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62) 야행(夜行) <31~35회>

오늘의 쉼터 2014. 7. 3. 16:36

금병매 (162)

 

 

야행(夜行) 31회 

 

 

 

 “어떻게 애저는 시집에 잘 들어갔나요?”

식사를 하면서 왕육아가 묻는다.

 




“응, 정말 시집 잘 간 것 같애. 비록 소실 자리기는 하지만 신랑도 아직 젊은 편이고,

집도 으리으리하고...”

“잔치도 잘 치렀겠네요?”

“말할 필요도 없지. 음식도 풍성하고, 손님도 많고...

무엇보다 본처가 애저를 진정으로 반기는 것 같애서 기분이 좋았다구”

“그래요? 자기가 아이를 못 낳으니까 싫은 기색을 할 수가 없겠죠”

“그런지는 모르지만 좌우간 사람이 부덕스럽게 생기고, 참 좋더라구.

그래서 돌아오는 내걸음이 가뿐가뿐하더라니까”

한도국은 지금도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듯 밝은 표정으로 식사를 하다가

또 궁금증이 고개를 쳐드는지 불쑥 묻는다.

“아니, 도대체 무슨 재주로 우리에게 과분한 이런 집을 장만했지?”

“차차 알게 된다구요”

“당신이 얘길 안해주는 데 어떻게 차차 알게 된다는 거야?”

좀 망설이다가 왕육아는 마지 못하는 듯 살짝 시선을 내리깔며 가만가만 지껄인다.

“내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이런 좋은 집을 장만했겠어요. 다 어른께서 해주신 거지”

“어른이라니, 누구?”

“우리에게 어른이 누구겠어요?”

“서문경이 말인가?”

“그분 말고 누가 있나요?”

“서문경이가 왜 이런 좋은 집을 장만해 주었지?”

무슨 이유가?


“글쎄요... 그분한테 직접 물어보라구요”

“음-”

한도국이 얼굴빛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벌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것이다.

왕육아는 힐끗 한 번 남편의 기색을 살피고는 젓가락질을 계속한다.

먹은 음식이 목구멍에 콱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도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을 나가버린다.

밤이 이슥해서 서문경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허연 수염을 달고서 였다.

왕육아는 속으로 꽤나 당황했으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체념을 한 그런 표정으로 내실로 가서 잠자리에든 남편을 깨웠다.

침상에 혼자 누워 잠을 청하던 한도국은 서문경이 왔다는 말에 정신없이 뛰어 일어나

거실로 나가서,

“아이고 대감 어른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야행(夜行) 32 

 

 

 

 “아니?”

인사를 하고난 한도국은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앞에 서있는 서문경의 얼굴에 허연 수염이 돋아나 있으니 말이다.

 




서문경은 턱에서 수염을 쑥 잡아 벗겨 버리며,

“허허허...”

애써 태연하게 웃는다.

실은 그도 속으로는 적지아니 당황했었다.

술이 거나해 가지고 며칠 만에 왕육아와 즐길까 해서 찾아왔는데,

뜻밖에 한도국이 동경에서 돌아와 있었으니 말이다.

“자네 언제 돌아왔는가?”

“예, 저... 오늘 해질 무렵에 도착했습니다.

전에 살던 집엘 갔더니 이사를 해서 새집을 찾느라 늦어져

내일 대감 어른을 찾아 뵐려고 했었는데...”

“좋아. 딸애는 동경의 시집에 잘 데려다 주었겠지?”

“예”

“일행이 모두 무사히 돌아왔나?”

“예, 날이 저물어서 오늘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잘했어”

“대감 어른 덕분에 딸을 아주 좋은 자리에 시집보내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요”

“아, 그래? 허허허... 그렇다면 나도 기분이 좋군”

서문경은 거실의 의자에 잠잖게 앉는다.

그러나 웃는 얼굴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표정에 약간 긴장감이 서려있는 듯한 느낌이다.

정부의 남편이 돌아와 그와 대면하고 있는 터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배짱이 좋은 그지만 말이다.

왕육아는 그저 다소곳이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을 따름이다.

그녀는 오늘밤에 자기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새집으로 이사한 뒤에 그녀는 서문경에게 자기를 장차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남편이 돌아올 때가 가까워지니 슬그머니 불안했던 것이다.

서문경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당신은 내가 하는 대로 따르라구. 알겠지?”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러니까 한도국의 묵인 하에 계속 관계를 유지할 자기의 속마음을

왕육아에게 밝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말을 미리 했다가는 어쩌면 그녀가 토라져 버릴지도 몰라서였다.

왕육아는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집을 어떻게 사게 됐느냐는

남편의 물음에 차차 알게 될 거라면서 서문경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야행(夜行) 33회 

 

 

 

 “자, 자네도 앉게. 오늘밤에 자네하고 상의할 일이 있으니...”

서문경의 말에 한도국은 약간 긴장이 되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지으며

 

다소곳이 의자에 앉는다.

 

이미 자기가 없는 동안에 일이 어떻게 돌아갔었는지 짐작을 한 터이어서

 

그는 심정이 매우 착잡하다.

 




가만히 서있던 왕육아가 입을 연다.

“대감 나리, 차를 내올까요. 술을 가져올까요?”

그러자 서문경이 약간 목소리를 높여 단호한 어조로 불쑥 내뱉는다.

“인제 당신도 나를 대감 나리라고 부르지 말라구”

왕육아는 화들짝 놀란다.

몹시 당황하여 얼굴이 온통 빨개지고 만다.

그렇게까지 거침없이 홍두깨 내밀 듯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한도국은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질린 듯한 그런 표정이다.

거실에 별안간 터질 듯한 긴장감이 감돈다.

어느 누구 한사람 숨도 제대로 안 쉬는 것 같다.

서문경이 이번에는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주며 현저히 낮은 목소리로 무겁게 말한다.

“여보, 당신, 그렇게 부르라구.

그렇게 부른 지가 이미 오래잖아. 감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구”

얼굴이 빨개졌던 왕육아가 서슴없이 대답한다.

“예, 알았어요. 여보, 차를 내올까요, 술을 가져올까요?”

“술을 가져와야지, 이 밤중에 차는 무슨...”

“예, 알았다구요”

생글 웃기까지 하며 왕육아는 얼른 주방으로 간다.

한도국은 더욱 질려 버린다.

아내인 왕육아까지가 그렇게 거침없이 맞장구를 치고 나오다니,

정말 놀라 나자빠질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그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혀서 입이 얼어붙어 버린 듯

뭐라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만 있다.

곧 왕육아가 술병과 잔, 그리고 안주를 가지고 와서 탁자 위에 차린다.

마치 서문경과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한도국이 손님으로 찾아온 것 같은 그런 태도다.

이미 자기의 운명이 서문경 쪽으로 낙착되어 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서문경의 단호한 태도로 보아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다.

그러나 서문경은 술잔을 쭉 기울이고 나서 이번에는 얼굴에 미소까지 띠며

한도국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 나한테 고맙다고 생각해야 되네.

자네가 집을 비우고 없는 동안에 내가 자네 마누라를 지켜 주었으니 말이야”

 

 

야행(夜行) 34회 

 

 

 

 의외의 말에 한도국은 어리둥절해지며 서문경을 멀뚱히 바라본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잘 알수가 없다.

왕육아 역시 이양반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가 싶어 절로 이맛살이 살짝 찌푸러진다.

 

자기가 속으로 짐작했던 것과는 방향이 엉뚱한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서문경은 일부러 자기 가까이에 앉아있는 왕육아를 무시하는 듯한

그런 태도로 한도국에게만 술을 권하며 말을 잇는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 모양이지?

내가 자네 마누라를 안 지켜주었더라면 말이야,

벌써 누군가 딴놈팽이가 낚아채 가지고 멀리 도망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라

그 말이네. 알겠는가”

“...”

“자네 마누라 같은 미인은 남편이 오래 집을 비우면 뭇 사내가 눈독을 들이는 법이라구.

서로 먼저 건드려 보려고 말이야.

그래서 마음이 맞으면 여자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따리를 싸게 되는 법이지.

 더구나 자네 마누라는 이미 다른 남자의 살맛을 안 터이니 안심이 안된다구.

누군가가 지켜야지 말이야”

한도국은 약간 볼멘듯한 표정으로 그저 멀뚱히 듣고 있는데,

왕육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어머나,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하고 내뱉으며 서문경을 흘겨본다.

“당신은 가만히 있으라구”

왕육아의 존재는 여전히 무시해 버리는 듯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제지를 하고서

서문경은 한도국만을 상대로 말을 계속한다.

“나는 말이야, 자네 마누라가 다른 놈팽이와 눈이 맞아서

어디로 달아나 버리는 걸 원치 않았다구.

만약 그렇게 됐다면 동경에 갔다 돌아온 자네가 얼마나 낙담을 했겠는가.

어쩌면 살맛이 없어져서 자살을 할려고 들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

“자기 동생과 간통을 한 여편네를 방면해 달라고 애원을 해서

감옥에서 나오자 다시 데리고 살만큼 끔찍이도 사랑하는 자네니 말이야.

그리고 또 솔직히 말하겠는데...”

서문경은 좀 망설여지는 듯 잔을 들어 두어 모금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목소리를 약간 높여 단호한 그런 어조로

자기의 속마음을 내뱉듯이 쏟아놓는다.

“실은 나도 말이야, 자네 마누라가 마음에 들었지 뭐야.

자네 마누라를 언제 처음 봤는가 하면 제형소에 붙들려와 옥에 갇힌

그 다음날이었다구”

 

 

야행(夜行) 35회

 

 

숨을 죽이고 듣고 있던 왕육아는 어색하고 괴롭기도 한 듯

그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가려 한다.

“안돼. 당신도 끝까지 들어야 된다구. 가만히 앉아있어”

 




서문경은 그제야 그녀를 힐끗 한번 돌아보며 꾸짖듯이 말한다.

마지 못하는 듯 왕육아는 다시 의자에 가만히 궁둥이를 내린다.

꽤나 곤혹스러운 그런 표정이다.

서문경은 한도국을 향해 얘기를 계속한다.

“방면을 해달라는 자네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일부러 옥으로 찾아가 봤었다구.

그런데 말이야, 자네 마누라가 어찌 미인인지 난 그만 첫눈에 반해버렸지 뭐야. 헛헛허...”

서문경이 유난스레 껄껄 웃자, 그만 한도국도,

“흐흐흐...”

하고 따라 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는 건지,

아니면 재미가 있어서 웃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웃음이다.

왕육아는 웃는 남편을 힐끗 바라 본다.

냅다 화를 내도 시원찮을 터인데 히들히들 웃다니

쓸개가 빠져도 이만저만 빠진 게 아니어서

그녀의 얼굴에 경멸의 빛이 역력히 떠오른다.

이제 보니 불알을 차도 헛불알을 찬 게 틀림없질 않은가.

이런 게 자기 남편이었다니 한심한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눈앞에 있는 두 남자가 같은 사내이면서도

극과 극으로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놀랄 지경이다.

서문경 역시 병신 같은 한도국의 웃음을 보자 속으로 경멸을 하면서

이제 됐다 싶은 듯 눈에 띄게 여유 있는 그런 표정으로 바뀌며 말을 잇는다.

“반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난 자네 마누라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질 않았다구.

자네가 내 밑에서 우리 전당포 일을 맡아 잘 해주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

나도 사람인데 말이야.

다른 사람의 마누라였다면 그런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 일이야 해내고 말지 않겠어?

안 그래? 어떻게 생각해? 헛헛허...”

사람을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듯한 말투와 능글능글하고 위압적이기도

한 웃음소리에 한도국은 절로 목이 움츠러든다.

그러면서도 술을 좀 마신 탓인지 약간 풀어진 듯한 눈동자를 굴렁거리면서,

“그러시고 말고요”

하고 대답한다.

왕육아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서문경을 쏘아보듯이 바라본다.

차츰 그가 속마음을 드러내는데 보니까 아마도 자기를

이제 걷어차 버리려는 것 같질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