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63) 야행(夜行) <36~40회>

오늘의 쉼터 2014. 7. 3. 16:53

금병매 (163)

 

 

야행(夜行) 36회 

 

 

 

 그러나 왕육아는 곧,

“어머나” 하고 놀란다.

 




서문경의 입에서,

“자네 마누라를 내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사랑은 계속할 생각이라구.

 내가 반했고, 이제는 자네 마누라도 나한테 빠져 있으니 도리가 없다구”

이런 말이 나왔던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얼떨떨한 그런 표정으로 바뀌며 그녀는 불쑥 묻는다.

“그럼 어쩌시겠다는 거예요?”

“뻔하잖아”

“뻔하다뇨?”

“지금까지처럼 우리는 그대로 사귀면 되는 거라구.

말하자면 당신 남편의 허락을 받고서 관계를 지속하는 셈이지”

“아니, 그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왜 없어? 만들면 되는 거지. 법이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거라구.

그러니까 우리 서이서 그런 법을 만들어 잘 지켜나가면 되는 거야. 알겠어?”

왕육아는 말문이 막히는 듯 대답이 없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안 그런가?”

서문경은 또 약간 어조를 높여 한도국을 향해 위압적으로 묻는다.

한도국은 아무 대답을 안 하고 서문경의 부리부리한 눈길을 피하듯이

푹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대답을 해봐. 자네 생각은 어때?”

“...”

“고개를 들라구. 사내가 어찌 그모양인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태도가 분명해야지”

한도국은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리고 곤혹스러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듯한 그런 눈길로 힐끗 서문경을 바라본다.

“대답을 해보라구”

“...”

“어서! 가타부타 대답을 해보란 말이야!”

서문경이 벌컥 고함을 내지른다. 그러자 한도국은,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병신 같은 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뭐로 들은 거야?

귓구멍으로 안 듣고 콧구멍으로 듣고 있었나?”

“...”

“네 마누라를 말이야, 내가 앞으로도 계속 데리고 놀겠다 그거야.

쉽게 말하면... 안된다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해. 그러면 그다음은 내가...”

 

 

야행(夜行) 37회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더니,

 

서문경은 자기가 남의 아내를 범해 놓고서 오히려

 

그 남편을 마치 무슨 죄인 취급하듯 입에서 나오는 대로 퍼부어 댄다.

 

과연 제형소의 부전옥이 다르기는 다르다.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도국은 그 위세에 질려서 안색까지 창백해진다.

 

왕육아도 겁이 나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으로 굳어들고 만다.

 




“되나? 안되나?”

또 냅다 호통을 치듯 다그친다.

“대감 어른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알아서 하라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뜻이지?”

“예”

힘없이 대답을 하고, 한도국은 힐끗 아내를 돌아본다.

왕육아는 남편과 시선이 마주쳐도 마치 감정이 쑥 빠져나가버린 사람처럼 아무 표정이 없다.

“그래야지, 됐어”

서문경은 현저히 언성을 누그러뜨리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한도국을 슬슬 어루만져 주듯이 말한다.

“그대신 말이야, 나는 공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구.

자네가 섭섭하지 않도록 대가를 지불한다 그거야.

자네가 동경에 가고 없는 동안에 자네 마누라를 지키면서

재미를 본 대가는 바로 이 집이라구. 알겠는가?

전에 살던 집을 판 돈만으로는 이런 집을 살 수가 없잖아.

 내가 돈을 보탰단 말이야. 얼마나 보탰는지 알아?”

“모르겠는데요”

“오백 냥을 보탰다구. 내 돈을 오백 냥이나 보탰지만, 이집은 자네 집이야. 알겠어?”

“예, 흐흐흐... 고맙습니다요. 대감 어른”

한도국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나와 버린다.

“앞으로는 말이야 내가 찾아와서 자네 마누라를 데리고 잤을 때는

그때그때 자네한테 돈을 줄 생각이라구. 한번에 얼마씩 주면 될까?”

“...”

“대답해 보라구”

그러자 한도국은 잔에 남은 술을 훌쩍 마시고는 또 힐끗 아내를 돌아본다.

술기운에 약간 흐릿해진 듯한 눈에 어쩐지 비열해 보이는 그런 웃음을 떠올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다.

“여보 당신이 말해봐. 얼마씩 받으면 좋겠어?”

“뭐라구요?”

표정을 잃은 사람처럼 굳어져 앉아있던 왕육아는

그만 도저히 못 참겠는 듯 냅다 쏘아붙이듯 내뱉고는 벌떡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성큼성큼 내실 쪽으로 걸어간다.

 

 

야행(夜行) 38회 

 

 

 

 “아니, 왜 그래? 이리 와 앉아!”

서문경이 명령조로 말한다.

 




그러나 왕육아는 들은 척도 안하고, 내실의 문을 왈칵 열고서 들어가 버린다.

쾅!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니, 저것이...”

서문경은 왕육아가 사라진 내실 문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본다.

자기의 분부를 거역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힐끗 한도국 쪽으로 시선이 간다.

서문경과 시선이 마주치자 한도국은 난처하고 곤혹스럽기까지 한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고개를 떨군다.

체통이 구겨진 것 같아 안되겠는 듯 서문경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뚜벅뚜벅 대감다운 걸음으로 내실 쪽으로 향한다.

새하얗게 굳어진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던 왕육아는 방문이 열리고,

서문경이 들어서자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탁자 위에 무너지듯 상체를 숙여 버린다.

“왜 이러는 거야? 응?”

서문경은 뒤틀린 기분을 애써 누르며 가라앉은 굵은 목소리로 말한다.

왕육아는 탁자 위에 얼굴을 묻은 채 마치 그대로 굳어져버린 듯 꼼짝도 하질 않는다.

“당신은 내가 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잖아. 이게 무슨 짓이야?

내 위신에 먹칠을 할 생각인가?”

“...”

“응? 말을 해보라구?”

그러자 왕육아는 가만히 얼굴을 들어 원망스러운 그런 눈길로 서문경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난 당신이 그런 식으로 처리를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구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해야지 도리가 없잖아”

“왜 좋은 방법이 없어요.

당신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좋은 방법이 있잖아요”

“어디 어떤 방법이 좋은가 한번 말해 보라구”

그러자 왕육아가 자기 입으로 선뜻 그 방법에 관한 말을 꺼내질 못한다.

그녀는 될 대로 되겠지 하고 자기의 앞날에 대해 체념을 하면서도

서문경의 여자가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미 남자의 진미를 안 몸이어서 시원찮은 남편만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애저도 시집을 보내버렸으니,

남편과 헤어진다고 해도 별다른 미련도 괴로움도 없을 듯했다.

서문경의 일곱 번째 아내가 되어 그 집으로 들어가든,

아니면 그냥 바깥에 따로 살면서 애첩노릇을 하든 좌우간 그의 여자로 낙착되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야행(夜行) 39회 

 

 

 

 새집을 사서 이사할 때 서문경이 돈을 오백냥이나 선뜻 보내주어서 왕육아는

 

혼자서 속으로 아마도 자기를 밖에 따로 두고 거느리는 애첩으로 삼을 모양이라고 짐작했었다.

 

남편을 자기에게서 떼 내는 데도 재물이 얼마든지 있는 서문경이니

 

돈을 쓸 요량인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자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 방법밖에 달리 무슨 수가 있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좋은 방법이라는 걸 들어보니 어처구니가 없질 않은가.

 

종전과 다름없이 남편과 함께 살게 하면서 생각날 때면 찾아와서 데리고 자겠다니,

 

그리고 그때그때 그 대가를 지불하겠다니,

 

도대체 사람을 뭐로 알고서 하는 수작인지,

 

왕육아는 정말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런데 명색이 남편이라는 것이 한마디 맞서보지도 못하고 꺾여버리다니,

더구나 하룻밤 데리고 자는 대가로 얼마를 주면 좋겠냐는 물음에 자기 여편네에게

얼마면 되겠는지 대답해 보라니,

그런 쓸개 빠진 사내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기가 찰 따름이었다. 마치 자기네 부부가 몸을 파는 창녀와 그 포주 같질 않은가 말이다.

“말해 보라는데 왜 아무 말이 없지?”

왕육아가 여전히 꼼짝도 하질 않고 그대로 탁자위에 얼굴을 묻은 채 있자,

서문경은 화가 치미는 듯 미간에 굵은 주름이 접힌다.

그러나 애써 화를 누르며 약간 침통한 그런 어조로 말한다.

“난 말이야 당신도 알겠지만, 집에 마누라가 여섯이나 있어.

그래서 더는 어떤 여자가 됐든 아내로 맞이할 생각은 없다구.

그렇다고 당신과 헤어질 수도 없지 뭐야.

당신이 없으면 도무지 살맛이 없을 것 같애.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

“...”

“한도국이를 당신에게서 떼내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우리 전당포일이 어려워지거든.

그리고 내가 밑에 데리고 있던 사람을 매정하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생각한 끝에 한도국이의 허락을 받고서 우리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그런 방법이 가장 좋겠다싶었지 뭐야.

남편과 같이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하겠지만,

지금까지도 남편이 있는 몸이었잖아.

그런데도 잘도 어울렸잖나 말이야.

남편 몰래 간통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깨놓고 합의를 보고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훨씬 떳떳하고 신사적이지 뭐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세 사람 다 좋은 거지, 안 그래?”

 

 

야행(夜行) 40회 

 

 

 

 왕육아는 여전히 꼼짝도 안하고, 대답도 없다.

“이미 한도국이는 동의를 했다구.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토라져서야 되겠어?”

 




서문경의 말투가 한결 부드럽고 간곡해진다.

“비록 말이야 남편이 한집에 있다고는 하지만 한방에서 같이 자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니 아무 상관없잖아. 허락을 받고서 남편은 딴방에서 자니까,

말하자면 동경으로 가고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구.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

“내가 당신을 데리고 잔 대가로서 돈을 주겠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면 안주지.

안 주면 내가 더 득이지 뭐야”

그러자 지금까지 정물처럼 미동도 않던 왕육아가 얼른 고개를 든다.

그리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안돼요. 줘요. 돈을 달라구요”

“그래? 허허허...”

서문경은 그만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침없이 말한다.

“줘도 많이 줘요. 그리고 남편한테 주지 말고, 나한테 달라구요.

내 몸을 팔았으니까 대가를 내가 받아야지요. 안 그래요?”

“몸을 팔다니,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지”

“몸을 판 거지, 그럼 뭐예요?

데리고 잔 다음에 그 대가를 그때그때 지불한다면 당신이 돈으로 내 몸을 산거지,

그럼 뭐란 말이에요?”

서문경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구. 나는 그런 뜻에서 그렇게 하자는 게 아니라,

한도국이에게 미안해서 공짜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 말이라구.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 아니야? 안 그래?”

“...”

“그럼 그때그때 돈을 줄 게 아니라,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주기로 할까? 일년에 한 번씩 준다든지...”

“싫어요. 그때그때 달라구요. 그때그때 꼭 받아야겠어요”

왕육아는 마치 매춘부로 나서기로 작정이라도 한 여자처럼

조금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단호하게 말한다.

“좋아, 그러자구. 허허허...”

약간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좌우간 이제 합의가 된 셈이어서 서문경은 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왕육아는 다시 탁자 위에 무너지듯 상체를 숙이고 두 팔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그만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