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5) 재혼(再婚) <51~54회>

오늘의 쉼터 2014. 6. 27. 21:10

 

금병매 (65)

 

 

 

재혼(再婚) 51회 

 

 

 

 “이리 좀 앉아봐요”

장죽산은 병자 진찰용 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병아는 마치 의생 앞에 진맥이라도 받으려는 사람처럼 그 의자에 다소곳이 앉는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그 의자를 뒤로 물린다.

장죽산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것이다.

장죽산이 묻는다.

“집이 팔렸으니 이제 내 집으로 짐을 다 옮겨오는 거죠?”

이병아는 톡 쏘듯이, 그러나 약간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이 좁은 집에 어떻게 짐을 다 옮겨온단 말이에요. 어디 놓을 데도 없잖아요”

그 말에 장죽산은 그만 온 얼굴이 활짝 밝아진다.

자기의 청혼을 받아들인 여자의 말투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겠어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병아는 그 대답은 나중으로 미루고, 불쑥 엉뚱한 말을 꺼낸다.

“내가 한가지 물어보겠는데요, 의원님은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죠? 맞죠?”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좋아서 결혼을 하자는게 아니라, 죽은 마누라 생각 때문에 그러는거죠?

 내가 의원님의 죽은 마누라와 닮았다면서요?

그래서 같이 살고 싶다면 그건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죽은 마누라 생각이 간절해서 그러는거잖아요. 안그래요?”

장죽산은 얼른 뭐라고 대답이 나오지가 않는다.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고, 또 마치 아픈 데를 찔린 듯했기 때문이다.

“왜 대답이 없죠? 내말이 틀림없어서 말을 못하시는 거죠?”

그제야 장죽산은 더듬거리며 흡사 변명을 하듯 말한다.

“그게 아니라, 뭐고 하면 저... 그게 바로 인연이 아니겠어요?

죽은 아내를 닮았기 때문에 좋아진 건 사실인데,

그렇게 첫눈에 반해버린다는 것은 인연이라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이죠. 안그래요?”

“호호호...”

이병아는 그만 살짝 얼굴이 붉어지며 자기도 모르게 나직이 웃음이 흘러나온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몹시 기분 좋고 짜릿하게 가슴에 와닿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 캐고들 이유가 없다는 듯이 그녀는 매우 흡족한 기분이 되어

나긋한 눈길로 장죽산을 바라보며 다소곳이 앉아있다.

“결코 죽은 아내가 그리워서 당신과 결혼하자는게 아닙니다.

그 점은 추호도 거짓이 아니니 오해 마시고...”

“예, 이제 오해가 풀렸어요”

“그럼 내 청혼을 받아주는 거죠? 그렇죠?”

그러자 이병아는 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 대신 마치 투정이라도 하듯 내뱉는다.


“난 이런 좁은 집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구요”

 

 

 

재혼(再婚) 52회 

 

 

 

 “그럼 어떻게 하죠? 허허허...”

장죽산은 이제 청혼 승낙을 받은 셈이어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런 좁은 집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곧 당신과 결혼을 하기는 하되

 

좀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딴 데로 이사를 가자구요”

이병아의 말에 그는 약간 곤혹스러워진다.

누가 이런 좁고 누추한 집에서 살고 싶어서 사나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 애원을 하듯 말한다.

“몇 해만 참아줘요.

그러면 내가 반드시 돈을 벌어서 좀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도록 할테니까요.

당신하고 같이 살게 되면 내가 절로 신명이 나서 돈도 잘 벌릴 것 같지 뭐요”

“호호호... 그것을 어떻게 믿나요. 돈이 안 벌리면 어쩔텐가요?

평생 이집에서 살 거 아니예요. 난 싫다구요. 당장 이사를 가잔 말이에요”

“당장 무슨 재주로 이사를 가죠?

이 집을 팔면 또 이 집만한 집밖에 못살게 아니냐 말이오”

“하하하...”

그녀는 재미잇다는 듯이 까르르 웃고나서 말한다.

“내 집이 팔렸잖아요”

“아니 그럼...”

장죽산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이 집도 팔고 해서 좀 괜찮은 집을 사자구요.

그래서 약방도 넓히고 해야 돈도 벌릴 거 아니예요”

“아이구, 줗고 말고요”

장죽산은 정말 이게 웬 떡이냐 싶은 듯 싱글벙글 어쩔 줄을 모른다.

그녀를 아내로 맞는 것만도 감지덕지인데,

게다가 그녀의 집을 판 돈까지 합해서 새로 넓은 집을 마련하겠다니,

이겨야 말로 하늘이 준 복이며, 과분한 행운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는 그만 벅차오르는 가슴을 어쩌지 못하겠는 듯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든다.

순간 그녀도 마치 그를 피하려는 듯이 얼른 몸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여자의 반사작용이다.

일어선 그녀를 장죽산은 와락 가슴에 안아버린다.

“당신 정말 고마워요. 정말 정말...”

그는 진정으로 고마워 못견디겠는 듯 그녀를 안은 팔에 불끈 힘을 준다.

“어머나-”

그의 콧김이 물씬 얼굴에 와 닿자,

그녀는 살짝 얼굴을 돌린다.

그녀의 옆얼굴이 온통 눈앞을 가리는 듯하자,

그는 그만 그 윤기있는 하얀 살결에다가 코를 갖다대고 냅다 비빈다.

그리고 이번에는 까만 머리 밑으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연한 버섯 같은

귓불을 덥석 입안에 넣고 자근자근 애무한다.

“아으-”

그녀는 가볍게 목줄기를 떨며 자지러진다.

 

 

 

재혼(再婚) 53회 

 

 

 

 

 장죽산은 어느덧 아랫도리의 욕망이 뜨겁게 부풀어올라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입안에 든 그녀의 귓불을 밀어내고,

 

그대로 그 귀에다가 속삭이듯이 말한다.

“여보, 나 안되겠다구. 응?”

 

 

 

 

“안되기는 뭐가 안되겠다는 거예요? 호호호...”

이병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그만 킬킬 웃어버린다.

매우 순진한 양반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승낙을 받고서 본격적인 행위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닌가.

서문경 같았으면 여자의 의사같은 것은 아랑곳없이 냅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여버릴 터인데 말이다.

“못 참겠다니까. 여보, 저기 가서 누워요”

병자를 눕혀서 침 시술을 하는 병상이 방 한쪽에 놓여 있었다.

거기 가서 누우라는 것이다. 제발로 걸어가서 말이다.

마치 병자가 침을 맞으려고 병상에 올라가 드러눕듯이.

“싫어요”

이병아는 톡 쏘듯이 내뱉는다.

“왜? 낮이라 그래요?”

“반드시 낮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럼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단 말이에요”

“때는 무슨 때?”

그러자 이병아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여보, 우리 일시적인 기분으로 놀지말고, 제대로 순서를 밟자구요.

백년해로를 하려면 혼례도 올려야 될거 아니예요”

“아하, 그래요?”

과부와 홀아비 사이라 서로 뜻만 맞으면 그날부터 곧바로 부부가 되어

같이 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던 장죽산은 약간 뜻밖이기는 했으나,

결코 기분이 언짢은 일은 아니어서 고개를 끄덕인다.

“혼례를 성대하게 올릴 필요는 없다구요.

간소하게나마 정성껏 치르면 되는거죠.

그러니까 날짜를 멀리 잡을 것도 없고, 내일이라도 상관없잖아요.

 당신 가까운 친구나 몇사람 오게 하면 되는 거예요.

난 우리 수춘이하고 풍노파한테만 알릴거예요”

“좋아요. 그렇게 하자구요. 역시 당신은 보통 넘는 여자라구”

“보통 넘긴요. 당연히 그래야 되는거죠.

그러니까 여보, 오늘밤만 혼자서 얌전히 주무시라구요. 알겠죠?”

“허허허... 이제 하룻밤만 견디면 홀애비 신세를 면한다 그거지? 허허허 허허허...”

장죽산은 한량없이 좋기만한 듯 코를 위로 쳐들며 웃어댄다.

이병아는 곧바로 다시 집을 나섰다.

내일 혼례를 올리려면 당장 지금부터 음식이니 뭐니

준비를 서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먼저 사자가로 가 수춘이와 풍노파에게 소식을 알리고,  

그들과 함께 장을 봐가지고 돌아와 주방에서 지지고 볶기 시작했다

장죽산은 저녁에 몇몇 가까운 친구에게 내일의 경사를 알리러 나갔다.

 

 

 

재혼(再婚) 54회 

 

 

 

 이튿날 역시 날씨가 흐렸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침나절에 장죽산과 이병아의 혼례는 몇몇 하객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촐히 거행되었다.

 

홀아비와 과부의 만남이긴 했으나, 이병아의 용모가 눈부실 지경으로 뛰어나고,

 

장죽산 역시 그런대로 괜찮게 생긴 맵시여서 누가 보아도 잘 어울리는 한쌍의 원앙(鴛鴦)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 혼례를 마쳤을때 까마귀 한 마리가 까욱까욱까욱...

울면서 지붕 위를 지나갔다.

아무도 그 소리를 귀담아듣질 않았으나, 신부인 이병아는 왠지 몹시 마음에 걸렸다.

어제 아침에도 까마귀가 울며 지나가더니, 오늘 또 그러질 않는가.

더구나 오늘은 막 혼례를 마친 참인데,

마치 두 사람의 결합을 저주라도 하듯이 말이다.

무슨 불길한 예시인 것만 같아서 그녀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으나

그런 기색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점심겸 축하의 주연이 벌어졌다.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장죽산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불쑥 서슴없이 말했다.

“죽산, 이사람아, 난 깜짝 놀랬다구. 왠줄 알아?

신부가 죽은 자네 전처와 너무나 닮아서 말일세”

그러자 제각기 한마디씩 지껄인다.

“어쩌면 그렇게 닮은 여자를 골랐지? 재주도 좋지 뭔가”

“혹시 처제 아닌가? 처제한테 장가든거 아니냔 말이야”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하하하...”

“허허허...”

비록 하객은 몇 사람 안됐지만, 조촐하면서도 화기애애한 가운데 무사히 잔치를 마친

장죽산과 이병아는 그날 밤 부부로서의 첫 인연을 잘 맺었다.

장죽산은 오래간만에 홀아비를 기분좋게 면했고,

이병아는 네 번째 남자의 살맛을 마음껏 즐겼다.  

장죽산은 죽은 아내에 비해서 이병아가 훨씬 더 나긋나긋하게 휘감기는,

매우 감칠맛이 있는 여자라고 만족해 하였고,

이병아는 서문경에 비하면 장죽산은 아무래도 한수 밑이라 싶었다.

그녀는 서문경의 가락이 오입쟁이의 그것이라면 장죽산은

보통 지아비의 솜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입쟁이의 가락에 익숙해진 그녀의 몸뚱어리는 좀 화끈한 맛이 덜하다는 느낌이기는 했으나,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은근하게 황홀감에 젖을 수가 있어서 오히려 이게 진짜 부부 사이의

정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제대로 순서를 밟아서 부부가 된 그들은 남자의 집까지 팔아 두 사람의 돈을

합쳐가지고 다른 곳에 좀 넓고 깨끗한 집을 마련해서 옮겨갔다.

그리고 대문에 ‘장숙산의원(蔣竹山醫院)’이라는 간판도 큼직하게 새로 달았고,

당나귀도 한 마리 구입했다.

지금까지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떠돌아다니기 일쑤던 장죽산이

이제는 제법 의생답게 당나귀에 몸을 싣고 왕진을 다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