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87) 무송(武松) <16~20회>

오늘의 쉼터 2014. 7. 5. 00:10

금병매 (187)

 

 

무송(武松) 16회 

 

 

 

 그들이 찻집을 나선 것은 삼경(三更)이 거의 다되어 갈 무렵이었다.

 

곧 통행금지를 알리는 현청의 북소리가 울릴 시각이어서 귀가를 서두르는 행인이 간혹 있을 뿐,

 

거리는 호젓하기만 했다.

어둠에 묻힌 거리를 무송과 내왕이는 묵묵히 서문경의 집을 향해 잰걸음을 쳤다.

 




서문경의 저택이 저만큼 어둠 속에 거뭇하게 눈에 들어오자

내왕이는 감개가 무량하면서도 한편 분노가 새삼스럽게 치받쳐 오르는 듯,

“아- 드디어 왔구나. 어디 보자, 이놈의 새끼”

하고 내뱉으며 뿌드득 이를 간다.

무송 역시 몇해 전 혼자서 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쳐들어갔다가 실패를 했던

그날 밤의 일이 생각나 절로 긴장이 되는 듯,

“음-”

하면서 지팡이를 쥔 손에 불끈 힘을 준다.

그들이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마침 둥둥둥 둥둥둥···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왔다.

두 사람은 가만히 멈추어 서서 그 북소리가 멎자,

 내왕이가 바짝 대문으로 다가가 쾅쾅쾅··· 문짝을 두들기며,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 열어요. 문···”

하고 소리를 지른다.

무송은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넣으며 내왕이 뒤에 우뚝 서있다.

“누구요?”

안에서 문지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서 문 열어요”

“누구냐니까. 어디서 왔소?”

“영복사(永福寺)에서 왔소이다”

“영복사에서요? 이밤중에 무슨 일로···”

“오월랑 마님께서 오늘밤에 찾아와 달라는 부탁이 있엇소”

“아, 그래요?”

곧 빗장 뽑는 소리가 나고, 삐그그그··· 육중한 대문짝이 열린다.

문지기는 오월랑 마님이 불공을 드리러 단골로 다니는 영복사에서 왔다니까

이 한밤중에 웬 일일까 싶으면서도 별 의심 없이 순순히 대문을 열어준 것이다.

문니 열리자,

내왕이가 앞장서고 무송이 뒤따라 얼른 안으로 들어선다.

문지기는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두 승려를 힐끗힐끗 보며 도로 문짝을 닫고,

빗장을 지르려한다.

그러자 무송이,

“빗장은 그대로 놓아두라구”

서슴없이 반말로 무뚝뚝하게 이른다.

“아니 왜요?”

문지기는 뭐 이러 건방진 중놈이 다 있는가 싶은 듯

볼멘소리로 내뱉으며 무송을 힐끗 흘겨본다.

 

 

무송(武松) 17회 

 

 

 

 “놔두라면 놔두는 것이지, 무슨 말대꾸야”

무송은 처음부터 시비조로 나간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아니, 중이면 단가··· 언제 봤다고 떵떵 말을 놓고 야단이야. 나 참 더러워서···”

문지기가 투덜거리자,

“뭣이 어쩌고 어째?”

무송은 그만 달려들어 문지기의 모가지를 외팔로 불끈 휘감고,

보통사람의 두 배는 됨직한 커다란 오른손으로 아가리를 콱 틀어막는다. 그리고,

“자, 어서”

내왕이에게 지시를 한다.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내왕이는 후다닥 바랑을 벗어 그 속에서 또 그 길쭉한 베를

이번에는 두 가닥 꺼낸다.

그리고 한 가닥으로 먼저 문지기의 두 손을 뒤로 꺽어 한데 모아서 손목을 묶고,

다른 한 가닥으로는 왕파에게 했던 것처럼 입을 틀어막아 질끈 동여서

뒤통수에서 발끈 죄어 맨다.

무송은 얼른 대문간에 붙어있는 문지기의 방으로 그를 끌고 들어간다.

내왕이도 뒤따른다.

방에 들어서자 내왕이는 삿갓을 벗으며,

“이 사람아, 나야, 나. 내왕이라구”

하고 문지기에게 말한다.

그러자 문지기는 입이 틀어 막혀 뭐라고 말은 못하고, 두 눈만 휘둥그레진다.

비록 머리는 깎았지만 대뜸 내왕이를 알아보겠는 것이다.

“내가 살아서 돌아 왔다구. 원수를 갚으려고 말이야.

이분은 누군지 알아? 무송 어른이라구. 전에 순포도루였던 무송말이야.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그 말에 문지기는 더욱 놀랍기만한 듯 휘둥그래진 눈을 굴렁거리며 무송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무송은 살짝 삿갓을 들어 자기 얼굴을 내보이며 싱그레 웃는다.

내왕이가 말을 잇는다.

“맹주 땅에서 만나 둘이서 서문경이랑 반금련이를 잡아 죽일려고 돌아왔다구.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자네는 우리가 일을 마치고 사라질 때까지 꼼작 말고 있으라구.

알겠지?”

입이 틀어 막힌 문지기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자, 침상에 가서 누워”

무송이 문지기에게 명령한다.

문지기는 순순히 침상에 올라가 눕는다.

그러자 내왕이가 바랑에서 또 밧줄을 꺼내어,

“이 사람아, 미안하다구”

하면서 그를 침상에 칭칭 동여 묶는다.

두 사람은 방의 불을 끄고, 재빨리 달려 나가 서문경의 거처를 향해

회랑을 내왕이가 앞장서고 무송이 뒤따라 그림자처럼 잰걸음을 쳐간다.

 

 

무송(武松) 18회 

 

 

 

 서문경의 거처에 이르자, 두 사람은 가만히 멈추어 섰다.

 

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서문경이 잠이 든 것 같았다.

무송은 왈칵 방문을 열어젖혔다. 안으로 고리를 걸지 않아서 문은 활짝 열렸다.

 

성큼 거실로 들어선 무송은 낮으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서문경이 있느냐? 이리 나오라!”

하고 외쳤다.

내왕이는 방안으로 들어가질 않고 그대로 문 밖에 서있다.

작전계획대로 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실내가 깜깜해서 무송은 안으로 더 들어가질 못하고  그대로 서서 좀더 큰소리로 외친다.

“서문경이란 놈 있느냐, 없느냐? 자고 있거든 어서 일어나 이리 나오라!”

그래도 아무 기척이 없자,

“있느냐, 없느냐?”

냅다 고함을 내지른다.

그러자 거실 한쪽에 붙어있는 방문이 가만히 열리며,

“누구세요?”

여자의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누구냐?”

“아량이에요”

“서문경의 몸종인 모양이구나”

“예, 그런데 누구신지요?”

“어서 불을 켜라”

“예”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아량이는 거실에 불을 켠다.

문을 지키고 섰던 내왕이는 바깥에 아무런 이상이 없자,

방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며 문짝을 살짝 닫는다.

불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삿갓을 벗으며 싱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아량아, 잘 있었느냐?”

“누구신지?”

“나 모르겠느냐? 잘 보라구”

“어머나, 내왕이 아저씨 아니예요”

아량이는 그제야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다. 원수를 갚으려고 말이다”

“그런데 언제 스님이 되셨네요”

“스님이 된 게 아니라구. 허허허··· 서문경이 자느냐?”

“아니요. 저녁을 잡숫고 나가셔셔 안돌아오셨어요”

그러자 무송이 불숙 묻는다.

“어딜 갔지?”

“모르겠어요. 아마 기방에 술을 자시러 가셨을 거예요”

“정말이냐?”

“예, 정말이에요. 사흘에 한번 정도는 바깥에 나가서 주무시지 뭐예요”

“음-”

무송은 꺼지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니 말이다.

 

 

무송(武松) 19회 

 

 

 

 계집애의 말이 참말인지 확인해 보려고 무송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

 

침실부터 살피고 응접실문도 열어본다.

 

서문경의 모습은 아무데도 보이지가 않는다.

“이거 정말 뭐 이래. 음-”

 




낙담이 되어도 이만저만 낙담이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여전히 문 밖에 신경을 쓰면서 내왕이도 화가 날 지경으로 실망이 되는 듯 냅다 내뱉는다.

“씨팔놈, 하필 왜 오늘밤에 오입질을 하러 갔지. 그놈의 오입질은 지금도 여전하군. 개 같은 놈”

그리고 무송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죠?”

무송은 맥이 탁 풀리는 듯 멍하게 서 있다가 불쑥 아량이에게 묻는다.

“반금련이는 있겠지?”

“예, 자고 있을 겨예요”

아량이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그럼 그년한테로 가자구. 저 계집애는 묶어두고···”

“예”

내왕이가 아량이에게로 다가가고,

무송이 이번에는 문 쪽으로 옮겨가서 바깥을 지킨다.

아량이는 놀라 자기 방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간 내왕이는 타이르듯이 말한다.

“아량아, 내 말 들어봐. 아무잘못도 없는 아량이를 묶어놓는 게 안됐지만,

도리가 없다구. 우리가 반금련이를 해치우고 무사히 이집을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소리 없이 여기 가만히 있어 달라고 그러는 거니까 그쯤 알고,

자, 내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으라구. 알겠지?”

“아이구, 내왕이 아저씨, 아무소리 없이 가만히 있을테니까 묶지 말아줘요. 예?”

“안돼. 난 너를 믿지만··· 저분이 묶어두라고 그러시잖아.

저분이 누군지 알아? 무송 어른이라구. 무송이 누군지 알지?”

“아니 그럼··· 몇해 전에 우리 집에 처들어왔던 그분이잖아요.

호랑이를 때려잡아서 순포도루가 됐던···”

“맞어. 바로 그분이지. 맹주 땅에서 만나 둘이 도망쳐서 이렇게 원수를 갚으러 온 거라구”

아량이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런 표정을 지으며 거실 문쪽에 삿갓을 쓴 채 서있는

무송을 힐끗힐끗 바라 본다.

“저분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얌전히 자, 두 손을 뒤로 돌리라구”

“아이고 어쩌나··· 정말 나를 해치지는 않는 거죠? 아저씨”

“우리가 뮛 때문에 너를 해치겠어. 그런 쓸데없는 걱정 말라니까”

그제야 아량이는 순순히 두 손을 뒤로 돌린다.

 

 

무송(武松) 20회 

 

 

 

 내왕이는 아량이의 두 손을 뒤에서 묶고,

 

입을 틀어막으려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묻는다.

“아량아, 송헤련이는 어떻게 됐지? 서문경이의 첩이 되어 살고 있나?”

 




“아니요”

“그럼?”

“죽었다구요”

“죽다니, 왜?”

자기를 배반하고, 서문경이와 붙은 여편네지만,

죽었다고 하니 너무 뜻밖이어서 내왕이는 적잖이 놀란다.

“자살을 했지 뭐예요”

“뭐라구? 자살을 해? 서문경이가 차버린 모양이구나”

“아니예요. 결혼식을 올리려는 그전날 밤에 목을 매어 죽었다구요.

동산의 석실 속에서···”

“아하, 그래? 왜 죽었을까? 이상한데···”

“글쎄 말이에요. 왜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구요”

“음- 그년 자살을 한걸 보니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지.

그년은 그렇고, 월미는 그대로 잘 있겠지?”

“월미도 집을 나가버리고 없다구요”

“아, 그래? 손설아 마님은?”

“그 마님은 잘 계세요”

그러자 무송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빨리빨리 서둘지 않고···”

“예, 알았어요”

내왕이는 아량이의 입을 적당히 막아 동이고,

그녀를 침상의 한쪽 다리에 기대 앉혀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만 묶어 놓는다.

그리고,

“아량아, 미안하다. 잘 있어”

작별의 말을 던지고는 후다닥 방에서 뛰어나간다.

무송은 서문경의 저택에 두 번째 발을 들여놓은 터이지만,

첫 번째나 이번이나 다 불청객(不請客)이 밤중에 처들어온 셈이어서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동서남북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방이 어둠에 잠긴 한밤중이니 말이다.

그래서 내왕이가,

“대륜 스님, 이리 따라 오시라구요”

하면서 앞장을 선다.

반금련의 거처에 당도하자,

앞장서 간 내왕이가 얼른 방문을 당겨 보았다.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열리지가 않았다.

그러자 내왕이는 똑똑똑 똑똑똑··· 문짝을 두들기면서,

“마님, 마님, 주무세요? 예? 마님”

하고 부른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더니,

계속 세게 두들기며 불러대자 곧,

“으응- 그 바깥에 누가 왔나?”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