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53)
불륜(不倫) 56회
왕육아를 침상에 눕히자,
서문경은 몹시 다급한 사람처럼 자기도 훌떡 침상 위로 뛰어올라 냅다
그녀의 몸뚱이 위에 무너진다.
그녀가 피리를 너무 정성껏 불어주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으-”
그녀의 입에서 대번에 야릇한 교성이 터져 나온다.
서문경은 처음부터 물결을 거세게 일으킨다.
아까 그녀를 애무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왕육아는 그 거센 물결도 역시 어딘지 모르게 한이와는 다르다고 느낀다.
거세기는 하면서도 조금도 거칠지 않고, 잘 무르익은 듯한 그런 화끈함을 준다.
한이한테서는 생경함을 느꼈다면, 서문경에게서는 원숙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역시 세상이 알아주는 오입쟁이인지라 다르구나 싶으며,
그녀도 곧 감미로운 신음소리를 숨가쁘게 내뿜으며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렇게 왕육아는 한이에 이어 두 번째로 외간남자에게 몸을 내주게 되었는데,
두 번째 남자는 천만 뜻밖에도 천하의 호색가인 서문경이어서
그녀는 마치 무슨 꿈속에서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서문경은 부전옥 나리가 아닌가.
여죄수의 몸이 되어 대감 나리인 그를 모시게 되다니,
기구하다면 기구하고, 희한하다면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말하자면 자기의 운명이 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셈이어서
그는 아까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던 것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교성도 더욱 야릇하게 내지르고,
신음소리도 한결 짙게 내뱉으며 있는 재주를 다했다.
일을 마치고나서 왕육아는 잠시 축늘어져 누워 숨을 가다듬은 다음
서문경의 부드러운 가슴패기에 한손을 가져가 슬슬 어루만지며 입을 연다.
“대감님, 정말 너무 멋있어요. 놀랬다구요.
저는 비로소 남자다운 남자를 안 것 같지 뭐예요”
“그래? 허허허...”
“어쩌면 그렇게 솜씨가 그만이죠?”
“당신도 솜씨가 제법이던데”
서문경은 이제 왕육아에게 ‘색시’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예사롭게 ‘당신’이라고 부른다.
“어머”
왕육아는 약간 놀란다.
서문경이 자기를 당신이라고 부르다니,
다시 말하면 부전옥 나리가 여죄수를 그렇게 부르다니...
기분이 묘하고,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불륜(不倫) 57회
가슴의 두근거림이 가라앉자, 그녀는 한결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별로 솜씨를 모르는데, 죽기 아니면 살기로 했기 때문에...”
“허허허... 죽기 아니면 살기로 했기 때문에 솜씨가 제법이었다 그건가?”
“예, 호호호...”
수줍게 웃고 나서 묻는다.
“대감님, 이제 저를 방면해 주시는 거죠?”
“그야 물론이지, 그런데 말이야 당신 이제 나를 대감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구”
“그럼 뭐라고 부르죠?”
“여보, 당신, 이렇게 부르란 말이야”
“어머나, 황송해라”
“황송하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야. 알겠어?”
“어머 어머, 정말 어쩌나. 황송해서...”
“허허허...”
서문경은 그만 큰소리로 웃는다.
그리고 그런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가 더없이 좋은 듯 다시 가슴 안에 끌어안는다.
그리고 서서히 이회전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왕육아와 서문경이 거듭 휘감겨 즐기고 있을 때,
한도국은 아내가 없는 침상에 홀로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깜깜한 천장을 향해
혀짜래기소리로 혼자서 중얼대고 있었다.
“흥, 감투만 쓰면 제일인가? 감투를 썼으면 어른답게 행세를 해야지.
남아일언이 중천금이 아니냔 말이야.
어젯밤에 분명히 방면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
그래 놓고서 방면해 주질 않다니...
뭐 그따위 자식이 다 있어. 치사한 놈, 더러운 놈,
만약 내일도 방면 안 해줘 봐라.
내가 가만히 있는가. 이 한도국이가 가만히 안 있단 말이야.
알겠지? 서문경이 이놈아”
술에 만취가 된 한도국은 주먹까지 하나 어둠 속에 휘둘러 대면서 공연히 서문경을 매도해 댄다.
간통죄로 옥에 갇힌 자기 여편네를 오늘 당장 방면해 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지금 흥아각의 내실에서 서문경이 자기 여편네를 데리고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서.
그리고 한도국은 한이를 욕해대기도 했다.
천하에 몹쓸 망나니인 너는 이제 볼장 다 봤다고,
통쾌한 듯이 깜깜한 천장을 향해 껄껄 웃어대기도 하면서.
마치 살짝 성실한 사람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뇌까려 대는데도 참 이상하게도 자기 여편네에 대해서는
나쁜 말을 한마디도 내뱉질 않았다.
이튿날 점심을 먹고 나서 한도국은 이병아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그냥 가만히 또 하루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병아는 아기를 안고 거실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불륜(不倫) 58회
“마님,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한도국은 머리를 굽실거리며 말한다.
“뭔데?”
이병아는 혹시 전당포 일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가만히 바라본다.
“저... 다름이 아니라, 제 여편네가 제형소에 넘겨져 옥에 갇혀 있거든요”
“아, 그일...”
이병아도 남편한테 얘기를 들어서 소상히 알고 있는 터이라,
대뜸 그의 부탁이라는 게 뭔지 짐작을 한다.
“제 여편네는 억울하지 뭡니까. 못돼먹은 제 동생놈 때문에 그만...”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구”
“그저께 밤에 그일 때문에 대감 어른을 찾아뵀더니,
어른께서 방면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직 아무 소식이 없어서 마님께 말씀 드려 보는 겁니다.
대감어른께서 방면하라고 한마디만 내리시면 금방 놓여 나올텐데...”
이병아는 곧 입에서 좋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으나, 애써 참는다.
어쨌든 자기 동생과 간통한 여편넨데,
명색이 남편이라는 사내가 그런 여자를 방면 시키려고 안달을 하다니,
그리고 어른께서 방면해 주겠다고 했으면 기다리고 있을 일이지,
불과 이틀 만에 또 자기를 찾아오다니...
뭐 이런 사내가 있는가 싶었다.
그러나 속이 깊은 편인 이병아는 자기 밑에서 전당포 일을 맡아 하고 있는 그인지라,
좋은 어조로 말한다.
“아, 이 사람아, 어른께서 방면해 주시겠다고 했으면 방면해 주시겠지 뭐. 기다려 보라구”
“혹시 싶어서요. 마님께서 한번 어른께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알았네. 어떻게 되는지 한번 물어보지. 그런데 말이야,
동생하고 간통을 한 여자를 도로 집안에 들여놓을 생각인가? 알 수가 없군”
이병아는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만다.
“간통이 아니라니까요, 마님. 제 여편네는 절대로 그럴 여자가 아니예요.
그 녀석한테 당했을 뿐이니까 억울하지 뭐예요”
“그래그래, 그런 일은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지.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너무 걱정 말고, 가서 일이나 보라구”
“예, 마님 부탁드립니다”
한도국은 깊이 머리를 숙이고는 거실을 나간다.
그날 저녁, 퇴청해 온 남편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병아는 물어 보았다.
“여보, 시동생과 간통을 했다는 한도국이의 여편네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불륜(不倫) 59회
서문경은 얼른 대답을 안 하고, 힐끗 이병아를 바라본다.
별안간 왜 그런 걸 묻는가 싶은 모양이다.
“당신이 방면해 준다고 하셨다면서요? 한도국이 한테...”
“응” 하고 서문경은 입에 든 음식을 불룩불룩 씹기만 한다.
남편의 그런 반응에 이병아는 좀 열쩍어져서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한도국이 그 사람 이제 보니까 좀 모자라는 사람이더라구요.
전당포 일을 해나가는 걸 보면 영리한 것 같은데...
글쎄 자기 동생하고 놀아난 여편네를 방면해 달라고 애원을 하다니,
그리고 그런 여자를 다시 데리고 살 모양이니 그게 사내라고 할 수 있어요?”
서문경은 그저 건성으로 듣는 듯 싱겁게,
“글쎄...”
한다.
“글쎄라뇨? 당신 같으면 그러시겠어요? 어림도 없죠?”
“한도국이가 당신한테도 부탁을 하던가?”
“예, 오늘 오후에 거실로 찾아 들어와서 빨리 좀 방면해 주시도록
당신한테 말씀 드려달라는 거지 뭐예요. 나 참 기가 막혀서...”
“허허허...”
서문경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버린다.
그의 여편네를 지금은 자기가 데리고 놀고 있는 터이니,
속으로 우스울 수밖에 없다.
“언제쯤 방면해 주시는 거죠?”
“글쎄... 문초가 끝나야지”
“문초가 끝나면 한도국이 여편네는 틀림없이 방면해 주시는 거죠?”
“어떻게 할까? 당신 생각은 어때? 방면해 주는 게 좋겠어, 벌을 주는 게 옳겠어?”
“물론 벌을 주는 게 옳은 일이죠. 간통을 한 여자를 방면해 주다니 말이 돼요?
그러나 우리 전당포 일을 위해서 한도국이의 부탁을 안 들어줄 수가 없지 뭐예요”
“그렇지”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싱글싱글 웃으며 불쑥 말한다.
“당신도 참 뻔뻔하군”
“뻔뻔하다니, 왜요?”
“간통한 여자니까 벌을 주는 게 옳다고 하니 말이야,
몇 해 전에 당신도 간통을 했었잖아.
화자허가 살아있을 때... 누구하고 간통을 했었지?”
“아이 몰라요. 짓궂게... 먼저 유혹을 한 게 누군데요?”
“허허허... 그렇게 자기도 간통을 한 일이 있으면서 벌을 주는 게 옳다니...”
불륜(不倫) 60회
“간통이라도 종류가 다르잖아요.
자기 시동생과 간통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도대체...”
“남편 친구하고 간통하는 거나, 남편 동생하고 그러는 거나 그게 그거지 뭐”
“남편 친구는 남이지만, 시동생은 남이 아니잖아요”
“남이 아니라니, 그럼 시동생하고 뭐 피가 섞였나?”
“피는 안 섞여도 남은 아니죠. 가장 가까운 시집 식구잖아요”
이병아는 자기 변명삼아 기어이 안 지려고 우겨댄다.
재미 삼아 한 말이 자칫하면 언쟁처럼 되겠다 싶어서
서문경은 익살기를 띠고 결론처럼 내뱉는다.
“그럼 앞으로는 남편 친구와 간통한 여자는 무죄로 방면하고,
시동생과 놀아난 여자만 벌을 내리도록 해야겠군. 됐지? 허허허...”
“호호호...”
이병아도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어 버린다.
식사를 마치고나서 서문경은 한참 차를 마시며 앉아 쉬었다.
그리고 일어나 다시 관복으로 갈아입는다.
“아니, 오늘밤에도 무슨 모임이 있나요?”
“응, 어제 그 손님들은 가고, 오늘 또 새 손님이 왔지 뭐야.
오늘밤에도 흥아각에서 연회가 벌어진다구”
“웬 손님이 그렇게 끊이지 않죠?”
“관가란 그런 곳이지. 때로는 귀한 손님이 연달아 찾아올 수도 있는 거라구.
오늘은 동경에서 내려온 고관이지. 며칠 머문다니까,
밤으로 계속 술자리가 벌어지게 됐지 뭐야”
서문경은 능청스럽게 지껄인다.
어젯밤에 왕육아를 데리고 놀려고 흥아각으로 가면서 이병아에게
귀한 손님이 와서 연회가 있다고 했던 것이다.
오늘밤도 서문경은 흥아각으로 왕육아를 만나러 간다.
그는 그녀를 감방으로 도로 보내질 않고,
그대로 흥아각에 머물러 있도록 조치를 해 두었다.
며칠 싫증이 나도록 실컷 데리고 즐긴 다음에 방면을 해줄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밤도 이병아에게 어젯밤과 같은 투로 둘러 붙였다.
한도국이의 여편네를 이번에는 자기가 흥아각에서 간통을 하고 있다고
밝힐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오늘밤에도 어젯밤처럼 늦으시는 거예요?”
“오늘밤은 일찍 돌아오도록 해보지”
어젯밤에 서문경은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고도 한참 뒤에 귀가를 했던 것이다.
제형소의 부전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터이라,
야간 통행금지 같은 것에 구애를 받을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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