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97) 투옥 <11~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9. 10:29

금병매 (97)

 

 

 

투옥 11회 

 

 

 

손설아는 술이 별로 세지가 않다.

 

두세 잔이면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나 오늘밤은 정신이 아른아른하도록 좀 취하고 싶다.

몇 모금 마시고,

 




“술안주가 있어야겠어.

내가 가서 맛있는 것 얼른 만들어 올 테니까,

그동안에 식사를 마치도록 하라구”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손설아가 주방으로 사라지자,

내왕이는 고분고분 분부에 따르는 것처럼 부지런히 식사를 해댄다.

잠시 후 손설아가 손수 만들어 온 안주 두 접시를 놓고,

두 사람은 대작을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내왕이는 오래간만에 좋은 안주와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내왕이는 ‘조금 마시는’게 아니라, 꽤 대주가였다.

손설아는 한 모금씩 홀짝거리고, 내왕이는 제법 시원시원하게 마신다.

술기운이 좀 오르자,

내왕이는 찾아온 용건을 꺼낸다.

“마님, 얘길 해주세요. 집사람이 뭐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그일 말이지... 난 또 깜빡 잊고 있었네.

나한테 선물을 갖다 주려고 찾아온 줄만 알고...”

손설아는 정말인지 일부러 그러는지 좀 묘하게 웃는다.

“선물도 갖다 드리고, 그 얘기도 듣고 하려고 찾아왔죠. 어서 얘기해 주어요”

술기운에 힘입어 내왕이는 이제 말이 주저 없이 나온다.

“그야 뭐 뻔 한 일 아니야.

남편이 없는 동안에 화냥질을 한 거지.

아직 모르고 있는 거야?”

“음- 그게 정말인가요?”

짐짓 뜻밖이라는 듯이 내왕이는 놀라는 기색을 짓는다.

누구하고 정을 통했는지 이미 다 짐작을 하고 있는 터이지만,

그게 사실로서 밝혀지는 판이니 새삼 충격이 오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라구. 그런 말을 거짓으로 할 수가 있겠어.

그년 나는 그런 여잔 줄 몰랐는데,

글쎄 보니까 순 화냥년이더라구”

내왕이는 심히 듣기가 괴로운 듯 술잔을 들어 단숨에 벌컥벌컥 비워 버린다.

“누구하고 붙었는지는 왜 안 묻지?”

“그야 뭐 들으나 마나 뻔 하잖아요”

“맞어, 뻔하지. 하하하...

이 집안에 남의 여편네에게 함부로 손을 댈 사람이 달리 누가 있겠어.

더구나 반금련이 곁에 데려다 놓기까지 했으니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지”

“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구”

“마님,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죠?”

“글쎄...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렇게 말하고서 손설아는 술잔을 들어 두어 모금 홀짝홀짝 마신다.

그리고 안주를 집어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서 불쑥,

“복수를 해야지. 복수를... 사내 같으면...”

하고 말한다.

 

 

 

투옥 12회 

 

 

 

 “물론이죠. 난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구요.

 

그런데 마님, 복수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않겠어요.

 

어떤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게 좋을지...”

“한 가지 기가 막히는 방법이 있다구”

 




“그게 뭔데요?”

기가 막히는 방법이라는 말에 내왕이는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다.

“어떤 방법인가 하면 말이야...”

손설아는 말을 멈추고, 잔을 들어 훌쩍 제법 크게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꽤나 술기운이 아리한 듯한 눈으로 내왕이를 빤히 바라보며 말한다.

“내왕이도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거라구”

“똑같은 방법이라뇨?”

“서문경이가 자네 아내에게 손을 댄 것처럼 자네도 그렇게 하는 게 똑같은 방법이지 뭐야.

안 그래?”

“아니, 그럼...”

내왕이는 술기운이 제법 올라 불그스레한 두 눈이 약간 휘둥그레진다.

“기가 막히는 방법이잖아. 생각해 보라구.

제가 내 아내를 건드렸으니 나도 제 아내를 건드리면

그보다 공평하고 깨끗한 복수가 어디 있겠어.

뺨을 맞았으니 나도 뺨을 때려주는 셈이지”

“흐흐흐...”

그만 내왕이는 웃음이 나와 버린다.

“왜 웃는 거야? 내 말이 틀렸어?”

“틀리다니요. 너무 그럴듯해서 웃음이 나오네요”

“호호호... 그럴듯하고말고”

“마님, 그럼 제가 어느 마님을 건드리면 좋을까요?

반금련 마님을 건드려라 그 말씀이겠죠?”

“어머, 반금련이를 건드리다니,

그럼 그년만 호강하게. 왜 그렇게 말귀가 어두울까...”

그 말의 뜻이 야릇해서 내왕이는 손설아를 새삼스러운 눈길로 가만히 바라본다.

“서문경이의 여섯 아내들 가운데서 누가 제일 외로운지 알지?”

“글쎄요...”

“그걸 몰라? 한 집안에 살면서...”

“허허허...”

“내가 가장 외롭다구. 서문경이가 말이야 나한테는 일체 걸음을 하질 않는다구.

 알겠어? 나는 그저 이 집의 부엌데기일 뿐이지 뭐야.

그러니까 같은 값에 누굴 건드려 주는 게 좋겠어?”

“..........”

“외로운 나를 건드려 주는 게 좋지 않겠어?”

“마님”

“왜?”

“술이 많이 취하셨군요”

“취하다니, 하나도 안 취했다구”

취하고서도 취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인제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자다니, 난 혼자서는 안 자겠다구. 둘이 같이 자자구.

정말이야. 내왕이, 응? 내가 싫어? 어디 말해봐”

 

 

 

투옥 13회 

 

 

 

 내왕이도 술기운이 꽤 올라 있으나 난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손설아 마님이 자기에게 호감이상의 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어제 알았으나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정말 예기치 못했던 것이다.

“말해 보라니까. 내가 싫으냐 말이야?”

 




“싫다니요”

“그럼 됐지 뭐야. 자, 우리 일어나자구 어서...”

그러면서 손설아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약간 몸이 비실거린다.

내왕이는 너무나 의외의 사태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저 멍청하게 앉아만 있다.

손설아가 다가와 서슴없이 내왕이의 한쪽 팔을 잡고 끌어 일으킨다.

“일어나라니까”

“음-”

난처한 신음소리와 함께 내왕이는 마지 못하는 듯 끌려 일어난다.

“저리 침실로 가자구”

내왕이를 이끌고 침실 쪽으로 가다가,

“잠깐만...”

하고 손설아는 약간 비실거리면서도 후닥닥 가서 거실의 문부터 안으로 걸어 버린다.

그리고 되돌아와서 멀뚱히 서 있는 내왕이를 다시 이끌고 침실로 향한다.

침실로 들어서자,

손설아는 불을 켤 생각도 않고 그만 내왕이를 자기가 먼저 덥석 끌어안으며,

“어머, 좋아라 이렇게 좋은 것을...”

수컷 냄새에 굶주린 암짐승처럼 냅다 얼굴을 그의 가슴패기에다가 비벼댄다.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한 듯 내왕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마님이 하는 대로

내맡기듯 뻣뻣이 서있기만 한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지...

복수라고는 하지만 이러다가 도리어 큰 변을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

슬그머니 두려운 생각도 든다.

한참 혼자서 내왕이를 껴안고 가슴패기에 얼굴을 비비며 몸부림을 쳐대던

손설아는 좀 여유를 되찾은 듯 얼굴을 떼고 빤히 쳐다보며 속삭이듯이 말한다.

“왜 이렇게 서있기만 해? 날 좀 어떻게 해달라구”

“마님, 정말 어쩔려고 이러십니까?”

“어머, 아직 그런 소리를 하고 있네. 아이, 재미없어라. 목석인가 봐”

“염려가 된다구요”

“무슨 염려?”

“마님에게 화가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요”

“별 걱정을 다하네. 복수를 하는 사람이 그런 걱정까지 하다니...”

“마님, 앞으로 어떻게 하실려고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내왕이는 계속 복수를 하고,

나는 덕택에 외로움을 면하면 되는 거지.

“서문경이가 알면 어떻게 하느냐 말이에요”

“알기는 어떻게 알아?”

 

 

 

투옥 14회 

 

 

 

 “세상에 비밀이 있나요.

 

벌써 옆방의 월미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는데요”

“월미 걱정은 말라구. 그 애는 내 먼 조카뻘이 되고,

 

또 내가 제 은인이기 때문에 절대로 나한테 해가 돌아올 일은 안한다구.

 

설사 우리 관계를 알게 된다 하더라도 남한테 발설하지는 않는다니까”

 




“은인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나요?”

“팔려가는 것을 내가 거두어서 지금까지 데리고 있으니 은인이지 뭐야.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김새니까... 자, 어서 날 좀 어떻게 해달라니까”

“마님, 좌우간 나중에 일이 탄로가 나서 마님에게 무슨 화가 미쳐도 난 모릅니다.

날 원망하시지 말아요”

“원망은 무슨 원망, 내가 좋아서 저지른 일인데...

재미없게 그런 나중 일은 지금 생각하는 게 아니라구.

 당장은 그저 둘이서 실컷 사랑만 하면 된단 말이야”

“알았어요”

그제야 내왕이는 도리가 없다는 듯이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자기를 안고 있는 손설아를 몸에서 떼 낸다.

손설아는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지켜본다.

내왕이는 그만 침상에 가서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자,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라는 자세다.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셈이다.

“히히히...”

손설아는 요염하게 웃으며 침상으로 바싹 다가간다.

이미 내왕이는 욕망이 고개를 쳐들어 옷을 불룩하게 밀어올리고 있다.

그 아랫도리를 손설아는 벗겨낸다.

더위가 다가오고 있는 철이라, 내의는 짧은 잠방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홀랑 걷어내 버린다.

창문으로 달빛이 은은히 비쳐들고 있어서

침실 안은 알맞은 박명(薄明)으로 분위기가 그만이다.

그녀는 달빛에 젖어있는 그의 하체에 얼굴을 가져가 애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입술로가 아니라 코로다.

그녀는 냄새를 좋아하는 듯 코로 여기저기를 애무해 댄다.

내왕이는 이거 별난 여자도 다 있구나 싶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하는 대로 내맡기고 있다.

간질간질하다.

잠시 후 그녀는 그의 윗도리까지 벗겨 버린다.

그리고 상체도 코로 좀 애무하고 나서,

이번에는 자기의 위아래 옷을 모조리 벗는다.

달빛이 비스듬히 그녀의 풍만한 가슴께를 비춘다.

그녀는 후닥닥 침상으로 오른다.

그리고 그의 알몸위에 무너지며 입술로 입술을 덮친다.

그제야 내왕이도 누운 채 그대로 그녀를 불끈 끌어안으며 입술을 받아들인다.

한참 감미롭고 뜨거운 입맞춤이 계속된 다음,

별안간 내왕이는 몸 위의 그녀를 옆으로 밀어 내려서 뒤집어 눕히고

이번에는 자기가 그녀의 미끈한 알몸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투옥 15회 

 

 

 

 내왕이는 정공법(正攻法)이었다.

 

코로 냄새를 맡는 따위 짓은 하질 않았다.

 

먼저 손으로 부드럽게 애무를 한 다음 입술을 가져갔고,

 

또 손과 입술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봉긋한 가슴의 두 봉우리부터 시작해서 차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의 애무가 그녀의 하체에 이르자,

 




“어머 어머, 아- 으-”

하면서 손설아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야릇한 쾌감을 느끼는 듯

두 눈을 사르르 감았다가 반짝 뜨곤 했다.

그러다가 그만 그녀는 갈증에 몸이 달아올라 견딜 수가 없는지,

“여보 여보, 나 몰라...”

하면서 두 손으로 내왕이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일으킨다.

“음-”

신음소리와 함께 내왕이는 이제 애무를 그만두고 몸을 일으켜 냅다 그녀를 덮친다.

역시 정체위(正體位)다.

동경까지 갔다 오느라 넉 달 동안이나 참아 온 욕망이 한꺼번에 솟구쳐 오르는 듯

그는 처음부터 뜨겁고 거칠게 몰아붙인다.

그녀 역시 참으로 오래간만에 남자의 뜨거운 살이 자기 살 속을 파고든 터이라

그 황홀감에 서슴없이 교성을 내지르며 남자 못지않게 달아오른다.

굶주린 암컷과 수컷처럼 그와 그녀가 격렬하게 일으키는 물결이 달빛을 받아

마치 방안에 은빛 파도가 치는 듯하다.

어디선지 밤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귓전에 가물거리는 것을 그와 그녀는 똑같이 느끼다가,

어느 순간에 그만 똑같이 그 소리가 사라지듯 멀어져가 버린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동시에 절정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파도가 가라앉은 방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정적(靜寂)을 살짝 깬다.

“여보”

아무 대답이 없다.

“여보, 왜 대답이 없어요?”

“왜?”

마님은 경어고, 하인은 반말이다.

이제 마님도 없고, 하인도 없다.

남자와 여자가 있을 뿐이다.

“나 언제까지나 사랑해 줘요. 응?”

“응”

“나 좋지?”

“응 좋아”

“당신도 무지무지하게 좋지 뭐예요.

나 정말 인제 당신 없이는 못 살 것 같애요. 정말이에요”

“..........”

“당신은 어때? 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애요?”

“글쎄...”

“어머, 글쎄라니요. 그럼 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뭐예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른다는 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