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51) 불륜(不倫) <46~50회>

오늘의 쉼터 2014. 7. 3. 09:23

금병매 (151)

 

 

불륜(不倫) 46회 

 

 

 

 “대감님, 그럼 곧 술을 올리겠습니다”

“응, 그래”

 




방문이 닫히고, 안내해 온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간다.

방 가운데에 탁자가 있고, 마주앉도록 의자가 두 개 놓여있다.

방 한쪽에는 침상이 있는데, 엷은 망사로 된 휘장으로 가려져 있다.

외래 귀빈을 숙박시키기 위한 시설이다.

서문경은 탁자 쪽으로 가서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그대로 서있는 왕육아를 가만히 바라본다.

낮에 옥사에 가서 본 그녀와는 딴판이다.

치마저고리를 화사한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아마 이곳 관기의 옷을 입힌 모양이다.

그리고 목욕도 시킨 듯 머리와 살결이 깨끗하다. 화장까지 살짝 하고 있다.

어둠침침한 감방 안에 윗도리는 알몸인 채로 서있을 때는 우중충한 야성미가 내비쳤다면,

이번에는 여전히 야성적이기는 하지만 밝고 청결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모습이다.

“자, 이리 와서 앉어”

왕육아는 좀 망설인다.

“이리 와서 앉으라니까. 내가 싫은가?”

“아니예요”

그제야 왕육아는 다소곳이 다가와 맞은편 의자에 조심스레 궁둥이를 내린다.

그리고 힐끗 한 번 서문경을 바라보고는 다시 살짝 고개를 숙인다.

그녀는 이미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불려와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관원이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이르면서,

“오늘밤에 부전옥 대감을 잘 모셔야 된다구. 알겠어?”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어디까지나 여죄수가 부전옥 나리를 대하는 그런 태도다.

서문경은 무슨 말부터 꺼낼까 하고 좀 생각하는 듯하더니,

가라앉은 점잖은 목소리로 불쑥 묻는다.

“왜 붙들려 왔는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왕육아는 고개를 더욱 떨굴 따름이다.

“왜 대답이 없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물어보는 터이라,

서문경은 두 눈에 약간 웃음기가 어린다.

그 때 문 밖에서,

“대감님, 술과 안주를 가져왔습니다”

하고 아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냐, 가지고 들어오너라”

방문이 열리고, 관기 둘이가 각각 큼직한 나무쟁반에 술병과 안주접시를,

그리고 술잔, 젓가락 따위를 나누어 담아 들고 들어온다.

 

 

불륜(不倫) 47회 

 

 

 

 그것들을 하나하나 탁자 위에 가지런히 차려놓고 나서 한 관기가 묻는다.

“대감님, 술을 따라 드릴까요?”

 




“아니야, 됐으니까 나가라구”

두 관기는 힐끗힐끗 왕육아를 보면서 얼른 방을 나가 버린다.

“자, 술을 한 잔 따라 주겠어?”

서문경이 잔을 들며 말하자,

왕육아는 가만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두 손으로 술병을 들어 공손히 술을 따른다.

서문경은 잔을 입으로 가져가 두어 모금 마시고,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으면서 다시 묻는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말해 보라구”

“......................”

“말을 못하는 걸 보니 무슨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모양이지. 맞지?”

왕육아는 대답 대신 자기도 모르게 살짝 웃음기를 떠올리며 얼른 또 고래를 떨군다.

서문경의 그 어조가 어쩐지 좀 익살기를 띤 듯 했던 것이다.

“내가 들으니까 시동생한테 강간을 당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뜻밖의 말에 왕육아는 얼른 고개를 들어 표정을 살피듯 서문경을 힐끗 바라 본다.

“강간을 당했다는 사람도 있고, 간통을 했다는 말도 있으니...

어느 쪽이 맞지? 사실대로 말해 보라구. 괜찮다구”

“..........”

“난 말이야, 남자와 여자가 서로 눈이 맞으면 간통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냐 말이야. 사람이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서로 좋아서 하는 일인데, 나쁠 게 없잖아. 형수와 시동생도 따지고 보면 남이거든.

무슨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서로 아주 마음에 들게 되면 간통을 할 수도 있는 거라구”

“어머, 그래요?”

너무나 의외의 말에 왕육아는 놀라 두 눈이 반짝 빛난다.

그렇다면 자기와 한이가 옥살이를 면하고 방면이 될 게 아마 틀림없질 않은가.

부전옥의 생각이 그러니 말이다.

듣던 바와 같이 서문경이라는 사람은 과연 호색남아답게 생각도 보통사람들과

다르구나 싶으며 왕육아는 이제 살았다는 듯이 속으로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그를 눈여겨 바라본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대답해 보라구. 시동생하고 눈이 맞았나?”

그제야 왕육아는 마음 놓고 말문을 연다.

“아니예요.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강간을 당한 셈이라구요.

 안된다고 도망치며 뿌리쳐도 기어이 달려들었으니까요.

그 힘을 당해낼 수가 없더라구요”

“음-”

서문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불륜(不倫) 48회 

 

 

 

 잔을 들어 쭉 마시고나서,

“그러니까 그다음부터는 간통이 되는 셈이군. 맞지?”

 

하고 서문경은 싱그레 웃으면서 묻는다.

 




“예”

왕육아는 들릴 듯 말 듯 대답하고서는 역시 수치스러운 듯 속눈썹이 긴 두 눈을 살짝 내리깐다.

“강간을 당한 것이 간통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시동생이 싫지 않았다는 얘기군. 그렇지?”

“..........”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맞군.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얼마동안 간통을 했나?”

“열흘쯤 됐을 거예요”

“열흘 동안 매일 즐겼는가?”

“아니요”

“하루나 이틀 건너뛰었다 그 말이지?”

“예”

“그럼 몇 차례 즐기지도 못했겠는데... 몇 번이나 즐겼어?”

“아이 몰라요. 그런 걸 다...”

부끄럽게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왕육아는 힐끗 곱게 눈을 흘긴다.

쑥스러운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보니 어느덧 긴장이 깨끗이 풀리고,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는 듯 얼굴에 연한 홍조가 어려 있기까지 하다.

“내가 너무 싱거운 질문을 했나. 허허허...”

서문경은 살짝 눈을 흘기는 그녀의 눈매가 몹시 곱다고 생각하며 마침내 껄껄 웃는다.

그리고 술병을 집어 들며,

“자, 한잔 하자구. 내가 한잔 따라줄테니까”

하고 말한다.

왕육아의 앞에도 술잔이 놓여있다.

그러나 그녀는,

“아니예요. 저는 못해요”

하면서 잔을 들 생각을 않는다.

조금은 마실 줄 알면서도 말이다.

“정말이야?”

“예, 정말이에요”

“그렇지만 내가 권하는데 받기라도 해야지”

“예, 그러죠”

왕육아는 얼른 잔을 두 손으로 든다.

그 잔에 서문경은 술을 절반가량 따라준다.

“그건 마시라구. 술이 무슨 독약도 아닌데, 그걸 못 마시다니 말이 되나”

“예, 마셔 볼께요”

왕육아는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잔을 바로 입으로 가져간다.

서문경이 일부러 권하는 술이니 애써 마셔보겠다는 듯이

찔끔 눈까지 감으며 꿀컥꿀컥 두 모금 넘긴다.

“잘 마시는데...”

“아니예요. 대감님께서 따라주신 술이라,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시는 거예요”

 

 

불륜(不倫) 49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신다구. 허허허... 그거 좋지.

 

술뿐 아니라 말이야. 오늘밤에 다른 것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한번... 어때?”

“호호호...”

 




쑥스러워서 살짝 고개를 떨구면서도 왕육아는 그만 웃음이 나와 버린다.

반잔을 다 마시고난 왕육아는 주기가 꽤나 오르는 듯 한결 더 발그레해진 얼굴에

이제는 곧잘 생글생글 미소를 떠올리며 스스럼없이 먼저 말을 꺼낸다.

“대감님, 저... 그럼 한이도 용서해 주시는 거죠?”

“시동생 말인가?”

“예”

“안돼. 그 녀석은 용서할 수 없다구”

“왜요? 간통이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셨잖아요.

시동생과 형수도 따지고 보면 남이니까 간통을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그건 말이야, 나 혼자 생각일 뿐이라구. 세상은 그렇게 보아주질 않거든.

그러니까 이웃 사람들이 두 사람을 붙들어 우리 제형소에 넘겼잖아.

간통은 엄연히 죄가 되니, 중벌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구”

“그럼 저도 중벌로 다스리시겠네요?”

왕육아는 다시 슬그머니 긴장이 되며 빤히 서문경을 바라본다.

“오늘밤 보고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나를 잘 모시면 용서해 주는 것이고...”

서문경은 주기가 서서히 어리는 듯한 눈을 번들거리며 싱그레 웃는다.

“저를 용서해 주시고, 한이에게는 벌을 준다면 공평하지가 못하잖아요”

“아니지. 그 녀석은 처음에는 강간을 했잖아.

도망가는 형수를 기어이 붙들어 힘으로 굴복 시켰으니,

엄연히 강간범이라구. 그다음부터는 간통이 된 셈이지만,

문초를 단단히 해서 매번 형수가 싫다는 걸 어거지로 범해 왔다는

자백을 받아내어 강간범으로 처리해 버리면 되는 거라구.

매질 앞에 굴복 안하는 재간이 있겠어?

그렇게 해야 색시는 강간 피해자로 방면을 할 수가 있는 거라구. 안 그래?”

왕육아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대답이 없다.

“그리고 말이야, 색시 남편도 그래 주기를 원하더라구”

“예? 어떻게요?”

왕육아는 두 눈이 약간 휘둥그레진다.

“그 녀석은 단단히 벌을 주고, 색시는 방면해 달라고 말이야”

“어머나, 그게 정말이에요?”

남편이 자기는 방면해 달라고 하다니,

잘 믿어지지가 않는 듯 왕육아는 적잖이 놀란다.

 

 

불륜(不倫) 50회 

 

 

 

 “색시는 시동생과 놀아날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거야.

 

망나니 같은 자기 동생이 형수를 겁탈한 게 틀림없다면서 색시는 아무 죄도 없으니

 

용서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구. 어젯밤에 응백작과 함께 찾아와서...”

“...........”

 




“한인가 뭔가 하는 그 녀석은 병정에 나가기 전에 일년 동안 옥살이를 한 일도 있다면서? 맞는가?”

“예”

“그런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또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으니,

이번에는 단단히 좀 벌을 내려 달라지 뭐야”

왕육아는 깊숙이 고개를 떨구고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 꼼짝도 하질 않는다.

서문경은 술잔을 쭉 기울인다.

그리고 위엄을 갖추듯 의자에 상체를 비스듬히 기대며 말을 잇는다.

“색시, 고개를 들고 내 말을 들어보라구. 나는 부전옥이란 말이야.

색시 남편이나 응백작이 사정을 한다고 해서 그대로 호락호락 따르지는 않는다 그거야. 알겠어?”

고개를 든 왕육아는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서 불안한 듯한 눈길로 서문경을 바라본다.

“내가 한이를 강간범으로 처리해서 색시를 방면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색시가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야”

“어머...”

왕육아는 약간 놀라듯 두 눈이 반짝 빛난다.

“오늘 낮에 내가 옥사에 가서 색시를 처음 봤을 때

대뜸 아, 싶어서 뭐라고 얼른 말이 나오지가 않더라니까.

첫눈에 반해버린 셈이지. 허허허...”

“어머나 어쩌지...”

그만 왕육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려 버린다.

말하자면 부전옥 나리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은 셈이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정말이라구. 그래서 말이야,

이번에는 내가 색시와 간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호호호...”

“어때? 괜찮지?”

“간통죄로 붙들려 벌을 받으면 어쩌실려고요?”

왕육아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애교가 담뿍 담긴 그런 눈을 반질거리면서

살짝 익살기를 띠어 말한다.

“나를 붙들어 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한 번 나서보라 그러지 뭐”

“호호호”

“허허허... 그러니까 말야,

안심하고 앞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잘 모셔야 된다구. 알겠어?”

왕육아는 나긋한 미소로써 대답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