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85) 무송(武松) <6~10회>

오늘의 쉼터 2014. 7. 4. 23:31

 

금병매 (185) 무송(武松) 6회 

 

 

 

 “대륜 스님, 두 번 놀랬지 뭡니까”

“두 번 놀래다니, 왜?”

 




“벌컥 화를 내시기 때문에 한번 놀랬고,

서문경이의 처남이고 반금련이의 오빠라는 바람에 두 번 놀랬으니까요?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구.

늘 서문경이와 반금련이에게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고 별러 왔기 때문에

그것들의 이름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것 같애”

“잘했어요. 난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하시기에

혹시 옛날 순포도루 무송이다 하고 밝힐까봐 조마조마 했다구요”

“너 이놈, 할 때는 곧 그런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더라구. 분통이 터져서 말이야”

“그랬으면 일이 다 틀려버렸지 뭐예요”

“맞어. 용케 잘 넘겼다구”

“서문경이를 들먹이니까 그 녀석들 대번에 그만 쑥기어 들어가더라니까요.

서문경이가 쎄기는 쎈 모양이에요”

“서문경이 그놈 부전옥이 된 모양이던데”

“맞아요. 부전옥이라고 했어요. 부전옥 대감의 처남인줄 몰랐다고···”

“그놈이 이제 감투까지 썼으니 가관이겠지”

“부전옥이면 제형소의 두 번째 우두머리잖아요. 맞죠?”

“맞다구”

“그놈이 제형소의 부전옥이라니 말이 돼요?

사람을 죽이고, 귀양을 보내고 해서 남의 여자를 가로챈 그런 악질이

죄인을 다스리는 제형소의 두 번째 우두머리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 다된 거죠. 안 그래요?”

“맞어, 맞다구. 살맛 안 나지”

어두운 밤거리를 무송과 내왕이는 나란히 걸으면서 주고받는다.

저만큼 앞쪽에서 행인 몇 사람이 다가오자 대화를 뚝 중단한다.

행인들이 지나가면서 힐끗힐끗 무송을 바라본다.

거인 승려이기 때문인 모양이다.

 저희끼리 뭐라고 수군덕거리며 킬킬 웃기도 한다.

어둠에 묻힌 거리지만 몇해만에 살아서 돌아와 걸어보는 터이라

무송과 내왕이의 감회는 깊다.

그러면서 한편 착잡하기도 하다.

유배지에서 방면이 되어 돌아왔다면 착찹할 턱이 만무하지만,

탈출을 하여 원수를 갚으러 변장을 하고 숨어들 듯 찾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한참 가다가 네거리에서 무송은,

“보자, 이쪽이던가···”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머뭇거린다.

“왕파네 찻집 말이죠?”

“물론이지”

“아니예요. 이쪽 길이라구요”

내왕이가 앞장을 선다.

 

 

무송(武松) 7회 

 

 

 

 무송과 내왕이는 왕파네 찻집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맹주 땅을 벗어나 청하현을 향해 오면서 무송은 틈틈이 내왕이에게

 

권술(拳術)과 봉술(棒術)을 가리쳤다.

 

원수를 갚으려면 어떤 상황에 부딪칠지 모르니

 

그런 무술을 익혀 놓아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짚고 있는 지팡이가 유난히 굵은 것은 봉술용이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지팡이가 무기로 변할 판이었다.

 




그리고  청하현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미리 복수의 작전계획을 잤다.

내왕이의 원수는 서문경이 한 사람이었으나 무송은 세 사람이었다.

서문경과 반금련, 왕파 세 연놈이 공모를 해서 형 무대를 독살한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세 연놈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먼저 왕파를 해치우기로 했다.

그리고 서문경네 집으로 쳐들어가서 두 연놈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 일을 그들을 성내에 당도한 바로 그날 밤에 해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틀 사흘 걸려서는 정체가 탄로 나서 도리어 자기네가 당할 염려가 있었던 것이다.

왕파네 찻집에 당도하자,

내왕이가 앞서고 무송이 뒤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쇼”

왕파가 반긴다.

실내로 들어서자 내왕이는 삿갓을 벗는다.

그러나 무송은 삿갓을 쓴 채 그대로 한쪽 자리에 가서 앉는다.

내왕이도 그 탁자 맞은편에 궁둥이를 내린다.

그리고 바랑도 벗는다.

무송도 바랑을 벗어 옆에 놓는다.

“무슨 차를 드릴까요?”

왕파가 묻는다.

왕파는 날이 어두워졌는데 두 승려가 차를 마시러 찾아든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중 한 사람은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놀랍기 만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거구의 승려는 자리에 앉아서도 삿갓을 벗지 않고

그대로 눌러쓰고 있는 게 좀 이상하기도 해서 대고 힐끗힐끗 본다.

“아무 차나 주시오”

“난 오룡차(烏龍茶)를 주구려”

“그럼 나도 오룡차를···”

내왕이는 왕파에게 싱긋 웃어 보인다.

오룡차는 고급 차였다.

노비 신분이었던 내왕이는 그런 차를 마셔본 적이 없는 것이다.

왕파는,

“예, 알았어요”

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간다.

가게 안에는 먼저 와서 차를 마시고 있는 손님이 저쪽에서 두 사람 있었다.

무송은 그중 한 사람을 삿갓 밑으로 눈여겨본다.

 

 

무송(武松) 8회 

 

 

 

 낯익은 얼굴이긴 했으나 누군지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무송은

 

검시(檢屍)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자 속으로,

“아하, 그놈이구나. 주름이 꽤 늘었군”

 




하고 중얼거린다.

검시관 하구였다.

무송은 저 녀석도 그때의 한 패거리라면 한 패거리라고 할 수 있지, 싶었다.

서문경이에게 매수되어 독살 당한 시체를 병사인 것처럼 검시를 해준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저 녀석까지 손바줄 필요는 없다고 무송은 생각한다.

그 정도의 부패는 관원들 누구에게나 으레 있는 일이니 말이다.

오히려 저 녀석에게 자기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슬그머니 긴장이 된다.

실은 무송이 찻집 안에 들어와서도 삿갓을 벗지 않고 쓰고 있는 것은

왕파와 손님들이 혹시 자기를 알아볼까 두려워서였다.

그런데 손님 중에 하구가 있으니 가슴이 뜨끔할 수밖에 없고,

잘도 삿갓을 안 벗었다 싶다.

잠시 후 왕파가 차를 가져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룡차를 무송은 삿갓을 쓴 채 입으로 가져간다.

내왕이도 찻잔을 든다.

그러자 왕파가 무송에게 불쑥 입을 연다.

“스님, 삿갓을 벗으시지요. 삿갓을 쓰고 차를 마시는 법이 있나요?”

무송은 얼른 뭐라고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말을 못 알아들으셨나··· 삿갓을 벗고 차를 드시라니까요”

그러자 무송은 좀 못마땅한 듯 약간 볼멘소리로 대답한다.

“염려 말아요. 차차 벗을테니까”

“참 얄궂네요. 삿갓을 쓰고 차를 마시다니···”

“별 걱정을 다 하는구려.

남이야 삿갓을 쓰고 차를 마시거나 말거나···

노파 할일이나 해요”

“헤헤헤···”

별 희한한 중을 다 보겠다는 듯이 왕파는 콧등을 실룩거리고 웃으며 물러간다.

대화를 주안하고 하구와 또 한 사람의 손님도 멀뚱이 이쪽은 바라보고 있다.

삿갓을 쓰고 차를 마시다니,

아닌 게 아니라 별난 중이로구나 싶은 모양이다.

하구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차를 마시며 힐끗 삿갓 밑으로 본 무송은 바짝 긴장이 된다.

혹시 저 녀석이 이상하게 여기고 말이라도 걸어오면 야단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무송은 찻잔을 놓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할멈, 소변이 마려운데 변소가 어디요?”

 

 

무송(武松) 9회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뒷문이 있어요.

 

그 뒷문을 열고 나가면 뒷마당 오른편에 변소가 있다구요”

왕파의 말에 무송은,

 




“고맙소. 나무관세음보살-”

공연히 염불까지 외며 침착하게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무송은 변소에 가서 별로 마렵지도 않은 소변을 억지로 조금 보고는 뒷마당에 서서

삿갓을 뒤로 젖히고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 단전(丹田)호흡을 했다.

하늘 한쪽에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뒷마당에 서 있다가 무송이 가게로 돌아가니,

마침 하구와 또 한 사람의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무송은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올 것을 싶었으나,

도리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차가 식어 있었다.

찻값은 또 한사람의 손님이 치렀고,

하구는 먼저 가게 문을 나서며 힐끗 한번 무송을 바라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무송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식은 차를 훌쩍 마시고는,

“할멈”

하고 부른다.

“왜요?”

왕파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이제 가게 문을 닫아요”

“가게 문을 닫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늘밤은 이 가게를 우리 둘이서 살테니까, 문을 닫으라 그거요”

“둘이서 산다구요?”

“그렇소”

왕파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해진다.

“둘이서 뭘 하게요?”

“우리야 뭘 하거나 말거나 상관할게 없잖소.

돈만 많이 주면··· 안 그렇소?”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왕파의 표정이 금세 눈에 띄게 달라진다.

“얼마를 줄 건데요?”

“달라는대로 주지 뭐. 까짓것···”

하면서 무송은 바랑을 끌러 그 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탁자 위에 주르르 쏟아놓는다.

꽤 많은 돈이다.

“알았다구요”

하고는 가게를 처닫기 시작한다.

가게를 닫아버리자 무송은 왕파에게 이른다.

“우선 저녁부터 준비하오. 배가 고프니까”

“예, 그러죠”

왕파는 주방에 들어가 서둘러 저녁준비를 한다.

 

 

무송(武松) 10회 

 

 

 

 “여보 할멈, 집에 술 있소?”

무송이 주방을 향해 큰소리로 묻는다.

 




“술요?”

왕파가 힐끗 뒤돌아본다.

 

주방은 출입구에 문짝이 없고, 가게와 훤히 통해있다.


“술 없으면 사오고···”

“있긴 있어요. 그런데 스님들이 술을 마실려고요?”

“우리는 뭐 술을 마시면 안되는가. 술을 마시면 죽기라도 한다던가”

“헤헤헤··· 알았다구요.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저녁 준비가 되어 왕파가 식사를 날라 오자,

무송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방으로 가져가오. 방에 가서 먹는 게 좋겠어”

“왜요? 방을 안 치워서 지저분한데요”

“상관없소”

“그럼 그러시구랴”

뭐 어려울 게 있느냐는 듯이 왕파는 내실로 음식을 가져가 탁자에 차린다.

돈을 본 뒤로는 매사가 고분고분하다.

내왕이와 함께 내실로 들어간 무송은 의자에 앉자,

그제야 삿갓을 벗는다.

음식을 다 차리고, 술병과 잔을 가지고 온 왕파는 힐끗 무송을 보며 말한다.

“식사 때는 삿갓을 벗으시네, 헤헤헤···”

“그렇소이다”

무송도 일부러 싱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왕파를 똑바로 바라본다.

내가 누군지 좀 똑똑히 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왕파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누군지 알아보질 못하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송은 머리를 깎았을 뿐 아니라,

수염도 검실검실하게 돋았고,

 또 맹주 땅에서 혹독한 고생을 하다가 탈출하여

멀고 험한 길을 오느라 광대뼈가 유난히 불거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몇해 전 순포도루 시절의 용모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왕파가 방에서 나가려 하자,

“잠깐 할멈도 거기 앉아요. 뭐 좀 물어볼게 있으니까”

하고 무송이 불러 앉힌다.

술을 반주삼아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무송은

저만큼 침상에 걸터앉아 있는 왕파에게 묻는다.

“할멈, 저··· 서문경이라는 사람 아오?”

“예, 그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 요즘 뭘 하오?”

그러자 왕파는 좀 미심쩍은 듯한 그런 눈길로 무송을 바라보며 말한다.

“스님은 어디 먼데서 온 모양이죠?”

“그렇소”

“제형소의 부전옥이잖아요. 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