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74)
백사자 46회
“아웅-”
고양이는 반금련을 빤히 쳐다본다.
뜻밖에 그 목소리가 꾸짓는 듯하니 어리둥절해지는 모양이다.
빨간 옷을 입은 아기를 물어뜯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
꾸짖다니 알수 없다는 그런 눈빛이다.
“저리 가! 보기도 싫다구!”
냅다 내뱉으며 반금련은 그만 고양이를 발길로 걷어차 버린다.
“캬캬웅-”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걷어차기까지 하니,
고양이는 어이가 없는 듯 비실비실 피하면서 날카롭게 쏘아본다.
“저놈의 고양이 때려 잡으라구. 어서!”
반금련은 일부러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돋구어 춘매에게 이른다.
“예”
춘매는 후다닥 고양이를 잡으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고양이가 춘매에게 그렇게 간단히 붙잡힐 턱이 없다.
잽싸게 회랑에서 뛰어내려 비취헌 쪽으로 달려가 아까 기어 나왔던 깊숙한
마루 밑으로 후다닥 도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고양이는 어제 관가를 물어뜯은 다음 여의에게 쫓겨서 도망쳐 나오자
곧바로 비취헌의 깊숙한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가 피신을 했던 것이다.
짐승인 저도 끔찍한 일을 저질러서 이제 붙들리면 맞아죽을 거라는 느낌이 왔던 모양이다.
반금련이 이병아의 거처로 들어가 닫혀있는 내실문을 가만가만 두드리니 안에서,
“누구요?”
하는 힘없는 여자의 음성이 드렸다.
여의의 목소리였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선 반금련은,
“어머나”
정말 눈이 휘둥그레진다.
침상에 누워있는 관가의 몰골이 너무나도 끔직스러웠던 것이다.
차마 눈 뜨고 똑바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숨이 붙어 있다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관가와 함께 이병아도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몰골 역시 말이 아니었다. 두 눈이 퀭하게 꺼져 들어갔고,
안색이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병자라도 이만저만한 병자가 아닌 것 같았다.
어제 무당집에서 돌아와 기절을 한 다음 정신을 돌이키기는 했으나,
그 뒤로 잠 한숨 못자고, 목구멍으로 물밖에는 넘긴 것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는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지,
그녀 역시 꼼짝도 하질 않았다.
마치 두 모자가 숨이 거두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만 같았다.
침상 곁에 지키고 앉아있는 여의도 기진맥진해 보였다.
백사자 47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반금련은 시치미를 뚝 떼고 여의에게 묻는다.
정말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라는 그런 긴장된 표정이다.
“고양이가 난데없이 달려들어서 물어뜯었지 뭐예요”
여의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러나 약간 반금련이
원망스러운 듯이 힐끗 쳐다보며 대답한다. 고양이의 임자이니 말이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고양이가 달려들었단 말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군”
“관가가 자다가 깨어서 울고 있었다구요. 그런데 그만 그 망할 놈의 고양이가...”
반금련의 곁에 서서 관가의 끔직한 몰골을 지켜보며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춘매가
미심쩍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을 연다.
“고양이가 도대체 여기까지 뭘 하러 왔을까? 어떻게 이 안방까지 들어왔지?
그 말에 여의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더니,
목소리에 힘을 주어 변명을 하듯 늘어놓는다.
“관가를 재워놓고 혼자 뜨개질을 하고 잇는데 현관문이 덜컹거리더라구.
그래서 누가 온 줄 알고 나가 문을 열어봤더니 글쎄 고양이지 뭐야.
고양이가 들어오라고도 안했는데 어느새 안으로 들어왔다니까”
힉, 하고 춘매는 웃으려다가 참는다.
고양이가 들어오라고도 안했는데 들어왔다는 말이 우스웠던 것이다.
반금련은 여전히 시치미를 뚝 떼고 여의를 나무라는 투로 말한다.
“좌우간 고양이를 집안에 들여 놓는 게 잘못이라구.
고양이만 안들여 놓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냐”
그러자 여의는 힐끗 눈을 흘기듯 반금련을 바라보며 볼멘소리로 한마디 하고 만다.
“그 고양이를 키운 건 누군데요?”
“뭐라구?”
반금련은 안색이 싸늘하게 달라지며 여의를 매섭게 노려본다.
그 눈길이 너무나 섬뜩해서 여의는 다시 대거리를 하려다가 그만둔다.
반금련은 분을 못 참겠다는 듯 거침없이 쏘아붙인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도 뭐 잘못인가? 유모면 유모지, 네년이 그런 것까지 상관하기야? 앙?
이년이 이제 보니까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려고 드네. 나 참 기가 막혀서...”
지금까지 자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지 정물처럼 꼼작도 안하던 이병아가
퀭한 두 눈을 힘없이 떴다.
백사자 48회
여의에게 퍼부어 대던 반금련은 대뜸 목소리를 싹 바꾸어,
“아이고 여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응?”
하면서 침상 가까이로 바싹 다가선다. 이병아를 위로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눈을 뜬 이병아는 초점이 흐릿해서 마치 얼빠진 것 같은
그런 시선으로 멀뚱히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다.
“여보게, 얼마나 놀랬는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 뭐야.
유모라는 것이 뭘하고 있었기에 아이가 고양이에게 이렇게 물리도록 내버려뒸느냐 말이야.
하도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온다니까”
그러나 이병아는 이제 누구를 원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듯이 도로 눈을 감으며
힘없이 고개를 저쪽으로 돌려 버린다.
여의는 도저히 그대로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을 수가 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기어이 반금련을 향해 말대꾸를 하고 만다.
가만히 있다가는 자기가 온통 책임을 뒤집어쓰고 말 것 같았던 것이다.
“그놈의 고양이가 비호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도대체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물어뜯는 고양이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에요.
그게 호랑이 새끼지 고양이라고 기른 거예요?”
“아니, 무엇이 어쩌고 어째? 이년이 이제 보니 간뎅이가 부었어.
누구한테 함부로 아가리를 놀려대는 거야. 앙?”
“왜 고양이가 한 짓을 내 잘못으로 뒤집어 씌울려고 그러느냐 말이에요.
난 잘못한거 하나도 없다구요”
“아이구, 이년을 그만...”
반금련은 분을 참지 못해 곧 여의의 머리끄덩이를 거머쥘 기세다.
마침 그때 어험, 헛기침 소리가 나며 방문이 열렸다. 서문경이었다.
아직 퇴청때가 멀었는데 관가가 걱정이 되어 일찍 돌아온 것이다.
방에 들어선 서문경은 반금련을 보자 그만 안색이 달라지며 내뱉는다.
“뭐야 왜 시끄럽게 야단이야?”
반금련은 무척이나 죄송스러운 듯이 고개까지 살짝 떨구며 말한다.
“아이고 여보, 무슨 이런 끔직한 일이 다 있죠?
하도 기가 막혀서 유모를 좀 나무라 줬어요.
뭘 하고 있었기에 고양이가 관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도록 가만히 내버려 뒀느냐구요”
서문경은 반금련의 입에서 ‘고양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만 허파가 팍 뒤집어지는 듯 불문곡직하고,
“아가리 닥쳐! 뭘 잘했다고...”
하면서 냅다 사정없이 발길로 걷어차 버린다.
백사자 49회
“아이고-”
비명 소리와 함께 방바닥에 쓰러진 반금련은 매서운 눈초리로 서문경을 쏘아본다.
반사적(反射的)인 시선이다.
그러나 그녀는 얼른 표정을 바꾸어 애원하는 투로 지껄인다.
“여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난 어제 어머니의 생신에 친정에 가고 없었단 말이에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내가 없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난들 어쩌겠어요.
오늘 아침에 춘매가 달려와 알려줘서 곧바로 이렇게 돌아왔다구요.
몸이 너무 피곤해서 며칠 쉬었다 오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안 올수가 있나요?”
“도대체 그따위 고양이를 키운 것부터가 잘못이라 그거야.
고양이를 안 키웠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게 아냐”
“누가 이럴 줄 알고 키웠나요? 그저 외로워서 취미 삼아 키운 거죠”
“아가리 닥치지 못해! 곧 잘했다고 나불거리고 있어”
“...”
“고양이하고 붙어 자는 년이 뭐 취미삼아 키웠다고?
짐승하고 붙는 게 취민 모양이지. 이 더러운 년!”
서문경은 쓰러져있는 반금련을 또 한번 냅다 걷어찬다.
“아이크- 으흐흐흑...”
그만 반금련은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울기는... 여기가 어디라고 시끄럽게 떠들고, 울고 지랄이야. 못 그쳐?
어서 그쳐! 그치고 일어나서 그놈의 고양이를 잡아 오라구.
내가 당장 그 망할 놈의 고양이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테니까”
그래야 분이 조금은 풀리겠다는 듯이 서문경은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뇌까린다.
그러자 반금련이 뚝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쳐들며 말한다.
“그러잖아도 여보,
조금 전에 비취헌의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 백사자를
내 손으로 잡아 없앨려고 했다구요.
그런데 도로 그 밑으로 깊숙이 기어들어가 버렸지 뭐예요.
춘매한테 물어보세요.
거짓말인가”
겁에 질려서 한쪽 구석으로 잔뜩 움츠리고 서있던 춘매가 얼른 입을 연다.
“정말이에요. 대감어른”
“그래? 백사잔가 지랄인가 그놈의 고양이가 비취헌 마루 밑에 숨어 있었군.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오냐 됐다.
이놈의 고양이 인제 너는 죽었다”
그러면서 서문경은 후다닥 방에서 뛰어나간다.
곧 고양이 사냥이 시작되었다.
서문경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하인들이 장대나 막대기를 들고 비취헌을 둘러쌌다.
그리고 마루 밑 깊숙이 숨어있는 고양이를 밖으로 나오도록 하려고
와-와- 야단법석이다.
백사자 50회
고양이가 쉬 밖으로 나올 턱이 없었다.
사람이 하는 말까지 알아듣는 듯한 그런 유별난 고양이인지라
이미 저를 잡아 죽이려는 수작들인 줄을 뻔히 알터인데,
순순히 기어 나올 까닭이 없는 것이다.
마루 밑이 워낙 깊어서 어지간한 장대로는 한가운데까지 닿지도 않았다.
한참 법석을 떨어대다가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고,
한 하인이 장대를 쥐고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바깥에 둘러 서있는 하인들은 고양이가 튀어나오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지켜 서있었다.
잠시후 도리가 없는 듯 고양이는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와-”
“잡아라”
“이놈의 고양이!”
별안간 시끌벅쩍해지며 하인들이 우르르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 뒷짐을 지고 서서 지켜보고 있던 서문경은 냅다 큰소리로,
“잡아서 이리 끌고 와!”
하고 호령을 한다.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려던 고양이는 하인들의 장대와 막대기 세례에 대번에 그만,
“캬웅! 캐캑!”
비명소리와 함께 나가 뒹글고 만다.
한 하인이 얼른 달려들어 뒷다리 두개를 불끈 거머쥐고 서문경 앞으로 가지고 들어올리자
고양이는 별안간 혼신의 힘을 다해 냅다 버둥거린다.
그 바람에 하인은 그만 고양이를 놓친다.
땅에 떨어진 고양이는 도망치려고 정신없이 내닫는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냅다 다른 하인 하나가 작대기로 후려쳐 버렸다.
“캑! 캬으으으...”
고양이는 나가떨어져 입에 거품을 물며 바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죽이진 말라구. 이리 가지고와”
서문경이 호통을 치듯 말한다.
이제 꿈틀거리기는 하지만 거의 뻗어진 거와 다름없는
고양이가 앞에 갖다 놓여지자 서문경은,
“그거 이리줘”
하고 한 하인으로부터 작대기를 받아 쥔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작대기를 번쩍 높이 쳐들더니,
“이 망할 놈의 고양이야, 너는 내손에 죽어야 한다. 자, 죽어봐라, 에잇!”
냅다 기합을 넣으면서 있는 힘을 다해 작대기를 휘둘러 내리친다.
그러자 고양이는 반사적으로 훌떡 뛰어오르더니
희한하게도 마치 싱싱하게 기운을 돌이킨 것처럼 두 뒷다리하고
땅을 뻗디디고는 벌떡 일어서서 앞발의 양쪽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캬캬웅!”
하고 무섭게 서문경을 할퀼 듯이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눈에서 파아란 불꽃이 튄다.
백사자 51회
“이크!”
이게 뭐냐는 듯이 신문경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렇게 사정없이 내리쳤으니 대번에 찍소리도 못하고 뻗어버려야 옳을텐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말이다.
이게 무슨 요괴(妖怪)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친다.
후다닥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서문경은 이를 낙 물고 냅다 다시 작대기를
이번에는 약간 비스듬히 아래로 내리갈긴다.
“캑! 으으으...”
고양이는 그만 보기 좋게 나가떨어진다.
대가리가 박살이 난 듯 시뻘건 피가 튄다.
그리고 바르르 떨다가 뻗어지고 만다.
“인제 뒈졌구나”
신문경이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그러나 그 밖의 사람들은 아무도 말이 없다.
괴이한 정적이 잠시 정원을 휩싼다.
“갖다 버려!”
서문경이 그 정적을 깨뜨리듯이 툭 내뱉는다.
“예”
하인 하나가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치우려고 다가선다.
바로 그때였다.
“아이고 아이고- 이일을 어쩌나-”
하는 소리가 이병아의 거처에서 흘러나왔다.
바로 그녀의 목소리인 듯했다.
놀란 서문경이 얼른 집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뒤따른다.
관가가 숨을 거두고 만 것이었다.
참으로 공교롭고 희한하게도 바깥에서 서문경이 두 번째로
고양이를 내리쳐서 뻗어버리게 한 바로 그때 관가도 깜짝 놀라듯이 눈을 반짝 뜨더니,
“엄마-”
하고 외마디 가냘픈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만 입으로 거품을 보글보글 내뿜으며 하얗게 눈을 뒤집어 까더니
곧 숨이 딸깍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방에 들어선 서문경은 그만 입이 딱 벌어지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만 얼어붙은 듯 꼼작도 하질 않는다.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셔 백지장처럼 새하얗다.
잠시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서있던 서문경은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가누지 못해
“아이구 이일을 어쩌나 - 내 아들이 죽다니-”
하면서 얼른 침상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풀썩 꺾어지듯 방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침상의 이불자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오열을 하기 시작한다.
모여든 사람들도 저마다 슬픔에 겨워서 곧 방안이 울음바다가 된다.
'소설방 > 금병매(金甁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병매 (176) 흉몽(凶夢) <6~10회> (0) | 2014.07.04 |
---|---|
금병매 (175) 제20장 흉몽(凶夢) <1~5회> (0) | 2014.07.04 |
금병매 (173) 백사자 <41~45회> (0) | 2014.07.04 |
금병매 (172) 백사자 <36~40회> (0) | 2014.07.04 |
금병매 (171) 백사자 <31~35회> (0) | 2014.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