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70) 백사자 <26~30회>

오늘의 쉼터 2014. 7. 4. 20:11

 

금병매 (170)

 

 

백사자 26회

 

 

잠시 후, 뭣이 어떻게 되었는지 냅다 그만 춘매가,

“아이구 싫어! 나 몰라...” 하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른다.

 




 

“야웅 야아우웅...”


“아이고머니, 저리 비켜! 석 꺼져! 이것아! 이것아!”

사정없이 고양이를 두들기는 기척이 들린다.

그리고 내팽개치는 듯 고양이가 비명을 지르며 방문에 와서 부딪는 소리가 난다.

반금련은 약간 놀라며 얼른 방문을 열어젖힌다.

고양이가 후닥닥 뛰어나온다.

“아니, 왜 그래?”

반금련이 방안을 들여다보며 춘매에게 묻는다.

“싫다구요. 뭐 그런 게 다 있어. 글쎄 자꾸 물잖아요”

“좋아서 그러는 거라구”

“싫어요, 싫어. 아이 징그러워”

춘매는 몹시 불쾌한 듯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흔든다.

“하하하... 궁합이 안 맞는 모양이지”

반금련은 방문을 쾅! 닫아주고, 고양이를 안아 올린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자기의 침실로 향한다.

심한 감기에 걸렸던 관가는 다행히도 폐렴으로 번지는 일 없이 차츰 좋아지더니

마침내 완쾌가 되었다.

이병아와 서문경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모인 여의와 수춘이도 무척 좋아했다.

오월랑을 비롯한 네 부인들도 집안의 한 가지 걱정을 덜었다는 듯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반금련은 맹옥루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자,

“다행이네요”

하고 무표정하게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속으로는 기대가 빗나가서 몹시 실망스러웠다.

폐렴으로 번져서 깨끗이 뒈져 버리기를 은근히 바랐었는데 말이다.

반금련은 심사가 날로 꼬여만 갔다.

도무지 자기에게는 사는 재미라는 것이 찾아와 주질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서문경은 자기 방에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고,

아마도 그의 입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눈길도 어쩐지 전과는 다른 것만 같았다.

한번은 반금련이 고양이를 안고 맹옥루한테 놀러 가는데,

회랑에서 마주친 이교아가 묘하게 히죽이 웃으며,

“자네는 외롭지 않아서 좋겠어”

하고는 고양이를 유별나게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반금련은 귀밑이 화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반금련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양이를 없애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백사자 27회 

 

 

 

 “백사자를 없애다니, 그럼 나는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이야. 안되지, 안돼”

반금련은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흔들었다.

 

 




남들이 알았다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없앤다고 해서 고양이와의 연애를 한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남들이야 뭐라든 까짓것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하고 반금련은

마음을 더욱 도사려 먹으며 뽀도독 소리가 나도록 이빨을 물기까지 했다.

욕심같아서는 개도 한 마리 키우고 싶었다.

반금련은 처음에는 고양이보다도 개를 사서 키울까 하고 생각했었다.

고양이보다 개 쪽이 훨씬 데리고 즐기는 맛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개를 방안에서 키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강아지 때는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 고양이를 택했던 것이다.

집안사람들이 알게 된 것 같아서 반금련은

고양이를 안고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삼가기로 했다.

그래도 염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세모(歲暮)가 다가왔다.

반금련은 새해의 선물로 고양이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제 자기와 애정이 통하는 상대는 고양이뿐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득 그녀는 사랑하는 나의 백사자에게 옷을 한 벌 해 입히면 어떨까 싶었다.

자기에게는 이제 백사자가 짐승이 아니라 애인인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같이 잘 때면 침상에서 백사자가 입고 있는 옷을 자기가 벗겨 주고...

“히히히... 그거 재미있겠는데...”

반금련은 희안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혼자서 킬킬 웃었다.

무슨 대단히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도 되는 듯 반금련은

당장 나들이옷으로 갈아입고 옷감을 끊으러 저자 거리를 찾아갔다.

표목점에 들어가 앉아서 이것저것 베를 만지작거리며 주인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반금련은 문득 선반 한쪽에 얹혀있는 인형으로 눈이 간다.

“어머, 귀여워라”

“인형 말입니까?”

주인 남자도 그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묻는다.

“예, 동자군요”

“맞아요”

“사내아이한테 왜 빨간 옷을 입혔죠?”

“그래야 마귀가 안 달라든다지 뭡니까”

“인형한테도 마귀가 달라드나요?”

“그저 그렇게 만들어 본 거죠 뭐”

 

 

백사자 28회 

 

 

 

 “저거 파는 거예요?”

“팔려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손님이 원하신다면 팔 수도 있죠”

 

 




“주세요. 너무 귀여워서 가지고 싶네요”

반금련은 그 빨간 옷을 입은 동자인형과 청색의 모본단을 몇 자 끊어가지고 포목점을 나섰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그 동자 인형을 경대 위에 얹어놓고 그 앞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면서

모본단으로 고양이의 옷을 짓기 시작했다.

바느질 솜씨가 남다른 반금련은 몇 해 전 왕파네 찻집 안방에서

서문경의 옷을 지으면서 관계를 가지게 된 지난날의 회상에 젖기도 했다.

불과 몇 해 전에는 그처럼 가슴 두근거리기도 짜릿하지만 하던 사랑이

어느덧 식을 대로 식어 이제는 소박까지 당하여 생과부 신세가 된 걸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고양이의 옷 짓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고양이는 반금련이 옷을 짓는 곁에 앉아서 그게 뭔가 싶은 듯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했고, 경대 위에 얹혀있는 동자 인형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했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그 인형이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괴이하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공연히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야옹-” 하고 으르렁거리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반금련이 맹옥루에게 가서 바둑을 두고 놀다가 돌아오니

뜻밖에도 고양이가 경대 위의 그 동자 인형을 끌어내려 입에 물고서

이리저리 방바닥에 끌고 다니고 있었다.

“아니, 백사자야, 왜 그래. 응?”

반금련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양이는 반금련이 들어서자 힐끗 한번 바라보고는 좀 주춤하는 듯하더니 다시,

“야웅 야웅-”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인형을 이번에는 냅다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이 물어뜯는다.

“어머 어머...”

귀여운 동자 인형을 사정없이 망가뜨리고 있어서 당황하던 반금련은 곧,

“옳지, 그렇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문득 희한한 생각이 머리에 와닿았던 것이다.

고양이의 이빨에 물어 뜯겨지고 있는 그 빨간 옷을 입은 인형이 마치 관가처럼 보이질 않는가.

관가를 저렇게 고양이가 물어뜯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어서 물어뜯어. 어서. 갈기갈기 찢어 놓으라구. 히히히 히히히...”

반금련은 두 눈을 반질거리며 킬킬킬 웃는다.

 

 

백사자 29회 

 

 

 

 마침내 반금련은 무서운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고양이로 하여금 관가를 물어뜯게 해서 목숨을 앗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꼬이고 뒤틀린 심사가 풀리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삭아 내릴 것 같았다.

관가의 돌이 정월 하순이었다.

 

반금련은 돌잔치를 하기 전에 죽여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돌 잔치를 성대히 벌여 기쁨에 들떠서 흥청거릴 서문경과 이병아의

 

꼬락서니를 아니꼽고 배가 아파서 도저히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기왕에 죽일 바에야 그런 꼴 보기 전에 실행에 옮기는 게 옳으리라 싶었다.



 

 

 

 

 




반금련은 그 일에 춘매를 끌어들일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그 일을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춘매가 그 흉계에 가담을 한다면 한결 일이 수월할 듯했다.

그러나 만약 그런 말을 꺼냈다가 춘매가 거절을 할 경우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무서운 비밀이 새나가 버리는 결과가 되니 말이다.

관가를 죽였다는 것은 목숨을 내건 일대모험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발각이라도 되는 경우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목숨을 내건 일에 춘매가 쉽사리 발을 들여놓으려 하겠는가 말이다.

아무래도 혼자서 그 일을 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반금련은 은밀히

고양이에게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훈련이란 다름이 아니라,

실제로 관가만한 크기의 인형을 만들어서 빨간 담으로 지은 옷을 입혀

그것을 물어뜯게 하는 일이었다.

관가를 보면 대번에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어서 죽이도록 말이다.

그 훈련을 반금련은 용의주도하게 춘매를 일부러 바깥에 심부름을 보내놓고서

방문 고리를 안으로 걸고 아무도 모르게 침실에서 실시했다.

처음에는 인형을 그냥 방바닥에 앉혀놓고서 고양이에게 물어뜯도록 했고,

그다음엔 인형을 침상의 이부자리 속에 눕혀놓고서 했다.

실제로 관가가 방안에 앉아있든 침상에 누워 자든 어떤 경우든 상관없이

기습을 해서 물어죽일 수 있도록 말이다.

“가서 물어”

하고 말로써 명령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고양이의 엉덩이를 한손으로 가볍게 치며 앞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실제 상황에서는 말로써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 손짓으로

그렇게 하는 편이 한결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반금련이 살짝 엉덩이를 치며 앞으로 밀어내면 고양이는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냅다 쏜살같이 달려 나가 인형을 사정없이 물어뜯어서 갈기갈기 찢어놓기 일쑤였다.

 

 

백사자 30회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반금련은 기분이 좋아서 히죽히죽 혼자 웃었고,

 

때로는 너무 통쾌해서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손뼉을 치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인형을 물어뜯는 훈련을 시키는 것만으로도 벌써 속이 어지간히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말하자면 사람 죽이는 일을 즐기고 있는 셈이었다.

훈련이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지자 반금련은 다음은 어떤 식으로 관가에게

 

고양이를 접근시킬 것인지 그 방법에 대해서 궁리를 해 보았다.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해치워야 될 터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관가가 혼자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설령 요전처럼 그런 때가 있다 하더라도 그 기회를 자기가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요전에는 마침 회랑을 지나다가 용케 관가의 우는 소리를 들었었지만,

 



생각한 끝에 반금련은 고양이에게 제2단계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인형을 물어뜯어 갈기갈기 찢어놓기 전에 집안 어딘가에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인형을 스스로 찾아내는 훈련이었다.

인형을 침상 밑에 숨겨두기도 했고, 경대 뒤에 감추어 두기도 했으며,

장롱위에 얹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해놓고서 고양이에게 찾아내어 물어뜯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제2단계 훈련을 시키기로 한 것은 아무래도 고양이가 제 발로 관가에게

접근해서 일을 해내도록 하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말하자면 고양이의 단독 범행으로 감쪽같이 위장을 하려는 것이었다.

자기가 고양이를 안고 관가가 있는 곳까지 접근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고양이의 단독 범행으로 꾸며놓아야만 나중에 자기에게 혐의가 돌아오지 않을 게 아닌가.

고양이는 제2단계 훈련도 능숙하게 해내게 되었다.

인형을 실내의 어디에 감추어두어도 용케 찾아냈고 장롱 이에 얹어놓아도 기어이

그 위까지 기어 올라가서 끌어내려 보기 좋게 물어뜯어놓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거사의 날을 반금련은 보름날로 잡았다.

그날은 이병아가 수춘이를 데리고 무당한테 아기의 축원을 드리러 가기 때문에

낮에는 유모인 여의가 혼자서 관가를 돌보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여느 날보다는 기회가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은 또 반금련의 어머니 생신이기도 했다.

일년에 한번씩 그날만은 반드시 친정집을 찾아가 노모의 생신을

축하하는 일을 반금련은 잊지 않았다.

그날 친정집 나들이를 하면 나중에 자기에게 관가 살해의 혐의가

돌아올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