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70) 모살(謀殺) <21~2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8. 09:49

 

금병매 (70)

 

 

 

모살(謀殺) 21회

 

 

 “왜 거기 앉았어?”

서문경은 반말로 불쑥 내뱉는다.

 

마치 이병아가 지금도 여전히 자기의 여자인 것처럼.

 

 

 




이병아는 무슨 큰 죄인이라도 되는 듯 서문경의 그런 어투에도 조금도 불쾌한 기색이 없이

오히려 죄송하고 두려운 듯한 그런 눈길로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다.

서문경이 왕파에게 말한다.

“할멈, 오늘도 안방을 좀 빌리자구”

“예, 그러시죠”

왕파는 내실을 좀 치우려고 얼른 안으로 사라진다.

서문경은 아무데나 바로 곁에 있는 의자에 잠시 걸터앉는다.

그리고 싸늘한 눈초리로 저만큼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이병아를 말없이 쏘아본다.

이병아는 그 차가운 시선을 피할 생각을 않고, 가만히 마주보고 있다가,

“미안해요”

들릴 듯 말 듯 한마디 하고는 살짝 고개를 떨군다.

“뭐라구? 미안해? 그런 소리가 입에서 나와?”

서문경은 그다지 높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저주스러운 듯한 어투로 쏘아붙인다.

내실을 대강 정리하고서 왕파가 가게로 나오며,

“자, 들어가시라구요”

하자, 서문경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이병아에게 명령조로 내뱉는다.

“방으로 가자구”

그리고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음을 떼놓는다.

“여기서 얘기하자구요”

서문경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안돼. 이리 따라와”

“손님이 아무도 없잖아요. 여기서 얘기해요”

“안된다니까. 따라오라면 따라와 빨리!”

서문경은 왕파가 있거나 말거나 마치 자기 마누라에게 역정을 내듯 언성을 높인다.

이병아는 조금 주저하다가 도리없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실의 탁자에 마주앉자,

잠시 서문경은 말없이 증오가 가득 서린 그런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고,

이병아는 두려움에 떨면서 용서를 비는 듯한 눈길로 가만히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병아가 먼저 그 숨막히는 듯한 긴장을 감내할 수가 없는 듯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해요”

“듣기 싫다구!”

서문경은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이병아는 두 입술을 꼭 다물며 살그미 두 눈을 감아버린다.

그런 이병아에게 냅다 퍼붓듯이 서문경은 뇌까려 댄다.

“도대체 사람이 그럴수가 있느냐 말이야.

그렇게 나하고 언약을 해놓고서

내가 곤경에 처했다고 해서 싹 돌아서서 딴데로 가버리다니,

그게 사람이 할짓이야?

내가 그런 처지가 아닐때 변심을 했다면 또 모른다구.

괘씸하고 분해서 난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모살(謀殺) 22회 

 

 

 

 이병아는 눈을 감은 채 약간 상기된 듯한 얼굴로 꼼짝도 하질 않고 앉아있다.

 

서문경은 제풀에 감정이 격해올라 큰 숨을 한번 몰아쉬고는 다시 사정없이 퍼붓는다.

“더구나 다른 놈도 아닌 바로 장죽산이란 녀석한테 개가를 하다니 더욱 참을 수가 없다구.

 

장죽산이 그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가난뱅이 의생이지만,

 

 어쨌든 내 사업에 방해가 되는 놈이라구.

 

 내가 늘 그놈을 못마땅하게 여겨 왔지만,

 

인생이 불쌍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구.

 

그런데 하필 그놈을 골라서 시집을 갈 게 뭐냔 말이야.

 

더구나 결혼을 한 다음 두 사람의 집을 팔아 돈을 합해서

 

새집을 사가지고 새로 개업을 했다면서?

 

당나귀도 한 마리 사고...

 

둘이서 짜고 이제 본격적으로 내 사업을 방해하려고 나섰군.

 

나를 배신한것도 모자라서 그래 나한테 해까지 끼치려고 작정한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리라 마음먹었던 이병아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번쩍 눈을 떴다.

도저히 그냥 듣고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 말이나 하면 다 말인가요?

 아무리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어거지로 사람을 몰아세우는 법이 어딨어요.

내가 그렇게까지 나쁜 여잔줄 아나요? 너무해요. 너무하다구요”

오히려 이번에는 이병아가 공세로 나가는 셈이다.

“너무하다구? 뭐가 너무하다는 거야?

내말이 틀린 말이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지 뭐야”

“내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용서를 빌려고 이렇게 나온 거예요.

그러나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 당신도...”

아차 싶은 듯 이병아는 얼른 말을 멈춘다.

‘당신’이라는 말이 무의식중에 입에서 나왔는데,

이제 결코 서문경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을 써서는 안된다 싶었던 것이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와 가까워지기 이전의 호칭을 사용해서 말을 잇는다.

“서문 대관인님에게도 책임이 있다구요”

그러자 서문경은 ‘당신’이라는 말을 ‘서문대관인’으로 정정한 것이

몹시 얄밉고 속이 상하는 듯 냅다 큰소리로 내뱉는다.

“책임이 있기는 나한테 무슨 책임이 있다는 거야? 어디 말해보라구”

“내가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마음이 변해서 장죽산 그이한테 간 줄 아세요?

서문 대관인이 여러 날 찾아오질 않아서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수춘이를 댁으로 보내봤고,

또 내가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다구요.

그런데 대문이랑 점포 문이 다 닫혔지 뭡니까.

집에 돌아온 나는 그날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서문 대관인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것만 같아서 잠이 와야 말이죠”

 

 

 

모살(謀殺) 23회 

 

 

 

 서문경은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은 그런 굳어진 얼굴로 팔짱을 끼고 앉아서 듣고 있다.

 

이병아는 차츰 감정이 복받쳐오르는 듯 약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혼자서 얼마나 울었다구요. 내 팔자가 왜 이런가 싶어서요.

 

며칠 밤을 그렇게 잠을 설치고나니 머리가 무겁고 어지럽더니,

 

나중에는 정신까지 이상해졌지 뭐예요.

 

그래서 그런지 밤으로 서문대관인님이 나타나서...”

 

 




이병아는 말을 어물어물 흐리고서 말머리를 바꾸어 계속 지껄인다.

“상사병이 뭔지 말로만 듣다가 내가 실제로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지 뭐예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더라구요.

밤마다 찾아온 사람이 서문 대관인님인줄 알았더니,

나중에 보니까 글쎄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백여우가 아니겠어요.

어찌나 놀랐는지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의원이 와서 침을 놓고 있더라니까요”

“음-”

서문경은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수춘이도 무엇에 홀린 사람 같더라는 얘기를 하더니

그런 괴상망측한 일이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도 겪은 바가 있는,

지붕위에서 날뛰던 그 밤여우에 틀림없고,

또 그 여우가 다름아닌 화자허의 넋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왜 그 여우가 화자허의 모습으로 나타나질 않고,

자기의 모습으로 둔갑을 했는지,

그 점이 궁금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언짢았다.

“장죽산 그이를 그렇게 해서 만나게된 거라구요”

“그렇다고 병자가 의생하고 붙어버리는 건가?

병자는 의생에게 치료를 받으면 그만인 것이지, 왜 개가까지 했느냐 그 말이야”

“내가 백여우에 씌어서 일어난 병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이가 그 집에서는 완치가 어렵겠다면서 자기 집으로 거처를 옮기라는 거예요.

병자가 의생의 말을 안들을 수가 있나요?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다 싶어서 그 집으로 옮겨갔죠”

“그래서 같이 살자는 말까지 들어주었다 그건가? 흥! 핑계가 좋군”

서문경은 코방귀를 퉁 뀌며 빈정거린다.

이병아는 이제 가기가 할말은 다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어 버린다.

“마음이 변해서 나를 배신하고 장죽산이란 놈한테 갔다고 왜 말을 못해?

 마음에도 없는데 그럼 억지로 그놈하고 혼례까지 올렸단 말이야, 뭐야?”

그러자 이병아는 기왕에 꺼낸 말 솔직하게 다 털어놓아 버려야겠다 싶어서

다시 입을 연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이 집에 가있는 동안에 이제야 나한테 꼭 어울리는

남자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이도 상처를 해서 혼자 사는 몸이고, 나도 과부가 된 몸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정직하고 순박해서 마음에 들었지 뭐예요.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모살(謀殺) 24회 

 

 

 

 “뭐라구? 비록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순박해?”

서문경은 버럭 언성을 높여 내뱉는다.

 

마치 자기를 빗대어 말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이병아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장죽산이란 놈이 정직하고 순박하다니, 배꼽이 다 웃을 노릇이군.
 
그놈은 남 헐뜯기를 좋아하고 여기와서는 이 말하고,
 
저기 가서는 저 말 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놈인데 그런 줄을 모르고서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그래 정직하고 순박해서 반했다 그건가?
 
반해서 집까지 팔아 그놈한테 바친 모양이지.
 
왕진을 다닐 때 타고 다니라고 당나귀도 사주고...”

이병아는 입을 떼지 않는다.
 
서문경의 감정 어린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한다는 것은
 
그의 약을 올리는 결과밖에 되지가 않는다 싶었던 것이다.

“왜 말이 없지? 응? 내가 듣기는 말이야,
 
장죽산이란 놈보다 당신이 훨씬 더 사랑을 쏟는다던데...”

“누가 그래요?”

자기도 모르게 또 이병아는 입이 열리고 만다.

“수춘이가 그러지 누가 그래.
 
식사할 때 반찬을 집어서 그 녀석 입에다가 넣어주기까지 한다면서?”

“하하하...”

이병아는 그만 웃음이 나와 버린다.
 
그녀는 얼른 웃음을 거두고서 한결 부드럽고 애원하는 그런 어조로 말머리를 돌린다.

“좌우간 일이 그렇게 됐으니 이해하시고,
 
나를 잊어주시라구요. 다 운명인걸 어떻게 해요”

“운명은 무슨 운명... 난 운명 같은 것 인정하지 않아.
 
운명도 뜯어고치면 되는 거라구. 절대로 난 물러설수가 없어”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이미 물은 엎질러진 물인데...”

“엎질러진 물이 아니라구. 설령 엎질러진 물이라 하더라도 도로 퍼담아야 돼”

“하하하...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웃지 말라구. 남은 화가 나서 못견디겠는데 뭐가 좋아서 자꾸 웃는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나와의 언약대로 도로 나한테 와야 된다구.
 
장죽산이란 놈을 버리고, 나한테 돌아오라구”

그 말에 이병아는 서슴없이 싹 자르듯 대답한다.

“안돼요. 그건 말도 되지가 않는다구요”

“어째서 말도 되지가 않는다는 거야?”

“혼례식까지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됐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요?”

“왜 없어? 이혼이라는 것도 모르나?”

“난 이혼 같은 건 몰라요. 절대로 그이를 버릴 수는 없다구요”

그러자 서문경은 매섭게 이병아를 쏘아보다가 그만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며 내뱉는다.

“좋아, 그렇다면 도리가 없지. 내 방법으로 두 연놈을 갈라놓는 수 밖에...”
 

 

 

 

모살(謀殺) 25회 

 

 

이병아는 당황한다. ‘내 방법’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반금련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대를 독살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방법이란 바로 그런 뜻을 내 풍기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디 두고 보라구. 어떤 꼴이 되는가...”

 

 


서문경은 한 번 더 내뱉고는 성큼성큼 방문 쪽으로 걸음을 떼놓는다.

이병아는 얼른 일어나 후다닥 다가가서 그의 한쪽 소매를 덥석 잡는다.

“가시지 말라구요. 화 나셨어요?”

“이것 놓으라구!”

냅다 뿌리친다. 그러나 이병아는 한사코 못가게 잡고 늘어진다.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해요. 난 죽어버리고 말거예요”

“죽고 싶으면 죽으라구”

“어머, 여보, 그게 진정이에요?”

이병아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그만 ‘여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는 그것을 정정하려고 들질 않는다.

서문경이 가만히 이병아를 바라보고 서있다. 여보라는 그 호칭 때문인 듯하다.

“내가 죽으면 좋겠어요?”

“...”

“정말 당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면 내가 죽을게요.

그러면 모든 문제는 다 끝나는 거 아니에요.

 맞죠? 왜 대답이 없어요. 대답을 해보시라구요”

그러면서 그만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녀의 흐느낌이 멎질 않고 정말 슬픔이 복받쳐오르는 듯

어깨까지 약간 들먹이면서 울자 서문경은,

“음-”

무거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마지못하는 듯 도로 의자에 가서 앉는다.

이병아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잠시 실컷 운다.

자기의 신세 한탄이 절로 눈물이 되어 줄줄줄 흘러내렸던 것이다.

그녀가 우는 동안 서문경은 심정이 멍멍하고 약간은 측은한 생각도 드는 듯

입을 삐딱하게 다물고서 가만히 딴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울음을 그친 이병아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에 젖은 얼굴을 좀 수습하고서

가만히 도로 앞에 와서 앉자,

서문경은 낮으면서도 무게가 있는 그런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요?”

비로소 경어를 쓴다.

아직 복받쳤던 설움이 깨끗이 가라앉지 않은 이병아는

감정을 좀 진정시킨 다음 입을 연다.

“나를 아직도 사랑하신다면 그렇게 억지로 돌아오라고 하시지 말고,

 내 행복을 빌어주는 게 옳은 일이 아니겠어요?

자기의 행복을 찾아간 여자를 기어이 도로 빼앗아 온다는 것은

그 여자의 행복을 짓밟아 버리는 일이지 뭐예요.

그게 그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걸까요?”

“흥, 말 잘하는군”

서문경은 코방귀를 뀌면서 도로 반말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