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7) 모살(謀殺) <6~1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8. 09:32

 

금병매 (67) 모살(謀殺) 6회 

 

 

 

 여느때 같았으면 친구들과 으레 이차로 갈 판이었으나,

 

서문경은 며칠 뒤에 월례모임을 갖기로 하고,

 

그들과도 헤어진 다음 혼자서 사자가 쪽으로 향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병아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병아가 장죽산과 결혼을 했다는 것만 알았을뿐,

 

집을 팔고 딴데로 이사를 간 사실은 몰랐기 때문에 사자가의

 

그녀 집에 당도하자 서문경은

 

 

“어험 어험...”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는 거침없이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누구예요?”

낯선 아낙네 하나가 놀란 얼굴로 내다본다.

“이병아씨를 찾아왔소. 아주머니는 누구요?”

“집주인이라구요. 얼마전에 이사를 왔어요”

“그래요? 그럼 이병아씨는...”

“이사를 갔죠”

“아하-”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묻는다.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모르세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아낙네는 안으로 사라져 버린다.

서문경은 이웃집 풍노파를 찾아갔다.

이곳 이병아집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풍노파와도 안면이 있었다.

풍노파는 서문경이 찾아온 것을 보고 공연히 자기가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할멈, 그 사람이 개가를 했다지요?”

서문경은 담담한 어조로 묻는다.

“예”

“누구한테 개가를 했나요?”

“저... 장죽산이라고 의생 있잖아요. 그이한테...”

풍노파는 이병아의 개가가 마치 자기 탓이기나 한 듯

두 손을 모아쥐고 허리를 굽실거리기까지 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해서 장죽산이한테 개가를 하게 됐죠?”

“글쎄요, 자세한 내막은 이 늙은이가 어떻게 알겠어요.

색시가 병이 나서 그 의생을 불러다가 치료를 하도록 했는데 어쩌다가 그만...

이 늙은이는 색시가 아픈 것을 보고 딱해서 의생을 불러다준 것뿐입니다.

정말입니다요”

서문경의 사람됨을 들어서 잘 알고있는 터이라

노파는 겁을 집어먹고 마치 자기변명을 하듯 말한다.

고개를 떨구고는 들지를 못한다.

“어디로 이사갔는지는 알고 있겠죠?”

“예”

“어디로 갔나요? 장죽산이의 집에 들어가 사나요?”

“아닙니다. 혼례는 그집에서 치렀지만,

곧 그집도 팔아서 딴데다가 집을 사가지고 새로 개업을 했습니다.

얘기를 들으니까 색시집과 의생집 판 돈을 합해가지고 새로 집을 샀나보대요”

“그래요? 음- 둘이서 혼례까지 치렀구먼”

서문경은 가슴 깊숙한 곳까지 멍멍해지는 느낌이다.

 

 

 

모살(謀殺) 7회 

 

 

 

 이병아에 대한 괘씸함과 분함, 그리고 장죽산에 대한 증오감으로 부글부글 끓는 듯한

 

기분으로 서문경이 집에 돌아가니 네 여자들이 바깥채의 앞뜰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오월랑과 맹옥루, 반금련, 그리고 양교랑이었다.

동경에서 좋은 소식이 와서 오래간만에 대문이 활짝 열리자,

 

너무 기쁜 나머지 다섯 부인과 양교랑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축하의 술을 마셨다.

 

오래간만에 참으로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좌석이었다.

 

술자리가 끝나자 이교아와 손설아는 자기 방으로 가고,

 

 네 여자는 여흥으로 뜰에 내려가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둥근 달도 떠오르고 해서 아이들처럼 희희낙락하며 줄넘기를 하고 있는데,

 

서문경이 돌아온 것이다.


 

마냥 기분이 좋아야 할 오늘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비틀거리며 서문경이 다가오자,

오월랑과 맹옥루는 재빨리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리고 슬금슬금 피하듯

제각기 거처로 돌아갔다.

그러자 양교랑도 눈치를 채고서 좀 머뭇거리다가 자리를 떴다.

반금련만 혼자서 술기운에 발그레 물든 얼굴로 헤헤거리며

계속 깡충깡충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서문경에게 애교를 부린답시고 엉덩이를 일부러 살랑살랑 흔들어 교태까지 내보이면서.

그러자 다가온 서문경은,

“뭘 하고 있는거야! 꼴사납게...”

냅다 호통을 친다.

“어머, 당신 왜 그래요? 오늘 얼마나 기분좋은 날이에요.

그래서 한잔 마시고 줄넘기를 하던 참이라구요”

“듣기 싫다구! 애들처럼 줄넘기가 다 뭐야! 빨리 꺼져!”

그러면서 그만 서문경은 그녀의 엉덩이를 냅다 발길로 한 대 차버린다.

“어머머... 별꼴이야!”

“별꼴이라니, 이것이...”

서문경은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휘둘러 버리려는 듯이

두 손을 번쩍 쳐들며 달려든다.

“어머나-”

그제야 반금련은 비명을 내지르며 정신없이 도망을 친다.

여자들이 줄넘기를 한게 뭐 그리 화가 나는지

서문경은 공연히 성난 맹수처럼 오월랑과 맹옥루의 거처를 찾아가

집기를 집어던지고 욕설을 퍼부으며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또 반금련을 두들겨 주려고 그녀의 방으로 갔으나,

어디론지 숨어버리고 없어서 옆방에 있는 춘매를 불러내어

반금련이 어디에 숨었느냐고 추궁을 했다.

춘매가 모른다고 하자,

그만 그녀를 사정없이 발로 차고 주먹으로 쥐어박아 주었다.

애꿎은 춘매가 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바깥에서 뒤집힌 심사를 그렇게 한바탕 집안사람들에게 퍼부은 다음

서문경은 자기 방에 가서 쓰러지듯 침상에 드러누우며,

“어디 이 연놈 두고보자구. 내가 그냥 가만히 둘 줄 알어.

어림도 없다구 암, 어림도 없고 말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뇌까려 댔다.

마치 살짝 실성한 사람 같았다.

 

 

 

모살(謀殺) 8회 

 

 

 

 이튿날 오후, 서문경은 다시 풍노파를 찾아갔다.

사정이야 어찌 됐건 좌우간 이병아를 장죽산에게 빼앗긴 꼴이어서

 

서문경은 분하고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그대로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한 끝에 그는 기어이 그녀를 도로 빼앗아 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우선 풍노파를 시켜 수춘이를 불러내어 이병아와 장죽산이

 

결혼까지 하게 된 경위를 좀더 자세히 캐물어보고 그들 부부의 사이가

 

현재 어떤지도 알아본 후에 다음 계략을 강구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자가로 가는 도중에 서문경은 문득 왕파 생각이 떠올랐다.

수춘이를 왕파의 찻집으로 불러내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 집 안방이 어느 모로나 풍노파의 집보다는 나을 게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번 일에도 그 늙은 너구리같은 노파를 끌어들여야지 하고 생각했다.

다시 서문경이 찾아오자 풍노파는 어제보다 한결 더 굳어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필경 무슨 일이 벌어지는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수춘이를 좀 왕파의 찻집으로 불러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돈까지 몇 푼

손에 쥐어주자 고맙고 황송해서

“예예, 그러지요. 그곳에 가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곧 수춘이를 그곳으로 데리고 갈테니까요”

하고 허리를 굽실거렸다.

그리고 서둘러 장죽산 의원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서문경은 오래간만에 왕파의 찻집을 찾아갔다.

왕파는 무송이 동경에서 돌아와 형 무대의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가지는 듯 자기를 찾아와 이것저것 캐묻고 간 뒤

곧 가게를 처닫아 버리고 어디론지 잠적을 했다가

무송이 붙들려 매주 땅으로 귀향을 갔다는 소문을 듣자

곧 돌아와서 다시 가게 문을 열고 잠시 볼일 있어서 시골의 친척집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멀쩡한 얼굴로 장사를 계속했던 것이다.

무대를 독살하고서 반금련을 자기소실로 들여앉힌 뒤로 서문경은

왕파의 찻집 앞을 지나간 일은 더러 있어도 가게 안에 발을 들여놓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쩐지 기분이 꺼림칙했던 것이다.

살인 공범자의 가게이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이제 꽤 세월도 흘렀고 또 분통터지는 일 때문에 들르는 터이니

 싫고 좋고 할 것도 없이 서문경은 성큼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어머나, 서문 어른. 이거 어찌된 일입니까? 얼굴도 잊어버릴 뻔했지 뭐예요”

마침 혼자서 파리를 날리고 있던 왕파는 불쑥 들어서는 서문경을 보자 놀라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늙은 너구리답게 얼굴에 웃음까지 살짝 떠올리며 반기는 척한다.

“할멈, 오래간만이구려. 허허허...”

서문경도 반가운 듯이 웃는다.

살인 공범자 사이의 혐오감과 친밀감이 뒤섞인 그런 묘한 웃음이라고나 할까.

 

 

 

모살(謀殺) 9회 

 

 

 

 “이제 일이 무사히 잘된 모양이죠?”

찻집을 경영하고 있는 터이라 손님들한테서 얘기를 들어 왕파도

 

서문경이 아주 심각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일은 잘됐는데, 엉뚱하게 속상하는 일이 그동안에 생겼지 뭔가”

“무슨 일인데요?”

왕파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묻는다.

서문경의 여섯 번째 마누라로 들어가려던 이병아가 장죽산에게 개가를 한것까지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가 지금 그 일을 들먹인다는 것을 뻔히 짐작하면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글쎄 어떤 놈이 그동안에 옆치기를 해갔다니까”

“어머, 그래요?”

늙은 너구리는 놀라는 표정까지 지어 보인다.

“그일 때문에 찾아온 거라구”

왕파는 말문이 닫혀 버린다.

또 무슨 수작을 꾸미려고 그러나 싶어 덜컥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틀림없이 그 일에 또 자기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할멈, 안방을 좀 빌려줘야겠어”

“안방요? 그러죠”

“곧 어떤 노파가 계집애 하나를 데리고 올테니까,

오거든 계집애만 안방으로 들여보내고, 노파는 가라고 하라구. 알겠소?”

“예, 예”

왕파의 안내를 받아 서문경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앉아 서문경은 왕파가 가져다준 차를 마시며

지난해 봄의 일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이방에서 반금련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무대의 습격을 받았으며,

결국 그를 독살하고서 반금련을 자기의 다섯 번째 마누라로 들어앉힌,

 자기로서는 감미로운 추억과 끔찍한 기억이 함께 깃들여있는 잊지 못할 장소였다.

그 장소에서 이번에는 이병아를 도로 빼앗을 일을 도모하게 되었으니,

말하자면 악업(惡業)의 방인 셈이었다. 아무리 심장에 숭숭 털이 돋아난

서문경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왕파를 불러 술을 가져오게 했다. 자작자음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수춘이가 왔다.

왕파는 수춘이를 방에 들여보내고서 문을 닫았다.

그러나 가게로 나가질 않고 방문에 살그머니 붙어서서 방안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음모를 또 어떻게 꾸미려고 드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방안으로 들어선 수춘이는 공연히 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 두 손을 가지런히 앞에 모아쥐고 깊이 머리를 숙여,

“서문 대관인님, 부르셨습니까?”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살짝 떨군다.

그런 수춘이가 오히려 귀엽기만 한 듯 서문경은 싱그레 미소를 떠올리며 입을 연다.

“그래, 수춘아, 오래간만이구나. 자, 이리 와서 앉아라”

 

 

 

모살(謀殺) 10회 

 

 

 

 수춘이는 서문경이 술을 마시고 있는 탁자 맞은편 의자에 가서 조심스레 궁둥이를 내린다.

 

여전히 굳어진 얼굴이다.

서문경은 술잔을 들어 쭉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말한다.

 

 

 

“수춘아, 나한테 뭐 할 얘기가 없나?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 말이야”

수춘이는 서문경이 뭘 묻고 있는지 대뜸 알 수가 있었으나,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며 두려운 눈길로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또 고개를 떨군다.

“말하기가 힘드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내가 물을테니까 대답하라구.

 아는 대로 자세히 대답해야 돼. 알겠지?”

“예”

“너의 아줌마가 아팠을 때 장죽산이가 와서 치료를 했다지? 그게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어디가 아팠었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좌우간 뭣에 홀린 사람 같았어요.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방에서 뛰어나오더니, 나중에는 그만 기절을 했지 뭐예요.

그래서 이웃집 풍노파가 장죽산 의생을 불러왔어요.

밤마다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을 해서 나타나 괴롭힌다는 거예요”

“아하, 그래?”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도 그 집 지붕 위에서 날뛰는 여우 때문에 정사를 중도에 그만둔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수춘이는 이제 한결 두려움이 가셔서 묻기도 전에 자기가 아는대로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줄줄 다 쏟아놓는다.

얘기를 듣고 난 서문경은 일이 공교롭게 되어 갔구나 싶어 입맛이 썼다.

특히 화자허의 탈상을 사십구일재로 서둘러 마치고,

다음날 혼례를 치렀다는 말을 듣고는 이병아의 마음이 장죽산에게 깨끗이

기울어져버린 것만 같아 괘씸한 생각과 함께 눈앞이 암담해지는 느낌이기도했다.

믿을 수 없는 게 여자의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곤경에 처해 있던 자기를 배반하고,

그렇게까지 급속도로 딴 남자에게 기울어질 수가 있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서 도로 빼앗아오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을 것만 같았다.

서문경은 말없이 자작자음으로 두 잔을 더 기울이고나서 불쑥 입을 연다.

“지금 현재는 두 사람 사이가 어떻지? 서로 사랑하고 있는거 같으냐 말이야”

수춘이는 그제야 눈매에 살짝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내비치며 대답한다.

“사랑하고 있는 거 같애요”

“그래? 음-”

“아저씨보다 마님이 더 사랑하는 것 같던데요. 아저씨를...”

“뭐라구?”

마치 약을 올리는 것 같아서 서문경은 약간 눈을 부릅뜨고 수춘이를 바라본다.

수춘이는 다시 슬그머니 표정이 굳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