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75) 제20장 흉몽(凶夢) <1~5회>

오늘의 쉼터 2014. 7. 4. 21:09

 

금병매 (175)

 

 

제20장 흉몽(凶夢) 1회 

 

 

 

 관가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서문경은 한동안 실의에 빠져서

 

거의 매일 바깥에서 술과 계집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공연히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닥치는 대로

 

집안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집안에서 뿐 아니라 제형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붙들려온 죄인들은 직접 자기가 문초를 하면서 마치 무슨 분풀이라도 하듯이

 

마구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일쑤였고 부하 관원들에게도 그전과 달리

 

매사에 몹시 까다롭고 괴팍스럽게 대했다.

 




 

그래서 집안사람들뿐 아니라 제형소의 관원들,

그리고 집안사람들뿐 아니라 제형소의 관원들,

그리고 친구들까지도 아들이 죽자

그의 성미가 월등히 고약해졌다고 수군거리며 혀를 찼다.

아들을 잃은 통한(痛恨)은 이병아가 오히려 서문경 못지않았다.

그녀는 그 뒤 늘 침상에 누워 지내는 몸이 되었다.

뚜렷하게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마치 골병이라도 든 사람 같았다.

입맛도 없고 잠도 잘 안 오며 사는 것이 도무지 귀찮고 무의미하기만 했다.

골병이 들어도 마음속에 이만저만한 골병이 든 게 아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잘 자라도록 자기가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가 말이다.

그런데 결과가 이게 뭔가.

자기에게서 관가를 데려가더라도 그냥 곱게 데려가는 게 아니라 고양이를 시켜서

그처럼 참혹한 꼴을 만들어 가지고 빼앗아가다니

마치 하늘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이제 무당도 다 지랄이다 싶었다.

초하루와 보름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찾아가 축원을 드렸고

지난해 섣달 초하룬가에는 올겨울에 아기에게 마귀가 접근할 조짐이 보이니

액막이로 붉은 빛깔의 담으로 옷을 지어 입으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그렇게 했는데

오히려 그놈의 마귀 같은 고양이가 달려들어 그처럼 끔찍하게 물어뜯고 빨간 담옷까지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았는가.

그래서 결국 관가가 죽고 말다니 무당이 도리어 사람을 놀린 것만 같아 괘씸하고 분했다.

반금련이 원망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그 색깔부터가 망측한 고양이를 키우지만 낳았다면

이런 변이 일어났을 턱이 없질 않은가.

평소에도 늘 못마땅하더니 결국 말하자면

그년 때문에 이런 큰 불행을 당하고 말다니 이가 갈렸다.

낮이나 밤이나 매일같이 값진 한약을 먹어도 별로 몸에 차도가 있을 턱이 없었다.

 

 

흉몽(凶夢) 2회 

 

 

 

 이월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해동(解凍)을 재촉하는 듯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날이 궂으니 이병아는 몸이 한결 찌뿌드드하고 골이 쑤셨다.

 

그래서 아침을 조금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시 후 수춘이가 가져다준 한약을 마시고는 곧 침상의 이부자리 속에 묻혀서 잠을 청했다.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프니 잠은 더욱 잘 오지가 않았다.

 




바깥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니 심기도 한결 울적했다.

죽은 관가의 생각이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퀭한 두 눈을 힘없이 감았다 떴다 하면서 지난날의 발자취를 더듬듯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있었던 기구한 일들을 되씹어 보기도 했다.

이병아는 관가가 죽은 뒤로는 지난날을 회상해도 기뻤던 일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괴롭거나 슬펐던 대목만 짙게 와 닿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머리 속은 말하자면 늘 우중충한 것으로 가득 차있는 셈이다.

그런 어두운 회상에 젖으며 공연히 아- 혹은 후유- 하고 탄식을 하기도 했고,

눈을 찔끔 감으며 가볍게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삼십 평생이 완전히 실패인 것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눈꺼풀이 조금 무거워지면서 사르르 두 눈이 감겼다.

잠이 올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지 어렴풋이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야웅 야웅 야웅...

번쩍 눈을 떴다.

귓전에 그 소리가 가물가물 맴도는 듯하다가 사라졌다.

“어머나”

이병아는 깜짝 놀란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 우는 소리라니…….

섬뜩한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스스 떨린다.

그전 같았으면 설령 비 오는 날에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더라도 놀랄 까닭이 없다.

관가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었으니,

고양이 우는 소리만 들어도 절로 섬뜩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몸에 돋아 오른 소름이 이상할 정도로 좀처럼 가시질 않아서

그녀는 한참동안 눈을 질끔 감은 채 무슨 대단한 고통이라도 겪고 난 것처럼,

“후유-”

하고 큰 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녀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조금 전에 살풋 잠이 들어서 꿈결에 들은 고양이 소린지,

아니면 실제로 바깥에서 고양이가 울었는지 잘 분간이 되지가 않는다.

 

 

흉몽(凶夢) 3회 

 

 

 

 이병아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그냥 누워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침상에서 내려서니 핑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귀에서 앵- 소리가 났다 그녀는 얼른 침상 모서리를 짚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지그시 이를 물며 잠시 바짝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앵앵앵- 마치 어디 먼데서 벌떼들이 나는 듯한 이명(耳鳴)은 가물가물 그 소리가

 

작아지기는 했으나 말끔히 귀에서 가시질 않았다.

 




관가가 죽은 뒤로 기력이 허약해져서 곧잘 겪는 증상이었다.

그러나 그 증세가 오늘은 잠시나마 월등히 더한 듯했다.

“아이고 왜 이러지? 어머-”

이병아는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았다가 떼곤 해본다.

 마치 그 가물가물한 이명을 없애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곧 오른쪽 귀에서는 이병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왼쪽 귀에서는 여전히 그 소리가 가물가물 들리질 않는가.

“아이고 얄궂어라. 왜 이러나?”

그녀도 기력이 허해져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저절로 괞찮아지겠지 싶으며 가만가만 걸음을 옮겨 방에서 나간다.

수춘이의 방으로 가서 문을 연다.

“어머, 마님”

의자에 앉아서 수를 새기고 있던 수춘이가 약간 놀라며 일어선다.

이병아의 안색 유난히 파리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침상에서 자는 줄 알았는데, 무슨 일로 일부러 찾아왔는가 싶어서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고양이가 울었지?”

“예? 고양이가 울다뇨?”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잖아 조금 전에 말이야”

“아니요 못 들었는데요”

“그래? 음- 그러면...”

이병아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꿈을 꾸었던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아냐, 내 귀에는 분명히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단 말이야.

수춘아, 밖에 한번 나가 보라구. 고양이가 있는가”

하고 이른다.

“예, 그러죠”

수춘이는 혹시 자기가 수를 새기는 데 열중해서 고양이 우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도 모른다 싶어서 얼른 방을 나가 현관 쪽으로 간다.

이병아는 어쩐지 또 으스스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듯해서 복도에 가만히

 굳어져 서서 숨을 죽이고 수춘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흉몽(凶夢) 4회 

 

 

 

 수춘이는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바깥으로 나가볼 수는 없다.

 

그냥 현관에서 목을 빼어 사방을 살려본다.

 

그러나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안 보이는데요”

 




하면서 수춘이는 이병아를 돌아본다.

그리고 현관문을 닫으려 한다.

“우산을 가지고 바깥에 나가 집을 한 바퀴 돌아 보라구. 그래야 확실한 걸 알지”

이병아가 다시 이른다.

수춘이는 좀 귀찮은 듯한 표정을 떠올리면서도,

“예, 알았어요”

하고는 우산을 찾아들고 바깥으로 나간다.

수춘이가 현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자

이병아는 가만가만 걸어서 도로 내실로 들어가 침상에 눕는다.

여전히 왼쪽 귀에서는 벌떼들 앵앵거리는 듯한 이명이 가물가물 들린다.

아까보다는 그 소리가 작아진 듯하나,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이병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힘없이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왼손의 손바닥으로 왼쪽 귀를 막았다 뗐다 해본다.

그런다고 이명이 사라질 턱이 없다. 신경질만 난다.

악- 하고 냅다 고함을 내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애써 참고 누웠으려니 팔다리까지 한결 더 노자근하다.

잠시 후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수춘이가 들어왔다.

이병아는 가만히 눈을 뜬다.

“마님, 아무데도 고양이는 없더라구요”

“그래?”

“아마 마님께서 기력이 허해져서 헛들으신 모양이죠?”

“글쎄, 그럼 아까 내가 꿈을 꾸었던가...”

“그런가봐요. 푹 쉬시라구요”

수춘이가 물러나려 하자,

“잠깐만”

하고 붙든다

“왜요? 마님”

“수춘아 내가 말이야 팔다리가 몹시 무겁구나. 자근자근 쑤시고 말이야.

수고스럽지만 네가 좀 주물러 줄 수 없겠어?”

“예, 그러죠”

그게 뭐 수고스러울 게 있냐는 듯이 수춘이는 순순히 침상에 바싹 다가서서

이병아의 한쪽 팔부터 주무르기 시작한다.

이병아는 사르르 다시 두 눈을 감는다.

양쪽 팔을 주무르고 나서 다리 쪽으로 옮겨가며 수춘이가 불쑥 입을 연다.

“마님, 이제 관가를 잊어버리셔야 된다구요”

 

 

흉몽(凶夢) 5회 

 

 

 

 이병아는 반사적으로 눈을 떠 수춘이를 쳐다본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다.

“그래야 마님 건강이 좋아지신다니까요.

 

 팔다리의 살이 말이 아니지 뭐예요.

 

힘이 하나도 없어 허벅허벅 하다구요. 이러다간 큰일 나겠어요”

 




“......”

“죽은 관가를 자꾸 생각한다고 해서 살아 돌아오나요.

잊어버리시라구요.

그래서 건강을 되찾아 다시 아이를 배도록 해야지요.

그러면 될 거 아니에요. 몸이 이래 가지고는 어디 아이를 베겠어여”

그 말에 이병아의 눈빛이 약간 달라진다.

깜깜한 절망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본 듯한 모양이다.

마님의 그런 기색을 보자 수춘이는 기뻐서 다리를 더욱 정성껏 주무르며 계속 지껄인다.

“대감 어른께서 마님이 이렇게 누워만 계시니까 주무시러 오지도 않잖아요.

잘못하면 대감 어른의 애정이 다른 마님한테 옮겨갈지도 모른다구요.

부디 기운을 차리시고 일어나도록 하세요.

마님이 잃게 만날 병자처럼 누워만 계시니까 저도 우울하고 슬픈 생각이 들지 뭐예요”

“오냐, 고맙다”

수춘이의 진정이 가슴에 와 닿는 듯 이병아는 두 눈에 핑 눈물이 어린다.

그날 밤도 이병아는 이슥토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나절에 수춘이가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한 말리 머리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아직 스무 살이 안 된 어리다면 어린 몸종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수춘이의 말과 같이 관가를 잃어버리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슬픔에 잠겨 한탄을 해댄다고 해서 관가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정신을 차려 건강을 돌이켜서 서문경의 애정을 되찾아

다시 아이를 가지도록 노력하는 길 밖에 달리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며 하품이 나왔다.

어느덧 삼경이 된 듯 둥둥둥... 현청의 북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르르 잠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똑똑똑...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하면서 이병아는 눈을 떴다.

스르르-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웬 낯선 남자가 아기를 하나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누구죠? 이 밤중에...”

이병아가 부스스 일어나 앉으며 묻는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뜻밖에 남자는 불쑥 반말로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