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6) 제10장 모살(謀殺) <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7. 21:47

 

금병매 (66) 제10장

 

 

 

모살(謀殺) 1회 

 

 

 

 몇 달 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서문경의 집 대문이 활짝 열렸다.

 

물론 약국도 활짝 문을 열고 다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동경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왔던 것이다.

서문경이 동경에 보냈던 두 명의 하인 가운데 한 사람이 돌아왔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양제독이 재판에서 아마도 무죄가 되거나 아니면

 

아주 경미한 징계 정도의 벌을 받고 풀려나리라는 것이었다.

 

중신들의 권력 다툼에서 왕상서와 양제독의 편이 의외로 막강해서

 

오히려 역공(逆攻)을 시도한 끝에 효과를 얻어 황제폐하께서도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서문경은 온통 콱 막혔던 눈앞이 활짝 열리는 듯

두 눈을 번쩍 크게 뜨며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어김없는 사실이지?”

“예, 주인어른, 사실이고 말고요. 최태사 나리한테 직접 들은 얘깁니다”

“아, 그래? 그렇다면 틀림없겠지”

“아마 재판이 금년 안으로 끝날 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사실을 주인어른께 알리려고 제가 혼자서 먼저 돌아왔죠.

내왕(來旺)은 재판이 끝나는 것을 보고서 돌아오기로 하고요”

“오냐, 잘했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서문경은 곧 온 집안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그 사실을 알리고,

즉시 대문을 활짝 열도록 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도 좋아한 것은 양교랑과 진경제 내외였다.

두 사람 중에서도 양교랑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될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무사히 풀려나게 될 것이라니,

그리고 죽은 것과 다름없던 자기네 목숨 역시 무사하게 될 게 틀림없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서문경의 다섯 부인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 어쩔 줄을 몰랐고,

하인들 역시 얼굴에 활짝 웃음들이 떠올랐다.

마치 죽음의 집 같던 분위기가 흡사 부슨 해방이라도 맞이한 듯

대번에 활짝 밝아지고 말았다.

서문경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의관을 갖추고서 집을 나섰다.

호주머니에는 돈을 여느 때보다 월등히 두둑하게 넣고서 말이다.

우선 기방을 찾아가 실컷 좀 마시고, 저녁에 이병아한테 갈 생각이었다.

마치 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듯한 후련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건들건들 계저네 기방을 찾아가고 있는데,

저만큼 앞에 응백작과 사희대 두 친구가 마침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게 아닌가.

“오- 오래간만일세”

서문경은 먼저 한쪽 손을 번쩍 쳐들며 반갑게 아는체를 했다.

“아니, 서문경 아니야”

“야, 이거 정말 오래간만인데...”

응백작과 사희대도 몇 달만에 뜻밖에 길거리에서

서문경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모살(謀殺) 2회 

 

 

 

 응백작이 다가와 서문경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야, 이거 정말 오래간만일세. 일이 이제 잘 풀린 모양이지?”

 

 

“응, 소문이 났던가?”

“그럼,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사희대도 필요이상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끼어든다.

“우리들이 얼마나 형을 걱정했다구.

몇 번 찾아가봐도 대문이 닫혀서 만나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고마워. 이제 걱정할 것 없게 됐다구.

양제독이 무죄로 곧 풀려난다지 뭐야. 동경에서 소식이 왔어”

그러자 두 사람은,

“야, 잘됐군”

“오늘 한잔 해야겠는데...”

하고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그러잖아도 한잔하러 가는 길이라구. 같이 안 갈거야?”

서문경의 말에 응백작이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잠깐 볼일이 있거든. 어디로 갈거야? 먼저 가있으라구.

그러면 둘이 얼른 볼일을 마치고 갈테니까”

“좋아, 계저한테 가있을테니까, 얼른 오라구.

다른 친구들도 만나면 같이 오고. 오늘 내가 한턱 잘 낼거니까”

“좋아, 좋아”

두 사람은 싱글벙글 웃으며 볼일을 보러 가고,

서문경은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걸음을 떼놓는다.

무척 오래간만에 찾아온 서문경을 계저와 그 언니 계경은 호들갑스럽게 반겼다.

그녀들도 소문을 들어서 서문경의 처지를 알고 있었던 터이라,

뜻밖에 불쑥 찾아온 그를 보자 놀라면서도 여느 때보다 월등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조심스레 그것부터 물었고,

얘기를 듣고 나자 좋아서 또 호들갑스럽게 환호성을 내지르기까지 했다.

곧 셋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마치 사지(死地)에 갔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들은 서문경을 아주 극진히 대접했다.

잠시 후 계경은 서문경과 계저가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정담을 나눌 수 있도록 자기는 볼일이라도 보러 가는 듯 슬그머니 방에서 나갔다.

언니가 자리를 비켜주자,

계저는 가만히 의자에서 일어나 서문경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만 그의 가슴 안에 쓰러지듯 얼굴을 묻어 버린다.

그리고 훌쩍훌쩍 흐느끼기 시작한다.

뜻밖의 일에 서문경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지그시 끌어안고 말없이 등을 토닥거려 준다.

그녀의 흐느낌에 그만 그도 코허리가 뜨끈해지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흐느낌을 멈추고 계저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살며시 들어

서문경을 바라보며 울먹이듯이 말한다.

“여보, 다시는 당신을 못 만나는 줄 알았지 뭐예요.

 혼자서 남몰래 많이 울었다구요”

 

 

 

모살(謀殺) 3회 

 

 

 

 계저는 기녀이면서도 여느 여자들보다 한결 짙은 정념(情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그 애틋한 진정 앞에 서문경은 그만 가슴이 뭉클해져

 

자기도 모르게 훌쩍 코를 한번 들이마신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을뿐 아니라,

 

목이 콱 메이는 듯해서 입이 열리지가 않는다.

“여보, 나 더 꼭 안아줘요”

 

 

“응, 그래”

서문경은 그녀를 안은 팔에 한결 힘을 준다.

그녀의 입술이 서문경의 얼굴 앞에서 꽃송이가 벌어지듯 살짝 열린다.

 가지런한 앞니가 하얗게 내다보인다.

서문경은 그 고운 입술 위로 자기의 입술을 내리덮는다.

그녀는 눈물에 젖은 두 눈을 살그머니 감는다.

잠시후 서문경은 얼굴을 들어 그녀의 두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입을 연다.

“계져야”

“예?”

“아직 다른 남자한테 몸을 주지 않았나?”

뜻밖의 질문에 계저는 약간 당황하는듯했으나 곧 정색을 하고서 서슴없이 대답한다.

“기생의 몸인데 안줄 수가 있나요.

그러나 몸뚱이는 주어도 마음은 아무한테도 준 일이 없다구요.

오직 당신뿐이라구요”

“그래? 흠-”

서문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천한 기녀여서 몸은 남자들한테 제공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자기에게 일편단심이라니

좀 낯간지럽기는 하면서도 결코 싫지가 않은 것이다.

둘이서 그렇게 속삭이고 있을때, 바깥이 떠들썩해졌다.

응백작과 사희대가 볼일을 마치고 찾아온 것이었다.

상시절과 축일념도 중도에서 만났는 듯 같이 왔다.

손님들이 들이닥치자,

계저는 눈물에 젖었던 얼굴을 얼른 바꾸어 금세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리고 웃으면서 반긴다.

그런 점이 역시 도리없는 기녀였다.

네 친구가 오자,

서문경은 술과 안주를 더 푸짐하게 내오게 하고,

기녀도 두어 사람 불러오게 해서 오래간만에 유쾌한 주연을 벌였다.

한참 술잔이 오고가며 환담이 무르익고, 곧잘 웃음이 터지곤 할 무렵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아무 말이나

불쑥불쑥 함부로 내뱉는 버릇이 있는 축일념이 어느덧 약간 혀가 짧아진 듯한

목소리로 서문경을 향해 내뱉었다.

“서문형은 좋으면서 섭섭하겠어. 이제 해방은 됐지만,

잃은 것이 하나 있으니 말이야. 알고 있어? 아직 몰라?”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서문경은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번들거리는 두눈을 똑바로 뜨고 축일념을 바라보며,

“그게 무슨 소리야? 잃은 것이 하나 있다니, 무얼 잃었다는 거지?”

하고 되묻는다. 

 

 

 

모살(謀殺) 4회 

 

 

 

 “아직 모르고 있군 그래. 이병아를 잃었다구. 그동안에...”

“뭐라구?”

 

 

너무나 뜻밖의 말에 서문경은 그만 눈이 휘둥그래지고 만다.

이병아를 잃다니,

그럼 그녀가 죽었단 말인지 무언지 얼른 알수가 없다.

축일념은 그제야 사실대로 알려주기가 좀 난처한 듯 머뭇거린다.

“똑똑히 얘길 해보라구. 이병아가 뭐 어떻게 됐다는거야? 응?”

술자리가 조용해지고 만다.

불려온 기녀 둘은 무슨 소린지 잘 알 수가 없어 멀뚱한 표정이지만,

그밖의 사람들은 모두 이병아가 장죽산에게 개가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문경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계저와  계경도 진작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기방이란 본래 뭇 사내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그런 소문은 다른 어떤 곳보다 빨랐다.

그 소문을 듣고 계저는 내심 무척 좋으면서도 한편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서문경의 여섯 번째 아내로 들어간다던 여자가 딴 남자에게 개가를 했으니,

그를 사랑하고 있는 그녀로서는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서문경이 죽은 목숨과 다름없는 처지였으니

자기가 기뻐해야 할 아무 건덕지가 없을 뿐 아니라

서문경의 일이 처량하게만 되어가는 듯해서 오히려 가슴 아팠던 것이다.

그러나 서문경이 곤경에서 벗어나게된 이제는

그 일이 계저로서는 매우 잘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자기는 그의 아내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어쨌든

 여자의 질투 심리로서 말이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고, 분위기가 무겁기만 하자,

계저가 그만 불쑥 말한다.

“딴 사람한테 시집을 갔다는 소문이에요”

“뭐? 시집을 가? 그게 정말이야?”

“확실한건 모르지만, 벌써 몇 달전에 그런 소문을 들었어요”

그러자 서문경은 축일념에게 들이대듯이 묻는다.

“축일념, 어디 말해 보라구. 그게 정말이냐 말이야?”

마치 축일념 때문에 그녀가 개가를 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그런 어투다.

“정말일세”

서문경의 기색이 험악해 보여서 취중이지만 축일념은 조심스레 대답한다.

“누구한테 시집을 갔지?”

“장죽산이라는 의생 있잖아. 그자한테...”

“뭐라구? 장죽산이란 놈한테?”

서문경의 온 얼굴이 그만 벌겋게 달아오르며 한쪽 눈썹이 경련을 일으킨 듯 냅다 꿈틀거린다.

너무나 뜻밖의 일에 서문경은 격해 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는 듯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곁에 앉은 계저에게 또 가득 따르도록 해서

거푸 벌컥벌컥 마셔댄다.

그런 서문경이 내심 몹시 원망스러운 듯

계저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새치름하게 굳어져 앉아있다.

 

 

 

모살(謀殺) 5회 

 

 

 

 서문경은 이병아가 시집을 가버렸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녀가 장죽산에게 개가를 했다는 말에 더욱 감정이 격해 올랐다.

장죽산은 비록 소규모의 약방을 차려놓고 병자를 치료했고

 

근년에는 곧잘 떠돌아다니는 보잘 것 없는 의생이었지만,

 

어쨌든 서문경에게는 항상 못마땅한 존재였다.

 

자기의 영업에 적기는 하지만 어떻든 영향을 끼치는 터였으니 말이다.

 

 

만약 그가 서문경의 영업에 방해가 될만한 경쟁 상대였다면

그는 이미 서문경에 의해서 의생질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었거나,

청하현에서 내쫓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하기에는 너무 미미한 존재여서 서문경은

늘 못마땅하면서도 눈감아 주어 왔다.

그런데 하필 그 미운 녀석이 이병아를 옆치기하듯 낚아채 가다니,

도무지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병아가 어떻게 해서 그런 보잘 것 없는 알량한 자에게

개가를 하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그녀가 괘씸하기도 했다.

좀 사람 같은 사내에게 개가를 했다면 심사가 이렇게까지 뒤틀리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서문경은 어떻게 해서 그들이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자세한 것을 축일념에게 캐어물어볼까 하다가,

에라 그만두자 하고 마음을 돌려 먹었다.

그가 그런 내막까지 알고있을 턱이 없고

또 자꾸 그러다가는 술판이 깨질 것만 같을뿐 아니라

한없이 기뻐야 할 오늘의 자기 심정이 엉망으로 구겨져버릴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술잔을 들어 또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그 잔을 축일념에게 불쑥 내밀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축일념, 잔 받으라구. 까짓것 세상에 여자가 이병아 하나뿐인가.

시끌시끌한 게 여잔데... 개가를 했거나 말거나 상관 없다구.

 자, 마시고, 이제부터 노래판을 벌이자구.

그따위 여자 하나 때문에 기분잡칠 것 없다구. 암, 없고 말고. 허허허...”

서문경이 그렇게 기분을 싹 바꾸어 유들유들하게 웃기 까지 하자,

무거웠던 분위기는 대번에 활짝 밝게 풀렸다.

과연 서문경이 대장부임에 틀림없다고 속으로 모두 조금 감탄도 하면서

다시 부어라 마셔라 흥겨워지기 시작했다.

노래판이 벌어지고 나중에는 춤판으로 이어져 해가 질 무렵까지 흥청거렸다.

그러나 서문경은 그렇게 겉으로는 대범한 척 큰소리를 치며 웃기까지 하고는

흥겹게 주연을 이끌어 나갔으나 마음 속 한구석에 이병아의 일이 괴롭게 달라붙어서

도무지 떨어지지가 않고 쿡쿡 아프게 쑤셔대는 듯해서 결국 해질녘이 되자

파장을 선언하고 이병아를 찾아가 보려고 기방을 나섰다.

계저가 무척 오래간만인데 주무시고 가야지 이런 법이 있느냐고 안타깝게 매달리며

만류를 했으나 서문경은 자도 내일밤에 와서 자지 오늘밤은 안되겠다며

기어이 뿌리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