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41) 마님과 노복 <46~48회>

오늘의 쉼터 2014. 6. 26. 11:48

 

금병매 (41)

 

 

 

마님과 노복 46회 

 

 

 

 금련은 몹시 당황했다.

 

너무나도 그 질문이 홍두깨 들이밀듯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눈꺼풀을 바르르 떨면서 정말 화가 솟구쳐 못견디겠다는 듯이

 

말을 되받아 쏘아붙인다.

“뭐라구요? 금동이 방에서 나왔다구요?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해요? 본 사람이 도대체 누구예요? 그 사람을 대라구요”

 

 

 

서문경은 금련의 서슬이 너무나 새파랗기 때문에 얼른 다음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왜 못 대죠? 누구예요? 그게... 사람을 잡으려 들어도 분수가 있지,

글쎄 내가 금동이 방에서 자고 나왔다구요? 그럼 금동이하고 내가 붙었단 말이에요,

뭐예요? 도대체 그게 말이라고 해요?”

“.....”

“어떤 년이에요?

틀림없이 어떤 년이 그런 말을 입 밖에 냈을 거예요.

나한테 단단히 감정이 있는 년이 말이에요.

복수를 하려고 모함을 하는 게 틀림없어요.

그년을 내가 가만히 안두겠다구요.

생사람을 잡으려 들어도 분수가 있지,

 글쎄 나를 어떻게 보고 종하고 붙어먹은 년으로 몰아붙이다니,

분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손설아의 이름까지는 들먹이지 않았으나,

금련은 입에서 나오는대로 마구 쏟아놓는다.

 내키는대로 지껄이다보니 어쩐지 그년의 짓 같다는 생각이 절로 머리에 와 닿았던 것이다.

그리고 춘매가 엿듣고 와서 알려주기를 금동이도 누군가의 모함 같다고 발뺌을 했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서로 말을 맞추는게 유리하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제야 서문경이 입을 연다.

“손설아를 의심하는 모양인데, 목격했다는 사람은 손설아가 아니라구”

“그럼 누구에요? 말해 보세요”

“소옥이라구”

“뭐요? 소옥이가...”

금련은 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적지않이 당황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소옥이가 목격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일부러 그런 말을 꾸며서 소옥이가 입 밖에 낼 턱이 없는 것이다.

가벼운 현기증이 머리 속을 지나가는 듯했으나,

금련은 두 눈을 깜짝이며 순간 능청스럽게 피식 웃기부터 한다. 같잖다는 표시이다.

그리고 마치 미리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입을 연다.

번쩍 자기도 모르게 머리에 와 닿은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비상한 여우처럼 금련은 순간적으로 머리 회전이 잘되는,

기지(機智)에 넘치는 데가 있었다.

결사적인 연극판이 되어서 그 기지가 한결 번쩍였던 셈이다.

“새벽으로 내가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서 정원을 이리저리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을 소옥이가 봤던 모양이죠.

왜 내가 새벽으로 잠을 못 이루었는지 아세요? 

당신 때문이라구요”

 

 

 

마님과 노복 47회 

 

 서문경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변한다.

자기 때문에 새벽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서 정원을 헤매기까지 했다니,

금련이 새삼스럽게 바라보여진다.

그 말에는 자기에 대한 간절한 애정이 은연중 짙게 내비치고 있질 않는가 말이다.

금련은 눈썹 하나 까딱하질 않고 나불나불 말을 잇는다.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면 도무지 다시 잠이 오질 않았지 뭐예요.

당신이 다른 여자를 끼고서 자고 있는 광경을 생각하면 미칠 것같더라구요.

그래서 견디지 못해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서 정원을 헤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구요.

그걸 소옥이가 봤던 모양이죠. 하하하...”

천연덕스럽게 금련은 웃기까지 한다.

“음- 그랬었구먼”

서문경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뜨덕인다.

그러면서도 한가닥 의혹이 남는 듯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그런데 왜 금동이 방에서 자고 나오는 것을 봤다고 그랬을까? 소옥이가...”

금련은 대뜸 눈앞에 없는 소옥이를 쏘아붙이듯이 뇌까린다.

“그년 눈까리가 삐어졌던 모양이지.

금동이 방에서 나오기는 누가 금동이 방에서 나와. 나 참 기가 막혀서...”

“좋아, 그럼 소옥이를 불어서 물어봐야겠는데...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

거짓말을 한 게 사실이라면 소옥이란 년을 가만히 둘 수 없지. 안그래?”

“맞아요. 주둥아리를 문질러 버려야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으나,

금련은 속으로 바짝 새삼스럽게 긴장이 되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대질 심문이 되는 판이니 말이다.

봤다느니, 안 그랬다느니 하고 소옥이와 일대일의 말싸움이 될게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끝까지 우겨서 도리어 고년을 여지없이 납작하게 만들어 놓아야지 하고

금련은 단단히 어금니를 물고 있었다.

서문경은 곧 아량이에게 소옥이를 불러오도록 일었다.

소옥이는 핏기가 싹 가신 듯한 새하얀 얼굴을 하고 방에 들어와

약간 상체를 숙이며 두손을 공손히 모아 쥐고서 서문경 앞에 섰다.

“주인어른, 부르셨습니까?”

“그래, 불렀다. 왜 불렀는지 알겠느냐?”

소옥이는 대답이 없다. 서문경은 벌컥 언성을 높여 말한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조금도 거짓 없이 정직하게 대답해야 된다. 알겠느냐?”

그 말을 얼른 받아서 금련도 한마디 던진다.

“이년, 만약 거짓말을 하면 네 년은 오늘 내 손에...”

소옥이는 질리는 듯 절로 고개가 조금 움츠러든다.

서문경이 엄한 어조로 묻는다.

“새벽에 이 반금련 마님이 금동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네가 봤다는데, 그게 사실이냐?”

 

 

 

마님과 노복 48회 

 

      소옥이는 조금 망설인다.

     긴장이 되어 얼른 입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왜 대답이 없느냐?”

 

     그제야 소옥이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새벽에 반금련 마님을 보기는 봤습니다. 그러나 금동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말에 금련의 얼굴이 대번에 활짝 밝아진다.

     서문경도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는다.

 

     “그럼 반금련 마님이 어디 있는 것을 봤단 말이냐? 자세히 말해봐라”

 

     “정원을 걸어오시는 것을 봤습니다.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변소에 갔는데,

     그때 누군가가 정원을 걸어오고 있길래 자세히 보니 반금련 마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금동이 방에서 자고 나오는 것을 봤다고 말했느냐?”

 

     “..........”

 

     “손설아 마님에게 네가 그렇게 말했다던데?”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금동이의 숙소 쪽의 정원을 걸어오시더라고 했습니다”

 

     “음- 일이 그렇게 된 거로구나”

 

     서문경은 이제 문제가 다 판명이 난거나 다름이 없다 싶었다.

     반금련의 말과 소옥이의 말이 들어맞질 않는가 말이다.

     반금련이 잠을 못 이루어 정원을 헤매는 것을 얼핏 보고서

     소옥이는 금동이의 방에서 자고 나오는 걸로 짐작하고 그런 말을 손설아에게 했고,

     반금련에게 앙심을 품고있는 손설아는 좋다구나 하고, 오월랑에게 일러바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손설아가 터무니 없는 모함을 한 것도 아니고, 또 그 심정도 이해가 되는 터이고 하니

     이 정도로 없었던 일로 결말을 짓는 게 좋겠다 싶어 서문경은,

 

     “허허허...”

 

     혼자서 그만 한바탕 웃어 버린다.

     아이구 이제 살았구나, 용케 말이 맞았네, 하고 금련은 속으로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는 애써 화가 솟구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옥이를 꾸짓어 댄다.

     똑똑히 보지도 않고서 그따위 말을 함부로 지껄이다니 하고 말이다.

     그리고 손설아까지 싸잡아서 그년의 모함인 줄 짐작했다고 욕지거리를 늘어놓는다.

      “그만그만, 이제 됐어. 없었던 일로 하라구.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자꾸 시끄럽게 끌면 안 좋다구”

      오히려 서문경이 만류를 하는 판이다.

     일이 그렇게 끝을 맺고 말았다는 얘기를 소옥이로부터 전해들은 손설아는

     크게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러워서 못살겠네. 정말... 그년 금동이와 붙은 게 틀림없는데... 아이구, 분해 분해”

 

     온통 이맛살을 찌푸리며 버르르 떨기까지 했다.

     금동이는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서문경으로부터 말미를 얻어

     보따리를 싸들고 며칠 뒤 고향으로 떠났다.

     그길로 영영 금동이는 돌아오질 않았다.