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8) 모살(謀殺) <11~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8. 09:37

금병매 (68)

 

 

 

모살(謀殺) 11회 

 

 

 

 “어떤 점이 그렇던가 말해 보라구”

“................................”

 

 

“그저 보기에 그래요”

“그저 보기에 그렇다니, 그게 무슨 대답이야.

똑똑하게 말해! 어떤 점이 그렇게 보이더냐 말이야!”

서문경은 공연히 심사가 뒤틀리는 듯 언성을 높인다.

수춘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서문경을 힐끗힐끗 보면서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마님이 아저씨의 세숫물을 떠다주지 뭐예요.

오후에는 누워있는 아저씨의 다리를 주물러 주고요.

식사를 할 때도 마님이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서 아저씨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요.

그런 일을 화자허 아저씨때는 한번도 못봤거든요”

“그만! 알았다구”

서문경은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수춘이의 입을 틀어막듯이 말이다.

속이 뒤집히는 듯해서 서문경은 또 자작자음으로 거듭 잔을 비운다.

수춘이는 여전히 두려운 눈길로 서문경을 지켜보며 굳어져 앉아있다.

울화가 끓어오르는 속에다가 연거푸 술을 퍼부어서 그런지 서문경은

여느 때와 달리 벌써 핑 주기가 머리를 때리며 관자놀이가 화끈거린다.

가느다랗게 핏발이 서서 번들거리는 두 눈으로 수춘이를 쏘아본다.

공연히 그녀가 못마땅하다. 계집애의 주둥아리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서문경은 애써 지그시 두눈을 감는다.

취중이지만 심사가 고약하게 돌아간다 싶었던 것이다.

수춘이가 뭘 잘못했다고 옹졸하게 계집애를 미워하는 가 말이다.

수춘이를 불러냈을 때는 그런 솔직한 말을 들어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서문경은 커다랗게 숨을 들이켜 훅 내뿜고는 눈을 뜬다.

“수춘아”

목소리가 싹 바뀌어 낮고 부드럽다.

“예?”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너의 아줌마가 한일에 대해서 말이야”

수춘이는 말하기가 난처한 듯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잘했다고 생각하나?”

“아니요”

들릴듯 말듯 대답하며 고개를 가로 내젓는다.

서문경의 번들거리는 두 눈에 희색이 떠오른다.

“그렇지, 누가 들어도 너의 아줌마가 잘했다고 안할거야.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이야. 수춘이 너는 잘 알잖아.

네가 네 손으로 호두나무에 등불을 달았으니까”

수춘이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떨군다.

“그렇게 남몰래 좋아하던 사람이 곤경에 처하니까

등을 돌리고서 딴 남자한테 개가를 하다니, 괘씸하기 짝 없는 일이지. 안그래?”

말없이 수춘이는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인다.

“자, 그건 그렇고, 수춘아, 오래간만인데 술을 한 잔 따라다오”

 

 

 

모살(謀殺) 12회 

 

 

 

 서문경이 빈잔을 들어 살짝 앞으로 내밀자,

 

수춘이는 뜻밖의 일에 당황하여 좀 망설인다.

“어서... 진작부터 난 수춘이가 따라주는 술을 한번 마시고 싶었다구. 정말이야”

 

 

“어머”

수춘이는 살짝 얼굴이 붉어진다.

그 말이 어쩐지 야릇한 뜻으로 들렸던 것이다.

수줍은 듯 두 입술을 꼭 다물면서 그녀는 얼른 술병을 들어 살며시

일어나기까지 하며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따른다.

서문경은 그 잔을 단숨에 쭉 기분좋게 비운다.

그리고 잔을 수춘이 앞으로 내민다.

“자, 받아. 이번에는 내가 한잔 따라줄게”

“저는 아직 술을 못 마시는데요”

“아직 술을 한번도 입에 대보지 않았다 그말인가?”

“예”

“그렇다면 이제부터 배워야지. 수춘이도 벌써 열여섯살 아니야.

두어달 있으면 열일곱살이 되고. 맞지?”

“어머, 어떻게 제 나이를...”

약간 놀라면서 수춘이는 가만히 두손을 내밀어 잔을 받는다.

그 잔에 서문경은 술을 따라주며 말을 잇는다.

“다 기억하고 있지. 언젠가 내가 네 나이를 물어본 적이 있다구. 거억안나?”

“글쎄요....”

“내가 너를 두 번째 봤을때였다구.

처음본 것은 너의 아줌마 심부름으로 우리 집에서 주연이 벌어지고 있을 때

네가 꽃과 떡을 선물로 가져왔을때고,

그다음에 언젠가 내가 잠시 너희 집에 들렀을때 두 번째 봤다구.

그때 내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까,

몇 살이나 돼보이느냐고 네가 되물었잖아”

“어머, 정말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서문 대관인님”

“기억력이 좋다기보다도 내가 수춘이를 그때부터 마음에 새겨두었다

그말이라구. 너무 귀여워서 말이야”

“어머나. 호호호...”

수춘이는 그만 귀밑까지 발그레 물들며 몹시 수줍으면서도 무척 좋은 듯한

그런 웃음을 웃고는 얼른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서문경은 재미있다는 듯이 두 눈에 야릇한 미소를 번들거리며

점잖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한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이렇게 수춘이하고 단둘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게 됐지뭐야.

정말 기분 좋다구. 자, 고개를 들고 어서 한잔 마시라구. 그리고 잔을 나한테 달라구”

그 말에 수춘이는 다소곳이 고개를 들어 고운 눈매로 힐끗 서문경을 한번 바라보고는

두손으로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간다.

찔끔 맛을 보듯 한모금 마시고는 콧등을 온통 찡그린다.

그러면서도 살짝 미소를 짓는다.

 

 

 

모살(謀殺) 13회 

 

 

 

 수춘이의 그런 표정이 몹시 귀엽고,

 

풋풋한 처녀티도 느껴져서 서문경은 싱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묻는다.

“맛이 어때?”

 

 

“새콤해요”

“새콤해? 허허허... 첫 술맛이 새콤하다면 앞으로 마실 소질이 충분한데...

자, 어서 쭉 들이켜고 잔을 나한테 달라니까”

“예”

수춘이는 선뜻 대답을 하고, 무슨 거창한 일이라도 시도하는 듯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두 눈을 찔끔 감으며 잔을 쭉 기울여 발칵발칵 단숨에 목구멍으로 다 넘겨버린다.

“아으-”

목을 살짝 움츠리며 바르르 떤다.

그리고 목구멍이 얼얼하기라도 한 듯 입을 약간 벌리고서 혀를 내두른다.

“야- 잘 마시는데... 소질이 있다니까”

“자, 잔 받으시라구요”

수춘이는 잔을 두 손으로 서문경에게 권하고서 술을 찰찰 넘치도록 따른다.

그 잔을 비우고나서 서문경은 다시 수춘이 앞으로 내민다.

“한 잔 더하라구”

“어머, 과해요”

그러면서도 수춘이는 마지못하는 듯 또 잔을 받는다.

서문경은 속으로 야, 이것봐라,

 여자 술꾼 하나 더 생기겠군, 하고 웃으며 술을 따라준다.

 이번에는 잔에 절반 정도만 받아서 수춘이는 홀짝홀짝 음미하듯 마신다.

그 두 번째 잔을 비우고서 서문경에게 다시 건넨 다음

마른 안주를 집어 씹고있던 수춘이는 별안간 호들갑을 떨듯이 말한다.

“어머나, 어쩌죠? 나 어지러워요”

처음으로 마신 술이 왈칵 취해오르는 모양이다.

“왜? 기분이 나쁜가?”

서문경은 약간 당황하며 묻는다.

“아니요, 기분은 오히려 좋은데요. 붕 뜨는 것 같다구요. 히히히...”

“그렇다면 상관없다구.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그런 기분이 되는 거라구.

붕 뜨는 것 같은 그 기분에 술을 마시는 거지 뭐”

“히히히 히히히...”

정말 취기가 심한듯 곧잘 히들히들 웃는 수춘이의 발그레 물든

눈 언저리가 묘하게 아름답다.

서문경은 잔에 남은 술을 훌쩍 입안에 털어넣고는 성큼 일어선다.

“자, 어지러운데 저기 침상에 가서 누우라구”

“히히히 히히히...”

의자에서 일어서는 수춘이는 정말 어지러운듯 비실 한쪽으로 기울어지려 한다.

얼른 서문경이 다가들어 부축한다.

수춘이를 침상쪽으로 데리고가던 서문경은

그만 그녀를 번쩍 옆으로 들어다가 침상에 눕힌다.

그리고 가서 방문을 안으로 걸어버린다.

 

 

 

모살(謀殺) 14회 

 

 

 

 방안에서 문고리를 걸어버리는 기척이나자, 바깥에서 엿듣고 있던 왕파는

“흥, 저 색골 또 계집애 하나를 먹어치울 모양이지. 제 버릇 개 못준다니까.

 

하필 왜 남의 안방에 와서 내가 자는 침상에서 저 지랄이야”

 

 

몹시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속으로 투덜거린다.

그러면서도 바짝 더 귀를 방문 틈으로 갖다대고는 입안의 침을 가만히 넘긴다.

욕심 같아서는 방문을 빼꼼히 열고 엿보았으면 싶으나 안으로 걸어버려서

안타까운 그런 표정이다.

곧 수춘이의 놀라운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나, 왜 이러세요?”

서문경이 다가서서 옷이라도 벗기는 모양이다.

점잖은 그의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가만 있으라구. 수춘이가 좋아서 그러잖아”

“아이, 부끄럽다구요”

“부끄럽긴... 나는 말이야, 너의 아줌마보다 수춘이 너를 더 좋아한다구.

 정말이야. 너의 아줌마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장죽산이란 놈한테 갔으니까,

나도 너의 아줌마한테 등을 돌리고 수춘이 너를 사랑하려고 그런다구”

“호호호...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이라니까”

“남자는 다 거짓말쟁이라 그러던데요”

“허허허... 안 그렇다구.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아주머니들이요. 어머, 간지러워라. 히히히...”

아마 수춘이의 유방이라도 애무해대는 모양이다.

잠시 조용하다가 다시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수춘아”

“예?”

“너 아직 남자를 모르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 말뜻을 모르는 걸 보니 새것인 모양이구나”

“새것이라뇨?”

“허허허... 됐어. 자, 그럼...”

“어머 어머, 싫어요”

이제 아랫도리를 벗기는 듯 수춘이의 목소리가 꽤나 호들갑스럽다.

왕파는 자기도 모르게 또 꿀꺽 침을 한덩어리 삼킨다.

“가만 있으라니까. 사랑하려면 옷을 다 벗어야 되는거라구. 내가 잘 가르쳐 줄테니까”

“아이 부끄러워. 히히히...”

“자, 자...”

잠시 또 말이 없다.

수춘이의 옷을 다 벗기고서 이번에는 서문경이 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는 모양이다.

그런 기척이 어렴풋이 들린다.


“어머나, 아으-”

“음-”

수춘이의 교성(嬌聲)과 서문경의 신음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린다.

알몸이 알몸을 껴안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그때 가게 쪽에서

“할멈 없소? 차 한잔 하자구요”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살(謀殺) 15회 

 

 

 

 왕파는 바야흐로 짜릿한 재미를 맛볼 판인데,

 

재수없게 하필 안 오던 손님이 이때 찾아올게 뭐냐 싶어

 

못마땅하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도리없이 가게쪽으로 나갔다.

손님 두 사람에게 내놓으려고 차를 달이면서도 왕파는

 

안방의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가 않아 초조한 느낌이었다.

 

부디 그들의 그 짓거리가 빨리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차를 속히 달이려고 냅다 활활 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나 서둘면 서둘수록 차가 속히 끓어올라 주질 않는다.

 

참 묘한 일이다.

 

 

“이놈의 차 속썩이네. 빨리 끓어라 좀 빨리...”

공연히 혼자서 짜증까지 부린다.

한참만에 두 손님 앞에 차를 내다주고,

왕파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방문 곁에 바싹 붙어섰다.

벌써 일이 끝났는지 방안이 조용하다.

재미있는 대목을 놓쳐서 김이 팍 새버린 것 같아 왕파가

가만가만 입맛을 다시는데,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춘아, 기분이 어때? 좋지?”

“예, 히히히... 술이 말짱 깨버린 것 같애요”

“그래? 허허허... 사랑이란 바로 이렇게 하는 거라구”

“알았다구요. 히히히...”

“수춘이 아주 새것이던데...”

“난 몰라요. 새것이 일제 헌것이 돼버렸지 뭐예요”

아까는 새것이 뭔지 잘 모르는 듯하더니,

이제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왕파는 깜찍한 계집애라는 듯이 살살 혀를 내두른다.

“사랑을 어떻게 하는 건지 가르쳐주니까 고맙단 소리는 안하고...”

“아야야...”

서문경이 허벅지라도 한 번 꼬집어준 모양이다.

“자, 이제 일어나서 옷을 입어야지”

“싫어요. 그냥 이대로 누워있을 거예요”

“그럼, 나 먼저 갈까?”

“어머, 그런 법이 어딨어요”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라구. 이집 할멈한테 미안하잖아.

남의 안방을 오래 차지하고 있으면...”

흥! 하고 왕파는 가볍게 코방귀를 뀐다.

언제부터 서문경이가 그렇게 염치가 있어서 미안한 줄을 다 알았느냐는 듯이 말이다.

마지못하는 듯 수춘이가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입는 기척이 어렴풋이 들린다.

서문경은 먼저 옷을 다 입은 듯 탁자쪽으로 걸어와서 의자에 앉는 것 같다.

이제 재미있는 대목은 다 지나갔지만,

또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끝까지 엿들어보려고

그대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서있는데 가게 쪽에서,

“할멈, 우리 가요. 얼만가요?”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왕파는 이제는 미련없이 붙어섰던 자리에서 살며시 떨어져나가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게로 가만가만 걸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