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65) 제19장 백사자 <1~5회>

오늘의 쉼터 2014. 7. 3. 17:54

 

금병매 (165) 제19장

 

 

백사자 1회 

 

 

 

 반금련의 거실 문이 열리자, 고양이가 한 마리 복도로 나온다.

 

뒤따라 반금련이 모습을 나타낸다.

고양이는 크기가 어지간한 개만하다.

 

 




그런데 온통 백설 같은 하얀 털로 온몸이 뒤덮여 있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마 위에만 유난히 새까만 털이 세 줄기 찍 그은 듯 돋아나 있다.

보기에 벌써 여느 고양이와는 다르다. 마치 하얀 호랑이 새끼 같다.

고양이가 흘끗 반금련을 쳐다본다.

복도의 어느 쪽으로 가야될지 모르겠는 모양이다.

그러자 반금련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얼른 허리를 굽혀 고양이를 두 팔로 안아 올린다.

가슴에 고양이를 품듯이 끌어안고는 이마 위의 까만 세 줄기 털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한다. 무척 사랑스러운 듯한 표정이다.

반금련은 그 고양이를 ‘백사자’ 라고 이름지어 부르고 있다.

백사자를 귀여운 아기처럼 가슴에 안고 반금련은 복도를 걸어가 회랑으로 나선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목덜미를 휘감는 듯하자 그녀는,

“아이 추워라”

찔끔 목을 움츠리며 고양이를 더욱 발끈 끌어안는다.

그리고 종종걸음을 쳐 맹옥루의 거처로 향한다.

어느덧 또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첫눈이 내린지도 벌써 오래고,

며칠 전 두 번째 쏟아진 눈이 아직도 온통 정원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그 위에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어 눈이 부시다.

거실 문이 열리고, 반금련이 고양이를 안고 들어서자 맹옥루는,

“어서 와. 그러잖아도 올 때가 됐는데, 오늘은 왜 안 오나 했지”

하고 반긴다.

“형님은... 꼭 내가 놀러와야 되우? 내 방에도 좀 놀러 와요”

“그래, 다음부턴 내가 놀러 가지. 그런데 동생 방엔 바둑판이 없잖아”

“형님이 놀러오게 되면 나도 바둑판을 하나 장만하지 뭐”

“그러라구”

반금련은 고양이를 거실에 내려놓는다.

고양이는 맹옥루를 한번 흘끗 쳐다보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반갑다는 표시다.

그리고 어슬렁 어슬렁 거실 안을 거닐기 시작한다.

맹옥루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다니까”

“알아보고 말고요”

“볼수록 희한하게 생겼지 뭐야.

고양이가 어쩌면 저렇게 백설같이 하얗지? 수놈이라 그랬지?”

“예, 형님도 한 마리 키워요”

“난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아직 형님이 고양이의 진미를 몰라서 그래요”

 

 

백사자 2회 

 

 

 

 “고양이의 진미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맹옥루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반금련은 좀 쑥스러운 듯한 그런 미소를 살짝 떠올리며 말한다.

 




“그런게 있다구요. 정말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수?”

“못했는데...”

“저...히히히...‘

말을 하려다가 반금련은 킬킬 웃기부터 한다.

“다름이 아니라 저... 형님, 과부들이 흔히 개나 고양이를 기르잖아요”

“그런가?”

“그렇다구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수?”

“글쎄...”

“참 형님도... 머리가 잘 안 돌아가시네. 개나 고양이라도 길러야 덜 외로울 게 아니겠수”

“반드시 과부가 아니더라도 취미로 기르는 수가 많지 뭐”

“그냥 취미로 기르는게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기른다니까요”

“외로움을 달래다니, 어떻게?”

“하하하... 형님도 정말 석두네요. 꼭 설명을 해야 알겠수?”

“난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군”

“개나 고양이를 길러도 과부들은 반드시 수놈을 기른다구요.

그래도 무슨 말인지 짐작을 못하겠수?”

“아니, 그럼...”

맹옥루의 두 눈이 야릇하게 휘둥그래진다.

“히히히... 인제 짐작이 가시는 모양이지?”

“어머나, 그래?”

맹옥루는 참으로 희한한 일을 알게 되었다는 듯이 묘한 눈길로

반금련을 바라보다가 거실 한쪽에 가서 앉아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하얀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가져간다.

“아니 동생, 그럼 저 고양이도 바로...”

“히히히...”

꽤나 쑥스러운 듯 반금련은 눈 언저리가 살짝 물든다.

“어머나 어머나...”

“형님, 저 백사자를 빌려줄테니까 오늘밤에 한번 데리고 자 보겠수?”

“아이고 싫어. 내사 망측스러워...”

맹옥루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흔든다.

그러나 그 표정이 아주 전적으로 싫은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살짝 호기심 같은 것이 내비친다고나 할까.

“자 바둑이나 한 판 두자구”

“예, 그러잖아도 바둑을 두러 왔어요”

탁자 위에 바둑판을 갖다놓고 마주앉아 두 여인은 바둑을 두기 시작한다.

 

 

백사자 3회 

 

 

 

 맹옥루가 백을 쥐고, 반금련이 흑을 쥐었는데 흑이 여섯 점이나 미리 놓고서 둔다.

 

그러니까 반금련은 바둑을 배운지가 오래되질 않는 것이다.

 

맹옥루도 썩 잘 두는 편은 못되지만, 그래도 반금련 보다는 월등히 고수다.

바둑을 두면서도 반금련은 또 고양이 얘기를 꺼낸다.

 

 


“형님이나 나나 과부와 다를 게 뭐 있수? 말하자면 생과부 신세 아니유.

그러니까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워야 된다 그거예요”

“...”

“형님이 몰라서 그렇지, 한 번 데리고 자봐요. 그러면 안 키우고는 못 배길테니까”

“자네나 실컷 데리고 자라구. 난 생각없으니까”

“시시한 사내보다 낫다니까 그러시네”

“아이 싫어. 어서 바둑이나 두라구”

그러면서도 얘기가 결코 싫지는 않은 듯 맹옥루의 얼굴에 히죽이 웃음이 떠오른다.

바둑을 내리 세 판 두었는데, 두 판은 맹옥루가 이겼고 한판은 반금련이 이겼다.

그러니까 이대일로 맹옥루의 승리였다.

맹옥루가 돌을 놓자, 반금련이 져서 안타까운듯,

“한판만 더 둬요. 예? 형님”

하고 말한다.

“아니야. 허리도 아프고 이쪽 다리가 저리며 쑤신다구”

맹옥루는 왼쪽 넓적다리를 두 손으로 살살 주무르며 약간 이맛살을 찌푸린다.

“왜 그래요?”

“이런지가 벌써 오래라구. 좀 괜찮아지는 것 같더니 또 안 좋지 뭐야”

“그게 다 외로움을 못 풀어서 그런거예요”

“동생도 참... 외로움을 못 푼다고 다리가 아프나?”

“그렇다구요. 과부의 병은 십중팔구 풀 것을 못 풀어서 생기는 거라우. 알겠수?”

“하하하...”

“형님한테 우리 그이가 자러온 지 오래지요?”

“내사 하도 오래돼서 언제 왔었는지 기억도 없다구”

“그것 봐요. 사람의 몸은 다 음양의 이치에 의해서 건강도 하고, 병도 나는 거라우”

“동생이 꼭 무슨 의원 같네”

“나도 조금은 안다우. 침상에 가서 누워 봐요. 내가 주물러 줄테니까”

“그래 주겠어?”

두 여인은 침실로 들어간다.

맹옥루는 침상에 반듯이 눕고, 반금련은 의자를 침상 가까이 가져다 놓고 앉아서

맹옥루의 한쪽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백사자 4회 

 

 

 

 서문경은 제형소의 부전옥이 된 뒤로는 여섯 부인들에게 누가 아들을 낳는가

 

경쟁을 시키기 위해서 닷새씩 순번을 정하여 차례차례 씨를 뿌려주던 그 일을

 

흐지부지 그만두고 말았다.

 

정실인 오월랑이 득남을 했고, 뜻하지 아니한 감투까지 쓰게 되었으니,

 

이제 마누라들과의 그런 구차스러운 약조를 지킬 필요도 없고,

 

흥미도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대감이 되어 기분이 들뜬 탓이기도 했다.

그래도 부인들 중에 어느 누구 하나 감히 입을 열어 불만을 털어놓질 못햇다.

 

남편의 권위가 그전보다 월등히 높아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일교대동침제(五日交代同寢制)라고 할까.

그 일이 실행되고 있는 동안에 용케 씨를 받아 잉태를 했던 맹옥루는 열 달 뒤에 딸을 낳았다.

그러나 며칠이 못가서 아기는 폐렴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니까 오일교대동침제는 딸 하나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만 셈이었다.

맹옥루는 그 뒤로 한동안 병석에 눕는 몸이 되었다.

산후에 몸이 제대로 회복되기 전에 아기를 여의는 비운이 닥쳤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맹옥루와 비교적 가까운 사이였던 반금련이 그때부터

거의 매일 맹옥루를 찾아 위로를 하고, 병 바라지를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여섯 부인들 가운데서 유난히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친 자매처럼 지내게 된 것이었다.

“거기 거기, 거기가 제일 쑤신다구. 아야, 너무 세게 누르지 말고...”

“좀 아파도 참아요”

“아야야, 너무 아프다니까”

맹옥루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린다.

“이렇게 맺혀가지고 어떻게 하우. 혈이 여기에 맺혔지 뭐유”

“정말 뭘 아는 것 같네”

“나도 좀 안다니까 그러네요”

반금련은 맹옥루의 허벅지를 눌렀다 주물렀다 하며 싱그레 미소를 짓는다.

반금련이 무대에게 시집가기 전 장대인의 집에서 그 늙은이의 시중을 들 무렵,

장노인은 곧잘 그녀에게 팔다리를 주무르게 하고, 허리와 등의 안마를 시켰었다.

그리고 노인은 때때로 집에 지압사를 불러서 전신의 지압을 받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으레 반금련을 옆에 앉혀놓고 어디를 어떻게 누르는지 보고 익히도록 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하자면 들은 풍월로 그런 방면에 전혀 생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잠시 후 맹옥루는

“어머나, 왜 이래?”

하고 약간 놀란다.

“가만히 있어요. 히히히”

반금련은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거린다.

언제 들어왔는지 고양이가 한쪽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백사자 5회 

 

 

 

 “어머 어머, 얄궃어라. 왜 이러는 거야?”

“형님의 다리를 낫게 하려고 그러잖아요?”

 




“다리를 낫게 한다면서 거기는 왜?”

“다리가 아픈 원인이 풀 것을 못 풀어서 그러니까,

아픈 데만 주물러서는 별 효험이 없다우. 근본 치료를 해야지”

“아이고, 어머나- 기분 좋아”

“좋지요?”

“나 몰라. 그만해”

“기분 좋다면서 그만하긴... 히히히...”

“아아아...”

맹옥루는 약간 이맛살을 찌푸리며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하얀 앞니를 드러내어 자그시 문다.

반금련은 맹옥루의 그런 표정이 몹시 보기 좋은 듯

혼자서 대고 헤죽헤죽 미소를 흘리며 마치 사내가 계집을 다루듯 애무해 댄다.

잠시 후에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자기도 침상 위로 기어오른다.

“어머 어마, 하하하... 동생, 이게 무슨 짓이야?”

“인제부터 내가 형님 남편이라구요. 알겠수?”

“호호호...”

“여보, 마누라, 기분 좋지?”

반금련은 일부러 남자 음성을 흉내내어 말한다.

“히히히... 예, 기분 좋아요. 여보-”

맹옥루도 한결 여자다운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아양을 떨 듯 맞장구를 친다.

이제 그녀도 쑥스러움 같은 게 날아가 버린 모양이다.

침상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두 여자를 멀뚱히 지켜보고 앉았던 고양이가 별안간

“야웅-”

소리를 내지르며 두 앞발을 반짝 쳐들고 뒷발로 발딱 일어선다.

“야웅 야웅-”

날카롭게 세운 발톱으로 냅다 달려들어 할퀼 듯한 자세다.

파르스름한 빛을 띤 두 눈이 불을 켠 듯 매섭게 반짝인다.

“왜 그래? 백사자야, 저리 가! 밖에 나가 있어”

반금련이 돌아보며 큰소리로 꾸짖듯이 내뱉는다.

고양이는 들었던 두 앞발을 슬그머니 내린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는 않는다.

“어서! 저쪽 거실에 가 있으라니까”

그러자 고양이는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꼬리를 사리며 슬금슬금 침실에서 나간다.

그렇게 맹옥루와 희한한 짓거리를 즐긴 다음 반금련이 고양이를 안고 자기 거처로 돌아갈 때였다.

회람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지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