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96)
투옥 6회
“분갑이랑 연지를 한번 열어보라구. 당신 마음에 드는지”
그러자 송혜련은,
“헤헤헤...”
웃으며 선물을 한쪽으로 치워 버린다.
내왕이는 그만 핏대가 솟구친다.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다.
비록 상등품(上等品)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의 진정이 담긴 선물을 그런 식으로 밀어 놓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웃는 소리도 마치 비웃는 것 같질 않은가.
“아니, 이것아, 왜 그러는 거야. 응? 뭐가 틀어져서 첨부터 부루퉁해가지고 지랄이야”
“지랄은 누가 지랄인지 모르겠네. 공연히 화를 내고 야단이야. 나 참 별꼴을 다 보겠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뭐 별꼴을 다 봐? 누가 할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넉 달 만에 돌아온 남편에게 글쎄 이럴 수가 있어?”
“넉 달 만에 돌아왔으면 왔지, 뭘 어쩌라는 거야?
넉 달 만에 돌아온 게 뭐 유센가? 왜 자꾸 시비지?
“시비는 누가 시비야?”
“그럼 시비가 아니고 뭐야?
넉 달 동안이나 자기 여편네를 독수공방하도록 내버려둔 주제에 무슨 큰소리야 큰소리가...
여자는 뭐 넉 달 동안 독수공방을 해도 된다는 법이 있어?”
송혜련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댄다.
“내가 일부러 시키고 싶어서 독수공방을 시켰나?
심부름을 가느라 도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 거지?”
“그러니까 싫다 그거야. 인제 진절머리가 난다구. 남의 집 종질하는 남자...”
“뭐라구? 또 한 번 말해봐”
“왜, 말하라면 못할 것 같애? 남의 집 종질하는 남자지, 그럼 뭐야?”
“에잇 이년!”
냅다 그만 내왕이는 한 대 따귀를 올려붙여 버린다.
“아이고! 이것이 사람을 때려... 내가 누군 줄 알고 때리는 거야. 앙? 앙?”
“누군 줄 알고? 흥! 같잖네. 이년아, 네가 내 부엌데기지, 그럼 뭐란 말이냐?”
“네 부엌데기? 흥! 정말 같잖아. 이놈아, 정신 바짝 차려!
네 부엌데기 아닌지가 벌써 오래다. 알기나 해?”
“뭐라구? 이년 인제 보니까 간뎅이가 부었어.
그동안에 화냥질을 단단히 한 모양이지”
“그래, 단단히 했다. 어쩔래? 어쩔래?”
송혜련은 따귀를 맞아서 그런지 이제 막판이라는 듯이 냅다 악을 쓰며 달려든다.
그러잖아도 헤어지려고 작정한 터인데 오히려 잘됐다는 투다.
“이년, 말해봐! 누구하고 붙었어! 응? 어서 말해! 어섯!”
냅다 또 한 차례 따귀가 날아간다.
투옥 7회
“왜 때려! 왜 때려! 이놈아, 네가 뭔데 날 때리는 거야! 앙? 앙?”
“에라잇 이년! 어떤 놈하고 붙었는가 좀 보자!”
벌겋게 핏대가 선 내왕이는 그만 와락 달려들어 송혜련의 옷을 마구 벗기려 한다.
홀랑 벗겨보면 누구하고 놀아났는지 식별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왜 이래! 아이구-나 몰라-”
송혜련은 마구 악을 쓰며 버둥거린다.
옷이 마음대로 잘 벗겨지지가 않자,
내왕이는 그만 그녀를 불끈 안아다가 침상에 갖다 내팽개치듯 눕힌다.
그리고 그 위를 냅다 덮친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욕망이 그녀의 옷을 벗기려들자
그만 자기도 모르게 뻣뻣하게 솟구쳤던 것이다.
말하자면 남편이 아내를 겁탈하려는 꼴이다.
“네깐 놈은 인제 싫어! 싫다구! 저리 비켜!”
그러나 성난 맹수처럼 달려드는 남자를 여자가 버티어낼 재간이 없다.
아랫도리가 거의 다 벗겨져 내려가고,
내왕이의 뜨끈한 것이 어느새 자기의 사타구니를 파고들려 하자,
“아이고-싫다니까! 아악!”
냅다 그만 송혜련은 이빨로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사정없이 물어뜯어 버린다.
가슴패기 한쪽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듯, 눈에 불이 번쩍하자,
“아이쿠-”
비명을 내지르며 내왕이는 나가 뒹굴고 만다.
그 순간 송혜련은 벌떡 몸을 일으켜 후닥닥 침상에서 뛰어내린다.
벗겨져 내려간 치마를 끌어올리며 정신없이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도망친다.
내왕이가 쫓아 나오는 기색이 없자,
그제야 송혜련은 뜰에 서서 방을 향해 냅다 뇌까려 댄다.
“이놈아! 인제 네놈하고 끝장이다! 알겠냐?
다시는 날 만날 생각도 말아라. 꼴도 뵈기 싫으니까”
그러고는 허둥지둥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난데없는 소동에 놀라서 이웃 하인 가족들이 뛰어나오기도 한다.
송혜련은 곧바로 반금련을 찾아가서 억울해 죽겠다는 투로 방금 내왕이에게
당한 일을 월등히 과장을 해서 얘기했다.
얘기를 듣고 난 반금련은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나서,
“그놈 정말 앞뒤가 콱 막힌 모양이지?
눈치가 그렇게 없어가지고서야 어디...
제깟 놈이 감히 누구를 때려.
건방지게 굴다가는 앞으로 신세가 납작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서... 쯧쯧쯧...”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리고 얼른 표정을 바꾸어 생글생글 웃기까지 하면서 말을 잇는다.
“차라리 잘됐지 뭐야. 쇠뿔도 단 김에 뺀다고,
기왕에 헤어질 것 하루 빨리 일이 잘 터졌다구. 안 그래?”
투옥 8회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인제 집에 얼씬도 하지 말라구. 그까짓 놈 밥치다꺼리를 해주다니...”
“그러잖아도 앞으로 다시는 날 만날 생각을 말라고,
이것으로 끝장이라는 말을 해주고 왔다구요”
“잘했어. 그럼 말이야, 내왕이가 없을 때 춘매랑 가서 자네 짐을 다 옮겨오라구”
“예, 그럴게요”
송혜련은 이제 좀 분이 풀리는 듯한 표정이다.
반금련은 교활한 그런 눈매로 송혜련을 바라보며 한마디 더 덧붙인다.
“그리고 말이야,
내일부터 자네는 몸이 아프다고 드러누워 버리라구.
그래야 그이가 걱정을 하지 않겠어?
어디가 아프냐고 붇거든 내왕이한테 얻어맞았을 뿐 아니라,
강제로 그 짓까지 하려고 들어서 기절을 할 뻔했다고 말하라구”
“예, 알았어요”
“그러면 그이가 내왕이를 괘씸하게 여기고서 무슨 방법을 강구할 것 아니겠어? 안 그래?”
“예, 호호호...”
“히히히...”
두 계집은 뱃속이 잘 맞아 기분이 좋은 듯 간교한 웃음을 나눈다.
이튿날 송혜련은 아프다는 핑계로 자기 방 침상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그녀는 춘매 방 옆에 붙어있는 작은 방 하나를 벌써부터 임시로 자기의 거처로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는 내왕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지못해 집에 가보았던 것이다.
춘매가 가져다주는 식사를 송혜련은 침상에 일어나 앉아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핑계만이 아니라,
정말 몸살이라도 난 듯 온몸이 뻐근하고 무거웠다.
열도 좀 있는 것 같고, 골도 지근지근 아팠다.
몸과 마음이 함께 충격을 받아 그런 모양이었다.
아무리 이혼을 하려고 작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먼 길에서 돌아온 남편과 당장 그처럼 대판 싸움을 벌였으니
사람이면 충격을 안 받았을 리가 없고,
괴롭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충격과 괴로움은 그녀보다 내왕이 쪽이 월등히 더해서
그도 종일 침상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누워 있었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분했다.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가 싶었다.
남편이 바람이 나거나 마음이 들떠서 집을 비운 것도 아니고,
머나먼 길을 주인의 분부를 받고 갔다 온 터인데,
그 동안에 변심을 하여 다른 남자와 붙어 버리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고,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누구하고 붙었는지,
아직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으나 내왕이는 필경
그년이 서문경의 유혹에 넘어간 게 아닌가 싶었다.
반금련의 곁으로 옮겨가 있는 것부터가 그런 느낌을 주었고,
그년이 어젯밤 싸울 때 내가 누군줄 아느냐고 한 말이 또한 그런 의미를 풍기는 듯했다.
투옥 9회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누구와 정을 통한 것일까...
생각다 못해 저녁이 되자 내왕이는 손설아를 찾아갔다.
그 마님을 찾아가면 자세한 내막을 알게 아닌가.
다음에 얘기를 해준다고 했으니 말이다.
맨손으로 덜렁 방을 나가려던 내왕이는 그게 아니지,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선물을 가져다주어야겠다 싶었다.
어제 자기를 대하는 손설아 마님의 태도가 어쩐지
예사롭지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는 말이나 그 눈매가 아무래도 자기에게 무척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호감이상의 정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반드시 그래서가 아니라,
어제와는 달리 제 발로 자기일 때문에 마님을 찾아가는 것이고,
또 동경에 갔다 온 터이니,
맨손으로 가는 것보다는 하찮은 것이지만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내왕이는 아내에게 주려고 사온 그 분과 연지, 명주수건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내왕이가 찾아오자,
손설아는 무척 반겼다.
“어서 와. 잘 왔다구.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말인지 입에 발린 소린지 알 수가 없었으나,
어쨌든 내왕이는 기분이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싱그레 웃음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하인답게 얼른 그 웃음을 거두어버리고서 머리까지 숙이며,
“마님, 혹시 제가 찾아와서 방해가 되시지나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정중히 말한다.
“방해는 무슨 방해... 내가 밤에 뭐 할 일이 있나. 혼자서 잠이나 자는 것밖에...”
“허허”
도리 없이 내왕이는 히죽 웃음이 나와 버린다.
손설아도 좀 쑥스러운 듯 생글 웃어 보인다.
“저녁은 먹었어?”
“먹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어머, 가엾어라. 마누라가 그 모양이니... 쯧쯧쯧...”
혀를 차고 나서,
“그럼 여기서 저녁을 먹으라구”
하고는 옆방의 월미를 불러 저녁을 차려오도록 이른다.
탁자에 마주 앉자 내왕이는 가지고 온 선물 보자기를 마님 앞으로 내민다.
“이거 제가 선물로...”
“어머, 선물을 다...”
손설아는 약간 호들갑스럽도록 좋아하는 기색을 지으며 그 보자기를 끄른다.
안에서 분과 연지, 그리고 명주 수건이 나오자 우선 분갑을 집어 들며,
“어머나, 분이네. 동경에서 사온 모양이지?”
마치 분을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을 곱게 반질거린다.
투옥 10회
내왕이는 그런 손설아를 조금 멋쩍은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어머, 연지랑... 이건 명주 수건 아니야. 동경에서 살 때 나 줄려고 산거지?”
장난기 어린 그런 눈매로 손설아가 빤히 바라보자,
내왕이는 서슴없이,
“그럼요”
하고 대답해 버린다.
“아이 좋아라”
그렇다면 내왕이가 그전부터 자기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었다는 뜻이 되니
정말 기쁜 듯 손설아는 이번에는 분갑의 뚜껑이랑 연지까지 열어보며,
“내일 아침부터 이 분이랑 연지로 곱게 화장을 해야지”
하고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그리고 반짝 두 눈을 치떠서 내왕이를 바라본다.
내왕이는 슬그머니 눈길을 피해 버린다.
그 때 월미가 식사를 날라 왔다.
월미는 내왕이의 딱한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터이라
무척 동정이 간다는 듯이 그의 앞에 음식 그릇을 옮겨놓으며,
“어서 많이 드시라구요. 모자라면 더 갖다 드릴께요.”
하고 친절히 말한다.
“고마워, 월미”
내왕이는 힐끗 한번 월미를 거들떠보고는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손설아가 불쑥 입을 연다.
“술도 한잔 해야지. 내왕이 술 잘 마시지?”
“조금 마시죠”
조금 마신다면 잘 마신다는 대답이다.
술 마시는 사람이 자기를 잘 마신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월미야, 술 좋은 것으로 한 병 가지고 와”
“예”
곧 월미가 상등주(上等酒)를 한 병 들고 온다.
잔도 두 개 함께 가지고서.
월미는 제 방으로 물러가고,
손설아는 잔 하나를 손수 들고서 거기에 술을 따른다.
그리고 그 잔을 내왕이 앞에 놓아주며,
“자, 술도 마시면서 식사를 하라구”
하고 권한다.
그러자 내왕이는 얼른 젓가락을 놓으며 묻는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릴까요?”
“물론이지”
손설아가 잔을 들자,
내왕이는 술병을 두 손으로 집어 들고 제법 정중히 술을 따른다.
손설아가 그 잔을 살짝 쳐들어 보이며,
“자, 같이 한잔하자구”
건배를 제의한다.
내왕이는 어쩐지 좀 황송한 것 같고 쑥스러웠으나,
주저하지 않고 잔을 쳐든다.
그리고 손설아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자,
뒤따르듯 자기도 입으로 가져가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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