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73)
백사자 41회
여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고양이를 방바닥에 내팽개친다.
그리고 냅다 발길로 걷어찬다.
“캭! 캬웅-”
비명을 지르며 고양이는 쏜살같이 방에서 복도로 도망쳐 나간다.
“저놈의 고양이 ! 잡아라-”
여의도 고양이를 잡아 죽이려는 듯이 정신없이 뒤쫓아 나간다.
고양이가 현관 밖으로 튀어나가고,
“아이고 - 저놈의 고양이! 이일을 어쩌나. 이일을 ...”
마치 살짝 실성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여의가 현관에 이르렀을때,
“아니, 무슨 일이요?”
하면서 불쑥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한도국이었다.
한도국은 손님이 없어서 전당포에 혼자 앉아 화로의 불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안쪽 가옥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무슨 말다툼이라도 있는가보다고 예사롭게 생각하다가 ‘사람죽네’ 라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아서 노라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고양이가 관가를...”
“관가를 뭐 어쨌는데요?”
“물어뜯어 놓았지 뭐예요”
“아니, 뭐라구요?”
한도국은 화들짝 놀라며 안쪽으로 달려 들어간다.
내실에 들어선 한도국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온통 얼굴과 목 그리고 두 팔이 할퀴이고 물어 뜯겨서 피가 낭자한 관가가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나뒹굴어 있는 게 아닌가. 빨간 담옷도 갈기갈기 찢겨졌다.
“아이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놀란 한도국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여의가 우선 관가를 안아서 침상에 눕힌다.
얼굴이 온통 망가져 버려서 제대로 형용도 알 수 없는 그런 흉측스런 몰골이 된 관가는
정신을 잃어서 마치 죽은 것같이 조용했다.
“내가 가서 의생을 불러올테니까”
한도국이 방에서 달려 나가자 여의는,
“아이고 이일을 어쩌지. 어쩌면 좋아. 아이고 아이고-”
하고 울먹이면서 자기는 오월랑 마님에게 알리러 허둥지둥 뒤따라 나간다.
곧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다시피 되고 말았다.
관가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을 지경이 되다니,
너무나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월랑을 비롯한 부인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모여들었고,
소식을 들은 하녀들도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달려왔다.
한도국이 의생을 데리고 들어서자, 방안은 조용해졌다.
백사자 42회
관가의 몰골을 본 의생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지 좀 망설이다가 우선 한쪽 팔의 맥부터 짚어 본다.
“음-”
맥은 뛰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은 듯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인다.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오월랑이,
“어떤가요?”
하고 조심스레 묻는다.
“맥이 뛰고는 있는데...”
“그런데요”
“아주 위험하네요. 이거 어떻게 하죠?
“아이고, 어떻게 하다니, 의생이 누구한테 묻는거요?”
의생은 할말이 없는 듯 쩝쩝 입맛을 다신다.
그 표정으로 보아 도저히 살려낼 가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좌우간 할 데까지 해보자는 듯이 의생은 팔을 걷어붙이고
우선 관가의 얼굴과 목, 그리고 팔에 낭자한 피부터 조심스레 닦아내기 시작한다.
“고양이가 아기를 이지경으로 만들어놓을 때까지 유모는 뭘 하고 있었어? 응?”
그때까지는 너무 뜻밖의 일에 당황하여 어리둥절해 있던 오월랑이
그제야 몹시 화가 치솟는 듯 여의를 향해 냅다 내뱉는다.
“고양이가 어찌나 순식간에 사납게 달려드는지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걷어차서 쫓아냈지요”
여의는 고개를 떨구고 울먹이는 듯한 소리로 대답한다.
“쫓아내기만 해서 되겠어. 잡아서 죽여야지. 반금련이 키우고 있는 그 고양이지?”
“예”
“그년 때문에 기어이 이런 일이...”
몹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오월랑은 몰려 서있는 하녀들을 향해 화를 내듯 뇌까린다.
“모두들 서서 구경만 하고 있지 말고, 어서 그놈의 고양이를 잡으라구.
잡아서 없애버려야지, 그대로 둘 수가 있어?”
그말에 하녀들은 모두 슬금슬금 방에서 나간다.
그러나 고양이는 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문경이 백마를 타고 황급히 집으로 달려온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오월랑은 아무래도 서문경에게 미리 알리는 게 옳겠다 싶어서
하인 하나를 급히 제형소로 보냈던 것이다.
방에 들어서서 관가의 몰골을 본 서문경은 질겁을 하듯 놀라고 말았다.
백사자 43회
서문경의 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치 살짝 실성한 사람 같았다.
여의로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얘기를 듣자 다짜고짜
그녀의 따귀를 사정없이 냅다 갈겨댔다.
유모라는 것이 아기를 어떻게 봤기에 이 모양을 만들어 놓았느냐고,
고양이보다도 오히려 네년이 더 죽일 년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관가가 이런 지경이 되도록 뭘 하고 있었느냐고,
오월랑을 비롯해서 그곳에 남아있는 이교아와 맹옥루에게도 공연히 호통을 쳐댔다.
그 부인들이 거처가 다른데 어떻게 그런 불상사가 안 일어나도록 할 수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너무나 화가 치밀어 아무에게나 닥치는 대로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의생에 대해서도 만약 관가를 살려놓지 못하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서문경은,
“관가 어미는 어딜 갔지?”
하고 이병아가 보이지 않는 걸 알고 묻는다.
“무당한테 갔어요. 초하루와 보름날이면 축원을 드리러 가거든요”
여의가 울먹이는 듯한 소리로 조심스레 대답한다.
“어서 가서 불러오라구”
“예”
여의는 얼른 방을 나간다.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되어 살았다는 그런 표정이다.
여의의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간 이병아는 내실로 들어서 관가의 몰골을 보자,
“아이고머니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면서 그만 자리에 비실 쓰러지고 말았다.
헐떡거리며 급히 돌아온 데다가 너무나 끔찍한 일에 놀라 정신이 아찔해지고 만 것이다.
반금련의 친정어머니 생신에 갔던 춘매가 돌아온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반금련은 며칠 친정에서 쉬었다가 오기로 하고 춘매만 혼자 당일로 귀가를 한 것이다.
관가가 고양이한테 물어 뜯겨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은 듣고
춘매 역시 무척 놀랐다.
그리고 슬그머니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관가가 죽기라도 한다면 고양이를 키운 반금련 마님은 어떻게 되는 건지,
생각하니 절로 몸이 떨렸다.
짐승인 고양이가 한 짓이니, 키운 주인에게 직접적인 잘못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불똥이 어쩌면 자기에게까지 미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서문경의 성깔로 봐서 화가 극에 달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춘매는 이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반금련과 가까운 사이인 맹옥루를 찾아갔다.
백사자 44회
맹옥루는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에서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춘매가 찾아오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절로 표정이 굳어진다.
“마님, 관가가 백사자에게 물렸다면서요?”
춘매는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야단났구나. 그놈의 백사잔가 뭔가 하는 고양이 때문에...”
“이일은 어쩌면 좋죠?”
“.......”
“예? 마님”
그러자 맹옥루는 한결 가라앉은 어조로 바뀐다.
“너의 마님도 돌아왔냐?”
“아니요. 몸이 좀 피곤하다고 며칠 쉬었다가 오신다 그랬어요”
“태평이군. 집에 난리가 났는데 며칠 쉬었다가 오다니...”
“이런 일이 일어난 줄을 모르시거든요”
“좌우간 말이야 당장에 가서 얘길 하고 돌아오도록 하라구”
“밤에는 못 간다구요. 얼마나 먼데요”
“그럼 내일 날이 새거든 곧바로 가서 알리라구. 알겠지?”
“예”
“그럼 됐으니 나가봐. 너 나한테 할말 없지? 난 혼자 있고 싶다구”
춘매와 같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불안한 듯 맹옥루는 매정할 정도로 거침없이 말한다.
돌아서 거실을 나가려던 춘매는 몹시 기분이 안 좋아 멈추어 서서 맹옥루를 헬끗 돌아보며
기어이 짓궂게 이죽거리듯이 지껄인다.
“우리 마님이 말이에요, 집에 이런 일이 일어난 줄을 모르고 뭐라 그러시는지 아시겠어요?
오늘밤에 백사자를 맹옥루 마님한테 데려다 드리라지 뭐예요. 그러기로 했다면서요?”
“뭐라구?”
맹옥루는 그만 발칵 화를 내고 만다.
“하하하...”
춘매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얼른 밖으로 나가 버린다.
“저것이....”
맹옥루는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뒤쫓아 나갈 듯이 에라,
참자 싶으며 도로 털썩 궁둥이를 내린다.
이튿날 아침 날이 새자 곧바로 춘매는 반금련의 친정집으로 향했다.
찾아온 춘매로부터 백사자가 관가를 물어뜯어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반금련은,
“어머, 그게 정말이야?”
하고 깜짝 놀란다,
그러나 그 눈빛은 무척 기쁜 소식을 들은 것처럼 밝게 반질거린다.
백사자 45회
“마님, 빨리 집에 가셔야 되겠어요”
“그래야 되겠는데... 관가가 죽지는 않았다 그거지?”
“아직 목숨은 붙어 있는가봐요”
“음 - 이거 야단났군”
그제야 반금련은 무척 근심이 되는 듯한 그런 표정으로 바뀐다.
실제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용케 백사자가 시킨 대로 일을 하긴 했는 모양인데,
관가가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면 어쩌면 살아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깨끗이 뒈져 버려야 목적이 달성 되는 건데,
일이 어중간하게 끝나서는 오히려 화만 자초한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반금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처음 예정대로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며칠 쉬었다가 귀가하는 게 좋을는지...
춘매가 일부러 그 사실을 알리고 데리러 오기까지 했는데,
안간다면 오히려 의심을 받고, 서문경의 화만 돋울 것 같았다.
당장 돌아가는 게 옳겠는데, 막상 귀가를 하려니 왈칵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반금련은 이를 악물었다. 기왕에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니,
눈 똑바로 뜨고 감당해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싶어서,
“그래, 어서 돌아가자”
하고 귀가의 채비를 서둘렀다.
춘매와 함께 집에 당도한 반금련은 자기의 거처에 들러 우선 나들이옷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차를 한잔 마시며 좀 숨을 가다듬은 다음 이병아의 거처로 가기 위해 거실을 나섰다.
춘매도 뒤를 따랐다.
회랑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지,
“야웅 야웅-”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반금련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비취헌의 깊숙한 마루 밑에서 백사자가 기어 나오더니
냅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반금련은 절로 얼굴이 화끈해진다.
반가운 생각과 함께 섬뜩한 두려움이 어스스하게 엄습해 온다.
반금련이 백사자에 대해서 그런 두려움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말하자면 살인을 공모한 셈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힐끗 춘매를 돌아본다.
춘매도 기분이 안 좋은 듯 긴장된 표정이다.
이번에는 사방을 휘둘러본다.
아무도 보고 있는 사람은 없다.
고양이가 껑충 회랑으로 뛰어올라 다가와서 반가워 못견디겠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반금련의 치맛자락에 휘감길 듯이 몸을 비벼댄다.
그러자 반금련의 입에서 서슴없이,
“이 못된 고양이 새끼, 네가 관가를 물었다면서?”
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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