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76) 흉몽(凶夢) <6~10회>

오늘의 쉼터 2014. 7. 4. 21:23

 

금병매 (176

 

 

 

흉몽(凶夢) 6회 

 

 

 

 “글쎄요...”

도무지 누군지 이병아는 알 수가 없다.

 

전혀 낯선 얼굴이다.

 

 




“나를 몰라보나니... 자, 자세히 보라구. 누군지”

그러면서 남자는 얼굴을 쑥 앞으로 내밀어 보인다.

“어머나”

이병아는 깜짝 놀란다.

 뜻밖에도 죽은 남편 화자허(化子虛)가 아닌가.

“이제 알아본 모양이지?”

화자허는 싱그레 웃는다.

“아니 당신이 이 밤중에 웬 일이에요?”

“왜? 내가 찾아오면 안되나?”

“안되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래간만이어서 말이죠.

그동안 어디 가있다나 오시는 거예요?”

“염라국(閻羅國)에 가 있었다구”

“염라국이 어딘데요?”

“당신은 아직 설명을 해도 모른다구.

그런데 말이야 내가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구”

“뭔데요? 물어보시라구요”

그러자 화자허는 안고 있는 아기를 이병아에게 보이며 묻는다.

“이 아기가 누구지?”

“글쎄요,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자, 그럼 자세히 보라구”

화자허는 그 아기를 이병아 앞으로 바싹 내밀어 보인다.

“어머나!”

“이병아는 입이 닥 벌어지고 만다.

다름 아닌 바로 죽은 관가였던 것이다.

분명히 얼마 전에 고양이에게 물어 뜯겨 죽고 말았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서 눈앞에 나타나다니,

더구나 죽은 전남편 화자허가 안고 찾아오다니,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병아는 뭐라고 얼른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인제 누군지 알겠어? 누구야?”

“....”

“왜 대답이 없지?”

그제야 이병아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 아들 관가예요”

“당신 아들이아... 뭐 이름이 관가라구?”

“예”

“누구하고 이 아기를 낳았지?”

“...”

“이 아기의 애비가 누구냐 말이야? 응?”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자 그만 화자허는 두 눈을 부릅뜨면 무섭게 노려본다.

흰자위가 푸르스름하게 변하면서 두려움에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찔끔 목을 움츠린다.

 

 

흉몽(凶夢) 7회 

 

 

 

 “왜 대답을 못하지? 얼굴에서 손을 떼고 대답을 해봐. 얼굴을 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구”

“...”

 




“어서, 손을 못 떼겠어?”

고함을 지르는 것도 아닌데,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으스스한 그런 울립으로 들려 섬뜩한 생각에

이병아는 온몸을 버르르 떤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서 손을 뗀다.

“대답을 해 보라구. 이 아기의 애비가 누군지?”

“...”

“끝내 대답을 못하는 걸 보니 그래도 한 가닥 죄책감은 남아있는 모양이지.

대답을 안한다고 내가 이 아기의 애비가 누군지를 모를 것 같애?

천만에. 다 안다구. 허허허...”

화자허는 시뻘건 핏발이 선 푸르스름한 눈에 웃음을 띠며 껄껄 소리를 내어 웃는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염라국에 가면 모든 게 다 밝혀지게 되어 있다구.

 아무리 이승에서는 감쪽같이 속았어도 그곳에 가면 대번에 알게 된다 그거야.

지나간 세월이 훤히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니까”

“...”

“한번은 말이야 재미삼아 지나간 세월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글쎄 밤중에

우리 집 담 옆의 호두나무에 등불이 걸려있지 않겠어.

 웬 등불인지 이상하다 싶어서 유심히 지켜보니까

시꺼먼 그림자 하나가 담을 넘더라구.

누군가 하고 살펴보니 서문경이란 놈이 아니겠어.

그녀석이 당신 침실로 찾아들어가지 뭐야.

아니 저놈이.. .싶으며 그 때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가 살펴보니

기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더라니까.

내가 밖에서 술을 마시는 날 밤에는 그 뒤 계속 호두나무에 등불을 달아

서문경이란 놈을 불러들이더라구. 어때, 내 말이 틀렸나?”

이병아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바짝 굳어져서 넋이 나간 듯

그저 멀뚱히 화자허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너 이년!”

화자허는 말투가 싹 달라진다.

“네년은 그때부터 벌써 나를 배반하고 서문경이란 놈과 붙었구나.

남편의 친구와 붙어 놀아난 년이 겉으로는 요조숙녀인 것처럼...

이 더러운 년!”

그만 냅다 호통을 치며 화자허는 안고 있던 아기를 이병아에게 사정없이 내던져 버린다.

화들짝 놀라며 이병아는 벌렁 뒤로 넘어진다.

그런데 아기를 내던지고 돌아서서 방을 나가는 화자허를 보니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가 아닌가.

온몸이 하얀 바로 거창하게 큰 백사자였다.

 

 

흉몽(凶夢) 8회 

 

 

 

 “으악-”

냅다 이병아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눈을 떴다.

 

 




물론 그것은 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도무지 꿈처럼 여겨지지가 않았다.

방안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 마치 지금도 그 사람크기만한 흰 고양이가

방문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희끄무레한 형체가 방문 쪽에 보이는 듯했다.

꿈의 잔영(殘影)이라고나 할까.

“아이고 무서워- 으으으-”

누운 채 이병아는 온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이마에 내밴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잠시 후 어디선가 야웅 야웅 야웅...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드렸다..

집 바깥에서 우는 것 같기도 했고,

바로 방문 밖 복도에서 들리는 듯도 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실제로 고양이 우는 소린지,

아니면 환청(幻聽)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야웅 야웅 야웅...

그녀는 그만 견디질 못하겠는 듯,

“악-”

냅다 악을 쓰듯이 소리를 내지르며 이불 속으로 모리까지 온통 푹 파묻고

바짝 온몸을 오그라붙였다.

이튿날 아침 잠을 깬 이병아는 중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어지럽고 기력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수춘이가 방문을 열고 아침 준비가 되었다고 알려도 돌아보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싫어, 나 아침 생각 없어”

하고 잘라 버렸다.

여느 날은 억지로라도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조금이라도 먹고서 도로 자리에 누었었는데,

오늘은 숫제 아침식사도 마다하고서 그대로 누워 있으니

수춘이는 마님의 몸이 더 안 좋은 것 같아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약이라도 마시도록 해야겠다 싶어서 서둘러 한약을 달였다.

약사발을 들고 수춘이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이병아는 잠이 들었는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지 천장을 향해 반듯이 누워 있었다.

침상 곁으로 다가간 수춘이는,

“마님 마님”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춘이는 나중에 깨면 약을 드리는 게 옳겠다 싶어서 가만히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병아는 눈을 떴다.

그리고 누운 채 얼굴을 살짝 움직여 수춘이를 바라보았다.

“으악-”

별안간 이병아는 질겁을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흉몽(凶夢) 9회 

 

 

 

 자기를 보고 마님이 냅다 비명을 지르며 놀라니

 

수춘이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머나, 왜 그래요?”

 

 




자기도 모르게 수춘이는 후다닥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사발에서 약이 출렁거리며 절반가량이나 방바닥에 쏟아진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수춘이는 얼른 탁자 쪽으로 가서 약사발을 놓고 걸레를 가져다가 쏟아진 약을 닦는다.

“수춘이었구나. 휴유-”

이병아는 걸레질을 하는 수춘이를 멀뚱히 내려다보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수춘이가 일어서며 묻는다.

“마님, 왜 그렇게 놀라셨어요?”

“나는 고양인 줄 알았다구”

“예? 고양이라뇨?”

“아 글쎄, 누가 부른 것 같애서 눈을 떠보니

고양이가 앞에 서있지 않겠어”

“어머나, 그럼 제가 고양이처럼 보였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고양이라도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바로 우리 관가를 물어 죽인 그놈의 백사잔가 지랄인가 하는 하얀 고양이지 뭐야.”

“어머, 별일이야. 하하하...”

어이가 없는 듯 그만 수춘이는 웃음이 나와 버린다.

이병아는 간밤의 꿈 얘기를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죽은 남편 화자허를 수춘이 앞에 들먹거리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화자허의 눈을 속이고 자기와 서문경이 밀회를 거듭할 때

 바로 수춘이가 호두나무에 등불을 달고,

서문경이 담을 넘어오면 사다리를 받쳐주고 했으니 말이다.

“약은 이따가 내가 알아서 먹을테니까 ,

 나가 네 볼일이나 보라구”

“예, 약이 쏟아져서 절반도 채 안 남았다구요”

“괞찮아”

수춘이가 나가자,

이병아는 다시 퀭한 두 눈을 힘없이 감아 버린다.

이병아가 기력이 허해져서 귀에 헛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이번에는 눈에 헛것까지 보인다는 소문은 곧 수춘이의 입을 통해서 집안에 퍼졌다.

그 소문은 오월랑의 귀에도 들어갔고,

그날 해질 녘 오래간만에 퇴청해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 서문경도

오월랑 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다.

수춘이가 고양이로 보이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서 서문경은 저녁을 먹자

곧바로 이병아를 찾아갔다.

서문경이 찾아오자 이병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핑 현기증이 골을 때려서 그대로 비실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서문경은 의자를 바짝 침상 곁으로 당겨놓고 앉았다.

 

 

흉몽(凶夢) 10회 

 

 

 

 “여보, 당신 계속 한약을 먹고 있지?”

“예”

 

 



“그런데 왜 몸이 좋아지지 않지?”

이병아는 조금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서문경을 바라보기만 한다.

“얘기를 들으니 눈에 헛것이 보인다구?”

“......”

“수춘이가 고양이로 보였다는 게 사실인가?”

말없이 이병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얼른 시선을 내리깐다.

“얘기를 좀 해보라구.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러자 이병아는 약간 곤혹스러운 듯한 기색을 떠올리며 망설이더니

도리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지 뭐예요.

꿈에 말이죠 죽은 남편이 보이지 않겠어요”

“죽은 남편?”

“예”

“누구?”

혹시 장죽산이 아닌가 싶어 서문경은 슬그머니 표정이 굳어든다.

장죽산이라면 자기가 노화와 장승 두 불량배를 시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것처럼 꾸며서 살해한 터이니 말이다.

“화자허 말이예요”

“음-”

장죽산이 아니어서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듯하나,

화자허는 친구였으니

역시 기분이 좋지가 않아서 서문경은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다.

“화자허가 글쎄 우리 관가를 안고 방으로 찾아 들어오더라구요”

“그래서?”

“어디 갔다가 인제 오느냐고 물으니까 염라국에 가 있다가 온다면서

이 아기의 애비가 누구나고 묻잖아요.

관가를 내밀어 보이면서 말이에요.

얼른 대답을 못하겠더라구요.

그랬더니 눈을 흘기면서 대답을 안 해도 다 안다는 거예요.

염라국에 가면 지난 세월이 그림처럼 다 보인다나요.

그러면서 글쎄 무슨 얘기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처음 밀회를 할 때 호두나무에 등불을 걸었잖아요.

화자허가 집에 없다는 신호로 말이에요.

그러면 당신이 담을 넘어왔다고요.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음-”

“그리고 이 더러운 년 하면서 냅다 관가를 나한테 내던지고는

돌아서 나가는데 보니까 글쎄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지 뭐예요.

거창하게 큰 흰 고양이더라니까요. 화자허가...”

서문경은 몹시 기분이 언짢은 듯 그만 벌떡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성큼 성큼 방문 쪽으로 걸음을 떼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