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99)
투옥 21회
거실에서 서문경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반금련은
그가 송혜련을 데리고 들어오자 별로 기분이 좋은 표정이 아니다.
오늘 밤은 자기가 서문경과 동침을 할 생각인데,
아파서 누워 있는 송혜련을 일으켜 데리고 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녀와 함께 잘 눈치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반금련은 예사로운 어조로 서문경에게 말한다.
“어떻게 하실 작정이에요?”
“뭘 말이야?”
서문경은 의자에 앉을 생각을 않고 송혜련을 데리고 그대로 선 채
좀 뚝뚝한 목소리로 묻는다.
“내왕이 말이에요”
“어떻게 하긴... 인제 일이 다 끝났는데...”
“끝나다뇨?”
“둘이가 남남이 됐다 그거야”
“아니, 남남이 됐다구요?”
반금련은 얼른 납득이 안간다는 듯이 눈길을 송혜련에게 돌리며 그녀에게 물어본다.
“정말 남남이 된 거야? 내왕이가 그러자고 동의를 했어?”
“아니오”
“동의도 안 했는데, 남남이 되다니 말이 돼?”
“인제 너하고 끝장이니까 앞으로 다시는 날 만날 생각을 말라고,
그날 밤 집에서 뛰어나올 때 내가 말해줬거든요. 그 말씀이죠 뭐”
그러자 반금련은 다시 서문경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게 어떻게 남남이 된 거예요? 내왕이가 동의를 안했는데...
혜련이가 혼자서 일방적으로 돌아섰을 뿐이잖아요”
“여자가 싫다는데 제 놈이 어쩌겠어”
“호호호... 당신도 참 순진하셔. 여편네가 싫다고 돌아서면
그걸로 끝내는 그런 머저리 같은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 다음이 문젠 거예요.
잘 아시면서... 그래서 선수를 쳐야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었잖아요”
“선수를 치긴... 마누라한테 손찌검을 하고 겁탈까지 하려고 했으면 그걸로 끝난 거지제깟 놈이 또 뭘 어쩐단 말이야”
“사람 나름이겠지만, 내왕이의 성깔로 봐서 결코 가만히 안 있을걸요.
내 생각에는 겁탈을 하려고 달려들었을 때 마지 못하는 척하고 당해주고
나왔더라면 그 녀석이 단념하기가 쉬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가슴패기를 깨물어 뜯기까지 했으니 그대로 단념할 수가 있겠어요.
앙심을 품고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게 틀림없다구요”
“좌우간 인제 두고 보는 수밖에 없지 뭐.
그녀석이 어떻게 나오는지 잘 지켜봐야지”
“하긴 그래요. 그러나 그녀석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당장 내일부터 감시를 하도록 해야 된다구요”
“맞어, 그게 좋겠어. 그럼 당신이 그 일을 맡아서 잘 하도록 해. 알겠지”
“예”
투옥 22회
“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고... 여보, 오늘밤 말이야,
내가 혜련이의 병을 고쳐줄까 하거든. 그러니까 당신 침실을 좀 빌리자구”
“침실에서 병을 고치나요?”
“머리가 아프고 몸살 기운이 있는 데는 그 약이 직방이란 말이야. 아직 잘 모르는군. 헛헛허...”
서문경이 너털웃음을 웃자, 반금련도 따라서 킬킬거리고 나서 눈을 살짝 곱게 흘기며 말한다.
“나 참 별 약도 다 보겠네. 언제부터 당신 그런 의생이 됐수?”
“내가 그런 명의인 줄을 인제 알았나? 당신도 말이야 몸이 찌뿌드드하거든 나한테 말하라구.
직방으로 고쳐 줄테니까”
“실은 나도 지금 몸이 찌뿌드드하다구요. 다리도 좀 자근자근 쑤시는 것 같고...
그러니까 여보, 오늘밤에 나도 고쳐 달라구요”
“허허허... 좋아, 그럼 병자 둘을 한꺼번에 치료해보기로 할까”
그 말에 반금련은 외설스러운 그런 웃음을 눈매에 떠올리고,
송혜련은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다.
“자, 그럼 어서 침실로 가자구”
서문경이 앞장서자,
반금련은 발딱 의자에서 일어나 뒤를 따른다.
송혜련은 머뭇거린다.
반금련 마님과 둘이 같이 주인어른과 동침하러 침실에 들어가다니...
말로는 더러 들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짓궂은 장난 같은 정사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터이라, 쑥스럽고 망측한 생각도 들어서 주저되는 것이다.
서문경이 힐끗 뒤를 돌아본다.
“혜련이 당신도 어서 들어오라구”
“싫어요. 전 가서 잘래요”
송혜련이 부지중에 내뱉으며 돌아서려 하자,
서문경은 얼른 가서 그녀를 붙들어 침실로 이끈다.
“싫다니, 병자가 의생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래야 병이 낫지”
그러자 반금련도 맞장구를 치듯 서슴없이 지껄여 댄다.
“아직까지 한 번도 그렇게 놀아보지 못한 모양인데,
색다른 재미가 있다구. 조금도 쑥스러워할 게 없다니까.
혜련이가 기어이 싫다면 춘매를 불러올 거라구.
춘매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얼마나 잘 논다구”
“어머, 그래요?”
송혜련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만다.
춘매에게도 이미 서문경의 손길이 닿아있을 뿐 아니라,
망측하게 서이서 그런 식으로 함께 어울리기까지 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은 야릇한 호기심을 자아내게 할 뿐 아니라,
춘매에게 밀려나서는 안 된다는 묘한 경쟁심이라 할까,
질투심 같은 것을 긁어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송혜련은,
“부끄러워서 어쩌나...”
하면서도 그때부터는 순순히 서문경이 하라는 대로 응하고,
반금련이 하자는 대로 따른다.
투옥 23회
서문경으로부터 내왕이를 감시하는 책임을 부여 받은 반금련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의 태도를 살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궁리를 한 끝에 내흥이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현재 집안사람들 중에서 내왕이에게 가장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흥이에
틀림없는 것이다.
식품 조달계라는 황금알을 낳는 직책을 내왕이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니 말이다.
비록 서문경의 명령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자연히 자기가 누리던 자리에 대신 앉게 된 자에게 향하게 마련인 것이다.
춘매를 시켜 은밀히 내흥이를 자기의 거실로 불러들인 반금련은
방문을 닫아걸고 미리 준비해 놓은 술과 안주를 대접하면서 얘기를 꺼냈다.
“내흥이, 요즘 재미가 어때?”
“마님, 다 아시면서 재미라니요. 제가 요즘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렇겠지. 좋은 직책을 빼앗겼으니... 실은 그래서 내가 내흥이를 부른 거라구.
사람이 사는데 재미를 잃어버리면 안 되거든. 어떤 것이 됐든 재미를 찾아야지 안 그래?”
“예, 맞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내흥이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한다.
도무지 반금련 마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무엇 때문에 자기를 일부러 불러서 술까지 대접하는지 알 수가 없어 약간 얼떨떨할 뿐이다.
“내가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을 내흥이한테 부탁할까?”
“무슨 일인데요?”
재미있는 일이라니 뭔가 싶은 듯 내흥이는 약간 솔깃한 그런 표정이다.
“무슨 일인가 하면 말이야, 내흥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 아니야.
그게 누구지?”
“예?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은 무슨 말이야,
요즘 내흥이가 속으로 가장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냐 그거야.
그게 누군지 생각이 안 난단 말이야?”
“글쎄요...”
내흥이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글쎄라니,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누군데요?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내왕이 아니고 누구야. 자기의 직책을 빼앗았으니 가장 미울 거 아니겠어?”
“허허허...”
뜻밖에 내흥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다.
“왜 웃지?”
“내왕이가 내 직책을 빼앗았나요?
주인어른이 빼앗아서 내왕이에게 준거지.
내왕이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남의 직책을 빼앗고말고 해요. 안 그래요?
자기 마누라를 빼앗기고도 아뭇소리 못하는 처진데...”
내흥이는 술기운이 좀 올라 그런지 나온 대로 서슴없이 지껄인다.
투옥 24회
반금련은 꽤나 당황한다.
예상과는 달리 내흥이가 내왕이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문경을 원망하는 투로 말하니 말이다.
‘자기 마누라를 빼앗기고도 아무 소리 못하는 처지인데’하고 도리어
내왕이에겐 동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얼른 당황하는 기색을 얼굴에서 싹 씻어버리며 반금련은
조금 냉랭한 그런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지? 내흥이는 누구 편이야?”
“누구 편도 아니라구요. 그저 이치가 그렇다는 얘기죠”
“이치가 그렇다니... 내 생각에는 이치가 틀려도 크게 틀렸는데”
“어째서 크게 틀렸나요?”
내흥이는 조금도 수그러드는 기색이 아니다.
“글쎄, 생각해 보라구. 내흥이는 내가 알기는 주인어른의 친척 조카뻘이 되잖아. 안 그래?”
“예, 맞다구요”
“그런데 아저씨뻘 되는 주인어른 편을 안 들고, 오히려 내왕이 편을 들다니,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말이야”
“친척이면 덮어놓고 편을 들어야 되나요?
나쁘다고 생각하는데도 편을 드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말이에요”
반금련은 할 말을 잊고 만다.
내흥이는 서슴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 댄다.
“한 집안의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세를 해야지,
하인의 아내를 가로채다니 말이 돼요?
더구나 내왕이를 동경까지 심부름을 보내놓고 그 틈을 타서 말이에요.
비겁하기 짝이 없다구요.
그리고 내왕이가 돌아오자 미리 무마할 생각으로 내 직책을 빼앗아서 그에게 주었잖아요.
그 짓도 도무지 어른답지가 못하다구요.
난 주인어른이 삼종숙(三從叔)뻘 되지만, 이번 처사를 보고 아주 실망했어요”
내흥이의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어서 반금련은 뭐라고 말이 안 나오다가,
그만 약간 화를 내며 반 협박조로 내뱉는다.
“아니, 내흥이, 간뎅이가 부었어? 감히 누구를 지금 비난하고 있는 거야?
이 집안에서 주인어른을 비난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애?”
“.........”
“더구나 조카뻘 되는 네가 삼종숙을 비난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구.
만약 이 사실을 주인어른이 아는 날이면 너는 치도곤을 당하고,
당장 이집에서 내쫓길지도 모른다구.
그런데도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대는 거야?”
그제야 내흥이는 기가 꺾이는 듯 약간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 모습을 보자 반금련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어조를 싹 바꾸어
이번에는 아주 은근한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말한다.
“그렇게 앞뒤가 막힌 사람처럼 뻣뻣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구.
그러면 결국 자기만 손핸 거야. 알겠어?”
투옥 25회
내흥이는 이제 아무 말이 없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앉아서 탁자 위의 물 잔에 가만히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내가 이렇게 내흥이를 불러서 상의하는 것도 다 주인 어른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구.
어젯밤에 말이야 주인어른이 나한테 당부를 하더라구.
내흥이를 앞세워서 내왕이의 동태를 감시하도록 하라고 말이야.
그녀석이 앙심을 품고 앞으로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미리 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를 몰래 살피는 거지. 어때? 재미있는 일 아니겠어?”
“글쎄요, 남을 몰래 살피는 일이 재미있는 일일까요?”
또 내흥이는 불쑥 볼멘소리를 한다.
반금련은 다시 기분이 언짢아지려는 것을 눌러 참으며 부드럽게 말을 잇는다.
“어머, 또 그러네. 그러지 말라니까.
다 아저씨뻘인 주인어른을 위하고, 또 내흥이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구”
“나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구요? 어째서요?”
“아 글쎄, 생각해 보라구.
그 일을 내흥이가 맡아서 잘 해내주면 주인어른이 가만히 계시겠어?
나중에 다 알아서 상금을 톡톡히 주시든지,
달리 무슨 좋은 대가를 해주실 거 아니겠느냐 말이야”
그 말을 하고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반금련은 의자에서 일어나 장롱이 있는 쪽으로 간다.
농 안에서 무엇을 꺼내가지고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그것을 내흥이 앞에 놓아준다.
은화 두 닢이었다.
“자, 우선 말이야 이건 내가 주는 거니까 받아두라구”
내흥이는 말없이 그 반질거리는 두 닢의 은화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어서 넣어두라니까”
그러자 내흥이는 히죽 코웃음을 치듯 웃고는 결심을 한 듯이 입을 연다.
“돈은 안 받겠어요. 그 대신 말이에요 마님,
내가 내왕이를 잘 감시해서 주인어른께 아무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할 테니까,
나중에 그 대가로 이제까지 내가 맡아왔던 직책을 도로 나한테 돌려주겠다는
약조를 해주시라구요. 마님의 약조가 아니라,
주인어른의 확실한 약조를 받아 내달라 그 말이에요”
“그야 쉬운 일이지. 아무염려 말라구.
오늘밤에 말씀 드려서 확실한 약조를 받을 테니까.
내가 생각해도 말이야 그 식품 조달계는 내흥이가 안성맞춤이라구.
주인어른도 우선 당분간 내왕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임시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지,
결코 정식으로 그렇게 한 거는 아니라구.
그러니까 일만 잘 해내면 그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지 뭐.
나만 믿고 잘 좀 해달라구.
물론 주인어른의 약조도 틀림없이 받을 테니까. 알겠지?”
“예”
그제야 내흥이의 입에서 순순히 대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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