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78) 흉몽(凶夢) <16~20회>

오늘의 쉼터 2014. 7. 4. 21:43

금병매 (178)

 

 

흉몽(凶夢) 16회 

 

 

 

 “아니야, 괞찮아, 좌우간 이상한 꿈이네.

 

그런 꿈을 꾸어서 오늘 아침에 손호가 마치 죽은 장죽산으로 보인 모양이지?”

“그런 것 같애요”

 




“두 사람이 다 의생이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기력이 허해서 그렇다구.

꿈을 가지고 너무 신경을 쓰지 말라구.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잖아. 안 그래?”

오월랑은 역시 속이 깊은 여자답게 말한다.

“맞아요, 신경 안쓸 거예요”

“아직 아침을 안 먹었지?”

“예”

“입맛이 없어도 하루 세끼 식사는 꼭꼭 해야 된다구.

조금이라도 해야 기운을 차리지,

약만 가지고는 안돼, 알겠어?”

“예”

“좀 누웠다가 일어나 세수도 하고, 아침을 먹도록 하라구”

“예, 큰형님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 나는 가보겠네”

오월랑은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방문 쪽으로 걸음을 떼놓다가 도로 가만히 멈추어 서서 돌아보며 묻는다.

“꿈에 장죽산을 죽인 그 두 불량배의 이름이 뭐라 그랬지?”

“노화하고 장승이라 그러는 것 같았어요”

“노화하고 장승이라...”

오월랑은 중얼거리면서 방에서 나간다.

그날 밤 서문경에게 오월랑은 그 얘기를 꺼냈다.

서문경은 이제 집에 돌아오면 정실인 오월랑과 함께 잤다.

그날 밤도 그는 술에 취해가지고 삼경이 넘어서야 돌아왔는데,

오월랑은 자다가 일어나 조금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이 반겼다.

그전에는 갈증이 나도록 드문드문 찾아오던 낭군이

요즘은 거의 매일 밤 자기한테 와서 자니

고맙고 좋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속으로 관가가 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관가가 죽은 뒤로 서문경이 이병아한테서 멀어져 자기에게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서문경의 품에 안겨 한바탕 화끈한 호강을 하고나서 오월랑은

남편의 믿음직하게 생긴 가슴패기를 한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여보, 오늘 아침에 말이에요 이병아가 기절을 했지 뭐예요”

“왜?”

서문경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그저 시들하게 묻는다.

“진맥을 하러 온 손호를 보고 그랬다나요”

“손호를 보고 기절을 했단 말이야?”

“예, 손호가 마치 장죽산이처럼 보이더래요”

 

 

흉몽(凶夢) 17회 

 

 

 

 “뭐? 장죽산이처럼 보여?”

그제야 서문경은 약간 놀라는 기색이다.

 




오월랑은 정사후의 재미있는 여담이라도 나누는 기분으로 얘기를 꺼낸다.

“이병아가 어젯밤에 괴상한 꿈을 꾸었나봐요.

전남편 장죽산이가 왕진을 나갔다가 산에서 호랑이에게 물린 게 아니라,

개한테 물려죽었다고 하더래요”

“개한테?”

“예”

“음-”

서문경은 표정이 슬그머니 굳어든다.

그의 팔을 베고서 옆얼굴을 보고 있는 터이라,

오월랑은 그런 표정까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재미삼아 예사로 지껄인다.

“산에 개가 있을 턱이 있겠어요?

늑대라면 몰라도... 웬 개냐하면 글쎄 불량배들이 데리고 간 개라지 뭐예요.

장죽산이를 죽이기 위해서...”

“...”

“어떤 비각 속에서 개에게 장죽산이를 물어죽이도록 해가지고

마치 호랑이한테 물려서 죽은 것처럼 산길에 버렸다는 거예요.

꿈에 장죽산이가 나타나 그러더래요, 글쎄...”

“그럴듯한 꿈인데...”

표정이 굳어졌던 서문경이 이번에는 싱그레 웃음을 떠올리면 중얼거린다.

“그럴듯하죠? 그런데 말이에요 그 불량배들이 돈을 받고 그랬다는 거예요”

“돈을 받아? 누구한테?”

“그게 누군가하면... 하하하...”

“오월랑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기부터 한다.

“당신이라지 뭐예요”

“나라고? 나한테 돈을 받고 불량배들이 그랬다는 거야?”

“예”

“헛헛허...”

서문경은 능글능글하게도 껄껄 소리를 내어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그거 참 재미있는 꿈인데... 장죽산이가 아주 그럴듯하게 잘 꾸몄군.. 이야기를... 안그래?”

“맞아요. 누가 들으면 혹시 싶어서 당신을 의심할 지경이지 뭐예요.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서 얘길 했으니까,

말하자면 귀신의 말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귀신도 거짓말을 하는 모영이지?”

“하하하... 그런 모양이죠”

“그런데 말이야 이병아 그 여자 정말 귀신이 붙은 거 같더라니까”

“그래요?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흉몽(凶夢) 18회 

 

 

 

 “나한테는 말이야 화자허 얘기를 하더라구.

 

화자허가 꿈에 보이더라는 거야. 관가를 안고서 방으로 들어오더라나”

“관가를 안고서요? 화자허가 왜 관가를 안고 나타나죠? 별일이네”

 




“꿈이니까 그런 거지 뭐. 그런데 그 관가를 냅다 자기한테 내던지고는 돌아서 나가는데

보니가 글쎄 그게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더라지 뭐야”

“어머”

“온몸이 하얀 고양이더래. 바로 관가를 물어 죽인 그 백사잔가 지랄인가 하는 고양이더라나”

“어머나, 그래요?”

오월랑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좌우간 백사잔가 뭔가 그 고양이 아무래도 보통 고양이가 아닌 것 같애.

거의 숨이 넘어간 듯 뻗어진 놈을 내가 마지막으로 냅다 갈겼더니

벌떡 일어서서 나를 할퀼 듯이 덤벼들지 뭐야. 겁나더라구.

그리고 그 고양이의 숨이 끊기자 바로 그때 관가도 죽었잖아”

“그럼 그 고양이가 죽은 화자허의 넋이란 말이네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꿈에도 그렇게 보였다니 그런 생각이 들지 뭐야.

좌우간 이병아 그여자 귀신이 붙은 거 같애. 죽은 화자허가 찾아오더니,

이번에는 장죽산이가 나타나고... 꿈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멀쩡한 손호를 보고서 죽은 장죽산인줄 알고 기절까지 하다니,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글세 그러네요”

“내 마누라중에 귀신이 붙은 여자가 생기다니 재수 없지 뭐야. 생각할수록 기분나쁘다구”

서문경의 그 말에 오월랑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까지 이병아에게 쏠렸던 서문경의 애정이

이제 그녀에게서 멀어진 게 틀림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서문경은 계속 이병아를 깍아 내리듯이 지껄여 댄다.

“그 여자 그전부터 그런 기미가 있었다구.

 화자허가 죽고 혼자 살 때 방으로 자는데 여우가 사내로 둔갑을 해서 났었다지 뭐야.

그래서 그때 의생인 장죽산이를 불러다가 치료를 받았다는거야.

그러다가 둘이 눈이 맞아서 붙어살게 된 거라구”

“아하- 이병아가 그렇구나”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오월랑은 누운 채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인다.

“아- 재수 없어. 뭐 그런데 내 마누라가 됐지”

그러면서 서문경은 부스스 이불을 들추고 일어난다.

소변이라도 마려운 모양이다.

 

 

흉몽(凶夢) 19회 

 

 

 

 서문경의 말과 같이 이병아는 정말 귀신에 씌기라도 했는지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루하루 더 이상해져 가는 것이다.

꿈이 얄궂고 뒤숭숭할 뿐 아니라, 곧잘 귀에 헛소리가 들리고, 눈에 헛것이 보였다.

 

환청은 주로 고양이 우는 소이와 개 짖는 소리였다.

 

어렴풋이 잠이 들려고 할 때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그 소리가 어딘지 먼데서 들려오곤 했다.

 

귀에 들린다기보다도 머리 속에 울려온다고 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개 짖는 소리 끝에는 으레 으악- 아이고- 하는 사람의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여운처럼 뒤를 이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개한테 물려 죽었다는 장죽산의 최후장면이 머리에 떠올라

 

등골에 소름이 좍 돋으며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환시(幻視)역시 주로 고양이거나 장죽산의 모습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보이기도 했고, 대로는 아무도 없는데 희끗하게 고양이가

비치기도 했으며, 장죽산인 듯한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창문에 햇빛이 훤하게 비치고 있는 대낮인데도 이상하게도 방 한쪽 벽에

희미한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리며 그것이 차츰 번져서 마치 별안간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온 방안이 어둠침침해지고,

묘하게 썰렁한 기운이 감돌기도 했다.

혼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데도 마치 누군가가 방문을 소리도 없이 열고

살금살금 다가와 머리맡에 멈추어서는 것 같아서 깜짝 놀라 일어난 적도 있었다.

물론 머리맡에는 아무도 없었다.

때로는 잠이 든 것도 아닌데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치 꿈 속의 장면처럼

흑백으로 변하며 붕 뜬 듯 흐릿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진공상태가 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기만 했다.

 왼쪽 귀의 이명도 사라진 듯 들리지가 않았다.

흡사 죽음의 세계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낮잠을 자는데, 누군가가 스르르 소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병아는 살그머니 눈을 떠보았다.

“어머나”

그녀는 놀라며 후다닥 일어나 앉는다.

장죽산이었다.

전번에 산중에서 만났던 장죽산이 이번에는 집으로 찾아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전번과는 달리 얼굴이 멀쩡했다.

“뭘 하고 있는 겨야. 여자가 만날 이렇게 침상에 누워서 낮잠만 자서야 쓰겠어”

하면서 다가오는데 보니까

한손에는 웬 큼직하고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쥐고 있었다.

 

 

흉몽(凶夢) 20회 

 

 

 

 “아니, 여보...”

이병아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그 식칼로 자기를 어쩌려나 싶은 것이다.

 




“왜? 이 칼이 무서운 모양이지?”

“......”

“내가 왜 이 식칼을 가지고 왔는가 하면... 당신을 해치려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구”

“그래요? 후유-”

이병아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가 하면 말이야... 뻔하잖아.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어? 당신도 뻔히 알거 아냐”

“......”

“대답을 해 보라구. 누구지?”

그러자 이병아는 서슴없이,

“서문경이겠죠 뭐”

하고 대답한다.

“맞다구. 서문경이를 죽여야겠어.

 제가 나를 죽였으니 나도 저를 죽일 수 밖에... 그래야 분이 풀릴 거 아냐.

그러나 내 손으로 죽이진 않겠어.

 서문경이 저도 불량배를 시켜서 나를 죽였듯이

나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그놈을 처치할 생각이라구.

당신이 좀 죽여 줘야겠어”

“아니, 내가요?”

“그래, 그래서 이 식칼을 가지고 온 거라구”

“어머나- 그럴 수는 없다구요”

“왜 그럴 수 없다는 거야?”

“남편을 어떻게 죽인단 말이에요.

자기 남편을 죽이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안 그래요?”

“비록 지금은 남편이 됐지만, 그전에는 바로 당신 남편이었던 나를 죽인 놈이잖아.

그것도 남을 시켜서 마치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것처럼 꾸며 감쪽같이 없애 버렸다구.

아주 교활하고 나쁜 놈이지. 악질 중의 악질이라구.

그런 나쁜 놈은 비록 남편이라도 죽여 없애야 된다구”

“싫어요. 안 못해요. 내가 죽으면 죽었지, 남편을 죽일 수는 없다구요”

“그래? 좋아 그럼 내가 네년을 죽일 수밖에... 네년 때문에 내가 죽은 셈이니

네년부터 처치를 해야 겠어”

그러면서 장죽산은 식칼은 번적 쳐들어 이병아의 목에다가 내리꽂으려 한다.

“으악-”

냅다 소리를 지르며 이병아는 잠을 깼다.

물론 꿈이었다.

이병아는 이상하게도 목이 타는 듯 말랐다.

그래서 부스스 일어나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갔다.

그런데 찬장에 놓여있는 술병들을 보자

그녀는 묘하게도 물대신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특급주 병을 꺼내어 마른 안주와 함께 혼자서 식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