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54)
불륜(不倫) 61회
서문경이 타고 다니는 말은 백마였다.
부전옥이라는 감투를 쓴 뒤로 백마를 타게 되었던 것이다.
현내에서 백마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세 사람 있었다.
제형소의 전옥과 부전옥, 그리고 현청의 지사였다.
그 밖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백마를 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제아무리 재물이 많은 부호라도 백마는 탈 수가 없었다.
칠향거를 세 고관의 정실밖에 탈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길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나타나면 백성들은 대번에 세 고관 중의
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미리 길을 비키며 두려워했다.
백마는 어두운 밖에도 곧잘 식별이 된다.
그래서 삼경의 북소리가 나타나면 순포졸들은 오히려 놀라며 멀리서부터 달려가서
순검중의 이상유무를 보고하고, 고관의 단독 야행일 경우에는 호위를 해가게 마련이었다.
오늘밤에는 일찍 돌아오도록 해보겠다고 이병아에게 말하고 집을 나선 서문경은
백마에 몸을 싣고 밤거리를 유유히 흥아각을 향해 갔다.
밤에 관복을 입고 혼자서 백마 행차를 하는 서문경을 알아본 행인들은
제형소의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가보다 싶으며 더러는 우러러 배례를 하기도 했다.
간통범으로 붙들려온 여죄수를 오늘밤도 데리고 즐기려고 행차하는 줄을 모르고서 말이다.
어젯밤과 같은 내실에서 서문경을 맞이한 왕육아는 두 번째의 밀회인 셈이어서
이제 현저히 태도가 달랐다.
물론 아직도 여죄수의 몸으로 부전옥 대감을 모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는 했으나,
어젯밤에 서로 뜨겁게 두 차례나 몸을 섞었을 뿐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야’ 라는 서문경의 애정고백까지 받은 터이라,
그녀의 마음도 살짝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의 애정 고백을 오입쟁이의 입에 발린 소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술시중도 기녀 못지않게 애교를 섞어가며 들었고,
그의 관복도 자기 손으로 스스럼없이 벗겼다.
그리고 그가 피리 불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어젯밤보다 한결 더 정성들여 부드럽고 간드러지게 불어주기도 했다.
정사를 나눌 때도 어젯밤엔 피동적이었다면, 오늘밤은 능동적이었다.
부끄럼없이 자기가 먼저 그를 이끌어 여러 번 자세를 바꾸기도 했다.
그렇게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이회전을 즐기고 나서 왕육아는
약간 코가 메인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 나 언제 방면해 주어요?”
불륜(不倫) 62회
“왜, 빨리 방면이 되고 싶어?”
“예”
“속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거지? 내가 싫은가?”
“아니예요. 싫다니요. 당신 너무너무 좋다구요”
“그런데 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거지?”
왕육아는 대답이 궁해져서 말없이 그저 한손으로
서문경의 한쪽 젖꼭지를 가지고 놀듯이 살살 건드리기만 한다.
“여기 있으면서 이렇게 매일 밤 나하고 만나면 좋잖아”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안될 게 뭐 있어. 내가 누군 줄 몰라? 이곳은 내 집과 다름이 없다구”
“그럼 나를 언제까지나 여기다가 두실 생각이에요?”
“그건 아니라구. 나도 체통이 있잖아. 부하들 보기에 별로 좋지 않으니까.
며칠만 더 이렇게 만나고 싶지 뭐야.
이삼일 가지고는 아무래도 흡족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호호호... 알았어요”
왕육아는 속으로 이양반이 정말 나한테 반한 모양이구나,
사랑한다는 말이 결코 입에 발린 소리만은 아이로구나 싶다.
그래서 불쑥 묻는다.
“여보, 나를 방면한 뒤에는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서문경은 실제로 왕육아를 방면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생각까지는 아직 해보질 않고 있었다.
그건 그때 가서 보아가며 방법을 강구하면 되겠지 하고 말이다.
“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죠 뭐”
“그래,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집에 돌아간다 해도 남편은 용서를 하고 받아들여줄 모양이지만 대할 면목이 없고,
애저는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을 게 뻔하고...”
“딸애 이름이 애전가?”
“예, 이웃 사람들은 계속 손가락질을 해댈 것이니, 어떻게 견뎌낼지 심란하지 뭐예요”
“그러면 왜 빨리 방면이 되고 싶어 하는 거지?”
“그래도 좌우간 이곳에서 나가고 싶거든요”
“죄수는 면하고 싶다 그거지?”
“예, 호호호...”
“알았으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구. 며칠 뒤에 방면해 줄테니까,
집에 돌아가서 찍소리 말고 가만히 지내고 있어.
그러면 내가 좋은 방법을 강구할테니까. 알았지?”
“예”
불륜(不倫) 63회
왕육아는 서문경의 품안으로 파고들면서 가만히 그의 가슴에 한쪽 볼을 가져다 댔다.
자기에 대한 그의 애정이 결코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어서 그런지 묘하게
눈물이 핑 어린다.
서문경 같은 부호이면서 큰 감투까지 쓴 지체 높은 분이
자기 따위 보잘 것 없는 여염집 아녀자를, 더구나 간통죄를 범해서
죄수의 몸이 된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다니,
너무나도 뜻밖이고, 또 과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품안으로 들어온 그녀를 서문경은 지그시 끌어안는다.
그리고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기를 기다린다.
오늘밤은 삼회전까지 치러 볼꺼나, 싶은 것이다.
잠시 후 그의 욕망이 꿈틀꿈틀하기 시작하는데,
왕육아는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지 못느끼는지, 엉뚱한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여보, 당신한테 뭐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데... 드려도 될까요?”
“뭔데? 말해 보라구”
바야흐로 세 번째 욕망이 꿈틀꿈틀 머리를 쳐들려고 하는데, 하필 이때 무슨 부탁이라니,
좀 기분 잡친다 싶어서 서문경은 약간 볼멘소리로 말한다.
“저... 다름이 아니라, 한이 말이에요...”
“뭐? 한이? 당신 시동생 그 녀석 말이지?”
“예”
“그런데?”
“한이도 방면을 해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생각할수록 안됐지 뭐예요.
나 혼자만 방면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려니 마음이 아프다구요”
“뭐? 마음이 아프다구?”
“다른 뜻은 절대로 아니예요. 형수로서 그렇다는 거죠”
“안돼!”
서문경은 그만 벌컥 화를 내어 내뱉는다.
그리고 그녀를 품안에서 밀어내고 벌떡 일어나 앉으며 내뱉는다.
“형수는 무슨 놈의 형수야. 간통을 했는데도 형수고, 시동생인가?”
“어머, 여보...”
왕육아는 적지아니 당황한다.
“내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구”
“아니예요. 여보, 절대로 그건 아니니까 오해 마시라구요”
그러면서도 왕육아도 조심스럽게 일어나 앉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방면을 해주면 다시 둘이서 붙을 게 뻔하다구.
그러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는 거라구.
설령 말이야, 당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그녀석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애? 가만히 놔둘 것 같으냐 말이야”
불륜(不倫) 64회
왕육아는 할말을 잃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문경을 바라보고만 있다.
서문경은 격한 어조로 계속 지껄여 댄다.
“방면을 해주다니, 절대로 안돼. 그 녀석을 내가 영영 집으로 못 돌아가도록
중벌을 내려버릴 거야. 두고보라구. 그리고 말이야,
당신도 그 녀석 생각을 깨끗이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방면해 주지 않겠어.
언제까지나 옥에 가두어둘 거라구. 알겠어?”
왕육아는 당황하며 새삼스럽게 속으로 놀란다.
자기에 대한 서문경의 아주 짙은 애정이 내비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한이에 대해서는 증오에 가까운 질투를 느끼고 있질 않은가.
그녀는 그만 서문경의 가슴으로 무너지듯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게 왈칵 목구멍으로 축축하면서도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랐던 것이다.
왕육아가 울자,
서문경은 절로 측은해지며 격한 감정이 서서히 누그러든다.
“울지 말어, 울기는...”
“여보, 정말 당신 너무너무 고마워요.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앞으로는 나도 일편단심 당신만을 생각할 거예요”
왕육아는 흐느끼면서 말한다.
“암, 그래야지. 인제 울지 말라구”
서문경은 그녀의 등을 가만가만 도닥거려 준다.
왕육아가 방면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의 밤이었다.
그러니까 서문경은 그녀를 닷새 동안 데리고 즐긴 다음 방면해 주었던 것이다.
한밤중에 집에 당도한 왕육아는 한참동안 현관 앞에 서서 머뭇거리다가
이를 악물면서 문을 당겨 보았다.
안으로 걸려 있어서 열리지가 않았다.
똑똑똑... 두들겨 본다.
집안에서 아무 기척이 없자,
그녀는 좀더 세게 문짝을 두들기면서,
“애저야, 애저야.”
하고 딸을 부른다.
“엄마야?”
놀라는 듯한 애저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뛰어나오는 기척이 난다.
문이 열리자,
왕육아는 눈둘 바를 모르며 현관으로 들어선다.
애저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놀라며 뛰어나올 때와는 달리 표정이 싹 바뀐다.
더러워서 꼴도 보기 싫다는 그런 눈길로 쏘아보고는 뭐라고 한마디 말도 없이
홱 돌아서서 후닥닥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버린다.
왕육아는 참혹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미 각오를 한 일이어서 가만히 휴유- 한숨을 한번 쉬고는
무거운 걸음을 내실 쪽으로 떼놓는다.
내실의 방문 앞에 서서 또 그녀는 잠시 망설이며 남편이 자고 있는지 어떤지
방안의 기척에 귀를 기울인다.
불륜(不倫) 65회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자,
왕육아는 똑똑똑... 방문을 두드려 본다.
역시 방안에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녀는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주며 가만히 방문을 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선다.
창문에 달빛이 어리고는 있으나, 방안은 어둡다.
침상 쪽을 살펴보니 남편은 혼자 누워서 곯아떨어져 있다.
방안에 술냄새가 떠도는 것 같다.
술에 취해서 잠든 게 틀림없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방안에 냄새가 떠돌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자다니,
그 심정을 짐작할만 해서 더욱 죄책감이 든다.
그녀는 잠시 멀뚱히 서서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이제는 자기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본다.
남편을 깨우는 게 좋을지,
그냥 침상으로 올라가 곁에 누워 자는 게 좋을지...
깨워서 용서를 비는 게 옳을 것 같으나,
무슨 염치로 깨우며, 그냥 말없이 곁에서 잠들기도 어색하다.
문득 그녀는 애저한테 가서 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만히 방문을 열고 도로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애저의 방문이 안으로 걸려 있었다.
방문을 가만가만 흔들면서,
“애저야 애저야, 문 열어” 하고 곧 울음이 나올 것 같은 목소리로 애원 하듯 말해 보았으니,
애저는 싸늘한 목소리로,
“싫어! 싫다구!”
매정하게 잘라 버렸던 것이다.
비참한 심정이었으나,
그녀는 역정을 낼 수도 없었다.
받아야 할 당연한 냉대이니 말이다.
현관 바로 곁에 있는 한이의 방이 비었으니,
거기 들어가서 잘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방에는 근접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와 간통을 해서 낯을 들 수 없는 처지가 되었는데,
그 방에 들어가 더구나 그가 혼자서 쓰던 침상에 누워 자다니 될 말이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내일 아침에 알면 용서해주려던 남편의 마음이 도로 분노로 치달을게 뻔하고,
또 애저도 더욱 에미를 인간 같잖게 생각할게 아닌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몰라 복도의 어둠 속에 멀뚱히 서있는데, 내실방문이 열린다.
“애저야, 무슨 일이니?”
애저가 내지른 목소리에 한도국은 잠을 깬 것이다.
왕육아는 놀라 바짝 온몸이 굳어든다.
복도에 서있는 시꺼먼 사람의 형체를 보고 한도국도 약간 놀라는 듯,
“누구야? 거기”
하고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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