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9) 모살(謀殺) <16~2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8. 09:42

금병매 (69)

 

 

 

 

모살(謀殺) 16회

 

 

 

옷을 다 입은 수춘이가 탁자 쪽으로 와서 약간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자,

 

서문경은 호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냈다.

“수춘아, 오늘 수고했다. 자, 이거 받아라”

 

 

은화를 보자, 수춘이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어머, 이걸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래, 새것을 헌 것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그 대가로 주는 거라구”

“호호호...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돈까지 주시다니...”

자기 것으로 은화를 처음 만져보는 수춘이는 좋고 신기하기까지 한 듯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잠시 요리 조리 들여다보다가

의자에서 살짝 궁둥이를 들며,

“정말 고맙습니다. 서문 대관인님”

하고 머리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얼른 호주머니에 넣어 버린다.

그런 수춘이를 가만히 지켜보며 서문경은 귀엽다는 듯이 히죽이 웃는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너도 별 수 없는 상것이며

기생이 될 소질도 다분하구나 하고 비웃기도 한다.

매춘을 한 셈인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니 말이다.

“수춘아”

“예?”

“네가 나를 만나러 나온 줄을 너의 아줌마가 알고 있니?”

“예, 마님이 계실 때 풍노파가 찾아왔거든요”

“아줌마가 뭐라고 안그러더냐?”

“아무 말도 안하시던데요”

“음”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서문경은 다시 입을 연다.

“수춘아, 집에 가서 너의 아줌마한테 얘기할래?”

“무슨 얘기요?”

“나하고 사랑을 나누었다는 얘기 말이야”

“어머, 하하하... 누굴 어린앤 줄 아시나봐.

그런 얘길 왜 마님한테 해요. 그건 절대 비밀이잖아요”

“허허허... 절대 비밀인가? 맞어. 비밀로 하는 게 좋지.

그러나 말이야 수춘아, 지금 집에 돌아가거든

너의 아줌마한테 나하고 기분좋게 사랑을 나누고 왔다는 얘기를 하라구”

“아니, 농담이세요, 진담이세요?”

“진담이라구”

“그런 법이 어딨어요”

수춘이는 살짝 눈까지 흘긴다.

“그럴 필요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은화를 준거라구. 알겠어?”

수춘이는 대답이 없다. 매우 불만스러운 그런 표정이다.

서문경이 엉뚱하게 그렇게 시킨 것은 이병아로 하여금

질투의 감정이 끓어오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장죽산에게 개가를 했다고는 하지만,

자기에 대한 애정이 그동안에 말끔히 씻어졌을 까닭이 없으니,

그 애정이 다시 고개를 쳐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질투심을 자극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살(謀殺) 17회 

 

 

 

 수춘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못마땅한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이는둥 마는둥 인사를 하고서 방문 쪽으로 걸음을 떼놓는다.

서문경은 다짐을 하듯 한번 더 말한다.

 

 

“집에 가거든 꼭 내가 시킨대로 말해야 돼. 알겠지?”

그러자 수춘이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그에 대한 대답은 없이 엉뚱하게도,

“언제 또 사랑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불쑥 묻는다.

서문경은 절로 웃음이 안 나올 도리가 없다.

“수춘이 생각이 나면 또 불러내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냐, 알았다”

보통 맹랑한 계집애가 아니로구나 싶어 서문경은

수춘이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눈여겨 훑어본다.

수춘이는 방문을 열다가 말고 뒤돌아보며

이제야 생각이 난 듯 약간 조심스레 묻는다.

“참 서문 대관인님,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기셨다던데, 인제 잘 되셨는 모양이죠?”

“그래, 잘됐다. 그일을 너까지 알고있었구나”

“얼마나 걱정을 했다구요”

“정말인가?”

“예”

“고맙다. 잘됐으니까 이제 아무 걱정 말라구.

그리고 내가 자주 불러내서 사랑해줄게”

“아이 좋아라. 히히히...”

수줍게 웃으면서 수춘이가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이번에는 서문경이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듯,

“잠깐만”

하고 불러세운다.

“집에 가거든 말이야,

너의 아줌마한테 내가 한번 만나고 싶다는 말도 전하라구.

그렇게 딴사람한테 개가를 해버리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한번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이야, 알겠지?”

“알겠다구요”

수춘이는 그 부분 역시 결코 기분이 좋지가 않은 듯

볼멘소리로 불쑥 대답하고는 얼른 신을 신고 사라져 버린다.

수춘이가 집에 돌아가자,

이병아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얼른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수춘이는 마님이 묻기도 전에 마치 심부름이라도 갔다온 것처럼

서문경과 만난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이런 것도 묻고, 또 이런것도  물어보더라고 자세히 얘기한 다음,

마님을 한번 만나고 싶어 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듣자 이병아는,

“그래?”

하고는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모살(謀殺) 18회 

 

 

 

 “마님”

“응?”

 




“저...”

수춘이는 차마 입이 잘 안떨어지는 듯 망설이다가 살며시 고개를 떨구며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서문 대관인님이 저를 그만...”

“아니...”

“아무리 안된다고 해도 기어이...”

“당하고 말았구나”

“예, 흐흐흐...”

수춘이는 그만 흐느끼는 시늉까지 한다.

이병아는 약간 측은한 듯한 눈길로 수춘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인다.

서문경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놀라는 기색이란 거의 없다.

수춘이는 찻집을 나와 집에 돌아오는 동안 내내 서문경과 사랑을 나눈 얘기를

마님에게 해야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안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렇게 작정을 하니 불안했다.

만약에 서문경이 이병아를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설마 그런 확인까지야 안하겠지만, 혹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안했다는 것을 알면 서문경이 자기의 분부를 저버렸다고 화를 낼 것이며,

어쩌면 다음번에 만나면 은화를 도로 내놓으라고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은화 한 닢을 손에 넣었는데,

그것을 도로 내주다니 될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춘이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얘기를 하기는 하되,

사실과 좀 다르게 강요에 못이겨 몸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면 설마 나중에 서문경이 그런식으로 얘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치더라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화를 낸다 하더라도 쑥스러워서 그렇게 얘기했다고 얼마든지 변명을 할 수 있을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수춘이는 연극을 하듯 흐느끼는 시늉까지 해보였던 것이다.

“울지 말아라. 이미 당해버린 일인데, 운다고 뭐 별수가 있니”

이병아가 위로하듯 말하자,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는 척하던 수춘이는 손등으로 두 눈을 닦는 시늉까지 하며 일어나

얼른 밖으로 나가려 한다.

“수춘아”

“예?”

힐끗 뒤돌아본다.

“저... 서문경 그 양반의 일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니? 그런 말은 없더냐?”

“인제 무사히 됐다고 그러시던데요”

“그래? 그게 정말이야?”

이병아는 약간 놀라는 기색이다.

“예, 정말이에요”

“무사히 되다니, 웬일이지?”

수춘이가 가만히 표정을 지켜보는 듯 하자,

“알았다. 나가봐라”

이병아는 예사롭게 말하며 조금 어색한 웃음을 떠올려 보인다.

 

 

 

모살(謀殺) 19회 

 

 

 

 절망적인 처지에 놓였던 서문경이 무사히 되었다니,

 

이병아는 놀랍기만 했다.

 

그가 그전과 같은 당당한 위세를 되찾게 되었으니

 

우선 반가우면서도 심경이 매우 착잡했다.

 

그리고 곤경에서 벗어나 다시 자유의 몸이 된 그가 자기를 한번 만나자고 한다니,

 

더욱 심란하고 곤혹스러웠다.

만나야 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그녀는 번민을 거듭했다.

 

만나면 그의 성품으로 보아서 필경 다시 자기를 차지하려고 들게 뻔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자를 다시 만나려고 하겠는가 말이다.

 




다시 그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도 되지가 않았다.

이병아는 이제 장죽산을 필생의 지아비로 여기고, 알뜰히 위하며,

그의 말마따나 백년해로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났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서문경이 만나자는 청을 거절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비록 남의 아내가 되었지만,

한동안 뜨겁게 좋아했던 남자가 어려운 처지에서 풀렸으니,

만나서 축하도 해주고, 또 자기가 딴 남자한테 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얘기해서

 이해를 구하는 게 도리일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물상자 때문에라도 한번 안만날수가 없었다.

그가 무사히 됐다는 것을 알았다면 보물상자의 처리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청하는게 순서일 터였다.

그래서 이틀뒤 마침내 이병아는 단단히 마음을 다지고서 서문경에게 만나자는

사연의 간단한 서찰을 적었다.

때는 다음날 사시(巳時)로 했고, 장소는 풍노파의 집으로 했다.

그 서찰을 수춘이를 시켜 서문경의 집으로 전했다.

마침 집에 있었던 서문경은 그 서찰을 받아 펼쳐보고서

수춘이에게 시간은 사시라도 상관없으나,

장소는 왕파의 찻집으로 변경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내일 사시에 기다릴테니,

혹시 너의 아줌마가 그 찻집을 모르거든 수춘이 네가 잘 가르쳐 주라고 일러서 보냈다.

서문경이 장소를 변경했다는 얘기를 들은 이병아는 좀 꺼림칙했다.

그 찻집 안방에서 바로 그저께 수춘이가 몸을 버렸으며,

또 서문경이 반금련을 자기 것으로 만들때 역시

그 찻집 안방을 이용했다는 것을 화자허한테 들어서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장소를 풍노파의 집으로 했던 것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안나갈수도 없는 일이어서 이튿날 아침을 먹자

이병아는 곧 화장을 좀 하고, 화사한 나들이옷을 꺼내어 입고서 집을 나섰다.

시간을 아침나절로 한것도 그녀의 경계심에서였다.

오후보다 아무래도 오전이 안심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오후에 만나면 혹시 서문경이 술을 마시려 들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그의 사람됨됨이로 보아 어쩌면

다시 자기 몸에 손을 대려고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모살(謀殺) 20회 

 

 

 

 이병아가 아침 일찍부터 나들이옷을 입고 집을 나서자,

 

아무 영문도 모르는 장죽산은 무슨 일인가 싶은 듯,

“여보, 이렇게 일찍부터 어딜 가는거야?”

 




아내의 화사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병아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예사롭게 대답한다.

“잠깐 나갔다 올 일이 있어서요. 별일 아니예요. 곧 돌아올게요”

그리고 대문을 나서 종종걸음을 친다.

이병아는 서문경이 수춘이를 불러낸 일과 자기를 만나자고 한다는 말을

일부러 남편에게 하지를 않았다.

물론 곤경에 처했던 그가 무사히 됐다는 말도 입밖에 내질 않았다.

자기 입으로 먼저 서문경의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을뿐 아니라,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듯 그런 말을 해서 남편의 심사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된다 싶었던 것이다.

아내로서의 현숙한 배려인 셈이었다.

이병아가 왕파의 찻집에 도착하니,

아직 서문경은 안와 있었다.

자기가 일찍 나온 것이 좀 멋쩍기는 했으나,

먼저 와서 기다리는 편이 조금이나마 그에 대한 미안한 표시가 되는 것 같아

오히려 잘된 일이라 싶었다.

그녀는 사정이야 어떻게 됐든 그에게 등을 돌린 처사는 전적으로

자기의 잘못이라는 것을 자인하고 있었다.

그와의 언약을 저버리고,

더구나 그가 곤경에 처해있는 동안에 딴 남자한테 가버렸으니,

배신한 나쁜 여자라고 아무리 욕을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그를 만나면 진정으로 사죄를 해서 용서를 빌리라 마음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보물상자를 돌려달라는 얘기도 꺼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병아는 한쪽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병아를 처음 본 왕파는 그녀의 미모와 우아한 몸매에 약간 놀라며

누군가 싶어 좀 머뭇거리다가,

“무슨 차를 드실려우?”

하고 묻는다.

“호도차를 주세요”

“여기서 누굴 만나기로 했수?”

“예”

“누굴?”

굳이 묻는게 좀 싫었으나,

어차피 곧 그가 나타나면 알텐데 싶어 이병아는 불쑥 대답한다.

“서문경씨요”

“아하, 그렇구려”

이삼일 전 서문경과 수춘이의 대화를 엿들었던 터이라,

왕파는 그녀가 바로 화자허의 처였던 여자라는 것을 짐작하고서

공연히 자꾸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끓이려 주방으로 들어간다.

호도와 송실(松實)을 넣어 끓인 차를 이병아가 홀짝홀짝 음미하듯 마시고 있는데,

서문경이 들어섰다.

이병아는 대번에 바짝 표정이 굳어들며 찻잔을 얼른 탁자에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