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3) 재혼(再婚) <41~4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7. 20:49

금병매 (63)

 

 

 

재혼(再婚) 41회 

 

 

 

 이튿날 이병아로부터 여우에 관한 그동안의 얘기를 자세히 들은 장죽산은

 

지금까지 믿지 않았던 괴이한 일이 실제로 있는가보다고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간밤에 여우가 나타났다고 그녀가 비명을 질렀을 때

 

자기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으나

 

그전에 마당에 서있을 적에 분명히 지붕 위에서 소리가 났고,

 

여운지 뭔지 희끗한 것이 눈에 띄기까지 했으며,

 

그것이 사라지더니 한 가닥 바람 같은 것이 지붕 위로부터 불어내려 왔었다.

 

그리고 방안에서도 이상한 냉기가 자기의 등골을 스치는 듯했고

 

그것이 방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곧 꺼질 듯이 나부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불가사의한 그런 현상을 자신이 직접 겪은 터이라,

장죽산은 이병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를 단순히 과부병으로만 치료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과부병으로 정신이 허해진 데다가 괴물의 정령(精靈)에게 괴롭힘을 당하여

착란(錯亂)증세에 시달리는 것 같으니, 침 시술과 약 처방을 달리해야 되리라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얘기한대로 지붕 위의 소리가 여우의 소동에 틀림없고,

또 그것이 둔갑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 매일 밤 그녀를 겁탈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대로 이집에 살아서는 완치가 불가능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장죽산은 어디까지나 의생의 입장에서 그녀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부인, 내 말을 잘 들어보세요.

부인의 병은 아무래도 예사로운 병이 아닌 것 같애요.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해서 나타나는지 어떤지는 내 눈에는 안 보이니까 알 수가 없으나,

좌우간 그런 무슨 좋지 않은 헛것에게 시달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요.

새로 잘 진맥을 해보니 그게 나타나지 뭐예요.

그러니까 집을 옮기도록 하세요.

이집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가 없을 것 같다니까요.

앞으로도 매일 밤 그 헛것에게 시달림을 당한다면 잘못하면

부인이 돌아버릴 지도 모른다구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이병아는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연다.

“별안간 집을 어떻게 옮기죠?

이 집을 팔아야 다른곳에 집을 살 수 있을텐데 말이에요.

집이 그렇게 쉽게 팔리나요”

“그럼 말이죠 집이 팔릴 때까지 우선 우리 집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어떨까요?”

뜻밖의 말이라는 듯이 이병아는 얼른 대답을 안하고, 장죽산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런 병은 하루라도 속히 손을 써야지, 차일피일하면 큰일이라니까요.

오늘밤에라도 부인이 정신 이상이 안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 말입니다”

“아이고... 그럼 그렇게 좀 해주시겠어요? 미안해서 어떻게 하죠?”

이병아의 얼굴에 정말 고맙고 미안한 듯한 표정이 떠오른다.

 

 

 

재혼(再婚) 42회 

 

 

 

 그날로 이병아는 집이 팔릴 때까지 수춘이를 혼자 남겨놓고,

 

자기는 장죽산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큰 가구는 그대로 놓아두었으나, 일상 용구들은 모조리 짐꾼을 시켜 옮겼다.

 

우선 일차로 간단한 이사는 한 셈이었다.

장죽산의 집은 이병아의 집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누옥(陋屋)이었다.

 

방이 두 갠데, 하나는 약장이 놓여있는 약방이었고,

 

다른 한개는 거실 겸 침실로 쓰고있는 안방이었다.

 

홀아비의 집이라 정돈도 소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엉망이었다.

 

 

장죽산은 서둘러 안방을 소제해서 이병아에게 혼자서 쓰도록 하고

자기는 약방에서 기거하기로 했다.

곧잘 집을 처닫아 놓고, 침통을 비롯한 간단한 일상용구가 든 괴나리봇짐을 메고서

방랑객처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기 일쑤였던 장죽산은 죽은 아내와

너무나 닮은 여자를 자기 집에 데리고 오자,

비록 그녀가 병자이기는 하지만 마치 새로 장가를 든 것처럼 얼굴에 활짝 화색이 돌며

곧잘 싱글벙글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를 치료하는 것이 즐겁기 그지없는 사람 같았다.

말하자면 의생의 입장에다가 홀아비의 심정이 절반 이상 가미된 셈이었다.

침을 놓고, 손수 약을 달이고 해서 정성껏 치료를 하는 터이라

이병아의 병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서 사오일 후에는 거의 완쾌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건강을 되찾은 이병아는 장죽산의 고마움에 보답을 하려는 듯이 조석으로

자기가 손수 식사를 마련했고, 집안 소제를 했으며, 자기의 빨래를 할 때

그의 세탁물도 함께 빨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장죽산의 안사람 노릇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사자가의 집이 하루속히 팔려서 빨리 다른 곳에

집을 구해 나가야 될텐데 하고 속으로 초조해 하였다.

이곳으로 옮겨온지 이레째 되는 날 그녀는 수춘이가 혼자 지키고 있는 집을 찾아가 보았다.

더러 집을 보러오는 사람은 있으나, 선뜻 사려고 대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값을 시세보다 낮추어 버렸고,

풍노파에게 속히 팔아주면 구전을 톡톡히 주겠으니 힘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녀가 빨리 집을 팔려고 사자가에 다녀왔다는 것을 안 장죽산은

이제 의생의 입장을 싹 걷어치워 버리고, 순전히 홀아비의 처지에서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그동안에도 밤으로 그녀가 혼자 자고있는 안방으로 건너가

결판을 내버리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치솟곤 했으나, 그는 참아냈다.

자기 집으로 옮겨와 있으니, 말하자면 자신의 우리 안에 들어온것과 마찬가진데,

병자를 서둘러 덮쳐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의생답지 않은 짓이고,

또 아내로 삼으려는 처지에서는 떳떳한 방도가 못된다 싶었던 것이다.

병이 나은 다음 적당한 기회를 보기로 했는데, 그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었다.

  

 

 

재혼(再婚) 43회 

 

 

 

 그날 저녁 장죽산은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주며 가만히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밤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병아를 완전히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녀의 몸을 가져버릴 뿐 아니라,

 

서문경에게 개가하려는 생각을 단념하고, 자기와 결혼을 하도록,

 

다시 말하면 그 마음까지 자기쪽으로 돌이켜야겠다는 각오였다.

방으로 들어서는 그의 표정에서 대뜸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이병아는 슬그머니

 

긴장이 되며 다소곳이 앉아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의자에 궁둥이를 내린 장죽산 역시 잠시 아무 말이 없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을 피하듯 이병아는 살짝 고개를 떨구었다가 들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래 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집이 속히 팔려야 딴데로 옮길텐데, 걱정이에요”

그 말에 장죽산은 냅다 깨를 내젓는다.

“폐라니, 무슨 그런 말을 다...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시라구요.

부인의 병이 의외로 빨리 나아서 나로서는 그게 기쁠 따름이에요”

“다 의원님 덕택이죠 뭐.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그 은혜는 잊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의원님,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라니, 뭔데요?”

“다름이 아니라 저... 집이 팔려 딴데로 이사를 할때까지

계속 좀 이곳에 있게 해주실 수 없을는지요?

병이 나았는데, 도로 그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거기 들어가면 또 병이 도질 것 같거든요”

그러자 장죽산은 그만,

“허허허...”

웃음이 나와 버린다.

얼른 웃음을 거두고서 그는 바짝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부인”

“예?”

“내가 할말을 부인이 하시는구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병이 나았지만, 부인이 계속 내 집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말입니다”

뜻밖의 말에 이병아는 약간 놀란 사람처럼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부인, 정말입니다.

어디로 옮길 생각을 말고, 계속 내집에 있어 주세요. 언제까지나 말입니다”

“어머나...”

“진정입니다. 그냥 입으로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니까요.

나는 부인을 처음 봤을때 속으로 깜짝 놀랬지 뭡니까”

“놀래다니, 왜요?”

“글쎄, 내 죽은 아내와 너무나도 닮았지 뭐예요.

죽은 그 사람보다 부인이 훨씬 미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몹시 닮았어요.

그래서 나는 속으로 오늘이 바로 내가 기다렸던 운명의 날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었다구요”

 

 

재혼(再婚) 44회 

 

 

 

 “운명의 날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이병아는 그 말의 의미를 짐작하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묻는다.

 

장죽산은 마치 첫사랑을 고백하는 총각 같은 그런 진지한 표정과 어투로 말을 잇는다.

 

“나는 아내가 죽은 뒤로 마음을 걷잡질 못해서 늘 술을 마시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기 일쑤였어요.

죽은 아내와 닮은 여자라도 있었으면 하고 말입니다.

그처럼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었지 뭡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부인이 내 죽은 아내와 너무나도 닮았지 않았겠어요.

첫눈에 그만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 뭐예요. 가슴이 두근거려 애를 먹었다구요”

“어머나, 그랬어요?”

이병아는 살짝 미소를 짓는다.

결코 싫지가 않은 것이다.

자기를 보고 첫눈에 가슴이 두근거렸다는데,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속마음은 그저 재미있다 싶을 뿐이다.

“그게 바로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고 뭐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부인”

“호호호...”

“왜 웃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난 그때 이미 속으로 부인을 거어이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했다구요”

“어머...”

이병아의 두 눈이 약간 휘둥그래진다.

꽤나 당황하는 기색이다.

“정말입니다, 부인. 나는 이제 부인없이는 살 수가 없다구요.

그러니까 부디 나와 결혼을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부인”

장죽산은 그만 자기도 모르게 이병아 앞에 털썩 두 무릎을 꿇고 만다.

“어머나, 이러지 마시라구요”

“진정입니다. 내 심정을 알아주세요.

나도 혼자고, 당신도 혼자몸이니 잘 만났지 뭡니까”

“안돼요. 나는 이미 정해놓은 자리가 있다구요”

“서문경이 말인가요?”

어떻게 아는가 싶은 듯 이병아는 약간 놀랄 뿐 말이 없다.

“맞죠? 부인, 내 말을 들어보시라구요.

서문경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하고 그에게 개가를 하려는 겁니까?

마누라가 벌써 다섯이나 있는 사람이잖아요.

부인이 여섯 번째로 들어갈 모양인데 그래가지고 행복할 것 같애요?

어림도 없는 소리죠. 부자면 뭘 합니까. 사람이 좋아야지요.

 다섯 번째 여자를 들여앉힐 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시나요?

 반금련이 말입니다.

그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글쎄 그 남편인 불쌍한 난쟁이 행상

무대를 독살해 죽였지 뭡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알고있는 사실이라구요. 그런 무서운 사람이란 말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병아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며 가볍게 몸을 떤다.

 

 

 

재혼(再婚) 45회 

 

 

 

 장죽산은 기왕에 얘기를 꺼냈으니 모조리 쏟아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침을 한 덩어리 꿀꺽 삼켜 목구멍을 축이고는 말을 잇는다.

“무서운 사람일 뿐 아니라, 서문경은 비열하고 간악한 사람이기도 하다구요.

 

아시겠어요? 현청에 드나들면서 자기 사업에 방해가 되거나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관원을 시켜 여지없이 골탕을 먹일 뿐 아니라,

 

곧잘 송사에도 끼여들어 돈을 받고서 잘못한 쪽이 오히려 이기도록 해주지 뭡니까.

 

그리고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는 그 사람이 알거지가 되도록 교묘히 쥐어짜기도 하고요.

 

인정도 사정도 없는 지독한 사람이라니까요”

 

 

“그만하시라구요”

이병아는 듣기가 심히 괴로운 듯 잔뜩 이맛살을 찌푸린다.

“부인, 한가지만 더 알려드릴게요. 들어보세요.

부인은 아마 남편의 탈상을 하고서 서문경에게 개가할 생각인 모양인데,

지금 서문경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압니까?”

“아니, 그럼 그이에게 무슨 일이...”

“아직 일이 닥쳐오지는 않은 모양인데, 아마 미구에...”

“무슨 일인데요? 어서 말씀해 보세요”

그녀의 표정이 바짝 초조해진다.

“동경에 있는 양제독이 서문경의 친척이랍니다.

그런데 그 양제독이 얼마 전에 탄핵을 받아 옥에 갇혔다는 거예요.

국사범이니가 재판이 끝나는대로 일가친척들도 모조리 잡혀가게 됐지 뭡니까.

물론 서문경이도 붙들려가는 겨죠”

“어머나,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이고 말고요. 현청에 내 가까운 친구가 있는데, 친구한테서 들은 말이라니까요”

이병아는 그만 안색이 파랗게 질려 버린다.

“그런 신세가 됐기 때문에 요즘 서문경이는 집과 약국을 처닫아 버리고

찍소리도 못하고 들어앉아 있다고요.

집을 새로 고친다던 공사도 다 중단하고서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볼장 다 본거나 마찬가지라니까요.

그런 형국인데, 부인은 아직 혼자서 꿈을 꾸고 있지 뭐예요.

그에게 개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문경이가 지금도 부인을 맞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으냐 말이에요.

어림도 없다구요. 설령 개가를 한다 하더라도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그와 함께 붙들려가도 좋다 그건가요?

불을 보고 뛰어드는 어리석은 나방이 같은 짓이라구요.

안그래요? 부인, 생각해 보세요”

이병아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그만 눈앞이 아찔해진 듯 입을 살짝 힘없이 벌린 채

초점이 흐릿한 두 눈으로 촛불을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다.

여전히 두 무릎을 꿇은 채 장죽산은 그녀의 하얗고 예쁘장한 손 하나를 그만 덥석

두 손으로 싸잡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을 하듯 말한다.

“부인, 그러니까 부디 서문경이를 단념하고, 나하고 결혼해 주세요.

나는 이제 당신 없이는 못살 것 같애요. 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