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46) 이병아 부인 <21~2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6. 18:40

금병매 (46)

 

 

 

이병아 부인 21회 

 

 

“그러고 보니 은아 생일 때 가고 걸음을 안했군. 자고 오기는 보자...

 

보름도 넘은 것 같고...”

“그러면 쓰나. 소실과 마찬가진데 자주 가서 자줘야지.

 

은아가 자네를 얼마나 위하는가 말이야.

 

그런 여자도 드물다구. 귀여워해 주라구”



 

“가자구. 오늘밤에 오래간만에 실컷 귀여워해주지. 허허허...”

화자허는 서문경의 뱃속에 시커면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아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는 줄을 모르고 기분좋게 웃기까지 한다.

오은아네 집은 좀 먼 거리였으나, 그들은 걸어서 찾아갔다.

서문경은 일부러 오늘밤은 말을 타지 않고 좀 힘이 들더라도 걷기로 했던 것이다.

자기가 말을 타면 화자허도 말을 탈 것이고, 그러면 좀 취하고 밤이 늦어도 삼경이 되어

북소리가 울리기 전이면 쉽사리 집에 돌아올 수 있으니

혹시 화자허를 그곳에 붙들어두는 데 실패할지도 몰라서였다.

서문경의 용의주도한 계략의 일단이었다.

걸어서 찾아온 두 사람을 오은아는 어떻게 된 일인가 싶은 듯 놀라면서도 무척 반겼다.

언제나 서문경과 화자허는 말을 타고 찾아왔던 것이다.

오은아의 침실을 겸하고 있는 방에서 세 사람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곧 기녀 하나가 더 들어와 서문경의 곁에 앉았다.

서문경은 되도록 술은 적게 마시고, 말을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이런저런 싱거운 소리를 곧잘 늘어놓으며 좌중을 웃기곤 했다.

오늘밤은 취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화자허도 오래간만에 오은아를 실컷 귀여워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술을 함부로 마시질 않았다.

서문경은 얘기만으로는 시간을 끌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노래판으로 이끌었다.

두 기녀를 번갈아 노래부르게 했고, 자기도 두어곡 불렀으며,

화자허에게도 부르도록 했다.

밤이 깊어 삼경이 가까워졌을 무렵 서문경은 일부러 하품을 하고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자, 나는 이제 돌아가 봐야겠어.

자네는 여기서 쉬도록 하라구.

 보름이 넘도록 은아를 혼자 내버려뒀다니 너무하지 않았나”

그러자 오은아가 눈에는 웃음을 담뿍 담으면서도 좀 짓궂게 말한다.

“오늘밤은 웬일이에요?

저번에 제 생일 때는 곤드레 만드레 취한 분을 기어이 데리고 가시더니...”

“그때는 친구를 위해서였지”

“오늘밤은요?”

“오늘밤은 은아를 위해서지”

“하하하...”

오은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는다.

서문경이 걸음을 재촉하여 집 대문앞에 이르렀을 때,

둥둥둥... 현청에서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왔다.

 

 

 

이병아 부인 22회 

 

 

 

 서문경은 자기 방에 들어가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아서 숨을 돌렸다.

 

북소리가 울리기 전에 집에 당도하려고 꽤나 급히 걸어왔던 탓으로

 

숨이 헐떡거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숨이 가라앉고 나서도 한참 지그시 눈을 감고 쉬고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본다.

 

 

 

“옳지, 켜졌구나”

서문경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담 너머 화자허네 집 호두나무에 마침내 등불이 하나 걸려 있었던 것이다.

등불은 밤하늘에 우람하게 솟구쳐있는 시꺼먼 호두나무의 맨 아래쪽 가지에 걸려서

마치 무슨 진귀한 야광주(夜光珠)처럼 곱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로 내가 걸어놓은 거나 다름이 없지 뭐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서문경은 담을 넘어갈 채비를 한다.

상의를 좀 간편한 것으로 갈아입고, 두건은 벗어놓는다.

그리고 걸상 하나를 들고서 가만가만 방을 나선다.

모두 잠이 든 듯 사위는 고요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어쩐지 사방이 두리번거려진다.

서문경이 자기 집에서 이처럼 다른 사람의 눈에 띌까봐 신경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호두나무 가지가 넘어와 있는 담벼락으로 다가간 서문경은 걸상을 바싹 붙여놓고

그 위에 살금 올라선다.

팔을 뻗으니 호두나무 가지가 수월하게 잡힌다.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단단히 잡고 훌떡 뛰어오르며 발로 담벼락을 차듯이 하여

 잽싸게 담위로 기어오른다.

그러자 곧 누군가가 건너편 담 밑에서 속삭이듯이 말한다.

“서문 대관인님, 여기 사다리가 있어요”

수춘이다.

“응, 그래 알았다”

서문경은 담 위에서도 위신을 차리듯 제법 점잖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서문경이 땅바닥에 내려서자 수춘이는,

“잠깐 기다리세요”

하고는 쪼르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호두나무 가지에 걸어두었던

등불을 떼어 들고 내려온다.

“수춘이가 수고가 많구나”

“괜찮아요, 서문 대관인님. 다 마님과 서문 대관인님을 위해선걸요 뭐”

“그래, 정말 고맙다.

내가 수춘이의 이 고마움을 잊지 않을거야. 곧 큰 선물을 줄테니까”

“아이 좋아라”

“그 대신 말이야 수춘아,

절대로 내가 담을 넘어서 너희 마님을 만나러 온다는 말을 입밖에 내면 안된다구.

알겠지?”

“예, 염려 마세요. 마님한테도 절대로 입밖에 안 내기로 단단히 약속을 했지 뭐예요”

“응, 그래? 어디 두고봐야지. 만약 입밖에 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이병아 부인 23회 

 

 

 

 수춘이는 슬그머니 목을 움츠릴 뿐 아무 대답이 없다.

서문경은 일부러 겁을 주려는 듯이 낮은 목소리지만 으스스한 기운이 풍기는 그런 어조로 말한다.

 

 

“나는 말이야,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무서울 때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구.

사람의 목숨 하나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단 말이야. 알겠나?”

“예”

“그럼 됐어. 자, 가자”

수춘이는 두려움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서 등불을 들고 가만가만 앞서 걷는다.

서문경은 공연히 사방을 한 번 두리번거리고는 조심스런 걸음으로 뒤따른다.

이병아가 수춘이는 자기 편이니 염려 말라고 장담을 했지만 사람의 입이란,

 더구나 열댓살밖에 안된 철없는 아이의 입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서문경은 만약의 경우에는 죽여 없애버린다는 투의 으름장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을 부려와서 용인술(用人術)에도 능한 서문경은 입을 틀어막을 때는

말을 잘 들으면 큰 상금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앗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자면 한손으로는 달콤한 것을 내밀어 유혹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시퍼런 칼을 들이대듯이 해야 틀림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서문경이 수춘이의 안내를 받아 내실로 들어서니 이병아는 속살이 다 내비치는 듯한

 엷은 분홍색의 잠옷 바람으로 의자에 앉았다가 가만히 일어선다.

“부인, 이 밤중에 방문을 해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서문경은 농담조로 인사말을 던진다.

이병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좀 수줍기도 한 듯 미소를 띤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가 들며,

“큰 실례지요”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서있는 수춘이에게 말한다.

“수춘아, 너는 이제 가서 자도록 해라”

“예”

수춘이는 얼른 돌아서서 자기 방 쪽으로 사라진다.

“아, 향기가 좋군요. 이게 무슨 향기죠?”

서문경이 이병아 쪽으로 다가서며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무슨 향긴지 알아맞혀 보시라구요”

“글쎄요, 무슨 향길까...”

서문경은 방안을 두리번거린다.

“오, 국화 향기로군요”

방 한쪽 창변에 온통 국화분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병아 부인 24회 

 

 

 

 “부인, 정말 국화를 무척 좋아하는군요”

“꽃중에서 제일 좋지 뭐예요”

 

 

“이정도면 좋아한다기보다도 사랑한다고 하는 편이 옳겠는데요”

“맞아요. 저는 국화를 사랑해요”

이병아는 국화분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창변 쪽으로 다가가며 말한다.

서문경도 그녀를 따르듯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수십개나 되는 국화분이 방 한쪽 창변을 온통 다 차지하고 있어서

마치 내실의 한편이 화단이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향기가 실내에 그윽하게 풍기고 있다.

국화분 가까운 곳에도 탁자가 놓여있다.

꽃과 잘 조화를 이루는 듯한 우아한 문양(紋樣)이 새겨진 귀물스러운 육모형의 탁자다.

“취미가 역시 고상하군요”

서문경은 그 탁자의 문양을 손으로 어루만져 보며 의자에 앉는다.

“간단히 한잔 하셔야죠?”

“좋지요”

“제 손으로 빚은 술을 내올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이병아는 주방 쪽 문을 열고 사라진다.

곧 그녀는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차린다.

안주도 정갈하고, 술병과 술잔도 귀물스럽다.

“자, 제가 빚은 술이에요. 받으세요”

그녀는 술병을 들고, 서문경은 잔을 든다.

유난히 노오란 술이 잔에 가득 찬다.

그녀의 잔에다가도 서문경이 술을 가득 따라준다.

국화꽃이 만발한 호젓한 내실에서 한밤중에 단둘이 말없이

술잔을 들어 동시에 입으로 가져간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초야(初夜)의 합환주(合歡酒)인 셈이다.

“야, 이거 향기가 그만인데...”

“무슨 향긴지 아세요?”

“글쎄요...”

서문경은 다시 술맛을 음미해 보고서,

“오, 국화 향기구나”

깜짝 놀라듯이 웃는다.

“맞아요, 국화주예요. 저는 해마다 가을이면 국화꽃으로 술을 빚지 뭐예요”

“이거 정말 일등 술이구려”

“맛이 좋으세요?”

“좋고 말고요. 근래에 이렇게 맛이 좋은 술은 처음인데요.

특급주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언제 이렇게 술 빚는 솜씨도 익혔나요?”

“호호호...”

이병아는 기분이 매우 좋은 듯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 맛과 향기가 특이한 국화주를 서문경은 석 잔을 마셨고,

이병아는 두잔 째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서문경이 네 번째 빈 잔에 술을 따라달라는 듯이 내밀자

이병아는 살짝 술기운에 젖은 듯한 나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너무 취하시면... 괜찮나요?”

 

 

 

이병아 부인 25회 

 

 

 

 그 말의 의미를 대뜸 알아차린 서문경은,

“한 잔만 더하죠. 너무 취하면 곤란하지만, 이정도로는 아무 지장이 없다구요.

 

오히려 힘이 더 나죠. 술맛이 일등이라서 아마 기운이 훨씬 더 날거예요. 허허허...”

 

 

약간 음탕한 그런 웃음을 나직이 점잖게 웃는다.

이병아는 조금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다소곳이 술을 따른다.

서문경은 그 넉잔째를 벌컥벌컥 단숨에 비워 버린다.

그리고 안주를 한젓가락 크게 집어서 입에 넣고 불룩불룩 씹어넘긴 다음

이제 행동 개시라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부인, 이리 와요”

국화주의 기운이 어려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병아를 새삼스레 그윽하게 바라보며

서문경은 두 팔을 활짝 벌린다.

시선이 마주치자 이병아는 살짝 얼굴을 물들이며 가만히 일어선다.

그리고 활짝 열려있는 서문경의 가슴으로 다가가 무너지듯 안겨 버린다.

두 사람은 서서 꿈틀거리며 잠시 감미로운 입맞춤을 나눈다.

국화 향기가 온통 두 사람을 휘감는다.

서문경이 입술을 떼고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여보, 당신은 국화 같은 여자구려. 맵시도 국화처럼 우아하고 산뜻한데,

 입에서도 국화 향기가 나니 말이야”

“어머, 그래요? 국화주를 마셔서 그런 모양이죠”

“그럼 내 입에서도 국화 향기가 나겠군”

“어디봐요”

이번에는 이병아가 능동적으로 서문경의 입술을 애무한다.

그녀가 사르르 눈을 감은 채 부드러우면서도 뜨겁게 입술을 짓이기고 있을 때

서문경의 한손은 그녀의 등에서 허리, 그리고 엉덩이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

엷은 잠옷 자락을 말아올리기 시작했다.

허벅지까지 맨살이 드러나자 슬슬 어루만지다가,

이번에는 슬금슬금 더듬어서 아랫도리의 속옷 밑으로 비집고 기어들어가려 했다.

“어머나”

이병아는 반사적으로 놀란다.

“가만 있으라구”

서문경의 손끝이 기어이 깊숙한 곳에 가 닿으려 한다.

“싫어요. 이러지 마세요”

그 손을 뿌리치듯 엉덩이를 냅다 꿈틀거린다.

“왜 그래?”

“부끄럽단 말이에요. 여기서 이러시면... 침실로 가요”

“그럴까”

서문경은 손을 거두고서 그만 그녀를 불끈 들어올려 옆으로 안아버린다.

“침실이 어디지?”

“저쪽이에요”

서문경의 두 팔에 옆으로 안긴 채 이병아는 고개로 한쪽 문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