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48) 이병아 부인 <31~3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6. 18:50

금병매 (48)

 

 

 

이병아 부인 31회 

 

 

 

 금련은 서문경이 웃자 이제 마음을 놓고 지껄인다.

 

그러나 역시 그의 비위를 심히 건드리지는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호두나무에 등불이 걸려 있더군요. 그게 신호지요?”

 

“......”

“왜 대답이 없어요? 맞죠?”

“대답이 없을 때는 그렇다는 뜻이라는 걸 모르나?”

“호호호...”

“당신 입 다물어야 돼. 알겠지?”

“흥, 기분 나빠서 어떻게 입을 다물어요. 그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예요”

“뭐라구?”

“임자가 있는 년이 남의 남편을 넘보고서 기어이 내통을 하다니...

난 벌써부터 그년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구요.

무송이 귀양을 간 다음날 축하연 때 옥잠화하고 산초떡을 당신한테

선물 보낸 것을 보고서 짐작했어요.

그러더니 기어이 당신을 유혹해서 담을 넘도록 만들었지 뭐예요.

그런 사실을 알고서 가만히 있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금련은 일부러 화살을 이병아 쪽으로만 돌린다.

서문경의 비위를 의식해서 말이다.

“화자허한테 일러바치죠 뭐”

“아니, 지금 진짜로 지껄이고 있는거야?”

서문경의 어조가 약간 거칠어지고, 표정도 굳어든다.

“호호호... 켕기는 모양이죠? 염려마세요.

이 반금련이가 그렇게 미련한 여잔 줄 아세요?

화자허한테 일러바치면 당신은 뭐가 되겠어요.

이병아 그년 혼자만 망신을 한다면 일러바치고 말고요.

하지만 그 불똥이 당신한테까지 튀어올게 뻔한데 그럴 수가 있나요.

분하지만 참는 수밖에 없죠 뭐”

“그러면 그렇지. 허허허... 역시 당신은 현명한 내 마누라라구”

이제 기분이 개운해지고 금련이 새삼 사랑스럽기만 한 듯

서문경은 다시 그녀의 알몸을 지그시 끌어안는다.

“한 번 더 즐겁게 해줘요”

“암, 그래주고 말고”

서문경은 서서히 이차전으로 들어간다.

근래에 와서는 금련도 어느덧 시들한 마누라가 돼버려서

서문경은 좀처럼 이차까지 즐기는 일이 없었는데,

그녀가 비밀을 알고도 스스로 입을 다물어 주겠다고 하니

고마움의 표시로 선심을 쓰는 셈이다.

서서히 물결을 타면서 금련이 속삭이듯이 말한다.

“입을 다무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구요”

“조건? 그게 뭔데?”

“이병아한테서 자고 온 다음에는 반드시 보고를 해야 된다는 조건이에요.

그 여자가 어떻게 하더라는 얘기를 자세히 들려 달라 그거예요”

“그거야 문제없지”

서문경은 조건이 너무 싱겁기만 한 듯 히힉 실소를 한다.

 

 

 

이병아 부인 32회 

 

 

 

 

 그 조건을 지켜 서문경은 담을 넘어가 이병아와 동침을 하고 돌아온 다음날 밤엔

 

반금련에게 말하자면 보고를 잊지 않았다.

금련은 그 보고를 듣는 재미도 보통이 아닌 듯 킬킬거리기도 했고,

 

보충질문을 하듯 꼬치꼬치 세부사항까지 캐묻기도 했다.

 

 

한번은 서문경이 한 권의 책을 금련에게 건네주었다.

그 책을 펼쳐본 금련은,

“어머나-”

절로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재미있는 책이지?”

“예, 히히히... 이 책 어디서 났어요?”

“이병아가 가지고 있더라구. 그래서 빌려 왔지. 당신 보여주려고”

“어머, 그 여자 무척 색골인 모양이구나. 어디서 이런 책을 다 구했을까.

둘이서 이 책을 보면서 이대로 다 해봤겠군요”

“아직 다는 안해봤다구. 가지 수가 얼마나 많다구. 스물네 가지나 된다니까”

금련은 두 눈에 야릇한 윤기를 반들거리면서 한장 한장 차근차근 넘겨 나간다.

어른들이 은밀히 보는 그림책이었다.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가 정사를 즐기는 춘화도(春畵圖)인데,

그 체위(體位)를 한 가지 한 가지 차례차례 설명을 하듯 스물네 가지나 그려 놓았다.

그러니까 성교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어머나, 이렇게도... 히히히...”

금련이 킬킬거리자,

서문경은 그 그림을 들여다보며,

“나도 첨 본다니까. 이런 것은...”

하고 말한다.

엽색의 도사인 서문경에게도 생소한 체위가 더러 있었던 것이다.

스물네 가지의 그림을 하나하나 다 보고난 금련은

그 중에서 가장 희한하고 미경험인 체위 하나를 골라내어 서문경에게 보이면서,

“여보, 오늘밤에 이렇게 한번... 어때요?”

“조금 쑥스럽기도 한 듯 히힉 웃는다.

“좋아, 나도 이런 식으로는 처음이니까, 이 그림을 보면서 한 번 실습을 해보자구”

서문경도 코언저리에 닝글닝글한 웃음이 떠오른다.

실은 그럴 생각이 있기도 해서 그 책을 빌려왔던 것이다.

며칠 뒤, 그 책을 돌려줘야 된다고 서문경이 말하자,

금련은 안돌려주면 어떠냐면서 내놓으려 하질 않았다.

마치 무슨 진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 책보다 훨씬 희한한 물건도 있더라구. 책을 돌려주고, 이번에는 그걸 빌려올테니까”

“그게 뭔데요?”

“나중에 보면 안다구. 그것을 사용하면 말이야 훨씬 기분이 좋더라니까”

“어머, 뭐 그런 게 있나요?”

금련의 두 눈에 호기심이 반짝 떠오른다.

 

 

 

이병아 부인 33회 

 

 

 

 “남자도 기분이 좋지만 여자가 훨씬 더 기분이 좋은가봐.

 

그걸 사용하면... 어쩔 줄을 모르더라니까”

“그래요? 꼭 빌려와야 돼요”

 

 

“빌려오고말고. 당신이 빌려달라고 한다면 두말없이 빌려줄 거야”

그 여자는 별것을 다 갖고 있네. 뭐 어떻게 생긴 건데요?

말해봐요. 너무 궁금하단 말이에요“

그러자 서문경은 불쑥 간단하게 내뱉는다.

“구슬이야, 구슬”

“구슬요?”

금련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구슬이라니 도대체 그걸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얼른 짐작이 가질 않는다.

“구슬이라도 보통 구슬이 아니라,

아주 희한하게 생긴 구슬이라구. 곰보구슬이라고나 할까”

“곰보구슬요? 하하하... 어떻게 생긴걸까... 그걸로 뭘 어떻게 하는데요?”

“미리 다 알아버리면 나중에 재미가 없다구.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상상을 해보면서 기대를 하고 있으라구”

“호호호... 그러죠. 그런데 그 여자는 그런 것을 어디서 구했대요?”

“동경에 살았으니까 그때 화자허가 구해다 줬겠지 뭐”

“동경에는 그런 희한한 것이 많은 모양이죠?”

그러고 나서 금련은 문득 머리에 와 닿은 듯

별안간 살짝 곱게 눈을 흘리며 약간 볼멘소리로 말한다.

“여보, 그런데 왜 그 보고를 하지 않았어요?

곰보구슬을 가지고 어떻게 했다는 얘기는 없었잖아요”

“내가 얘길 안했던가... 깜박 잊었던 모양이지. 허허허...”

서문경은 넉살좋게 웃음으로 어물쩍 넘겨 버린다.

금련은 서문경의 허벅지를 한 번 꽉 꼬집어 준다.

“아야야-”

서문경은 기분이 좋은 듯 엄살스럽게 소리를 내지른다.

며칠 뒤 담을 넘어 이병아를 찾아간 서문경이 책을 돌려주고,

그 구슬을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이병아는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하려고요?”

“반금련이가 좀 사용해 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어머나, 그럼 반금련씨가 우리 사이를 아나요?”

“알지”

“어머 어머. 당신이 얘기했군요. 그래도 되는거예요?”

이병아는 놀라면서 약간 원망스러운 듯한 눈길로 서문경을 바라본다.

“내가 얘기한 게 아니라, 담을 넘는 것을 그 사람이 보고 말았다구.

걱정 말아요. 절대로 입을 안 열기로 단단히 다짐을 받았으니까.

우리 집안은 내가 책임지고 단속할테니까,

당신은 당신 집안이나 책임지도록 해요”

“알았어요”

 

 

 

이병아 부인 34회 

 

 

 

 “빌려주는 거지?”

“빌려줘야지 도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보,

 창피하게 왜 그런 것까지 얘길 했어요? 반금련씨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말이에요”

 

“어떻게 생각하기는 뭐 어떻게 생각해. 부러워하지 뭐. 아주 희귀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그럼 당신, 이 책도 나한테서 빌렸다고 다 얘기했겠군요”

“했다구. 상관없다니까 그러네. 이 책을 보고 얼마나 좋아하더라구”

“아이 창피해”

이병아는 정말 창피한 듯 두 손으로 살짝 얼굴을 가리기까지 한다.

그런 점이 역시 수치심을 제대로 지니고 있는 여염집 여자답다.

비록 이불속에서는 음탕하고 요염하기 이를데 없지만 말이다.

이병아는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비밀을 안 반금련이 빌려달라는데 안 빌려줄 도리가 없어서

그 구슬을 서문경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생각한 끝에 보석이 박힌 금비녀 한 개를 반금련에게

선물로 전해달라고 내놓았다.

구슬만 달랑 빌려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비록 서문경의 다섯 번째 마누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기가 그녀의 남편을 곧잘 옆치기하고 있으니 미안하기도 해서 말이다.

서문경으로부터 그 구슬과 금비녀를 받은 금련은 무척 좋아했다.

금비녀도 금비녀지만, 구슬을 본 금련은,

“어머, 희한하게도 생겼다. 이걸로 뭘 어쩌는 거예요?”

신기한 듯이 눈빛을 반짝이며 그것을 손바닥 위에 놓고 요모조모 살핀다.

메추리알보다 조금 클까말까한 구슬인데, 아닌게 아니라 꼭 빡빡 얽은 곰보같다.

“히히히... 정말 지독한 곰보네. 어머나, 말랑말랑하기도 하네요”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려 보고서 희한한 감촉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우니 나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거야.

동경에서 구하기는 했지만, 남양 어떤 나라에서 들여온 것이라지 뭐야.

아주 귀한 물건이래. 보라구. 가죽도 아니고, 나무도 쇠도 돌도 아니잖아”

“글쎄요. 뭐 이런 게 다 있을까... 이걸로 뭘 어떻게 하는데요? 어서 가르쳐 줘요”

“보면 짐작을 못하겠어?”

“잘모르겠다구요”

“바보”

서문경은 그 구슬을 금련의 손바닥에서 집어 가볍게 천장을 향해 훌떡 던졌다가는 잽싸게 받으며,

“자, 그럼 이제부터 이것으로 실습을 할테니까 침실로 가자구, 흐흐흐...”

공연히 재미가 좋은 듯 코를 펴들고 히들히들 웃는다.

그리고 앞장을 선다.

그 구슬을 사용해서 정사를 즐긴 금련은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희한한 감각에 혹해서

그것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이병아에게 돌려주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이병아 부인 35회' 

 

 

 

 서문십걸의 월례(月例)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 달 모임은 상시절(常時節)의 차례였는데,

 

그는 자기 아내가 마침 몸져누워 있어서 정애향(鄭愛香)이라는 기녀의 집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애향은 상시절이 좋아하는 기녀였다.

월례 주연은 열 사람이 차례차례 돌려가며 각자의 집에서 베풀기로 되어 있는데,

 

이번 달은 예외인 셈이어서 주연이 시작되자 서문경이 상시절에게 물었다.

 

 

“자네 마누라 어디가 아픈가?”

“잘 모르겠어. 벌써 드러누은지가 열흘이 넘는데도 안 일어난다니까”

“잘 모르다니, 자기 마누라가 무슨 병으로 드러누웠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이사람 참 형편없군”

그러자 화자허가 농담조로 말한다.

“애향이한테 빠져서 마누라 따위야 안중에도 없는 거겠지 뭐”

“그런 모양인데...”

좌중에 웃음이 일자,

빙 둘러가며 차례차례 술잔에 술을 따르던 애향이 잠시 술병을 멈추고 입을 연다.

“어머, 왜 저를 그런 데다 갖다 붙이죠? 입장 곤란하게... 제가 뭘 어쨌는데요?”

“상시절을 너무 사랑하지 말라 그거야”

“사랑하는 것도 뭐 잘못인가요?”

“사랑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진하게 하면

글쎄 자기 마누라가 병이 나도 나 몰라라 그거란 말이야”

농담이지만 듣기가 거북해서 상시절이 약간 변명조로 늘어놓는다.

“내가 그렇게 나쁜 놈으로 보이나?

마누라가 병이 났는데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게 아니라 뭐냐 하면, 의원도 글쎄 무슨 병인지 확실히 모르더라 그말이라구”

“원인 불명의 병을 앓고 있다 그거군”

이번에는 응백작(應伯爵)이 입을 연다.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뻔하지.

여자가 원인 불명으로 시들시들 아플 때는 그거 십중팔구 굶어서 그렇다구.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니까 애향이만 만날 포식을 시키지 말고

마누라도 좀 먹여주라 그거야. 그것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구 알겠어?”

방안에 또 웃음이 넘친다.

좌장격(座長格)인 서문경이 술잔을 쳐들며 제법 진지한 어조로 말한다.

“자, 그럼 오늘은 굶어서 병이 난 상시절의 아내가 하루속히 먹을 것을

제대로 먹어서 병이 완쾌되도록 비는 건배를 하자구”

“좋아 좋아”

“자- 상시절의 부인에게 풍년을...”

“먹을 것을...”

제각기 한마디씩 내뱉고 웃어대며 건배를 한다.

바로 그때였다.

난데없이 방문이 왈칵 열렸다.

그리고 관원 네 사람이 들이닥치더니 다짜고짜 화자허를 붙들어 밖으로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