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62) 재혼(再婚) <36~4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7. 20:46

금병매 (62)

 

 

 

재혼(再婚) 36회 

 

 

 

 장죽산은 죽은 아내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죽은 아내와 지금 눈앞에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이 너무 닮아 보였던 것이다.

조금 전에 방으로 들어섰을 때 그가 약간 놀라며 주춤거린 것도 첫눈에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마와 눈썹, 그리고 콧대는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얼굴 모습이 전체적으로 볼 때 죽은 아내보다

눈앞의 이 여자가 더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살결도 더 희고, 유방도 훨씬 풍만하며, 배꼽이랑 발도 한결 예뻤다.

키는 거의 같아 보였고, 머리카락의 검기도 비슷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매우 닮아 보여서 마치 죽은 아내가 한층 고운 모습으로

 환생(還生)을 하여 눈앞에 누워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오늘이라는 날이 어떤 운명적인 만남의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구나 이 여자는 과부라고 하지 않는가.

비록 서문경이와 좋아하는 사이고, 곧 그에게 개가를 한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서문경의 지금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그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될 게 조금도 없다 싶었다.

그런 생각에 잠기며 장죽산은 혼자서 지레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으로 가슴을 설레기도 했다.

한참 뒤에 그는 병자의 몸에 꽂은 침을 하나하나 모조리 뽑았다.

그리고 헤쳤던 옷을 도로 여며 주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장죽산은 그녀의 맥을 다시 짚어 보았다.

맥박이 비교적 고르고, 열도 아까보다 현저히 내려가 있었다.

그는 수춘이를 불러서 약을 지어올테니 병자 곁에 있으라고 이르고는 집으로 갔다.

첩약(貼藥) 네 봉지를 우선 지어가지고 돌아와 손수 약을 약탕관에 안쳐서

수춘이에게 그것을 달이도록 시켰다. 그리고 자기는 병자 곁으로 갔다.

그때까지 그녀는 새근새근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약 두 첩과 재탕까지 세 차례 탕약을 마시고,

미음을 먹은 이병아는 저녁 무렵에는 신열(身熱)은 이제 거의 가셔 있었다.

그러나 기력이 없고 때때로 현기증이 머리를 때려서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계속 누워 있었다.

밤이 되자,

장죽산은 수춘이에게 병자간호에 관한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서 자기는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이병아는 가만히 몸을 일으켜 앉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대강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의원님, 댁에 안 돌아가시면 안되나요?”

“예? 그럼 여기 있어 달라는 말입니까?”

장죽산은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이다.

“예, 댁에 안 가셔도 된다면 여기 같이 계셔 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 하면 저...”

이병아는 말하기가 좀 쑥스러운 듯 머뭇거린다.

 

 

 

재혼(再婚) 37 

 

 

 

 “부인, 어서 얘기해 봐요”

“저... 밤에 자다가 말이에요, 여우가 나타나지 뭐예요. 백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해서 찾아들어와...”

 

 
 

“그래요? 허허허...”

장죽산은 웃음이 나온다.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해서 나타나다니,

옛날이야기에서는 많이 들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있다고는 믿질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의생이기 때문에 이 병자가 왜 그런 잠꼬대 같은 말을 하는지

그 까닭을 뻔히 알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이 몹시 허(虛)해졌기 때문이다.

“정말이라구요. 한번도 아니고, 사흘밤이나 연달아 나타났다니까요.

틀림없이 오늘밤도 나타날 거예요. 무서워서 도저히 혼자서 못 자겠다구요”

“부인의 기가 허해졌기 때문에 헛것이 보인 겁니다.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하다니,

그런 일은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것이지, 실제로 있는 일이 아니라구요”

“나도 처음에는 꿈인지 생신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지 뭐예요.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보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더라구요.

그런데 어젯밤에는 틀림없는 여우더라니까요.

처음에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방을 나가는데 보니까 꼬리가 달렸지 뭐예요.

놀라서 소리를 지르니까 얼른 돌아서는데 글쎄 백여우 아니겠어요.

커다란 백여우가 앞발을 번쩍 쳐들고 할퀴려고 들더라니까요.

그래서 그만 기절을 해버렸다구요.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흠...”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글쎄 오늘밤에 여기 같이 계셔보라니까요. 그러면 아실거 아니에요”

“좋아요. 그러죠”

“아이 고마워라”

“허허허... 집에 가도 마누라도 없고 혼자니까, 여기서 자도 아무 상관 없다구요”

그러자 이병아는 조금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 말이 없다가 잠시 후 묻는다.

“부인이 어디 가셨나요?”

“예”

“어디 친정에라도 다니러가신 모양이죠?”

“친정에 다니러간 게 아니라, 저승에 다니러가서 안오는군요”

“저승에요? 어머, 그럼...”

“작년에 죽었지 뭐예요. 나 홀아비라구요”

장죽산은 이병아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녀는 살짝 그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곧,

“나 어지러워요. 눕겠다구요”

하고는 자리에 도로 드러눕는다.

장죽산의 시선이 곧장 자기의 얼굴에 와 닿는 듯하자,

이병아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아 버린다.

 

 

 

재혼(再婚) 38회 

 

 

 

 병자인 이병아는 침상에 누워 자고,

 

의생인 장죽산은 방바닥에 이부자리를 하고 거기서 잤다.

장죽산은 도무지 잠을 이루질 못했다.

 

홀아비인 그의 바로 옆에 과부가 누워있으니 잠이 올 턱이 없었다.

 

더구나 한방에 단둘이가 아닌가.

 

비록 여자가 병자이기는 하지만, 과부병에 걸린 터이니

 

 범하려면 얼마든지 범할 수가 있었고, 또 그렇게 해주면 오히려

 

약을 달여 먹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험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장죽산은 감히 범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욕망을 억누르며 잠이 들려고 애를 썼다.

단순히 병자와 의생이라는 그런 관계로 끝내려면 까짓것 절호의 기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그는 그녀와의 만남을 운명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어떻게든지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을 작정을 하고 있는 터이라 함부로 겁탈하듯 달려들어서는 안된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그는 어쩌면 여자 쪽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자가 다가오기를 속으로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너무 앞뒤를 헤아려 점잖게 밤을 넘겨버린다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였다.

그러면 오히려 여자 쪽에서 실망을 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비록 병자와 의생 사이지만, 여자 쪽에서 먼저 밤을 같이 지내달라고 했을 때는 은근히

그것을 기대하고서 그랬을지도 알 수 없었다.

비록 말로는 여우가 둔갑해서 나타나는 것이 무서워서 같이 있어달라고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장죽산은 누운 채 침상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여보, 자요?”

아무 대답이 없다.

“여보, 정말 잠들었소?”

여전히 대답이 없더니 잠시 후,

“으으응...”

하면서 그녀는 부스스 돌아눕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잠들어 있지 않다는 표시인지,

아니면 자다가 그냥 몸부림을 치듯 돌아눕는 기척인지,

장죽산은 얼른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잠은 더욱 멀리 날아가버린 느낌이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한참 숨을 죽이고 있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꿀컥 뜨거운 침을 한 덩어리 삼킨다.

그리고 안되겠다는 듯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침상 가까이로 다가선 장죽산은 잠시 망설인다.

혹시 자기의 예측이 빗나가 그녀가 전혀 그런 생각은 없이 잠들어 있다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망신만 당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이 한낱 물거품처럼 꺼져버릴지도 알 수가 없다.

“옳지, 그러면 되겠구나”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살그머니 한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더듬어서 맥을 짚어 본다.

만약 잠들어 있지 않다면 무슨 반응이 있을 게 아닌가 말이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맥박이 고르게 뛰고 있다.

잠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

 

 

 

재혼(再婚) 39회 

 

 

 

 한참 맥을 짚고 있어도 잠을 깨는 기색이 없자,

 

장죽산은 그녀를 흔들어 깨울까 어쩔까 생각해 보았다.

 

만약 깨어 일어나서 그녀가 응하질 않고, 싫다고 뿌리치는 경우는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도로 잠자리로 물러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미 그의 아랫도리의 욕망이 뜨겁게 부풀어올랐고, 가슴도 야릇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는 그만 진맥을 하던 손을 옮겨 그녀의 앞가슴 속으로 가만히 들이밀었다.

 

봉긋한 젖무덤 하나가 손아귀에 물큰하고 뿌듯하게 쥐어졌다.

 

그러자 그녀가,

“으으응...”

몸부림을 치듯 저쪽으로 돌아누우려 한다.

그는 무의식중에 그만 그녀의 앞가슴이 저쪽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불끈 제지한다.

순간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냅다 소리를 지른다.

“어머나! 여우가 나타났어. 여우 여우... 아이고-”

장죽산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의원님! 여우가 나타났다니까요. 날 살려줘요. 아이고 아이고-”

그는 휘저어대는 그녀의 두 팔을 붙들어 한데 모아 쥐며 말한다.

“여우가 아니라구요. 부인 부인, 정신차려요. 나요 나. 의원이라구요, 의원”

“예? 뭐라구요?”

“나 의원이라니까요. 여우가 아니라니까... 가만 있어요. 불을 컬테니까”

방에 불이 밝혀지자, 이병아는 멀뚱한 표정으로 방안을 두리번거린다.

 장죽산은 가만히 의자에 앉는다.

“놀란 모양이죠? 내가 말이요, 부인이 자다가 숨을 가쁘게 쉬길래 맥을 짚어본 거요”

“아, 그래요? 난 어찌나 놀랬는지... 여우가 나타나 가슴을 더듬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러면서 이병아는 살짝 웃음을 얼굴에 떠올린다.

그 웃음이 어쩐지 묘하게 느껴져서 장죽산은 속으로 혹시 유방에 손을 가져간 것을

다 알고서 은근히 그렇게 비꼬듯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귀밑이 약간 붉어지는 느낌이다.

이병아는 도로 잠자리에 눕는다.

낯가죽이 두껍지 못하고, 심장이 부드러운 편인 장죽산은 어쩐지 멋쩍어져서

슬그머니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나마 자리를 피하고 싶었고, 요기(尿氣)가 느껴지기도 했던것이다.

마당으로 나간 장죽산은 사위가 고요한 한밤중이고 해서 한쪽 담벼락에다가

아무렇게나 오줌을 갈기기 시작했다.

줄줄줄... 볼일을 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지붕 위에서 와르르 와르르 투당탕 투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혼(再婚) 40회 

 

 

 

 

저게 무슨 소린가 하고 장죽산은 약간 놀라면서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달이 없는 밤이었으나, 별이 총총해서 물체를 분간할 수는 있었다.

 

뭔지 희끗한 것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눈에서 사라지더니,

 

한 가닥 바람 같은 것이 지붕위에서 휙 불어내리는 느낌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장죽산은 그 자리에 서서 단전(丹田)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기분이 으스스했던 것이다.

 

 단전에 밤공기를 집어넣어 기분을 가라앉히며 모래알처럼 뿌려져 있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때마침 유성이 하나 찍- 긴 선을 그으며 사라져 갔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이번에는 또 집안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장죽산은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이고- 여우가 날 잡네- 사람 살려-”

목이 조여 내지르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에 장죽산은 그만 방문 앞에서 주춤 멈추어 섰다.

그리고 휘둥그래진 눈으로 방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촛불이 켜져 있어서 방안의 광경이 훤히 다 보인다.

아까처럼 여자는 침상에 그대로 누워있고,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여우는 고사하고, 쥐새끼 한 마리도 방안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는 혼자 누운채 그대로 팔 다리를 버둥거리며 냅다

악을 쓰듯 계속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장죽산은 속으로 아하, 싶으며 얼른 방으로 뛰어들어가 허공을 향해 휘저어대는

그녀의 두 팔을 잡아 왼손에 불끈 모아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냅다 그녀의 뺨을 갈겨댄다.

“부인! 부인! 정신 차려요! 정신! 여우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이오.

아무것도 없다구요. 정신차려! 정신!”

사정없이 마구 갈기는 바람에 그녀는 정신이 얼얼한 듯 비명을 멈추고,

초점을 잃어 희멀겋기만 한 두 눈을 스르르 감으며 입에 거품을 내문다.

버둥거리던 몸뚱어리도 맥이 풀리는 듯 축 늘어진다.

장죽산은 모아쥔 그녀의 팔을 놓고, 서둘러 침을 놓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그는 썰렁한 기운이 등골을 스치는 듯해서 오싹해진다.

그 괴이한 냉기가 방밖으로 휙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자 바람이 스치기라도 한 것처럼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나부낀다.

장죽산은 잠시 으스스한 기분에 휩싸여 가만히 굳어져 서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가다듬어 병자의 팔과 이마에 먼저 침을 꽂고나서 웃옷을 헤쳤다.

 여자의 풍만한 두 젖무덤이 드러났으나, 이제 조금도 색정(色情)같은 것을 느낄수가 없었다.

그 두 봉우리 사이로 침을 꽂아 내려가고 있는데,

또 지붕 위에서 와르르 와르르 투당탕 투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