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71)
백사자 31회
보름 전날이었다.
반금련은 밤에 이병아의 거처로 서문경을 찾아갔다.
내일이 자기 어머니의 생신이라는 것을 알리고 친정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그랬었다.
그러면 서문경은 다섯 번째 장모의 생신을 축하하는 뜻에서 친정에 다니러 가는
반금련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어서 보냈다.
비단 반금련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부인들 모두에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 축하금을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그것보다도 반금련은 분명히 자기가 내일,
그러니까 보름날에 친정에 다니러 가고 집에 없었다는 것을 미리
서문경에게 알려놓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용케 성공을 하여 고양이가 스스로 관가를 물어 죽였다 하더라도
자기에게는 전혀 혐의가 돌아오지 않을 게 아닌가 말이다.
말하자면 미리 부재증명을 확실하게 해놓으려는 속셈이었다.
서문경은 출타를 하고 없었다.
“그이 어디 가셨지?” 하고 이병아에게 물으니,
“오늘밤에 흥아각에서 연회가 있다고 나가셨어요. 동경서 높은 어른이 오셨나봐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은 서문경이 왕육아에게 자러 갔는데 말이다.
반금련은 이병아에게라도 알려놓는 게 좋겠다 싶어서 억지로 살짝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내일이 우리 친정어머니 생신이지 뭐야. 그래서 내일 친정에 좀 다녀 올려고...”
“아, 그래요? 오늘밤 늦게라도 돌아오실는지 모르겠네요.
내일 새벽에는 틀림없이 돌아오셔요.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등청을 하시기 전에 한 번 더 오시는 게...”
이병아는 공연히 반금련을 대하기가 미안한 듯한 그런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녀로부터 서문경을 완전히 빼앗아버린 셈이어서 그러는 모양이다.
“알았어”
하고 반금련은 이병아의 거처에서 나와 그 걸음으로 이번에는 오월랑을 찾아갔다.
정실인 오월랑에게도 미리 내일의 부재증명을 해두려는 속셈이었다.
오월랑은 처음엔 좀 묘한 시선으로 반금련을 바라보았다.
고양이와 동침을 한다는 것을 그녀도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정실답게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다녀와야지. 어머니 생신인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선물로 비단 한 감을 내주었다.
백사자 32회
이튿날 아침 일찍 반금련이 이병아의 거처로 서문경을 찾아가니 외박을 하고 돌아온
서문경은 관가를 안고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이병아와 수춘이는 식탁에 아침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제 돌이 열흘 남짓 밖에 남지 않은 관가는 여전히 빨간 담으로 지은 옷을 입고 제법,
“아빠 아빠”
하고 방글방글 웃으며 재롱을 떨고 있었다.
반금련이 들어서자 서문경은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인가 싶은 듯
말없이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반금련은 약간 긴장이 되었으나 애써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문경에게 다가가 곁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여보, 오늘이 우리 어머니 생신이지 뭐예요”
“아, 그런가? 맞어, 정월 보름달이 생신이었지”
“친정에 며칠 다녀와야겠어요”
“그러라구”
서문경은 순순히 응낙을 한다.
그리고 한손으로 안 호주머니에서 은화 두 닢을 꺼내어,
“자, 이거” 하면서 건네준다.
반금련은 그 은화를 말없이 받는다.
해마다 관례가 되어 있는 터이라 당연한 일로 여긴다.
용무를 마친 셈이어서 반금련은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관가가 일어서는 반금련에게,
“엄마 엄마”
하면서 빤히 바라본다.
“아이고 우리 관가, 참 귀엽게도 생겼구나”
반금련은 상그레 미소를 지으며 관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엄마 엄마”
“어머, 나한테 올려고 그러네. 아이 귀여워라. 여보, 내가 한번 안아볼께요”
하면서 반금련은 서문경이 안고 있는 관가를 자기가 받아 안으려 한다.
서문경도 싫지가 않은 듯 히죽이 웃으며 관가를 건네준다.
관가를 받아 안은 반금련은 무척이나 귀여운 듯 한쪽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한번 한다. 그리고,
“둥개둥개 둥개야 우리 관가 둥개야...”
하면서 허리까지 간들간들 흔들어 어른다.
식탁에 아침 준비를 하고 있던 이병아가 그 광경을 힐끗힐끗 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흥, 저 여우, 노는 꼬락서니 좀 봐”
그러나 어쨌든 제 새끼를 이뻐하는 터이니, 표정은 결코 어둡지가 않다.
백사자 33회
이병아의 거처를 나서며 반금련은 속으로 썩 일이 잘됐다고 생각한다.
서문경이 보는 앞에서 관가를 안고 귀여워 못견디며 둥개둥개....
어르기까지 했으니 나중에 자기에게 관가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게 아니겠는가 말이다.
부재증명보다도 오히려 더 확실한 증명을 미리 보여준 셈이었다.
자기거처로 돌아온 반금련은 기분이 좋아서 오래간만에 싱글벙글 웃으며
춘매에게 어서 아침식사를 하자고 호들갑스럽게 재촉을 했다. 그리고,
“오늘이 우리 어머니 생신이지 뭐야. 어서 밥을 먹고 가봐야지”
하고 말한다.
“어머, 그렇군요. 오늘이 정월 보름이니까”
춘매도 생신 날짜가 기억에 떠오르는 듯 기분 좋아 한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자 반금련은 어찌된 영문인지 조금 전과는 달리
늑장을 부리며 춘매한테 먼저 자기 친정집에 가있도록 이른다.
오월랑이 준 비단 옷감과 자기가 마련한 이바지를 가지고서 말이다.
해마다 같이 집을 나섰었는데,
올해는 왜 먼저 혼자 가라고 하는가 싶어서 춘매가 묻는다.
“마님은요? 같이 안 가세요?”
“난 말이야 좀 볼일이 남았다구.
맹옥루 형님하고 뭐 좀 상의 할 일이 있거든.
그러니까 먼저 네가 가서 집안일도 좀 거들어 드리고 해.
그러면 내가 곧 뒤따라 갈테니까”
“예, 그러죠”
춘매는 대수롭게 여기질 않고 먼저 짐을 들고 출발했다.
춘매를 먼저 보내고 나서 반금련은 맹옥루를 찾아갔다.
그녀와 상의할 일이 있다고 춘매에게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자기는 늦게 출발하려는 속셈에서한 말이었다.
이병아가 무당을 찾아 축원을 드리러 집을 나서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한
다음 고양이를 그녀의 거처 가까이 데려다 놓고 친정으로 가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고양이를 이병아의 거처 가까이 데려다놓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기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채어 나중에 증인이 될
그런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춘매를 미리 친정집으로 보낸 것이었다.
반금련이 아침부터 찾아오자 맹옥루는
“어서 와 오늘은 아침부터 바둑이 두고 싶은 모양이지?”
하고 반긴다.
“형님, 그게 아니라 오늘이 우리 어머니 생신이지 뭐예요.
그래서 친정에 좀 다녀올려고요”
백사자 34회
“어 그래? 맞어. 이맘때가 자네 친정 어머니 생신이었다구.
보자... 난 무슨 선물을 해야 되지.
어제라도 얘길 하지 않고 그랬으면 미리 선물을 준비했지”
“선물은 무슨 선물요. 괜찮아요”
“괜찮다니, 자네 어머니 생신인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어”
맹옥루는 일어나 벽장 쪽으로 가서 까맣고 방방한 작은 항아리 하나를 꺼내가지고 온다.
“이거라도 갖다드려”
“어머 꿀단지 아니예요”
“맞어 토종꿀이라구”
“아이 고마워라. 우리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시겠어여. 꿀은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그래? 하하하... 갔다가 오늘 돌아오지?”
“아니요. 가서 며칠 쉬었다 올까 해요”
“그래?”
해마다 당일로 돌아왔었는데 반금련은 이번에는 끔직한 일을 저지르려는 판이어서
현장을 피해 며칠 친정집에 머물다가 올 속셈인 것이다.
그래야 자기가 더욱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럼 형님, 다녀올게요”
인사를 하고 반금련이 꿀단지를 들고서 거실에서 나가려 하자
맹옥루는 문득 생각이 난 듯 히죽이 웃으면서 반농담조로 묻는다.
“고양이는 어떻게... 데리고 가?”
“아니요”
반금련은 맹옥루의 표정을 힐끗 살피듯 바라본다.
아마도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되묻는다.
“형님이 데리고 있을래요?”
“...”
“밤으로만 말이에요. 데리고 자보라구요?”
“하하하”
“낮에는 바깥에 돌아다닐테니까 내버려두고요. 밤으로만 데리고 있어주면 좋겠는데...”
반금련은 맹옥루가 당장 지금부터 데리고 있겠다고 하면
오늘의 말하자면 거사(擧事)가 틀려버려 큰일이어서 시치미를 뚝 떼고
‘밤으로만’ 이라는 말을 유난히 뚜렷한 발음으로 지껄인다.
“그래 볼까. 히히히...”
맹옥루도 마침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는 킬킬 웃는다.
“그러라구요. 내가 춘매한테 일러놓을께요.
밤엔 백사자를 형님한테 데려다 드리라고 호호호...”
반금련이 꿀단지를 들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 자 거실에 있던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그녀는 꿀단지를 탁자 위에 놓고 얼른 고양이를 안아 올려서
그 주둥이에다가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한다.
백사자 35회
반금련은 고양이를 안은 채 한쪽 창으로 가서 문을 조금 열고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 창문에서는 맞바로 이병아의 거처가 바라보이는 것이었다.
이병아가 무당한테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기다리면 쉬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묘한 일이다.
이병아도 좀처럼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빌어먹을 년,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빨리빨리 차려입고 무당을 찾아가지 않고...”
이런 욕지거리를 혼자서 투덜투덜 수없이 내뱉은 다음에야 이병아의 모습이 멀리
정원의 나목(裸木)들 사이로 비쳤다.
화사한 겨울 나들이옷으로 차려 입은 그녀는 수춘이를 데리고 현관을 나서 몹시 추운 듯
잔뜩 고개를 움츠리며 전당포 쪽 문으로 해서 행길로 사라져갔다.
“인제 됐다. 자, 가자. 백사자야”
반금련은 고양이를 안고 거실을 나선다.
바깥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보이지가 않는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모두 방문을 처닫고 들어앉아 있는 모양이자.
그러나 반금련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예사롭게,
“아이 추워. 날씨가 왜 이렇게 춥지”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회랑을 걸어간다.
그녀는 곧바로 이병아의 거처까지 가질 않고,
중간에서 회랑을 비취헌 쪽으로 꺾어진다.
비취헌의 문을 열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문을 닫질 않고
그대로 바깥을 향해 웅크리고 앉으며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고양이의 머리를 가만가만 한손으로 쓰다듬으며 속삭이듯이 말한다.
“백사자야, 저기 저 집이다.
저 집 안에 들어가서 빨간 옷을 입은 아이를 물어뜯어 죽이라구.
사정없이 말이야. 알겠지?”
“야웅-”
“그래그래, 잘해줘. 자, 그럼 어서 달려가!”
반금련은 고양이의 엉덩이를 살짝 치며 앞으로 밀어낸다.
고양이는 쏜살같이 이병아의 집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고양이를 말하자면 거사 현장에 투입시킨 다음 반금련은
자기 거처로 돌아가 서둘러 채비를 하고서 친정집으로 떠났다.
관가를 침상에 재워놓고 혼자 그 곁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던 여의는
현관문이 자꾸 덜컹덩거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보았다.
“누구요? 누가 왔소?”
하면서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고양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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