발길질을 하면서,

“일어나라면 일어나!”

호통을 친다.

어찌나 고함소리가 큰지 깜짝 놀라듯이 반금련은 후다닥 몸을 일으킨다.

“꿇어 앉아!”

풀썩 꺽어지듯 두 무릎을 꿇는다.

무송은 메고있던 바랑을 벗어 그 속에서 주둥이가 길고 밑이 방방한 병 한 개를 꺼낸다.

마개를 뽑으며 이번에는 목소리를 현저히 낮추어, 그러나 무게 있게 말한다.

“이게 독약이라구. 비상을 물에 탄거지.

네년에게 주려고 내가 준비해 왔다구.

남편을 독살했으니,

네년도 이걸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구.

그러면 조금은 속죄가 될 거 아니겠어?”

그 병을 반금련은 가만히 바라본다.

한쪽 눈썹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킨 듯 떤다.

“자, 받아. 어서!”

반금련은 말없이 그 병을 두 손으로 받는다.

 

 

무송(武松) 24회 

 

 

 

 독약이 들었다는 그 병을 들고 반금련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다.

 

핏기가 가신 얼굴에 거의 표정도 없다.

“어서 마셔!”

 




“···”

“마시라니까! 안 마실 거야”

그러자 그만 반금련은 발작이라도 한듯,

“아이고-”

냅다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지르며 벌떡 일어나 그 병을 무송을 향해 내팽개친다.

“으익크!”

기습을 당한 꼴이 되어 무송은 얼른 몸을 사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선다.

병은 무송의 가슴패기를 치고는 방바닥에 떨어져 꿀꿀꿀···

아가리로 독약을 쏟아낸다.

“사람 살려- 나죽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반금련은 미친 여자처럼 춘매의 방 쪽을 향해 날쌔게 도망친다.

“아이고 춘매야 - 나 죽는다 -”


“저년 잡아!”

내왕이가 재빨리 쫓아가 반금련의 뒷덜미를 사정없이 낚아챈다.

“아이고머니-”

비명과 함께 반금련은 방바닥에 다시 벌렁 뒤로 나가떨어진다.

“그년의 아가리를 벌려!”

무송은 독약이 절반가량 남은 병을 집어 들고 반금련에게로 다가들며 내왕이에게 이른다.

내왕이는 나가떨어진 반금련의 몸뚱이 위에 후다닥 타고앉아

우선 그녀의 두 팔을 한데 모아 꼼짝 못하도록 손목을 한손으로 불끈 틀어쥔다.

반금련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이놈! 종놈이 나를 이럴 수가 있어? 앙! 앙! ”

하고 악을 써대며 냅다 얼굴에다 퉤! 퉤! 침을 뱉는다.

그러자 내왕이는,

“이년이 뒈지면서도 곧 큰소리네. 에라잇 이년!”

다른 한손으로 반금련의 목을 콱 눌러 우악스럽게 죈다.

그녀의 아가리가 절로 딱 벌어진다.

“이년, 마셔라. 너도···”

무송은 재빨리 병 주둥아리를 반금련의 아가리에 갖다가 꽂는다.

“으으윽 - 푸, 푸, 푸! 풋! ···”

꿀꿀꿀···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비상물을 반금련은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무송은 병 주둥이를 사정없이 그녀의 아가리 속에 들이민다.

“으윽-”

마침내 반금련은 두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깐다.

 

 

무송(武松) 25회 

 

 

 

 무송과 내왕이가 그렇게 반금련의 입에다가 비상물을 어거지로 부어넣고 있을 때

 

춘매는 깨어 일어나 거실로 통하는 문에 바짝 붙어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춘매는 거실에서 들리는 남자의 호통소리와 반금련 마님의 비명소리에 잠을 깼는데,

 

이부자리 속에 그대로 가만히 누워서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인가 하고 귀를 곤두세웠다.

 

처음에는 대감어른이 찾아와서 마님을 꾸짖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고받는 말소리를 가만히 들으니 그게 아니다.

 

천만뜻밖에도 맹주땅으로 귀양을 간 무송과 내왕이가 아닌가.

 

그 두 사람이 살아서 돌아와 지금 반금련 마님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놀라 숨을 죽이고 있던 춘매는 ‘아이고 춘매야 - 나 죽는다.’ 하고 내지르는

 

마님의 비명소리에 그만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후다닥 침상에서 뛰어내려 거실 쪽 문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춘매는 마님의 숨이 끊기는 듯한 기척에 그만 방문을 왈칵 열어 보았다.

“어머나”

춘매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뜻밖에도 두 사람의 승려가 아닌가.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틀림없는 내왕이었다.

춘매는 무송의 얼굴은 잘 모르고,

그저 거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승려는 거창하게 큰 걸 보니 무송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송과 내왕이가 승려라니,

 맹주 땅으로 귀양을 간 그들인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이쪽을 돌아보았고, 내왕이가 소리쳤다.

“춘매로구나. 잘 있었나? 나다. 내왕이다”

그리고 살기가 번들거리는 두 눈에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러나 춘매는,

“아이고머니 - ”

하고 몸서리를 친다.

반금련 마님이 내왕이에게 짓눌려 꼼짝을 못하고,

무송이 마구 들이미는 독약병 주둥이를 입에 물고서

허옇게 두 눈을 뒤집어까며 축 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독약물과 피거품 같은 것이 뒤섞여 입에서 부글부글 끓어넘치고 있었다.  

질겁을 한 춘매는 그만 방문을 쾅 닫고는 복도 쪽으로 나있는 문으로 해서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냅다,

“살인이요 - 살인! 마님이 죽어요-”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정신없이 회랑을 달렸다.

오월랑 마님에게 알리러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